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5일 구혁모 개혁신당 화성시병 당협위원장이 탈당계를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의 성추행 의혹 사건 이후, 이준석 대표의 리더십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탈당 이유에 대해 “이준석 대표는 과거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해) 원인 제공을 운운하며 장경태를 두둔하더니, 이제 와서는 강도 높게 비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 위원장은 지난 대선 당시 이준석 후보의 비서실장을 맡는 등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돼 왔다. 당내에서는 구 위원장을 ‘화성 을’ 지역구 당선의 1등 공신이자 ‘동탄 모델’ 설계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당 싱크탱크인 개혁연구원 부원장 등도 맡았으나 최근에는 별도의 당직 없이 당협위원장 자리만 맡아왔다. 이 대표는 구 위원장의 탈당에 대해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장경태의 성추행 의혹이 개혁신당의 권력 구도에 묘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민주당의 성비위 의혹이 개혁신당 핵심 인사의 탈당 사유가 된 것은 뜬금없는 일로 보인다.
구 위원장 주장에 따르면, 이 대표가 장경태를 두둔했던 시점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기 전이다. 논란의 중심이 된 사건은 지난해 10월 23일 밤 발생했고, 고소는 약 1년 후인 지난 11월 25일 이뤄졌다.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사건 발생 1년이 흐른 시점에서 더불어민주당 장경태를 준강제추행혐의로 고소했다.
고소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11월 27일, 이 대표는 “장경태의 성추행 건에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허위사실을 특정세력이 광범위하게 유포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의도적인 조직적 음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후 고소인이 이준석 의원실에 근무하는 비서관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구 위원장 주장에 따르면, 이 대표는 1년 가까이 걸린 사건의 공론화 과정에서 상당 기간 장경태를 일부 ‘두둔’해왔으나, 사건이 공론화되자 태도를 바꿨다는 얘기가 된다.
이 대표와 개혁신당은 평소 성비위 사건 등에 있어 ‘무죄 추정의 원칙’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만큼은 이 대표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민주당에서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사건 프레이밍을 시도한다면, 개혁신당은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화하는 저열함을 배척하고, 우리 사회가 정립한 피해자 신원 보호의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밝히며 장경태가 ‘가해자’이자 고소인이 ‘피해자’임을 명시하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현재 장경태는 성추행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고소인을 무고죄로 맞고소한 상태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조국당 성비위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가해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된 인사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이 사안을 아직 확정적으로 단정할 생각은 없다. 주장이 엇갈려 있는 만큼 수사와 절차가 결론을 내야 한다고 본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때와는 결이 다른 반응이다.
이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장경태응 향해 “본인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하기도 했는데, 제가 보기에는 일반적인 페미니스트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방어하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는 사상 검증까지 하며 맹폭했다.
장경태 측이 ‘데이트 폭력’이라고 반박하고 고소인 측과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폭행 장면을 촬영해 방송사에 제보하는 가해자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며 고소인의 편에 섰다.
‘무죄 추정’ 외치던 이준석, 왜 달라졌나
이 같은 태도 변화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고소인이 자신의 의원실 관계자이기 때문이어서라기에는 ‘과도한 보호’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개혁신당 출신 A씨는 “이 대표가 강조해온 원칙과 현재 입장은 분명히 충돌한다. 당내에서는 그가 돌연 페미니스트로 변신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포퓰리스트까지로도 평가된다. 반페미니즘을 표팔이 수단으로 윤 대통령 대선 때부터 (본인이 후보로 나선) 지난 대선 때까지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과거 이 대표의 측근이었던 B씨는 “그는 군소정당에 계속 머무를 생각이 없고, 결국 국힘으로 복귀할 생각뿐일 것이다”라고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공동발의를 하는 등 친하게 지냈던 거대당 인사를 저격함으로써 정치권 내 입지가 좁아졌고, 그 공격의 논리에 페미니즘을 갖다붙이면서 지지층도 굉장히 실망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남초 커뮤니티 등 자신의 지지층이 떠나갈까 굉장히 불안할 것이다.” 이 같은 비판이 제기되고 나서야 이 대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지난 12월 9일 SBS ‘주영진의 뉴스직격’에 출연한 그는 사건 관련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며 “특별한 상황 때문에 언급이 어렵다. 피해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동시에 “정치권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인신공격이 횡행하는데, 이것이 진영 논리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대표가 성비위 사건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사 취재에 따르면,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인물들 상당수가 이준석 의원실 출신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모씨다. 김모씨는 장경태 성추행 의혹 사건 당시 동석했으며, 이후 고소인을 ‘준강간추행’했다는 혐의로 피소된 또 다른 피고인이다.
복수의 개혁신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모씨는 이미 수차례 성비위 논란에 연루된 문제적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지난 11월 18일에도 성비위 의혹으로 검찰에 송치된 바 있으며, 공적·사적 자리를 가리지 않고 이 대표의 이름을 언급하며 여성들과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됐다는 증언들도 나왔다.
앞서의 관계자 A씨는 “김모씨는 (개혁신당 창당 전부터) 관계자들에게 꽃뱀 등을 운운하며 ‘성 비위 사건에 가해 의혹으로 연루됐다’는 얘길 했다”고 전했다.
사건 직후 고소인은 의원실에 출근하지 않았고, 당내에는 사건 관련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과거 이 대표의 또 다른 측근이었던 C씨는 “사건 직후 고소인이 ‘문제 제기를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 이유에 대해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며 “(이 대표가 당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당사자의 입장을 존중해 줬던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이 대표가 현재 고소인 측이 문제 제기하고 있는 장 의원 측의 ‘협박 정황’까지는 몰랐지만, 사건 발생 사실은 알고 있었단 얘기가 된다.
사건을 최초 보도한 TV조선 측과 장경태 측도 사건이 발생됐던 지난해, 취재가 이미 한 차례 진행됐었다고 밝힌 바 있다.
“측근 관리 실패” 이준석 리더십 도마 위
이번 논란으로 당 내외에서는 이준석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 일각에서는 구 위원장을 비롯한 이준석 최측근들의 잇단 이탈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조직 기반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개혁신당 출신 D씨는 “개혁신당 창당공신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준석 주변에는 김모씨 같은 문제적 인물만 남은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준석 대표는 과거 자신의 성비위 사건으로 굉장히 고생을 했던 사람이다. 이 같은 공감이 당내 만연한데도, 김모씨는 여자를 만나는 데 있어 장경태와 함께하거나, 이준석 이름을 팔고 다녔다.
이준석 대표는 사람이 없는 나머지 그런 사람을 의원실에 들였던 것이다.” 앞서 개혁신당에선 선거 과정에서 허은아, 김용남, 양향자 전 원내대표 등이 줄줄이 탈당했다. 지난 6월 대선 직후에는 바른정당 시절부터 이준석과 인연을 이어 온 황영헌 개혁신당 대구시당 위원, 박유하 전 공보팀장 등이 당을 이탈했다.
이에 대해 이준석 측은 소수 정당 특성상 탈당이나 이동이 다수 정당보다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