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과 뻥튀기
어제는 예산역전장날이었다. 예산에는 오일장이 두 번 있다. 5일과 10일은 예산읍내장 3일과 8일은 예산역전장이다. 물질문명의 발달로 말미암아 현대화되고 대형화되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고객들을 빼앗기고 있지만 그래도 시장에 가야 사람 사는 냄새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집은 역전이 멀지 않아 가끔 역전장이 서는 날이면 그 곳에 가서 삶의 향기를 담아온다. 시장에 가면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그래서 나는 우울하면 시장에 가고 그 곳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온다.
어제 오후에 퇴근하면서 역전시장에 들렸다. 설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이곳에도 대형마트가 생기니 필요시 그 곳에서 물건을 구입하니 재래시장이 느슨해진 것은 사실이다. 기계화되고 상업화된 대형마트는 우리들에게 여유를 잃어버리게 하고 정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시장에 가면 바로 '덤'이라는 것이 있어 물건을 사면서 흥정을 하면서 웃기도 하고 인심도 쓰는 모습에서 우리들의 웃음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시장 한 구석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 곳에 가까이 가니 '뻥'하는 소리와 함께 옥수수 튀밥이 그릇에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아저씨가 '뻥이요'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깜짝 놀라면서 할머니께서 '애 떨어지겠네'라는 너스레를 떨어 주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게 했다. 웃음소리에 시장은 밝게 변했고 냄새가 주위를 진동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 맘 때가 되면 어머니께서 오일장에 가서 옥수수나 쌀 그리고 콩을 튀겨오셨다. 그 때 그것을 '광밥'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뻥튀기로 말해야 할 것 같다. 그 당시의 간식으로 최고였던 걸로 기억이 된다. 뻥튀기 튀기는 것도 이제 현대식으로 변했다.
지금은 가스를 이용해서 대량으로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었다. 기계도 서 너 개 되었고 일하는 사람도 그렇게 되었다.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금방 튀겨낸 옥수수 뻥튀기를 한 주먹씩 나눠준다. 나도 받아서 먹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잊 않았다. 서로의 얼굴에서 작은 행복을 발견하고 있었다.
내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니 한 아주머니께서 '제가 예쁜 줄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에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행복바이러스가 전이되는 것을 느꼈다.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나에게 거침없이 사진작가냐고 묻는다. 뜨끔하다. 사진작가는 분명 아니기에 그냥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돌아다닌다고 했다. 그러자 나에게 작가냐고 물어본다. 이번에는 등줄기가 뜨끔해진다. 사전적인 의미는 '시가·소설·회화·조각 따위의 문예물이나 예술품을 창작하는 사람.'으로 되어있다. 그저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작가임에 틀림이 없지만 열정적이지도 못하고 또 잘 쓰지도 못한다.
나는 애매하게 웃으면서 '그저 열심히 씁니다'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 아주머니는 소설의 한 부분을 입에서 만들어냈다. 그 분이 진정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 한 가운데 순대를 파는 집이 있다. 삼십 년 동안 그 곳에서 순대를 팔고 있었는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순대가 반도 안 팔리고 있었다. 삼 천 원 어치를 샀다. 소주 한잔 마실 기회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시장이 끝나는 부분에서 향우회 회원인 이씨를 만났다. 사십대 초반의 나이에 오일장을 돌아다니면서 과일을 팔고 부인은 과일가게를 운영한다. 돈을 많이 벌기도 하지만 노름을 좋아해서 돈을 많이 버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따끔한 충고를 해 주었던 기억이 났다. 나를 보자 꾸벅 인사를 하고 귤 하나를 집어준다. 그냥 먹어보라는 것이었는데 맛이 좋았다. 그는 올해 귤 값이 너무 싸서 문제가 된다고 말한다. 귤 한 상자를 샀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부자가 되어있었다. 귤 한 상자, 순대 한 꾸러미 그리고 시장에서 담은 사람 사는 이야기. 차가운 날씨였지만 아름다운 이야기가 꿈틀거리는 좋은 날이었다.
2008. 1. 23
첫댓글 일상에서 참 아름다운 모습,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오셨네요...ㅎ
장날 가끔 무조건가서 삶의 향기를 만납니다
명절전에 뻥튀기해서 과자 해야 하는데........시간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