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포의 옛 지명은 만리장벌이었다,
조선조 세종시절 명나라 사신 일행이 안흥으로 상륙하려다 풍랑으로 인해 접안치 못했다.
그래서 안흥 대신 상륙한 곳이 만리포이다.
태안 관아에서는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진여의 해삼과 전복, 밭고개의 꽃게, 막동(천리포)의 조기로 명나라 사신들을 대접하였다.
조정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갈 때 그 맛을 잊지 못한 사신들이 굳이 상륙했던 곳에서 승선을 원하므로 드넓은 모래장벌 해변에서 전별식을 하게 되었다.
조정에서 정승 맹사성이 참석하여 명나라 사신일행의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전별식을 거행하면서 명나라 칙사에게 수산물을 선물하였다.
그때부터 만리장벌이라 부르다 1955년 서산군 소원면 박노익 면장의 노력으로 7월 3일 태안반도 첫 해수욕장 개장을 하면서 만리포라 부르며 세상에 알려졌다..
혹자들은 태안에서 멀리 있다하려 멀리포라 부르다 만리포로 변해다고 한다.
개장 후 육로가 불편했던 시절이라 1956년 만리포에서 인천 연안부두 간 정기 여객선 항로가 신설되며 도심에서의 피서객들이 찾기 시작했다.
그 후 1958년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경원 노래로 만리포 사랑이라는 곡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만리포에는 노래비외 시비가 세워져있기도 하다.
지금은 서울↔만리포 151km, 인천↔만리포 150km, 대전↔만리포 160km로 약 2;30분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최서진인 만리포는 태안에서는 18km 거리며 해빈의 길이는 2,5km 폭은 270m에 경사도 6°로 완만하며 모래의 입자가 곱고 가늘며 청정해역으로 우리나라 5대 해수욕장중 하나이다.
이런 천혜의 관광지가 한 때는 지옥의 바다였다
10년 전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이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와 충돌하면서 유조선에 실린 원유 1만2천547㎘가 바다로 유출되어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졌던 검은 재앙의 만리포였다.
국내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기록된 '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고였다.
기름 범벅이 된 바닷가에는 이튿날부터 기름을 퍼내고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으려는 자원봉사자들이 찾기 시작하여 무려 123만명이란 기록적인 봉사자들의 손길로 지금은 유츌전과 똑같이 복원이 된 서해 3대해수욕장의 만리포다.
고마워~기억할게요~
태안 만리포가 자원봉사자 성지로 자리매김하였다.
지난 9월 15일~17일까지 2박 3일간 유류피해 10주년 행사를 문제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도지사께서 참석 성료하였다.
산과 바다는 연인과 같다 합니다.
만리포에는 140m의 국사봉이 있어 더욱 아름다움을 더해주며 주변으로 천리포, 백리포, 십리포, 일리포로 이어지고 모항 항이 자리하고 있어 년 중 풍부한 수산물이 어획 되어 먹거리 까지 매력적이다.
첫댓글 만리포에 대한 상세한 역사 감사히 봅니다...
만리장뻘....친근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