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래엔 순조로움, 약속지킴, 물질적 기반을 가리키는 글자가 행복의 조건으로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복잡한 뜻이 담겼다면, 이것은 글자가 아니라 문장에 가깝습니다.
단문도 아닌 복문에 가깝습니다.
'사람은 목표를 추구하며, 일은 순조롭고, 약속은 이루어지며, 물질적으로도 삶의 기반이 갖추어져 있어야 행복하다'는 것이죠.
아직 이 글자에는 단음절의 음가가 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이 글자는 아직 만들어진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다르게 이야기해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인식 능력이 허용한다면 더 복잡한 내용으로 구성된 글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면 이런 글자가 복합적인 뜻을 그대로 가지면서 그 형태는 단순하게 바뀔 수도 있습니다. 또 더 나아가 그 단순한 글자가 다시 하나의 요소가 되어 2차적 복합글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죠.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았고,
그럴 때 글자 하나는 마침내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이죠.
표의문자는 흥미로운 인식구조의 하나입니다.
매우 원초적이기도 하고 매우 복합적이기도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기에도 참 유용합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렇게 문자를 들여다보듯 들여다보니, 3월10일의 대한민국은 하나의 선언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20세기와 20세기적인 사고방식 및 생활방식은 역사의 무대로 보내고 그 운행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21세기를 선언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즉 새로운 문자 하나를 새로 만들어낸 셈이죠.
물론 선언은 선언이고, 벗어남은 별개의 일이겠죠.
오늘까지도 20세기적 굴레는 통합이니 청산이니 하면서 삐걱삐걱 돌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으니까요.
진정으로 어떤 틀에서 벗어난다면, 무얼 청산하고 무얼 통합하겠습니까?
쓰레기통에 이미 버렸는데 청산할 것이 또 무엇이며,
이제 겨우 벗어나서 갈라진 것도 없는데 통합할 것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청산과 통합은 아직 벗어나지 않았거나 벗어나기 두려울 때 늘 하는 이야기이고,
그런 이야기가 많을 때는 언제나 구시대의 말기였지 신시대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새시대에는 새로 할 일만 밝히면 될 일이겠죠.
하나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과 하나의 점點에서 벗어나는 것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업장과도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 길에서 한 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때로 한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전면적이라는 말도 벗어나지 않을 때 자주 하는 이야기였던 듯합니다.
너무나 작아서 형상 그릴 수도 없는 한 점이 곧 너무나 넓어서 형상 그릴 수 없는 한 세상일 수도 있겠죠.
그게 새 무대에 선 주인공의 관점이 아닐까요?
그걸 복잡하게 설명하기에는 능력도 열정도 모자라고...
스스로를 변호하는 일만큼 귀찮기도 하고,
글도 이미 넘치게 길어져서 이제 이쯤에서 줄여버리지만 말입니다.
글쓴이: 아라가비 님 (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