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금 황산공원에서
대한을 사흘 앞둔 일월 중순이다. 그리 춥지 않은 소한을 보냈고 며칠 뒤 대한도 엄동은 아닐 듯하다. 어제와 그제는 날씨가 춥다는 명분으로 도서관에서 머물며 사색의 시간을 가졌다. 북면 무동 최윤덕도서관에서는 학부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제 분야에서 은퇴한 이가 새를 관찰한 ‘조선생’을 읽었다. 교육단지 도서관에서는 옛글로 전해 온 매화를 예찬한 한시와 그림을 감상했다.
날씨가 풀린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겨울 날씨가 시베리아 한랭기단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한 기온인데 추운 날은 도서관으로 나가고 따뜻한 날은 야외 학습으로 시간을 보낸다. 이번엔 창원중앙역으로 나가 순천을 출발 부전으로 가는 경전선 무궁화호 열차로 물금까지 갈 셈이다. 정한 시각 도착한 열차에 올라 진례터널을 지나자 아침 햇살이 비쳤다.
진영역을 지난 화포천 습지 냇바닥은 얼음이 얼어 윤슬이 더 뚜렷하게 반짝였다. 거기도 겨울 철새가 먹이활동을 하는데 물웅덩이가 얼어 다른 곳으로 옮겨 떠나 새들은 보이질 않았다. 어쩌면 고성 어디엔가 심성 착한 이가 던져주는 축산 부산물을 파먹고 겨울을 나는 독수리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작년 겨울은 김해 주촌 축산 가공 공장에 나오는 부산물을 먹이로 주는 모습을 봤다.
한림정을 지난 열차는 낙동강 강심으로 가로놓인 철교를 지나 삼랑진역에 멈췄다가 강변을 따라 원동으로 내려갔다. 밀양강이 보태져 강줄기가 굵어져 유장하게 흐르는 물길과 같은 방향으로 원동으로 내려가는데 강변으로는 자전거 생태 보도가 놓인 모습도 드러났다. 나는 지난가을 삼랑진에서 그 길 따라 걸어 원동까지 가서 제철에 빚어 파는 도토리묵을 사 온 적이 있기도 하다.
열차는 조선시대 영남대로에서 동래에서 밀양으로 향하는 작원 잔도와 황산 잔도를 지난 물금역에서 내렸다. 역사를 빠져나간 물금은 아파트단지가 빼곡하고 상가가 형성되어 나날이 달라지는 신도시다웠다. 철로를 가로지른 육교를 건너니 드넓게 펼쳐진 둔치는 황산공원이 나왔다. 물금을 달리 ‘황산’이라 부름은 신라 최치원이 오봉산에 올라 남김 ‘임경대’ 시에 그렇게 나와서다.
야구장을 비롯한 체육시설과 함께 낙동강 생태 탐방선 계류장을 겸한 나루터가 나왔는데 탐방선 운항은 멈춰 있었다. 강 건너는 김해 대동에서 매리로 오르는 지방도와 대구부산고속도로는 차량이 질주했다. 둔치 가장자리로 나가자 갯버들 몇 그루는 수액이 오르면서 연녹색이 엷게 비치는 듯했다. 노인 일자리에 참여한 두 할머니가 집게로 쓰레기를 주워 자루에 채우느라 수고했다.
남해고속도로가 남양산으로 건너는 교량 근처는 ‘월당나루’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수운이 발달했을 때 김해 대동에서 양산 물금으로 건너는 길목에 반드시 거치는 나루터인데 육로 교통의 발달로 뱃길과 나루터는 흔적조차 없어지고 지명만 남아 있었다. 월당나루에서 고속도로 교각을 지난 생태 습지는 호포와 가까웠다. 물길이 휘어져 을숙도로 향하면서 호수처럼 잔잔한 포구다.
양산에서 부산광역시로 접어든 호포에서 지하철로 서면으로 나가 1호선으로 바꾸어 타고 자갈치로 갔다. 아까 타고 온 경전선 열차는 경로 할인 요금을 적용받고 지하철은 지공거사 무임승차라 이 나이에 조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자갈치로 뒷골목에서 소시민 즐겨 찾는 선지국밥으로 한 끼 요기를 때우고 남항 포구로 나가봤다. 뱃사람도 아니고 상인도 아닌 이방인으로 서성였다.
충무동 해안 시장을 둘러보면서 친정이 산청이라는 아주머니한테 신물 오징어를 샀다. 갓 잡아 냉동시키지 않아 갈색 살이 탱글탱글 윤이 났다. 다른 가게에서 돔과 조기를 한 무더기 사니 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비늘을 쳐 내장을 꺼내 다듬었다. 자주 갈 걸음이 못 되어 갈치와 동태까지 샀더니 양손에 든 시장 보자기와 비닐봉지가 묵직했다. 하단에서 장유를 거쳐 창원으로 왔다. 25.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