아버지
나태주
방구석에 세워 놓은
장롱짝같이 우뚝한
있을 땐 모르다가도
사라지면 문득 그리워지는
때로는 무덤으로 찾아가
무릎 꿇고 물으면
마음 속 들리지 않는 말로
대답해 주는 음성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2014 -
아버지
김재준
날마다 밑줄 그어진다
팽팽한 외줄타기
아이 생일날 제과점 기웃거리며
말없이 돌아올 때
충혈된 달빛 아래
한 개의 가냘픈 그림자
발자국 선명하지 못했지만
구두 밑창 한쪽으로 닳고
어느덧 신발이 헐거워
처음 면도하던 시절 잊히고
얇아진 지갑에 바람이 들어도
무지개 놓치지 않으려는
오래된 소년
- 연간 지하철시집, 2015 -
혜화역 4번 출구
이상국
딸애는 침대에서 자고
나는 바닥에서 잔다
그 애는 몸을 바꾸자고 하지만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그냥 고향 여름 밤나무 그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바닥이 편하다
그럴 때 나는 아직 대지(大地)의 소작(小作)이다
내 조상은 수백 년이나 소를 길렀는데
그 애는 재벌이 운영하는 대학에서
한국의 대 유럽 경제정책을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보다는 부리는 걸 배운다
그 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우는 저를 업고
별하늘 아래 불러준 노래나
내가 심은 아름드리 은행나무를 알겠는가
그래도 어떤 날은 서울에 눈이 온다고 문자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그거 다 애비가 만들어 보낸 거니 그리 알라고 한다
모든 아버지는 촌스럽다
나는 그전에 서울 가면 인사동 여관에서 잤다
그러나 지금은 딸애의 원룸에 가 잔다
물론 거저는 아니다 자발적으로
아침에 숙박비 얼마를 낸다
그것은 마지막 나의 농사다
그리고 헤어지는 혜화역 4번 출구 앞에서
그 애는 나를 안아준다 아빠 잘 가
- 문학사상, 2010/05 -
카페 게시글
삭제게시판
텍스트
[BGM] 아버지라는 존재
오발탄
추천 0
조회 359
17.06.14 02:14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