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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오후2시부터는 불광법회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불광운동과 한국불교의 나아갈 길]을 주제로 세미나가 있습니다. 회장단과 정법수호위원회에서 지난 몇달 동안 심혈을 기우려 준비한 큰 행사를 앞두고 불광형제님들 모두의 마음속에 큰 기대감과 긴장감이 흐릅니다.
이른 아침부터 마라톤으로 교통이 통제되어서 법회 오는 일이 쉽지 않은 날이지만 불광법회 형제님들의 신심과 열정으로 보광당을 가득 채웠습니다.
오늘의 세미나 행사를 위해 회장단과 정수위원님들께서는 이른 아침부터 최종점검 회의를 하십니다. 현관에서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치면서 반갑게 맞이하며 여느 날과 다름없이 물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일요법회 풍경입니다.
이번주 찰밥.생수 보시 : 강남구, 강동1구 혜명주, 강동2구, 강동3구 자성화, 풍납법등에서 보시하시고 직접 나눔봉사도 하십니다. 엘리베이터팀,보광당 안내팀,새법우 교육팀 맡은 바 소임에 부처님 모시듯 정성을 다합니다.
천수경 봉독과 타종 ,부처님께 헌향과 헌다를 올리고, 사회자 혜안거사님께서 법회 시작을 알립니다.
포살요목(布薩要目)
보살계 서문
여러 불자들이여, 합장하고 지성 다한 마음으로 들으라. 내가 지금 모든 부처님의 큰 계의 서를 말하고자 하노라. 대중은 모여서 잠잠히 듣고 스스로 죄 있는 줄 알면 마땅히 참회하라. 참회한 즉 안락하고 참회하지 아니하면 죄가 더욱 깊어지리라. 죄 없는 자는 잠자코 있으라. 잠잠하면 마땅히 대중이 청정함을 알지로다........
금주의 법사 : 불광법회 선덕 혜담스님
금주의 법문 : 깨달음의 법맥(法脈)
존경하고 사랑하는 불광법회 불광사 법등가족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하여 오늘의 불광법회를 함께 하고 계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말 보기 힘든 무더운 여름이 다 가고 어느덧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시원한 가을이 되었습니다. 이 좋은 날 형제 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이 항상 함께 해서 가족이 건강하고 여러분이 하시는 일 모두 성취되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오늘 드릴 말씀을 ‘깨달음과 법맥’이라는 주제로 정했습니다. 불교의 가르침, 불법이 부처님의 맥을 잇는 법맥을 통해서 전수가 된다는 거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법맥을 전하고 법맥을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원래 법맥을 전수한다는 말을 산스크리트어로는 아비셰카(Abhisheka)라고 말합니다만 이 말은 어떤 사람에게 법을 전하는 데에 법을 전해 받은 사람이 그런 법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릇이 되어 있는 사람에게 법을 전수하는 것을 아비셰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필히 법을 받는 사람의 그릇이 있어야 됩니다. 턱도 없이 법을 전할 수는 없는 겁니다.
저의 할아버지 스님인 동산 혜일 대선사의 문집을 봤는데 거기를 보니까 동산 혜일스님이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몇 대손이냐 하면 69대손이었습니다. 그럼 광자 덕자 큰스님은 상좌니까 70대손이죠. 그리고 저는 71대손입니다. 법손이라는 자체는 부처님께 법을 받은 것이 가섭존자여서 가섭존자가 1세이고 가섭존자에게서 법을 받은 사람이 아난존자로 2세입니다. 그렇게 쭉 내려와서 저에게 오면 71세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71세로 내려올 때까지 모두 인가를 받고 인가를 해주는 게 있었습니다. 이것이 법맥인데 오늘날에 있어서는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하나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것은 법을 받는 사람의 그릇인데 전수를 한다는 아비셰카란 법을 받는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다’ 혹은 ‘물을 끼얹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과연 지금 현재 우리나라 불교에서 이것이 정상적으로 법을 받는 것이 되어 있느냐 하면 문제가 그렇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법을 받는 사람의 그릇, 양이 얼마나 되느냐, 그릇이 되었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됩니다. 여기에 대해 사실 저는 이 문제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노승은, 저는 얼마 있으면 77세가 되는데 그래서 남 앞에서 노승이라 해도 되겠다 해서 노승이라 합니다. 저는 제 스스로가 법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었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따라서 저의 수행에 대해서 한 번도 말씀드리지 않았던 종합적인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지난주 법회에서 강민구 번호사께서 당신의 할머니가 지리산 칠불사에서 열심히 기도하셨는데 그 기도가 힘이 되었는지 좌탈입망을 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사실 이 지리산 칠불사는, 요즘은 통광스님이 절을 크게 보수를 해서 오늘날에는 칠불사로 되어 있는데 그 전에는 아주 조그만 형편없는 절로 6.25 때 다 불타버린 절이었습니다.
저는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그날 저녁에 은사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바로 그 다음날 저의 머리를 깎아준 혜암 큰스님이 지리산 칠불사 운상원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 칠불사로 갔습니다. 거기 가서 무자 화두를 타고 석 달인가 있다가 선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제가 그렇게 동국대 졸업하고 그 이튿날 걸망 하나 달랑 메고 지리산 칠불사로 간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공이 무엇인가? 참선을 하면 공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공을 알고 싶다, 깨닫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들어서 거기를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두어 달 있다가 해인사 가서 퇴설당, 성철 큰스님께서 입적하신 장소입니다. 퇴설당에서 1년 반 동안 가행정진, 즉 하루에 4시간 정도 자고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앉아서 참구하는 가행정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군 입대를 해서 군법사로 4년을 봉직하고 전역해서 미진한 문자 공부를 해야겠다 하고 있는데 큰스님께서 불광법회가 불광사를 창건하고 있는데 곧 준공식을 하게 되면 불광법회 법등 식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법회를 지도할 인물이 없다. 아무래도 지상 수좌가 좀 올라왔으면 좋겠다는 의향을 듣게 되어서 올라왔습니다. 아마 그때 스님께서 ‘혜담수좌 불광사 살림할 사람이 없어. 올라와서 살림 좀 살어’ 라고 했으면 안 올라왔을 겁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불광사 살림 문제가 아니고 불광법회를 지도할 수 있는 스님이 없으니 자네가 올라와야겠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기꺼이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올라와서 보니까 불광법회에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하는데 이게 무엇인지 몰라서 아무리 책을 찾아봐도 없고 마하반야바라밀이 뭔지 나오지가 않아요. 그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세계에서 가장 교학적으로는 발달된 일본으로 유학가면 이 반야바라밀을 알 수 있겠다 싶어서 억지춘향 격으로 일본 유학을 가게 되고 거기에서 다행히 가즈마 유이치라는 공의 대가인, 공사상의 세계에서 일인자인 그 교수를 만나서 그분에게 공에 대한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품반야경을 배웠고 귀국해서는 이 대품반야경을 번역하고 여기에 대해 어떤 신앙서를 써야겠다 생각하고 양평에 있는 조그만 시골집을 사서 거기에서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이 공이 뭔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어느 봄날 한 2월쯤 되었을 겁니다. 1993년 초봄의 한기가 남아있는 마당을 거닐다가 갑자기 보름달 속에서 내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기서 ‘내 자신이 빛나고 있는 것’을 봤다. 그 순간 이런 게송을 읊었습니다. ‘동천의 보름달과 일념이 한 몸 되니, 심신이 무너진 곳에 아(我)를 찾을 수 없네. 달을 향한 사려분별 끊어진 자리에 명월이 교교하게 산촌을 비추니, 용문산 기슭따라 혜담원 오는 길손 야반 달빛 속에서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라고 게송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내 오도송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개월인가 지나서 그때 아마 큰스님의 66회 생신날인가 되어서 이 게송을 가지고 보현사로 가서 내밀고 점검해달라고 했습니다. 한참 이걸 보시고 나서 스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법회보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이치는 맞는 말인데, 너무 조작 냄새가 나는구나!’ 이렇게 잘라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내가 견성한 것이 아니구나, 내가 오도송이라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이구나 생각하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009년 10월에 조주스님의 ‘뜰 앞의 잣나무’ 즉 무엇이 불법입니까? 했을 때 조주스님께서 뜰 앞의 잣나무, 정전백수자라는 법문을 했어요. 이것이 맺혀서 이 말이 무슨 말인가? 불법이 무엇인가, 불법의 적적대의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했을까 이것을 궁구하기 시작했어요. 2009년 10월 14일 내 나름의 견해가 생겼습니다. ‘남녘에서 온 바람이 산천을 연초록으로 수놓고 가을비 낙숫물 소리는 황금들판을 만드네. 새벽의 여명에 이슬 먹은 호박꽃이 피고 초가지붕의 하얀 박꽃은 져녁노을로 빛난다.’ 이렇게 또 다른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름대로 또 내가 정말 깨친 것이라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불교방송에서 ‘자비의 전화’를 하러 다닐 때입니다. 방송을 다니면서 계속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했는데 강변북로, 그러니까 동부이촌동 입구에 보면 의협사무실이 있어서 그 앞을 지나는데 불현 듯 텅 빈 내가, 아(我) 라는 것이 몸 전체에서 보이는 거여. 그래서 나라는 신체가 내가 아니라는 걸 본 겁니다. 이 말이 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이름이 반야바라밀이구나 하는 말이구나. 내가 내가 아니고 이름이 나라는 몸이구나. 이렇게 깨달았다 생각하고 있으니까 갑자기 통 밑이 확 빠진, 옛날 통은 나무로 만드는데 통을 받치는 나무 밑바닥이 빠지는 참선하는 스님들이 주로 이런 경지를 많이 가집니다. 통 밑이 쑥 빠진다. 이 말은 모든 번뇌가 밑으로 확 떨어지는 경계가 온 겁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이거야말로 정말 깨달음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경계를 계속 갖고 또 얼마의 세월이 흘렀어요. 2010년 10월 27일에 큰스님께서 무문관 22칙의 법문을 접하게 되었어요. ‘어느 날 아난이 가섭존자에게 가서 묻습니다. 석가세존께서는 가섭존자께 금란가사 이외에 또 무엇을 전하였습니까? 그러자 가섭존자는 아난아 하고 부릅니다. 아난존자가 예하고 대답하니 가섭존자가 문 밖의 찰간을 넘어뜨려라,’ 이 말은 법문 끝났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 큰스님께서 바로 이 자리에서 말씀하셨는데 그때 생각했습니다. 저는 광자 덕자 큰스님이 정말 선지식이고 또한 어느 스님보다 열의가 뛰어난 분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스님께서 천 명의 대중이 앉은 이 보광당에서 그냥 문자로 알음알이로 말씀했다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깨달음 자체를 말씀하셨다 생각하고 여기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3년 동안 이 문제를 갖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뭔가? 찰간을 넘어뜨려라. 법문 끝났다는 건 무슨 말일까? 3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것으로 씨름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2017년 3월 29일에 여기에 대해 어떻게 내 나름의 견해를 폈는가 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 20대 초에 산문에 들어 삭발염의하고 산사에서 저자거리에서 노닐다 보니 사하촌 아이들이 할아버지스님이라 부르네.’ 라고 노래하고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내 생각이나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방거사가 깨달음을 얻은 뒤에 자신을 요사범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고자 했던 일을 마친 범부,라고 표현했습니다. 저도 2017년 3월 29일에 나도 이제 요사범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보리광보살님 녹취)
매주 일요법회에서 법문 듣는 것을 최상의 공덕으로 여기는 불광법회 형제님들의 신심에 불보살님의 가피가 항상하십니다.
저는 저희 할아버지스님이신 동산스님 밑에 많은 제자가 있습니다만 아마 대한민국 스님들 가운데서 동산스님 만큼 많은 제자를 둔 사람이 없습니다. 그때는 6.25전쟁 때였으니까 전국에서 물밀듯이 범어사에 스님 되려고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어요. 오는 사람들은 다 해줬어요. 그래서 제자가 아마 300명은 됐을 거야. 그 많은 제자 가운데서 물론 거기에는 제일 뛰어나는 성철 큰스님도 계시고 나이는 다섯 살이 많지만은 출가가 늦은 지효 스님이라는 큰스님도 계셨어요.
그 다음 밑에 많은 큰 스님들이 계시지만은 지금 현재 총무원장 스님의 은사스님인데 백운스님도 계시는데 그런 큰스님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제일 탁월한 그런 경지에 있었던 분이 저는 광자 덕자 스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동산 노스님의 그 많은 제자 가운데 광자 덕자 큰스님만큼 하화중생의 어떤 뜻이 있었던 입전수수 한 그런 모범적인 인물을 다른 곳 다른 스님을 찾아도 없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스님들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성철 큰 스님보다 더 훨씬 뛰어나신 직인의 소유자고 정말 하화 중생의 입전수수한 그런 모범적인 세대가 바로 광자 덕자 큰스님이라 생각을 하고 저도 그래서 제가 마지막 할 일은 이것이다. 정말 입전수수해서 제 나름대로는 지금 제가 스스로 요사범부가 되지 않으니까 그냥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다. 그런 생각에서 형제들과 더불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제가 죽을 때까지 하겠죠.
가끔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법회참석 인원이 많은 법회가 불광법회입니다. 누가 뭐래도 불광법회입니다. 이곳에서 불광법회를 지키겠다는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그 사상을 지키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똘똘 뭉쳐있는 우리 불광법회 형제들과 더불어 함께하는 것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속에서 저는 이제 뭐 살날이 얼마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렇게 살 것이고, 여기에 여러분들의 큰 성원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잘되리라 생각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하고 있으니까, 형제 여러분들이 혼자서 운전도 하고 힘들겠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은 좀 늦은 것이 작년 마라톤 하는 날도 그냥 길이 헷갈려서 성수대교 까지 다 돌아와서 법문을 했는데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로 성수대교 또 동호대교까지 다 돌아가지고 좀 늦었거든요. 하여튼 그렇게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런데 다시 법령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면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아마 지금 현재 살아계신 동산 큰 스님의 제자들은 큰 스님의 사형들은 20여 명이 살아계실 겁니다. 그런 스님들 가운데 동산 큰 스님은 아무 스님에게도 당신의 법맥을 전수한 적이 없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면, 자꾸 이제 지리산 칠불사를 말씀을 드리는데 원래 용성조사께서 제가 용성스님을 용성조사라고 하는 것은 용성문도 스님들은 용성스님을 조사로 칭합니다. 다른 스님은 조사를 안하지만 달마도사나 혜능조사처럼 그렇게 용성스님을 조사라고 문도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저도 용성조사라고 합니다.
용성조사께서 지리산 칠불사에서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그 자리에서 이제 계맥을 다시 얻었습니다. 성공을 했죠. 이제 계맥을 얻었는데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고 계맥을 전수 받았는데 거기서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동산스님에게 글을 바치니까 거기서 인가를 해줬고 인가를 받았어요. 그런데 동산스님의 문집을 보면 그 많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에게도 법어를 전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 스님도 동산 큰스님께 와서 나는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뭐 그렇게 해서 있기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문집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따라서 용성스님께서도 한 사람에게도 법을 인가한 적도 없고 인가를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건 성철 스님도 마찬가지고 광덕 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지금 범어사의 방장이신 지유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받은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럼 왜 동산노스님께서는 당신은 용성조사님께 법을 받고 다했는데 왜 당신은 제자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왜 제자들에게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문제를 지금 보면 아! 동산노스님께서는 당신 후대에는 이제 깨달음을 받아 가지고 깨달음을 인가받고 법으로 정하고 하는 것은 없어질 것이다. 뭐 이렇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말은 제자들도 제대로 한 사람도 법을 뭐 전하고 받는 그런 절차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건 선견지명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러면 광덕 큰 스님께서는 그럼 제자들에게 어떻게 했느냐 역시 마찬가지로 큰 스님께서는 어느 제자에게 법을 전한다. 이런 말씀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1984년도에 법상을 받았습니다. 큰스님께서 너가 법상에 앉아라 그래서 법상에 앉았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너가 법상에 앉으면 내가 삼배를 해야 하는데 내가 몸이 안 좋아서 그걸 못하고 법상에만 앉혀서 미안하다 그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제자가 법상에 앉으면 은사가 삼배를 하는 것이 법도입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저희 사제 가운데 유일하게 저는 스님께서 법상에 앉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저는 그래서 법상 문제는 물려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 계맥에 대해선 어떠냐? 계맥에 대해서는 큰 스님께서는 저희들이 이제 법을 받는 사람들은 건당상좌라고 그러는데 건당상좌를 정하면서 상계도를 전부 당신 문하를 건당상좌를 하겠다.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줄 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걸 주겠다. 하면서 이렇게 보리수 잎을 이렇게 액자로 해가지고 상좌들에게 줬어요. 아마 그때 8명인가 9명이 받았어요. 여기를 보면은 뭐 라고 써 있느냐하면 혜담지상 봉장 그렇게 써 있습니다.
이렇게 써 있는 걸 받았는데 이것은 큰스님께서 동산노스님께서 하신 그 법이 정법계를 주지 않은 것처럼 스님께서도 그건 지금 후세에서는 필요가 없다. 왜 그러냐 수행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얼마 전에 해인사에서 우리가 잘 아는 학산 대원대선사가 새로운 방장으로 추대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장을 하겠다고 그랬지만은 유일하게 방장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스님이 있습니다. 해인사에서 강연도 오래 하시고 해인사 주지도 하신 이름을 대면 곤란하니까 일단 K 스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스님께 또 이제 해인사 쪽에 정치하는 스님들이 찾아와서 방장을 해달라고 그랬어요.
그 전에 어떤 깨달았다고 하는 스님이 K스님에게 당신 시자를 시켜가지고 전법계를 보내왔어요. 전법계를 가져오니까 K스님이 읽어보고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나도 그 정도는 보고 있다. 이거 가져가라 그러고 돌려보냈어요. 그러고 난 뒤에 한달인가 전에 해인사의 많은 문도 스님들이 찾아가서 방장 좀 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니까 K스님이 그런 말 하려면 다시는 날 찾아오지 마라 하고 쫒아버렸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 추대한 것이 학산 대원선사입니다.
제가 왜 K스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그렇게 다들 방장 하겠다 주지 하겠다. 하지만은 K스님 같은 그런 참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은 일체 명예에 치중하지 않고 오직 수행만 하는 그런 스님들이 오늘날도 있습니다. 내면적으로는 그런 스님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스님들에 의해서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또한 불광법회 같은 이러한 곳도 입전수수하는 그런 스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한국불교는 굴하지 않고 살아날 것입니다. 거기에 형제 여러분들이 일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큰 긍지를 가지셔도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이런 속에서 나아갈 때 한국불교는 불광법회에 의해서 다시 일어날 것으로 저는 확신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자신감을 갖고 지금 소임 되는 스님들이 아무리 구박을 해도 몇 년 안가요. 그런 확신을 갖고 그렇게 열심히 정진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자은성보살님 녹취)
마하보디합창단 < 참회 >혼자 있을 때 [광덕스님 작사.정 부기 작곡]
혼자 있을 때 슬픔과 함께 하지 마라
성냄과 욕심 시기와 질투 하지 마라.
모든 것 잊고 부처님과 함께 있으라.
진리광명은 그 모든 것을 소멸하리라.
슬프다고 남에게 말하지 마라.
노엽다고 남에게 말하지 마라.
혼자 있을 때 슬픔의 물결 더욱 높아지리.
혼자 있을 때 노여움 불길 더욱 솟으리.
자신을 속이지 말고 모든 것 버리고
부처님과 함께 하면 극락을 이루리라.
자비에 손길로서 모든 것 버리고
평화희망 그 모든 것 안겨주리.
대입 수능 및 각종고시 수험생들을 위한 간절한 염원으로 혜담스님과 불광형제님들이 발원문을 합송합니다.
불광법회 불광사 정상화 발원문 : 송파7구 명등 진여행보살님!
주간 현안보고 하시는 현문 수석부회장님!
처음 오신 새 법우님 불광법회의 미래가 되실 젊은 불자님! 소중한 인연 끝까지 이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법회가 끌난 후 법등가족들과 한 주간의 안부들을 전하면서 소찬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보광당 법당안내팀 보살님들은 귀가하는 형제님들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을 항상 염송하며 보현행원을 실천하면 밝고 맑은 아름다운 얼굴이 됩니다.
일요법회 후 대웅전에서는 언제나처럼 곧바로 금강경독송 기도가 진행되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 불광법회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역사적인 세미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사회 : 혜안 백승익
좌장 : 수석부회장 현문 이윤성
개회 인사말 : 법회장 현진 박홍우
격려사 : 선덕 혜담 스님
제1주제 : 불광운동의 의의와 과제
발제 : 빠리사학교 주임법사 김재영
토론 : 불광법회 감사 보관 이광우
제2주제 : 승가의 청정성 회복 방안
발제 : 건국대 명예교수 성태용
토론 : 전 동국대 교법사 진우스님
제3주제 : 사찰의 재정투명화 구현 방안
발제 : 운판 대표 김경호
토론 : 동국대 명예교수 박경준
혜담스님을 시작으로 많은 분들의 열정적인 질문으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 되었으며, 오늘의 세미나에서 많은 유익한 내용으로 발제자와 참석자 등 등 모든 분들에게 한국불교의 시대적 상황을 점검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불광법회의 역할이 미래불교의 큰 희망이 되고 있음을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세미나에 300여명 분들이 참석하여 집중도와 호응도가 높은 열띈 분위기로 주제, 발제, 토론, 질문 모두가 보람된 알찬 세미나가 되었습니다. 불광법회 형제님들에게는 우리가 나아가는 길에 대한 정당성과 역사성에 자부심을 더욱 느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현진 법회장님의 마지막 인사 말씀으로 오늘의 세미나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 크신 원력으로 수고해 주심에 수희찬탄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념 사진 촬영이 있었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한 분들이 보광당 로비에서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다도팀에서 준비한 정성스런 다과를 드시며 담소를 하십니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많은 보현행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보현행자님들 이십니다. 광덕 큰스님의 가르침은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모두가 보현행원으로 깨달음을 이룰 것입니다.
이번주에도 조계사, 봉은사, 화광사에서 거룩한 1인 시위 정진을 이어갔습니다.
토요시위 정진에 점점 많은 분들이 동참하며 불광법회를 지키고자 하는 불광형제님들의 수승한 열의가 점점 고조되고 있습니다. 시절을 거스릴 수 없는 "민심이 천심" 임을 스님들께서도 잘 아실 것입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매주 토요일 오후2시 보광당에 오시면 청정팀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간대에, 쉽지 않은 보현행에
수희찬탄 드립니다.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국토 성취하자!!!
법등오서(法燈五誓)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바른믿음을 삼겠습니다.
전법으로 정정진을 삼겠습니다.
전법으로 무상공덕을 삼겠습니다.
전법으로 최상의 보은을 삼겠습니다.
전법으로 정토를 성취하겠습니다.
첫댓글 비로자나불님 밤 늦도록 수고 많으셨네요_()_
법문 풀어쓰신 자은성보살님 법회 내내 사진 찍으신 송지보살님 늦은 시간까지 세미나 참석하고 사진 찍으신 지일심보살님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_()()()_
마라톤 코스라 이른 아침부터 교통 통제로 법회 오시는 길이 무척이나 힘들었던 날이었습니다만 많은 법우 형제들은 오후 세미나가 끝나는 시간까지 열의를 갖고 동참하시는 모습에 감동이었습니다.
장장의 일정을 촬영, 녹취, 편집하시느라고 수고하신 여러 보살님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수희, 찬탄 드립니다.
모든분께 녹취, 촬영, 편집 하신다고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세미나 참석하고
집으로 행하는 발걸음이
무거운 발걸음 이였다.
마음이 정상화에 대한 좋은 의견들
크게 차지하고 있었나 봅니다.
모두 늦은시간까지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