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선비대학 생기면 지역발전 앞당길 수 있어
김 숙진(金 肅鎭 80) ━ 그의 사상과 철학의 원천은 김동진이다. 근현대사의 巨儒(거유), 퇴계 학맥의 마지막 承統(승통)후학 김동진이 그의 소크라테스다. 그는 그의 품에서 보고, 배우고, 자랐다. 정산 김동진은 평생 그의 스승이자 표상이다. 김숙진은 팔십 세월을, 그분의 淸雅(청아)한 선비의 기품을 흠모하며 살아왔다. 그러니 선비는 그의 팔자다.
오늘의 영주는 품격 높은 정체성을 요구한다. 선비답지 않는 「선비의 고장」은 희망이 담수되지 않는 도시다. 힘들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는 정체성 확립에 몸부림 쳐야 한다. 선비는 우리고장의 도덕이고 특혜다. 그것의 기반 위에서만이 영주의 미래는 약속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한사코 손사래 하시는 그를 모셨다.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이야”
그는 선비다. 그는 객지의 삶 같은 공직자로, 사업가로 젊은 시절을 보내고, 평생 그를 놓아주지 않던 선비로 다시 돌아와 端雅(단아)한 모습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젊은 시절은 그에게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사상의 고향인 儒林(유림)에 자리했다. 그는 영주향교의 典校(전교)다.
“군자가 될 수는 없지만 군자를 따라 가려고는 하고 싶었지...”
몇 번이고 사양하고 또 사양하심에, 겸양도 병이라며 행악하듯 하여 얻어낸 말문이다. 힘든 말문을 허락받은 김에 좀더 살을 붙여 달라고 졸랐다. 주역에서 따오신다.
“天行健(천행건) 君子以自强不息(군자이자강불식)이야”
「하늘의 운행은 굳건하니,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굳세어 쉬지 않는다」는 뜻 설명이다. 알듯 모를듯하다. 선비로서의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왔다는 뜻 일게다. 대뜸 유림이 지역 정신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고 대들었다. 유림의 바탕인 문중의 역할부터 따졌다. 버릇없다.
“영주에도 여러 명문가가 있어... 모두가 합심해야지...”
영주의 뿌리인 선비정신이 계승발전되어야만, 그것을 도덕적 기반으로 타 지역과 차별화된 우리만의 특색 있는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설명이시다. 그러기위해 문중 간에 간극을 염려하신다. 정신적 지주의 출현을 소망하는 이 도시의 소시민으로, 이웃 도시의 문중들을 기반으로 하는 유림세력의 활약이 철없이 부러워진다.
“대홍수 이후 영주시가 급격히 팽창하는 과정 중에 희석된 듯해”
儒家(유가)의 후예인 영주에서 儒風(유풍)이 점점 옅어짐을 안타깝게 여기신다. 꼭 세월 탓만은 아니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그것이 우리의 소중한 자랑이요, 자산인데...”
못내 아쉬워하는 어른을 뵙기 죄스럽다. 우리 것을 잊어버리고 무엇을 한단 말인가?
▲선비이미지 구축되면 선비 관련기관도 풍부해질 것
그러면 선비정신을 영주경제에 어떻게 활용해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선비에게 묻기에는 모장스런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수 선비대학이 생겼으면 좋겠어...”
선비에 관련한 기관이나 기업체가 유치되길 바라신다. 「영주는 선비」라는 도시의 이미지만 구축되면 저절로 유치를 원하는 선비 관련기관이 풍부해질 것이라는 확신이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거냐고 물었다. 영주의 어려움은 화급하지만, 이 선비에게는 영주의 경기불황을 짐 지우기 거북해한 질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듣고 보고 한걸 해야 성공해.”
무슨 뜻인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당신의 고백이었다. 어두운 시절에 세무공무원을 했으면 치부 하셨겠네요? 에 대한 답이신 것 같다. 선비는 청빈을 낙으로 삼는걸 알면서, 참 철없는 질문을 했다. 당대 巨儒(거유) 슬하에서 보고 자란 그가 세무공무원이 마뜩 할리 없었으리라. 매사를 몸에 맞는 순리를 택함이 현명한 인생살이란 뜻이다.
전교로 계시는 영주향교를 물었다. 활기차시다. 세밀하게 설명하신다. 영주가 선비의 고장을 지향한다면, 이런 어른이 많이 계시는 영주는 충분한 인적 인프라가 형성된 복 받은 곳이다. 초야에 계시는 어른 분 들은 우리의 큰 자산이다. 「선비의 고장」영주발전에 성가시게 참여시키고, 諮問(자문)에 분주하시도록 하면 좋겠다.
▲서로간의 처지 이해가 화합의 시작
영주를 화합시키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주저함 끝에 영주를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신다.
“易地思之(역지사지)야”
화합은 모든 성취의 처음이고 끝이다. 서로 處地(처지)의 이해가 화합의 시작임을 말씀 하신다. 그리고 남의 곤궁을 측은하게 대하라 하신다.
“엎어진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야지... 발길질은 가당치 않아...”
아무래도 판타시온 리조트에 대한 말씀 같다. 선비에게 육주비전을 지키게 하는 것 같아 더 묻지 못했다. 그래도 하신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시는 것 같다.
“그는 영주가 고향인 사람이야...”
하필이면 고향을 기망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오늘의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많으신가보다. 오죽 답답하면 선비로만 살아오신 어른께서 이런 말씀을 하실까 싶어, 송구한 마음에 또 말을 돌렸다. 요즈음 하시는 일을 물었다. 서류 뭉치를 보이면서 설명하신다.
“이산서원이 복설되었으면 좋겠어...”
전국서원의 원규와 제도의 표본이 되었던 이산서원의 복설이, 근 백사십년전의 훼철의 아픔을 겪었던 선대에 대한 도리로 여기신다. 그리하여 영주에 선비정신이 복원되길 바라는 것이 진정 그의 속내가 아닐까? 뜻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어려운 질문을 했다. 선비를 정의하여 달라고 졸랐다. 율곡의 말씀으로 대신하신다.
“마음은 도를 사모하고, 몸은 유교행실로 신칙하며, 입은 법도에 따라 말하고, 공론을 지니는 者이다.”
그리고 한국 전통문화의 본질이 곧 선비정신임을 곁들이신다. 말씀을 듣고 보니, 선비의 땅 영주에 산다는 의미를 다시 한번 짚어봐야겠다.
이분들의 세대는, 일제 강점기와 광복이후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맞서며, 인내와 회한의 역사를 살아왔다. 그 혼돈의 세월의 끝자락까지 유년시절 품었던 선비의 꿈을 놓지 않은 그는, 조그마한 것 앞에서도 힘겨워하는 오늘의 일상들을 위해, 스승으로 높임 받아 마땅하다.
선비는 천자와 벗하여도 僭濫(참람)하지 않다 했으니, 그를 필부인 우리와 더불어 하는 길동무로 청함이 어찌 외람되기만 하리.
<주>김숙진은 1929년생으로 근대사의 大 儒學者(대 유학자) 정암 김동진 선생의 슬하에서 성장했다. 유학을 바탕으로 올곧게 살아온 선비다. 현재 영주향교 전교로 계시면서 이산서원 복설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시는 유림의 원로이다.
대담 정리/ 서중도<현 소백 포럼 대표, 전 소백신문사 사장> |
첫댓글 우리 아부지인데....무단으로 이렇게 올려 놓아, 송구 스럽습니다...잘 해량해 주시길....
와우 제대로 출력해서 함 읽어봐야쥐
나도 그래야쥐..존경스런부친을모시는 우리의팔자님이 한없이 부럽네..담에 뵙고 인사드리고 좋은말씀들을수있는기회가오길...
팔자야 정신 바짝 차리고 읽고 읽고 또 읽어 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