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필집 "점(點) 하나 파란만장"의 시작을 장식한 등단작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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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桑田碧海)
어머니가 들려주셨다. 네가 3살 때 등에 업고 뽕나무밭이 무성하던 잠실벌 땅콩 밭에 자주 밭 메러 다녔다고. 주인의 눈치도 봐야 되고 딱히 나를 돌보아 줄 방법이 없어 밭 가운데 있는 오동나무에 메어놓고 마른 오징어다리를 손에 쥐어주면 불어 터질 때까지 빨아먹으며 잘 놀더라는 거다.
그렇게 두어 시간 일을 하고는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리고 나서 다시 오징어다리를 손에 쥐어주고 그 오동나무에 묶여지곤 했었겠다.
세상사가 빠르게 요동치는가? 뽕나무 밭이 변하여 푸른 바다가 되었다.
1972년도에 준공된 한강의 6번 째 다리인 1,280m의‘잠실대교’옆으로 지하철이 건너다닐 ‘잠실철교’가 건설되고 있었다. 다리 남단에는 서쪽에 이미 지어진 주공1단지와 3단지 저층 아파트에 이어 중층 5단지 아파트가 자리해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잠실역’가까이 큰 물 웅덩이가 양 옆으로 보이고 그 사이로 새로운 길을 만드나본데 도로 폭이 장난이 아니다. 공항 활주로처럼 아주 넓었다. 가까이 있는 물웅덩이가 지금의 ‘석촌호수’이고 새로 뚫은 그 도로는 현재의 ‘송파대로’이다.
내가‘천호동’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6,70년대에는 시내를 나갈 때 한강을 지나는 다리로는 지금의 광진교인 광나루 다리가 유일했다. ‘잠실대교’의 준공은 그만큼 서울 동부권의 생활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왕복 2차선 다리만 이용하던 그 시절 사람들은 엄청난 넓이의 6차선 다리가 나처럼 마냥 신기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아무튼 ‘잠실역’준공을 기점으로 주변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더니 ‘롯데’호텔과 백화점이 생기고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어깨를 펼치며 들어섰다.
가까이 있는 ‘석촌동’과 ‘삼전동’도 아파트가 아닌 고급 단독주택 단지로 변해 가는데 나 같은 서민들에겐 그림의 떡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저런 멋진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평범한 사람들은 아닐 테고 아마도 전생에 복록을 많이 쌓은 덕분을 누리고 있음이겠지...
1980년 겨울에 나는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을 등에 업고 어느 언론사 월간지 수금사원으로 일했다. 건설현장 사무실을 비롯해 ‘구의동’에 위치한 동부지검 판사실과 검사실, 심지어는 허허벌판에 위치한 공장까지 누비며 혹독한 인생수업을 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어느 대기업의 말단사원이 되어 차츰 생활이 안정되어갔다.
2001년 6월이었다. 대기업 중견 간부가 된 나는 15년째 머물던 ‘가락동’ 작은 집을 청산하고 월세로 살면서 이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우여곡절로 잠실벌 옆 ‘석촌동’에 위치한‘모’초등학교 앞에 지하1층에 지상5층의 건물을 계약하였다. 당시 IMF로 온 국민이 고통 받던 시절이라 조심스럽게 관망하는 추세였지만 나로서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으니 모 아니면 도인 모험이었다.
계약대로 은행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잔금을 치루고 ‘등기권리증’이 내 손에 쥐어지던 순간, 푸른 물결에 넘실거리는 뽕나무 숲을 보았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구입한 건물을 바라보는데 뽕나무밭 옆으로 땅콩 밭이 보이고 한가운데 오동나무가 그려진다.
그 당시 어머니는 노환으로 누워 계셨다. 47세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87세를 살아오시는 동안 마음 편이 사신 적이 드물었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인 우리 집에서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 생전에 크고 멋진 집을 사서 마지막 기쁨을 안겨드리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하면서 어머니가 기거하실 방을 먼저 확인했다. 그러나 잔금을 치루고 열흘이 되는 날, 이사를 앞두고 어머니는 영면하셨다.
이사하면 내가 들려드릴 말이 있었다.
“어머님, 이 집터가 예전에 밭 메시던 잠실벌 땅콩 밭이고요. 어머니가 기거하실 이 방이 제가 오동나무에 묶여 오징어 다리를 빨며 놀던 자리입니다. 드디어 막내가 성공해서 이 밭주인이 됐어요!”
첫댓글 역사네요.
세월 참 빨리 가기도 하지만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군요.
그 옛날 추위를 무릎쓰고 잠실벌을 질러 간 적이 있습니다.
전후는 기억이 없는데 참 추웠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