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강살' 영웅은 왜 '무관성'의 죄인이 됐나
매혹적이지만 틀린 '운명 결정론'
커튼 사이 비추는 햇살에 눈을 떴다. 평화로운 봄날 아침이다. 그런데 묘하게 최근 몇 년의 정치적 격변이 그 위에 겹쳐졌다. 꽃샘추위 같은 작은 소란이다.
Y의 자폭, 사주명리의 자폭
Y(로 줄여 쓴다, 이름 자체에 경기를 일으키는 분들이 있으니) 한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혼란이 일어났나. 수십 년 격동 속에서 별의별 사건을 겪었던 한국 현대사도 의아해 할 만큼 유별났다. 그 격동 한가운데서 백성들은 정치와 헌법과 체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마음은 강호에 머물며 인문학적 몽상을 일삼는 나같은 부류도 Y의 망상을 보면서 질문을 떠올렸다. 인간의 운명에 관한. 평생 ‘고위 공무원’이었던 그에게 떨어진 ‘사실상의’ 무기징역(1심)은 체제의 몸살 앞에서 개인 운명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주는 상징이다.
Y 본인은 어떤가. 여러 세기를 살아도 맞닥뜨리기 어려운 희비극이 그대로 표출됐다. 망상에 따라붙은 아둔과 비겁. 그는 비극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런 운명을 보여줬다.
그런데 Y와 관련해 주역인문학 차원에서 주목하는 건, 기이한 운명 자체보다 그 운명에 대한 해석이다. Y의 망상과 그로테스크한 행태는 흔히 명리라 부르는 사주 체계의 기만을 명징하게 폭로했다. Y의 자폭처럼, 대한민국의 사주명리학자들도 Y에 관한 해석을 통해 자폭했다.
‘괴강살’을 버리고, ‘무관성’을 얘기하다
Y가 정치판에 혜성처럼 나타나 권좌에 오르기 전의 몇 달 동안 역술인들은 그의 사주에서 일제히 ‘괴강살(魁罡煞)’을 읽어냈다. 괴강(魁罡)은 북두칠성 일곱 개 별에서 가장 크고 밝게 빛나는 으뜸별이다. 강(罡)이란 한자 자체가 북두칠성을 뜻한다. 괴(魁)는 으뜸이다. Y는 훗날 실제로 ‘수괴’ 호칭을 얻지만, 그 전에도 그는 밤하늘에서 유독 빛나는 북두칠성의 수괴(으뜸) 운명을 타고난 것으로 해석되는 사주의 소유자였다. 물론 그 때 ‘괴’는 영웅의 탄생을 예감하는 낙관적 한자였다.
“이 사람이야말로 왕이 될 사주를 지녔다!”
그런데 두 해 전 겨울 참사가 일어난 뒤에 역술인들의 Y 사주 독해는 그야말로 ‘혁명적으로’ 변한다. 그의 거사가 무참하고 기괴하게 실패한 뒤 역술인들은 그의 사주에서 일제히 관성(官星)의 부재를 읽어낸다. 사주 체계에서 관성은 조직 융화와 함께 자기통제 능력을 뜻한다. 판이한 두 번째의 독해 역시 온라인에 여전히 널려 있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만 해도 사주에 관성이 발달한 사람은 고위 관료가 될 거란 운명 판단을 받았다. 조직 속에서 타협하며 성격적으로도 신중한 팔자를 타고 났으니, 수신제가를 넘어 치국의 경지에 무난히 이를 거란 예언이었다.
반대로 사주에 관성이 없으면 통제력이 결여된 사람으로 분류돼 벼슬 할 생각 자체를 버리고 살아야 했다. 왕이 불러도 병을 핑계로 초야에 머물렀던 이들이 많았다.
Y가 권좌에 오르기 전 사주 분석엔 관성이 결여되었다는 ‘무관성’ 얘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가 대형 사고를 치고 영어의 몸이 된 뒤에야 ‘무관성’의 해석이, 그것도 일제히 터져 나온 것이다.
“자기 파괴는 그의 운명이었다!”
이런 사주, 좀 더 맥락에 충실한 표현을 쓰자면, 이따위 사주와 그따위 역술인들을 믿어도 될까.
국민의힘 경선후보자 5차 방송토론에 참석한 윤석열 후보자 손바닥에 임금 왕(王) 한자가 적혀있다. /MBN
사주에서 예언이, 강호에서 조롱이 사라지길
주역인문학에 관한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는 마당에 한 주축인 사주명리를 거세게 비판하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주역인문학에 씌워진 혹세무민과 미신과 잡설의 오명을 조금이라도 벗겨내고 싶어서다.
Y의 운명에 관한 역술인들의 두 해석은, 사주명리의 기회주의적이고 사후약방문에 가까운 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왕’이 될 거 같을 땐 사주에서 영웅의 운명인 ‘괴강살’을 끄집어냈다. 탄핵이 임박하자 통제력 상실의 ‘무관성’을 강조했다. 증거가 온라인 생태계에 여전히, 너저분하게 널려 있으니 구차한 변명들은 하지 마시기 바란다.
차라리 사주명리 체계에서 ‘예언’을 제거하면 어떨까. 미래에 대한 예측, 물론 필요하다. 누구나 미래를 궁금해 한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특성들을 잘 파악하고 조합하면, 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그릴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19세기 초 나폴레옹 황제 시절의 천문학자 라플라스는 우주의 현 상태를 정확히 알려주면, 우주의 미래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무릇 결정론들은 매력적이고, 태어난 시점에 부여받은 오행으로 미래를 예측한다는 사주도 매력적인 결정론이다. 하지만 잘 안 맞는 결정론이다. 그저 맞는 척하는 결정론일 뿐이다.
그런데 사주명리 체계를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예언이 아니어도 다양한 장점들을 품고 있다. 사람 사는 일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지혜가 체계 안에 잠복해 있단 얘기다. 주역인문학이 사주에 관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더러 그 지혜들에 관해 얘기할 기회가 있을 줄로 믿는다.
그보다 Y에 관한 얘기를 꺼낸 김에 한 마디만 보태야겠다. 그를 역사적 죄인으로 질타하되 조롱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중화권 김용의 작품이든, 한국 작가 금강의 작품이든 유명한 무협지를 한번 들쳐보라. 강호에선 패자에 대한 부관참시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건 속세를 좀먹으며 누비는 소인배들(요즘으로 치면 허황한 말로 떠들어대는 정치평론가들 부류) 일이지 강호의 일은 아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Mid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