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키이스 목사님의 <이스라엘 회복 말씀 집회 ‐ 그날이 속히 오리라>
둘째날 집회, 왕으로 오실 예수님
※ 키비 홈페이지(www.kibi.or.kr) 메인 메뉴에서 [이스라엘 자료]‐[동영상/강의]로 들어가셔서, 6번 게시물(‘키이스 인트레이터 목사님 강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계 1:5~8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지금부터 예수님께서 왕 되심을 말씀 드리려 합니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은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로 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예수님을 왕으로 이해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반대의 문제가 있습니다. 유대인은 메시아를 ‘우리들의 왕’이자 ‘정복하는 영웅’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그가 죽는 것을 보았을 때, 즉 어린 양이자 구원자로 돌아가셨을 때는, ‘이런 사람은 왕이 될 수가 없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구원자인 동시에 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텔아비브에 있는 우리 교회의 이름은 ‘티라펫 예슈아’입니다. ‘예수님께 영광’이란 뜻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탄생한 그 2000년 전이 아니라 훨씬 전에 계셨던 분인 것입니다. 창세 이전에도 주님이 계셨고, 구약의 모든 시대를 통해 계셨으며, 또한 앞으로 올 세대에도 계실 것입니다.
성경의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모든 내용이 다 예수님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의 중심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계획의 중심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이해하려고 할 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연계해서 예수님을 이해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사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만을 보는 것보다 더 많은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시간의 시작으로부터 마지막 때까지를 통틀어서 예수님을 이해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과거와 현재, 미래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과거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십자가 상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십니다. 그러면 지금 하늘에서 하고 계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지금 하늘에서 성령을 우리 위에 부어 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활동들을 지시하고 계십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우리에게 성령의 세례를 부어주고 계십니다.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는 2000년 전에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현재 주시는 성령의 온전한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현재 주시는 것을 받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주님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 삶 가운데는 앞으로 해야 될 또 하나의 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때는 구원자로 오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성령의 세례를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정복하는 왕으로서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그 분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정복하는 왕으로 오시는 주님의 때를 위해서 우리가 그 분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7절에서는 구름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본다고 하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지 그분을 찌른 사람만이 보는 것이 아니고, 모든 눈이 그를 보리라고 했습니다. 찌른 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 형제, 곧 유대인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보면 각인의 눈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볼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2000년에 갑자기 오셨던 것처럼 그렇게 오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복음이 전 세계를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모든 족속이 다 주님을 볼 준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족속 뿐만 아니라 그를 찌른 자도 본다고 하였습니다. 단지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만 보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의 구세주였고, 지금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세례를 주고 계시고, 다시 오실 때는 정복하는 왕으로서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이해할 때는, 이러한 모든 차원에서 예수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복음을 가지고 각 나라에 가서 전파할 때, 그들에게 먼저 구원을 전해야 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그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막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확실히 있습니다. 지옥도 확실히 있습니다.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이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이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서 타고 있는 것을 떠올릴 때에 어떻게 하든지 저들을 구해야겠다는 동기를 갖게 됩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영혼이라도 그렇게 영원히 불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때문에 주님과 함께 일하며 그들을 지옥에서 구해 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왕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의 왕이 되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잠언에 보면, 왕의 영광은 숫자가 많은 것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단지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그들을 구해서 어디론가 데려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사망의 줄에서 그들을 구출해 내어 예수님의 왕국으로 그들을 데려오도록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합니다. 열방을 주님께로 데려와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의 날 예수님께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보세요. 한국에서 수백만이 주님의 종으로 나타났습니다.” “인도와 중국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주님께로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스라엘이 주님 앞에 나오는 일에 도움이 되는 한 부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왕 되신 예수님께 영광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섬기기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의 왕국의 한 부분이 되기를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이 ‘예수님은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요 18:37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여기서 놀라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나는 왕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다.” 자신이 구원자가 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탄생 목적이 따로 있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구원과 마지막 종착점에서 이룰 것을 구별해서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빠졌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야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다시 거듭나게 되면, 각 사람이 가야 될 종착역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마지막에 도달해야 할 목표로 계속해서 나아가면서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하나님 안에서 내가 마지막에 서야 할 위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아서 그 목표를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에 우리가 이루어야 할 목표는 점점 더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왕자와 공주처럼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의 왕자, 공주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자와 공주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왕위로 비롯된 권위를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이해해야 할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목표가 있는데, 예수님도 그러한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목표는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세 전부터 그 아들을 향해서 가지고 계신 목적입니다. 예수님이 아기로 태어나셨을 때, 동방의 왕들이 와서 그에게 절하여 이분이야말로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분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분이야말로 왕으로 오셔서 인류를 다스리도록 예정된 왕이시라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생명을 빚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은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저도 예수님을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예수님께서 하신 그 모든 일을 생각해 보며, “그러면 저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요?”라고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 그 목표를 향해서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 이렇게 말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목표에 도달하실 수 있도록 제가 그 일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뭐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만약에 2000년 전에 목수 일을 하셨던 것처럼 돌아가기를 원하신다면, “주님, 목수일 하시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갈릴리에 가서 어부가 되기를 원하시면, “제가 그물 하나 사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목표는 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왕이 되시도록 돕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 두 가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는 지옥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출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들을 주님께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주님은 왕이 되실 분입니다. 주님은 왕이 되시기 위해서 태어나셨고, 그래서 이제 이 사람들을 당신께 바칩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실 이 많은 사람들을 제가 데려왔습니다.”
요 19:19~21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의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왕이 되시기 위해서 태어나신 것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왕이 되시기 위해서 태어나셨을 뿐만 아니라, 왕이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 머리 위에 써 있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구원자’ 또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 써 있지 않은 것이 무척 놀랍습니다. 또 그 위에 ‘죄 용서함’이라고 써 있지 않은 것이 놀랍습니다. 그 위에 써진 것은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 입니다.
십자가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단지 죽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조금은 어려운 부분이지만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에 하나님이 전 세계에 알리고 계십니다.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세상의 왕이 되시는 분이다.” 그래서 그를 십자가 위에 올리시고, 그 당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 개 문화의 언어로 분명하게 표시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지역에서 와서 볼 수 있는 장소에 세우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는 장소뿐만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인류의 왕이신 것을 보이기 위해서 세우신 장소입니다.
왕을 선포하는 데 이상한 장소를 택하셨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령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생각해 봅니다. 조지 부시와 존 케네디 둘 다 십자가에 못박히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기에 적합하다”라고 할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유대인들이 봐도 십자가 위에서 왕이라고 선언한다는 것은 참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해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유대인들은 그것을 보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이 무슨 왕이겠느냐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순간에 십자가에서 내려왔으면 우리가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왕을 십자가에 못박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정복하는 왕을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대해서 이해해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아담과 하와가 했던 일을 역으로 진행시키는 것으로서, 선악과가 열린 나무와 마찬가지로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판자나 나무는 다 같은 히브리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 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던 그 나무에 다가온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었던 죄를 역으로 돌려놓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지었던 죄가 용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또 다른 한 가지 역사가 일어났는데, 복음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온 땅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그 권세를 잃게 되었습니다. 만약 아담이 전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면(그것은 불가능했겠지만), 성경의 논리로서, 그가 왕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바로 메시아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온 지구의 통치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러한 권위를 주었던 것입니다. 아담 스스로에겐 그러한 자격이 없지만, 그렇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태어날 모든 사람에게도 그렇습니다.
선악과는 시험이었고, 그는 그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다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이 시험을 이겼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증명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온전히 복종하는 사람으로, 온전히 그것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온전히 의롭고, 그래서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이는 길이었습니다. 때문에 천군의 천사들이 그를 경배했으며, 영원토록 그를 경배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의적으로 십자가에 달리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원해서 죽기까지 복종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왕이 될 자격이 있다고 하십니다.
어린 양은 왕이자 통치자로서 합당하다고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복종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왕이 될 자격, 모든 권세를 가질 권세를 증명합니다.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나서 왕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종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그분이 왕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같은 나무의 조각입니다. 아담은 아무 것에도 복종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에 복종하셨습니다. 십자가 때문에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모든 것을 다스릴 권위와 권세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십자가 상에서 너희에게 증명한다. 내가 바로 왕이 되어야 할 자이다.” 만약에 그 분이 왕이 아니라면, 십자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자격도 없을 것입니다. 무슨 자격으로 우리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재판에 불려 나왔다면, 여러분을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재판장 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유죄가 판결되어 법정로 가는 길에, 주차장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당신은 용서를 받았다”라고 말한다 해도, “말은 고맙지만 당신이 뭐라고 말하던 간에 재판관의 말이 중요하다”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에 왕이 나에게 “용서를 받으라”고 하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십자가 위의 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 써있습니다. 이것 또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입니다.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유대인의 왕이라 하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약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을 보내며, 다른 사람에게 가지 말고 오직 유대인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에서 보면, 새 언약을 유다와 유다의 후손에게 맺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유대인들과 실제로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왕으로, 그들과 언약을 맺기 위해 오셨습니다.
죽음 가운데서 일어났을 때, 초대교회는 단지 유대인들로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때 아주 큰 쟁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해야 되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 된다 했지만, 베드로와 바울은 이방인에게 전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유대인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사도들인 제자들이 전 세계를 향해서 ‘너희를 우리가 맺은 언약 안에 초대한다’고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맺은 언약은 열방과 맺은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과 맺은 것입니다. 그의 제자들이 나가서 사람들을 초청함으로써 그 언약을 누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로부터 복음이 전 세계로 나갔습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 중에도 복음을 이 땅에 전하기 위해 순교자가 되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순교하신 분들은 외국으로부터 복음을 가지고 이 땅에 들어온 분들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믿는 사람들은 복음을 가지고 이곳에 와서 순교하기까지 충성한 사람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역으로 추적해 보면 ‐ 모든 나라가 구원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을 추적해 보면 ‐ 본래의 사도들에게 이르게 됩니다. 사도들은 거의 다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방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충성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시 오십니다. 유다의 집으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그가 오셔서 거기서부터 전 세계를 통치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을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완벽한 하나님이자 우리와 같은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이었기에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되심이라는 이중 성품이라고 할까요. 하나님이시면서 사람되심,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며 나의 형상대로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으며, 또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셨습니다. 이 두 가지 면을 동시에 보이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엡 1:9~10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을 하나로 통일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가 여기를 떠나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합하여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은 땅에 족속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하늘에 있는 족속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천사와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둘 다 하나님의 자녀로 창조하셨습니다. 어떤 천사들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로 남아 천사라 불리고, 어떤 천사들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자들로 남아 마귀라 불립니다. 사람들 가운데도 그렇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이 있고, 죄를 회개한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모든 천사들의 가장 우두머리로 계십니다. 그러나 이 땅에 태어나셔서, 하늘에 있는 시민권과 땅에 있는 것을 하나로 묶으시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하나로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과 세상의 것이 같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죄 때문에, 그리고 사탄의 반역 때문에 두 가지가 분리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그 둘을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아직도 그 둘 사이에 분리가 남아있긴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가 죽는다면, 몸은 땅에 묻히겠지만 영은 하늘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항상 있어야 할 종착지는 그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에는 하늘의 것을 이 땅으로 가져와서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세 번이나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두 가지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땅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땐 그가 하늘의 예루살렘을 땅의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개가 동시에 합쳐질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로 통일된다”고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렇게 됩니다. 천사들과 모든 인류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또 인자이신 것입니다. 그가 다시 오실 때 그와 함께 위에 있던 성도들이 내려와서 새 몸을 입고(부활), 하늘나라와 이 땅에서의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 하나로 태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가운데 찬양을 드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왕의 자격이 있으십니다”라고 찬양을 드리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들이며, 당신께 이렇게 복종합니다”라는 표현이고, “다시 우리의 왕으로 오시옵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사복음서를 한번 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이 개선장군처럼 들어오는 모습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모습으로서, 사람들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하고 외칩니다. 사복음서 모두에 나타난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마 21:6~10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 11:7~10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은 자기 겉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무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눅 19:37~38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요 12:12~15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복음서에서의 이 사건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뭔가 잘못된 그림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를 환영해야 합니다. 또한 그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도 그러해야 할 것이고, 중국과 인도사람들도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시도록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손 안에 드는 12제자만 예수님을 환영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세계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해야 합니다. 또 하나 앞으로 바뀔 그림이 있습니다. 전에는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오셨지만 앞으로 오실 때는 백마를 타고 오실 것입니다. 승리의 왕으로 오실 것입니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는데, 여러분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셨겠지만, 저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월절 바로 직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종려 주일이라고 부릅니다. 부활절 전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으로서 성경에 나타난 절기를 이해하는 것은 조금 다릅니다. 유대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유월절에 흔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장막절에 흔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 잘못된 절기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잘못된 때에 일어난 사건임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두 세트의 유대인의 절기가 있는데 하나는 봄에 있는 절기(유월절)이고, 그것은 예수님이 처음 오시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가을에 있는 절기(장막절)인데,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이 잘못된 시간에 일어나고 있음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이 아닌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은 가을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의 입성이 재림 시에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지 예수님의 제자들만 환영하는 것이 아니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환영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나귀가 아니고 백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단지 그 전에 보여 주셨던 섬기는 겸손한 종이 아니라, 정복하는 왕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모습은 개선의 입성이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으로 승리의, 개선의 왕으로서 입성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것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여러분들이 초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 초청장을 받아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2000년 전에 거기에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실제로 가장 큰 사건은 앞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다시 승리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시대에 우리가 지금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환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모든 열방이 와서 환영하며 종려나무를 흔들 것입니다. 우리의 겉옷을 벗어서 그 앞에 놓으며 외칠 것입니다. “호산나 높은 곳의 왕이십니다. 당신은 다윗의 왕이십니다.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왕 중의 왕, 만군의 주이십니다.”
그것은 위대한 역사의 순간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모두가 다 바라보고 있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이 복음이 바로 초청장이 될 것입니다. 그 초청장이야말로 지옥으로부터 나와, 왕의 잔치에 들어갈 티켓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당신이 거기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마음 가운데 강력하게 예수님께서 왕관을 쓰고 오시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모든 왕위를 누리시는 것을 보기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목적을 온전히 이루시는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에게 수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왕으로서 경배드리기를 소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 속히 오시옵소서. 호산나!” 해야 할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마라나타!”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간절한 바람을 가져야 합니다. 단지 예수님으로 인해서 구원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존귀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왕관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단지 하늘에 계시는 주님을 이 땅에서 찬양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를 원합니다.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지금 여러분 안에 그것을 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의 도시로 오시는 것을 마음 가운데 그리십니까? 그를 왕으로 환영하고 계십니까?
1917년 영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입니다. 영국군을 지휘한 유명한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얀 말을 타고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개선장군으로 예루살렘 바로 앞까지 도착했습니다. 그 때 군사들에게 “정지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걸어서 예루살렘 거리로 들어갔습니다. 그 이유는 단지 한 분만이 백마를 타고 이 도시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소망을 바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지 여기서 떠나서 천국에 갈 거란 마음을 바꾸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왕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예수님께서 왕관을 쓰시고 왕이 되는 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길 바랍니다.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본래 그 목적을 다 이루실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에 채우시길 바랍니다. 그는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다스리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 곳에 있기를 소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제가 그 날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예루살렘에 여러분의 이름이 적힌 종려나무가 있기를 바랍니다. 영광 위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 왕위를 가지고 그곳에 오실 때, 그 곳에 가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과 영광을 돌리기 원합니다. 그리고는 그 머리 위에 왕관이 씌워지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환영하기를 원합니다. 그가 왕위를 받으신 것을 진심으로 보기 원합니다. 그의 왕국에 다시 오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합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의 주인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 날에 제가 거기에 있기를 원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데려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이것이 제가 주님께 드리는 선물입니다.” “예수님, 친구들입니다. 오늘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이 나를 왕으로 받아들이고 왔단 말이냐” 하시길 원합니다. 그 안에서 모두가 다 하나 되는 놀라운 시간을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겉옷을 펼쳐서 주님께 드리고, 나뭇가지를 흔들고, 환영의 모습을 주님 앞에 드리기를 원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호산나, 마라나타! 이분이 바로 유대인의 왕이 되시기 위해 태어나시고, 십자가를 지신 분이십니다. 주님 다시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다 드리기 원합니다.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