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코 앞인데…‘옥외광고물 배책보험’ 엉망진창
기사승인 2021.05.31 09:37:30
6월10일 시행 앞두고 가입대상 등 혼선…“보험 본질 벗어나, 법개정 서둘러야”
6월 10일부터 가입이 의무화되는 ‘옥외광고물 손해배상 책임보험’이 시행을 목전에 두고도 가입대상이나 보장범위, 보험료 등을 놓고 혼선을 빚고 있다.
무엇보다 이 보험이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사업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신설된 의무보험이어서 미 가입 때는 당장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시행을 십일 남짓 앞둔 현재까지도 관련 보험 상품이 출시되지 않는 등 난맥상을 연출하고 있다.
옥외광고물 피해배상 책임보험은 옥외광고물로 인한 사고가 증가하고 피해액 또한 고액화 함에 따라 옥외광고사업자의 손실을 줄이면서 손해를 입은 자를 두텁게 배상하기 위해 추진됐다.
지난 19대 국회 때 진선미 의원이 대표발의했던 법개정안은 회기 종료로 자동폐기됐으나 20대 국회 들어 박남춘 의원이 대표발의한 옥외광고물 ‘제작·표시·설치·관리’ 등의 개정안을 행안부가 ‘관리’라는 단어를 빼도록 행정안전위원회에 요청, 심사를 거쳐 지난해 6월 9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후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1년 6월 10일부터 공식 시행되는 것이다.
이 같은 법률 개정안에 따라 옥외광고업을 등록한 사업자는 광고물 등의 제작·표시 및 설치의 결함으로 인한 제3자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미 가입 때는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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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등록 불법 옥외광고물 낙하 사고. 사진=올바른광고문화국민운동본부 |
문제는 이 같은 법률 개정의 후속 조치로 지난 4월 27일
△옥외광고물 손해배상 책임보험의 종류
△가입대상 옥외광고물의 범위
△책임보험 보상한도
△과태료 부과기준 등을 정한 시행령이 나왔지만 현재까지 가입대상이나 보장범위, 보험료 등이 똑부러지게 제시되지 않았다.
심지어 본지 확인 결과 한국옥외광고협회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공제상품 성격으로 판매하는 보험 외에 국내 유수 보험사 11곳 중 순수하게 ‘옥외광고물 배상책임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2019년 말 기준 옥외광고 사업자 수가 1만7천여 곳에 달하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보험 가입 대란’은 물론 미처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선의의 피해자가 양산될 수도 있는 상황.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일단 이 책임보험이 ‘제조물배상책임보험’인지 ‘시설소유자배상책임보험’인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아 가입대상자가 누구인지 모호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기존 업종별·목적물별 배상보험으로 옥외광고물을 담보한 보험이 나와 있는 상황에서 굳이 법으로 강제해 ‘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책임보험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었느냐 하는 지적이 그래서 나오고 있다.
또 사업자를 가입 대상으로 해 옥외광고물을 제작·설치하지 않고 광고판매영업만을 영위하는 대행사업자의 경우 동일한 옥외광고물에 제작 사업자와 대행 사업자가 이중으로 보험에 가입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순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취재결과, 대행사업자들은 시행령이 나오기 직전까진 행정안전부로부터 보험가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줄곧 안내를 받아오다 법 시행을 앞두고 과태료 부과 기관인 지자체들의 정식 고지(공문)를 받은 직후 책임보험 가입대상임을 인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전광판 광고매체 사업자단체인 전광방송협회와 옥외광고 매체대행 사업자단체인 옥외광고미디어협회는 행안부에 공문을 보내 해당 보험 가입이 부당하며, 시행시기를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과태료 등 행정처벌이 내려질 경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보험료 산정도 문제다.
행안부는 시행령에서 이번 의무 책임보험의 보험료를 사업자의 전년도 제작·표시·설치 매출액을 기준으로 가입, 납부하도록 명시했다.
기존 옥외광고대행사업자의 경우 옥외광고 시설소유자책임보험에 가입해 매출액에 관계없이 최대 25,000원 안팎의 보험료를 부담하면 됐지만 시행령의 매출액 기준으로 보험에 가입할 경우 적게는 3~4배, 많게는 7~8배의 보험료를 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어 가입하지 않고 사업을 해왔던 옥외광고업 등록 사업자들의 경우엔 책임보험료를 전액 추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보험가입 대상자가 매출액을 임의로 신고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국세청에서 발급하는 매출자료를 첨부해야만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 부담을 가중시켰다. 이 경우 국세청의 업무 가중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법 시행을 10일 남짓 앞두고 있지만 일반 사업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은 28일 현재까지 단 1개도 출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은 처음 개발되는 상품인 만큼 관련 통계도 부족하고 여러 사업자들과의 협의가 지연돼 출시가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취재 결과, 이 마저도 현재 1~2개 보험사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보험사가 상품 기획이나 검토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가입 대상자가 관련 보험 상품을 마음대로 선택해 가입할 수 있는 상황은 난망한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행안부는 “일부 문제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시행령으로 보완하면 될 일”이라며 우선 법 시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행안부 담당자는 “대행사업자를 책임보험 가입 대상에 포함한 것은 법제처의 유권해석 등 충분한 논의 끝에 이루어진 것이며, 보험료 산정과 관련해서는 국세청 매출자료가 아니라 민원사무처리규정에 따른 사실증명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담당자는 또 “조금 늦어지는 감이 있지만 법 시행 전까지 보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보험사와 금융감독원 등과 긴밀하게 논의하는 등 혼란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궁색한 답변을 하고 있다.
올바른광고문화국민운동본부 최병환 대표는 “옥외광고물 손해배상 책임보험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 된 것을 비롯해 이전부터 많은 문제가 노정돼 도입이 미뤄지던 사안”이라며 “갑자기 20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 의원입법으로 개정됐다손 치더라도 시행령이 마련되기까지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와서 보험가입대상이 아닌 대행사업자를 강제 가입시키며 혼란을 야기하는 것에 대해 이해 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최 대표는 그러면서 “보험업계에서 상품 출시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애초 책임보험이라는 게 전체 가입대상과 보장한도, 기존 사고율과 위험도 등을 고려해 보험개발원이 요율을 산출하고 만들어야 하지만 뜬금없이 매출액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하도록 한 넌센스 때문”이라며 “비슷한 크기의 광고물이라도 형태나 설치위치, 해당 지역의 유동인구와 풍수해 발생 빈도 등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요인들을 모두 포함해야 타당성을 갖지 않겠냐”며 ‘위험과 보상’이라는 보험의 본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폈다.
최 대표는 “현행 옥외광고물 손해배상 책임보험을 옥외광고물 제조·표시·설치하는 옥외광고사업자(생산물배상책임,도급업자배상책임)와 옥외광고물 소유·관리하는 옥외광고대행사업자(시설소유자배생책임) 등으로 분리하는 법안 개정을 서둘러야 하며, 오는 10일 시행되는 책임보험 관련 과태료 부과는 유보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 대안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문 기자 et1@ecotig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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