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의 동네북 뉴욕나이츠, 꼴찌를 도맡아 하던 별 볼일 없는 이 팀에 서른다섯 늙은 신인 로이 허브스(로버트 레드포드)가 입단한다. 감독도, 동료들도 그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방망이가 불을 뿜으며 팀을 연승으로 이끈다. 그의 마법 같은 활약 뒤에는 번개 맞은 나무를 깎아 만든 야구방망이 ‘원더보이’가 있었다. 영화 <내츄럴>의 스토리다.
우리나라에도 ‘원더보이’가 있다. 한국 야구 선수의 80%가 사용하고 있는 야구방망이 ‘맥스(MAX)’. 공금석 씨가 1997년부터 11년째 만들고 있는 방망이다. 한국야구의 기록은 맥스가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홈런왕 이승엽과 심정수, 타격왕 장성호, 그리고 홍성흔과 정수근, 여기에 야구천재 이종범까지, 모두 그의 방망이를 들고 프로야구 무대를 빛냈다. 대전시 이사동 ‘맥스’ 제조공장에서 만난 공금석 씨는 대뜸 야구 이야기부터 꺼냈다.
“요즘 (이)종범이가 너무 잘 쳐서 기분이 정말 좋아요. 시즌 초 타석에서 헤맬 땐 왜 그리 가슴이 아프던지. 너무 답답해서 4월 10일인가 직접 만든 방망이 열 자루를 들고 광주로 달려가 ‘종범이 너만을 위해서 내 맘대로 만든 건데 무조건 써봐’하고 놓고 왔어요. TV 보니까 제 방망이를 들고 나오더라고요. 요즘 보니까 타율이 3할2푼 대까지 올라왔어요. 진작 만들어 줄걸.”
1997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야구방망이 ‘맥스’는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망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미국의 ‘루이스빌 슬러거’나 일본의 ‘미즈노’, ‘사사키’ 등 외국 제품을 선호했다. 한국산 야구방망이는 연습용으로나 생각했다. 그런데 2000년 두산베어스의 모든 선수가 방망이를 ‘맥스’로 바꾸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준우승을 거두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두산베어스는 이듬해 화끈한 타격 쇼를 펼치며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고, 맥스는 비로소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때까지 외국 회사들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선수들이 우리 방망이를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우리 제품을 쓴다는 것 자체를 우습게 여겼죠. 외국 방망이를 사용하는 대가로 스폰(사용료)을 받는 선수들은 한국 방망이에 대해 좋지 않게 이야기했어요. 외국의 유명 야구방망이 회사들은 ‘맥스로 치면 손이 울려서 선수생명이 짧아진다. 맥스는 잘 부러져서 부상당할 위험이 크다. 빨래방망이로 쓰면 딱 맞다’ 등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선수들 사이에 흘렸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산 선수들이 우리 방망이를 사용해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맥스’가 기사회생한 겁니다.”
현재 맥스는 한국 선수뿐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가장 인기 있는 야구방망이다. 특히 외국인으로 한국 무대에서 홈런왕을 한 타이론 우즈가 맥스를 사용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으로 건너오는 외국인 선수들은 이제껏 사용하던 유명 브랜드의 방망이를 버리고 가장 먼저 맥스를 찾는다고 한다. 공금석 씨는 어떻게 이런 방망이를 만들었을까.
그는 “수십, 수백 명이 넘는 야구 선수들을 만나 한 명 한 명 신체 구조에 꼭 맞는 방망이를 찾아나섰던 열정과 원목에서 수분은 제거하는 공금석만의 나무 건조 특허기술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야구 선수들은 미국이나 일본 선수들과 체격이나 신체 구조가 다른데 미국제 ‘루이스빌’이나 일본제 ‘미즈노’를 고집해 타격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고 한다.
“선수마다 방망이 무게나 길이, 손잡이 등 각기 원하는 조건이 다릅니다. 외국의 유명 회사들이 한국 선수만을 위해 그렇게 특별 제작해 주겠습니까? 대충 사이즈만 맞춰 주지요. 한국 선수들은 그저 ‘유명한 회사에서 만든 거니까 당연히 최고다’라고 생각하고 쓴 겁니다.”
선수들의 신체 구조와 타격 습관까지 고려해 제작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던 그는 선수들을 일일이 찾아다녔다. 경기장, 연습장, 라커룸, 심지어 사우나와 헬스센터까지 선수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1대 1로 해당 선수의 신체 구조, 타격 습관, 구질의 강약점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외국 유명 브랜드의 방망이 수백 자루를 부러뜨려 가며 한국 선수들 하나하나에게 최적화된 그들만의 방망이를 만들었다.
맥스의 비밀 또 하나. 아시아에서는 그만이 가진 나무 건조 기술이다.
“미국에서 원목을 가져다 영하 29~30℃에서 냉동건조부터 합니다. 그러면 나무의 탄력이 좋아져 잘 부러지지 않죠. 그리고 맥스의 핵심 공정인 ‘진공 고주파’ 건조가 이어집니다. ‘진공 고주파’ 건조는 아시아에서 우리만 할 수 있는 특허기술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나무의 반발력이 커져 공을 치면 더 멀리 날려 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진공 고주파’ 건조 기술을 바탕으로 더 가볍고, 더 탄력 있고, 더 강한 방망이를 만들 수 있었다. 일본의 유명 회사들 모두 아직 완벽한 건조 기술이 없다. 그래서 몇 번의 가공을 거친 지름 20cm쯤 되는 가는 원기둥 모양의 야구방망이 반제품을 미국에서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고 있다. 공씨는 몇 해 전부터 일본의 유명 야구방망이 제조사들에게 야구방망이 반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불과 7~8년 전까지 그의 기술을 무시하던 일본 기업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기술은 세계가 인정하기에 이른다. 2005년 3월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국제야구연맹으로부터 맥스의 국제경기사용 승인을 받아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올림픽에서도 이 방망이를 사용한다. 공씨는 올림픽 팀을 위해 자신이 직접 고른 나무로 건조까지 해놓은 반제품을 준비해 놓았다며 올해 열리는 북경올림픽이 맥스의 세계 진출 기회라고 했다.
“한국야구 선수의 80%가 맥스를 쓰지만 세계 무대는 여전히 미국과 일본 회사의 방망이가 점령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팀 선수들이 선발되면 각각의 선수에게 꼭 맞는 방망이를 깎을 겁니다. 선수들이 맥스를 들고 불방망이 타격 쇼를 벌이면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고, 맥스도 자연스럽게 세계 야구선수들에게 눈도장을 받게 되겠죠. 미국이나 일본 제품을 넘어설 수 있는 다시 없는 기회입니다.”
공씨는 야구방망이를 만들기 시작한 1997년 이후 거의 모든 프로야구 선수를 1대 1로 만나 때로는 형처럼, 때로는 매서운 코치처럼 함께 호흡해 왔다. 그 스스로 “저만큼 많은 야구 선수들과 함께한 사람도 드물 것”이라며 “반쯤은 야구 도사가 됐다”고 말할 정도다. 성적이 좋지 않은 팀의 타자들을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가 약점인지 눈에 들어올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거쳐 3대째 목공업을 해온 전통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최고의 야구방망이를 만들 수 있었다는 그는 “대학 졸업반인 아들이 가업을 잇기로 했다”며 고마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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