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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극장
박 태 순
1960년대에 접어들자마자 일어났던 4·19 사태에 대하여 우리가 갖는 정직한 느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때는 바야흐로 비상시국이었으며, 일차 모든 기성의 질서들이 무시되는 혼란의 시기였다. 오도된* 질서에 대한 반발이 극심하게 표현되었던 시기였다. 기성 질서의 테두리 속에서 비겁한 안정을 꾀하던 지배자층의 총알에 맞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붙잡힌 학생들은 고문을 당했다. 계엄령이 선포되었으며 통금위반에 걸린 사람들은 얻어 터졌다. 경찰은 여관과 가택을 수색했다. 병원마다 젊은이들은 빵꾸가 난 육체를 가누지 못해 죽음과 고통을 함께 느끼며 신음하였다. 때는 비상시국이었으므로, 무슨 일이든 발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랬으므로 그 당시 우리는 그 사태의 전모를 알고 있지 못했다. 완고한 노대통령과 그 밑의 사람들이 무슨 마음을 먹고 있는지, 세계의 언론이 어떠한 보도를 하고 있었는지, 미국 대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더욱이 외아들을 죽이고 만 평길이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마포 형무소에 끌려 들어간 우리 친구들이 어떤 상념에 빠져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날은 4월 19일의 데모가 일어난 지 벌써 엿새가 흐른 4월 25일이었다. 경미한 부상을 당했던 나의 몸은 어느 정도 나아져서 기동할만했다. 나와 광득이는 아침 열시쯤 바깥으로 나가다가 융만이를 만났다. 융만이는 마포 형무소에서 금방 풀려나온 길이라고 했다. “다구리로 얻어켰지” 하고 융만이는 별로 억울할 것도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융만이는 나의 손을 그의 가슴 속으로 넣게 하여, 용감한 무인(武人)이 자부심을 가지고 새겨 넣은 문신과도 흡사한 그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나는 이 가슴에다가 우리의 뼈저린 현실을 새겨 넣은 거야!” 하고 그는 말했다.
“부정선거를 했던 정권은 망하고야 말 것이다” 하고 광득이가 심각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럴지도 모르지. 이것은 하나의 혁명이니까.”
“그래, 혁명이야” 하고 광득이가 다시 동의했다. “앞으로 어떻게나 될 것인지?” 광득이는 이어서 혼잣소리로 말했으며, 거기에 답변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걸어서 시내의 중심가로 나왔다.
맑은 날씨였으나, 시내의 풍경은, 우리가 전혀 낯선 도시에 마악 닿았을 적에 받는 서먹서먹한 인상을 우리에게 줄 만큼 바뀌어져 있었다. 군인들이 거리마다 도열해 서 있었으며, 곳곳에 바리케이드가 쳐 있었다. 불타버린 건물들, 탄흔(彈痕)이 남아 있는 포도에서 우리는 마치 전쟁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기라도 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태양은 더욱 뜨겁고 하늘은 더욱 맑고 푸르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무관심한 표정 속에 흥분을 감추고 있었다. 서로들 경계심을 풀지 않으면서도, 비상시의 사람들답게 날카로운 호기심과 분노에 떠는 표정을 간간이 지어 보이고 있었다. 거리에는 계엄사의 포고문이 붙어 있었고, 노대통령의 담화문도 게시되어 있었다. 집총한 군인들은 호각을 불며 시민들이 혹시 대열을 지어 데모라도 벌일까봐 경계하고 있었다. 민간인들은 군인들의 시선을 피하여 우울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태양은 직접 도시의 상공으로 접근해왔으며, 바람은 더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도심 지대를 벗어났다.
우리는 중랑교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에서 서울을 벗어났다. 우리는 망우리 입구에서 시외버스를 내려 허덕허덕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늘은 여전히 한가로운 느낌을 주는 푸른 빛깔을 띠고 있었다. 공동묘지는 성숙한 봄의 한가운데에, 별로 무덤 이라는 느낌을 주지도 않으며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럼 에도 거기에는 죽은 사람들의 고단한 혼백이 닥지닥지 붙어 있었다. 죽음은 다만 광물성(鑛物性)의 의미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다. 부정 선거와 오도된 민주주의를 규탄하다가 죽어버린 스물한 살짜리 청년의 시체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라는 증거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평길이의 무덤을 찾아내느라고 애를 먹었다. 한 시간 이상이나 헤매서야 간신히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평길이의 무덤은, 설사 그것이 평길이의 무덤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할지라도, 평길이와는 관련이 없을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죽어버린 친구가 결국은 그 시체를 남기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종달새 소리를 들었으며, 소나무 사이를 거쳐오는 바람 소리를 들었으며,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움이 트는 잡초를 보았으며, 뜨거운 태양의 냄새를 풍기는 소주를 핥았다. 이윽고 우리는 사자(死者)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한 뒤에 그곳을 떠났다. 먼 지방으로부터 서울을 향하여 다가오는 시외버스는 그런데 만원이 되어 있었다. 엄밀하게 계엄령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그 속으로 끼어들어가려고 하는 버스의 느릿느릿한 속도에도 우리는 그러나 그 계엄령을 잊어먹고 있었다. 다만 우리는 사자로부터 멀어져가서, 그 사자를 사자가 되게끔 만든 도시의 생명 속으로 끼어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오후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전차를 타고 가다가 종로 5가에서 내렸다. 서울의대 부속병원에는 중상을 입은 친구들이 많이 입원해 있었는데, 우리와 함께 데모를 했던 혼수는 갈비뼈가 부러져서 신음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혼수의 병실을 찾아갔다. 혼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으며,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에게 물었다. 우리는 그에게 해줄 말이 없었다. 우리는 앓고 있는 사람에게, 그가 앓게 된 원인의 하나인 부정선거 규탄 데모를 얘기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은 아직 엉망이었으며, 우리에게 희망과 감격을 안겨줄 반가운 소식이란 하나도 없었다. 어쩌면 앓고 있는 혼수 이상으로 이 세상이 앓아누웠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는 병원으로부터 벗어났다. 정원에는 수목이 자라고 있었고, 부상자들에게 헌혈을 하려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울 문리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거기에서 우리는 많은 떼거리의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운집한 군중들 틈새로, 도열해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거기에는 ‘대학교수단’ 이라고 씌어 있었다. 교수들은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힌 채 이윽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운집했던 군중들이 박수를 쳤다. 무어라고 떠드는 흥분된 소리도 들려왔다. 교수들의 굳게 긴장된 표정에는 나이 많은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태연한 흥분이 엿보였다. 이윽고 교수단 데모대는 군중을 거느리고 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사라져 갔다.
우리는 문리대 앞으로 나왔다. 우리는 대학이라는 곳이 진리의 보금자리란 말을 그때 실감하였다. 저녁 햇빛에 감싸인 캠퍼스는 이 근래 일어나고 있는 제반 사태에 대하여 엄숙한 의무감을 내보이고 있는 것 같았다. 캠퍼스 앞에는 집총한 군인들이 서 있었으며, 학생들은 그 앞에서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다방으로 들어가 차를 한 잔 마셨으며, 그런 뒤에 바깥으로 나왔는데, 핏빛 놀이 진 하늘에는 6·25 전쟁 때에 내가 보았던 불그무레한 처참한 빛을 띠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되었다. 우리는 더욱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라디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뉴스에서 교수단의 데모가 국회의사당 앞에까지 닿았음을 알았다. 라디오는 교수단이 데모를 한다는 뉴스를 보내준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거리는 어느 정도 허탈하게 비어버렸으며, 우리는 싸구려 막걸리집에 들어가서 술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술이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속도를 빨리하여 마시기 시작했다. 우리는 술이 안 오르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늙은이와도 마찬가지의 침통한 어조로 민주주의와 자유와 행복과 후진국과 부정선거와 부패와 타락과 슬픔과 아픔에 관해서 얘기했다. 술은 취하지 않았으나, 머리는 무거웠다. 그래서 열심히 술을 마셔주는 것만이 지금의 순간에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일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이윽고 밤 여덟시가 좀 지났다. 바깥으로 나갔던 주인아주머니가 돌아왔다. “어서들 나가세요. 문을 닫아야겠으니까요” 하고 주인아주머니는 말했다. 시계는 여덟시 이십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학생들, 라디오 소리가 안 들려요?” 주인아주머니는 라디오의 볼륨을 높여놓았다. 계엄령은 다시 선포되어 있었다. 통행금지 시간도 아홉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아나운서는 거듭거듭 시민의 자숙을 요청하고 있었다. 술집 주인의 아들인 듯한 중학생이 그때 숨을 헐레벌떡 쉬면서 들어왔다. “지금 시내에서는 데모대들과 경찰이 마구 총질을 하고 있어” 하고 그는 말했다. 건물들이 불타고 있으며, 파출소가 다시 파괴되고 있고, 공공건물들이 가릴 것 없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바깥으로 나왔다. 거리는 깊은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상점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러자 그때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로운 음향이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렸다. 조금 뒤에 우리는 함성이 들려오고 있음을 감득했다. 그 함성은 차츰 이쪽으로 가까워오고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적처럼 사람들은 어둠 속으로부터 뛰쳐나왔다. 큰 거리는 이내 인파로 가득히 메워져 있었다. 주위가 온통 시끄러워져 있었다. 우리는 어느덧 술이 깨버렸으나, 우리의 피부에 부딪쳐지는 거대한 힘의 무게에 압도되어 다시 몽롱해져왔다. 수분기처럼 적셔지는 분노, 부정 부패와 학정에 대한 씻을 수 없는 혐오가 한 덩어리로 뒤엉켜, 어느덧 우리는 사람들의 성난 대열에 가입돼버리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3·15 선거는 불법이다, 부정이다, 하고 사람들은 외치고 있었다. 임화수의 집이 결딴났다, 하고 어떤 녀석 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임화수의 집이 결딴났다는 것이 마치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 구호인 것처럼 복창하는 것이었다. 이정재의 집도 결딴났다, 하고 어떤 녀석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임화수의 집이 결딴났다는 것이 마치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구호인 것처럼 복창하는 것이었다. 이정재의 집도 결딴났다 하고 어떤 녀석이 고함을 질렀다. 평화극장을 부숴라, 사람들은 절규하고 있었다. 임화수의 평화극장을 때려 부숴라. 사람들은 평화극장을 향하여 맹렬한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뛰었다. 사슬에서부터 풀려나온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달려가는 것이었다. 평화극장이 어둠 속에 나타났다. 사람들은 주변을 감쌌다. 구호를 복창하고, 알아먹을 수 없는 비명을 지르고, 어이싸 어이싸 소리를 뱉어냈다.
극장 안에는 경찰들이 잠복해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임화수는 나오라, 임화수는 나오라. 사람들은 울부짖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의 상징, 일종의 스케이프고우트*인 임화수라는 추상적인 존재에 대하여 그들의 분노를 떠맡겨버린 것이었다. 나가자, 나가자, 사람들은 이어서 외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삼삼칠 박자의 가락으로 손뼉을 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내달았다. 타캉하는 소리가 그때 울려 펴졌다. 이어서 타캉, 타캉, 타캉, 둔탁한 소리는 계속 울려 퍼졌다. 아아…… 짧은 신음소리를 내며 얼른거리는 어두움 속에서 누군가가 쓰러졌다. 몇 명의 사람들이 그곳으로 다가가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총에 맞은 사람은 아픔이 확실하게 느껴지자 비명을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돌멩이들이 앞으로 뻗쳐나갔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가 뜸해졌다. 사람들의 기세가 드높아졌다. 그러자 총소리는 다시 들리기 시작하였다. 총소리는 절대적인 정 적, 그것과 마찬가지로 계속이 되어서, 그 소리가 없으면 도리어 이상해질 것 같은 모호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막연한 죽음의 상태와도 같이 그 총소리는 총소리라기보다도 하나의 무게로써, 엄청난 부피로써 이 세상을 변경시켜놓고 있었다. 그 총소리는 인간의 육신이 인내할 수 있는 한계를 온통 부숴버리는 것 같았다. 삶과 죽음은 한데 엉겨 붙어, 흐느적거리는 즙액처럼 그 총소리 속에 용해되어버릴 것 같았다. 그런 상태는 몹시도 오랜 시간 동안 계속된 것 같았다. 어느새 사람들은 와르르 극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는 판이었다. 사람들은 들고 있던 몽둥이와 쇠꼬챙이 같은 것으로 극장 입구의 유리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쨍그랑쨍그랑 소리를 내며 유리문은 산산조각이 났다. 영화 포스터가 찢겼다. 현수막이 쓰러졌다. 사람들은 임화수를 잡아라, 소리를 지르며 내닫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깨동무하여 천천히 극장 앞으로 갔다. 극장 입구는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다. 우리는 발길에 걸리는 깨어진 유릿조각을 차 던지며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잠시 휴게실이라 짐작되는 곳에 서 있었다. 주변은 깜깜했다. 그러나 어둠 속으로부터 소리가, 그것도 이중 삼중으로 겹쳐 들려오는 소리가 마치 단단한 물질처럼 우리를 뺑 둘러쌌다. 사람들은 성냥을 켜고 종이를 태워 어둠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여기저기서 마치 사악한 영혼을 가진 유령들처럼 너울거리는 불빛이 보여왔다. 사람들은 불을 보면서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고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있는 중이었다. 극장의 관람석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우선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부서지고 있었다. 장의자가 넘어가고, 테이블이 나뒹굴고 있었다.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몽똥그리 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출찰구 옆의 사무실의 부서진 문 안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서진 출입구를 통해서 관람석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마악 누군가가 쇠창살 같은 것으로 스크린을 찢고 있었다. 스크린은 마치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은 여자처럼 보였다. 하얀빛을 뿌리면서 너울대다가 그 가운데로부터 짝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음향은 주변의 소음에 함몰되지 않는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살갗을 면도칼로 짝 그었을 때 나리라 생각되는 그러한 음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신체의 일부분이 상처를 받은 것만 같았다. 그것을 듣고 있기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이 극장의 한편 구석에 숨어서, 이쪽을 향하여 총알을 겨냥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막연하게 여러 불법적인 정치질서가 떠오르고, 데모에 대한 것이 기억나고, 아니 그 모든 것에 앞서서 고고한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크낙한 쾌감, 기막힌 흥분이 엄습해왔다. 나는 무의식중에 앞에 보이는 물건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전신으로부터 알지 못할 힘이 솟구처 나와서 근육이 불뚝불뚝 일어서고 머리에 피가 몰려서 눈앞이 아뜩해왔다.
관람석은 갖가지 음향으로 꽉 차 있었다. 아래층 이층이고 가릴 것 없이 기괴한, 삭막한 음향이 뒤엉겨 붙었다. 그것은 이 세상이 파괴되는 음향이었다. 음향은 일찍 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하던 극장 안을 온통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집회 장소였던 이곳의 질서의 음향을 깨뜨려버리는 것이었다. 음향은 파괴될 필요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 위선과 기만의 음성들. 레코드판처럼 똑같이 반복되었던 찬양의 소리, 속삭임 소리, 신음 소리, 불평과 불만의 소리는 일차 깨뜨려질 까닭이 있었을 것이었다. 사람들은 동물이나 내는 기괴한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눈앞에 닥친 무질서에 환장해버려서, 마치 사회와 인습과 생활규범을 몽땅 망각한 것 같았다. 그들은 기괴한 소리를 뱉으며 물건들을 부수고 있는 것이었다. 극장 안에 이루어져 있었던 여러 형상물들은 점점 망가져서 쓰레기더미로 화하였다. 말하자면 추상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열을 지어 뻗어 있던 의자들은 사람들에 의하여 파괴되어 의자로서의 기능을 분해당했다. 의자는 다만 약간의 금속판과 나무의 합성제품으로 구성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괴팍한 화학자가 이 세상의 물질이 무엇으로 되어 있는가를 실험할 적에 내보이는 원소와 원자재의 회귀(回歸)와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또는 사실화만 그리던 사람들이, 그런 객관의 질서를 무너뜨려서 추상화, 초현실화를 그리지 않을 수 없었던 때의 그 와해 감정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관람석을 분해시켜 그곳의 효용가치를 파괴시키는 무질서에의 작업을 열렬한 흥분 속에서 감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정권 유지에 급급하여 제멋대로 부정을 자행하던 지도자들이 만들어놓은 그러한 질서를 인정 할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부정부패의 한 상징인 임화수를 생각할 때 이 극장에 대한 질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러한 파괴에서 묘한 쾌감조차 느끼고 있는 것이었으나, 반면에 붕괴되고 있는 저 굉음에 대하여서는 어떤 본능적인 공포를 자극받았다. 그들은 공포를 느낄수록 더욱 집착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떤 절망 같은 것, 이 세계가 이것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아득한 허탈감 속에 너무나도 깊이 빨려 들어가 있었다. 나 또한 부서진 의자에서 철근을 추출해내어 그것으로 타일을 깐 바닥을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꽈당, 꽈당. 내가 내고 있는 소리가 나의 육체 속으로 달려들었다. 마치 내 몸뚱어리를 꽈당꽈당 들깨부수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생각될 지경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힘이 들어서, 계속하여 두들겨 부수지 않는다면 도리어 내가 죽어버리지나 않을까 생각되었다. 죽을힘을 다하여 죽음 그 자체와 싸워야 한다고 느끼기나 하는 것처럼 열렬하게 때려 부수고 있는 것이었다.
물건 부수어지는 소리와 고함 소리는 한데 휩싸여 아비규환의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은 불을 만들었다. 어둠은 무서웠던 것이었다. 성냥불이 그어지고, 커다랗게 흔들리는 그림자들이 이쪽저쪽 벽에 나타났다. 그림자들은 귀신에 혹한 것처럼 아니면 스스로 귀신이 되어버릴 것처럼 너울거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의자더미를 모아왔다.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보다 무서운 광경이 현출되었다. 불빛에 드러나고 있는 현장의 처참은 극한상태에서 오는 무서움이었다. 넘어져 뒹구는 의자들은 진짜로 죽어 나자빠진 사람들인 것 같았다. 거기에 겹쳐 일어나는 소음과 비명과 울부짖음은 장내의 처참한 광경을 소스라칠 정도로 돋보이게 하였다.
“아아아―” 절망적인 목소리로 누군가가 절규하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아” 하고 그 소리는 외쳐대고 있었다. 불은 점점 더 커져가기 시작하여 장내는 환해졌다. 이미 제대로 형체를 남기고 있는 비품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을 보며 흥분했고, 망가진 광경을 보며 흥분했다. 무대에는 가랑이 벌린 여자의 꼴로 찢어져버린 스크린이 더욱 가득히 요괴스런 흰빛을 내뿜고 있었고, 그러자 사람들은 무대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층에 가 있는 사람들은 함부로 물건들을 아래로 던지기 시작하였고, 무대에 올라간 사람들은 흡사 살인이라도 할 듯한 열성을 가지고 스크린을 찢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스크린은 수천 갈래로 조각이 나버리고 말았는데, 사람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천장에 말려 올라간 비로드 막(幕)을 잡아 내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그 막을 찢었으며, 무대를 부수기 시작하였다. 무대 뒤의 벽도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거기에도 누군가가 성 냥을 당겨서 불길이 붙기 시작했다.
그때 나 또한 무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미 막이며 스크린은 산산조각으로 찢겨져 있었으며, 무대의 마룻바닥도 엉 망으로 망가져 있었다. 나는 무대에서 객석을 향하여 서 있었다. 수많은 관객을 매혹시키던 아름다운 배우가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펴고 자신의 연기를 자랑하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때 내 눈에 비쳐진 광경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는 뚜렷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보다는 밝은 쪽이 더욱 광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아래층이고 이층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마치 원시인들과도 같이 깩깩 고함을 지르며 제멋대로 날뛰고 있었다. 여기저기 불길이 번지기 시작하는 곳에 마치 이 세계에 종말이 다가왔다는 것처럼 이상한 냄새를 피우며 연기가 퍼져가고 있었다. 우당탕우당탕 소리가 겹쳐 올라, 무자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하면, 무조건 만세를 부르며 절규하는 자들도 있었다. 나는 마룻바닥에 주저앉아서, 점점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를 맡고 있었다.
아마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불만스러워할 때 막연히 느끼는 그러한 방심상태일는지도 모른다.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무질서에로의 해방상태. 이런 본능이야말로 최루탄을 맞으면서도 애써 진행시켜갔고 대열을 만들어갔던 데모의 다른 한쪽 면이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데모의 바깥쪽에는 법률적인 것, 도덕적인 것, 종교적인 것, 심지어는 신화적인 것이 이를 지켜주고 있을 것이나, 데모의 그 안쪽에는 이런 도취, 이런 공동 무의식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었다. 오류에 빠진 질서를 파괴하여, 인간을 속박시키던 것들을 풀어버리고, 구차한 사회생활의 규범과 말 못할 슬픔과 부정부패에 대한 울분을 훌훌 떨구어버리고 나서, 하나의 당돌한 무질서상태를 만드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만간에 극장을 몽땅 태우고 말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어느덧 불길은 심상치 않은 세력으로 번져가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흥분은 더욱 가세되어 있었다.
그러자 출입구 쪽으로부터 한 떼의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장내에서 무턱대고 때려 부수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서움과 울분과 두려움을 교묘하게 섞고 있었다. 그들이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데모대들이 지르던 고함과는 그 여운이 달랐다. 그들은 저 사회인이 가지는 냉정한 눈초리로 사방을 훑어보며 “아아아―”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불을 지르지 마라. 불을 지르지 마라” 하고 그들은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알고 보니 그들은 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불을 지르면 삽시간에 퍼져서 이 동네는 잿더미가 되어버릴 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필사적인 노력으로 데모대의 홍분을 어떤 차원에서 막아보려고 달려온 것이었다. 하지만 데모대들은 그들의 고함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개새끼들아” 하고 그들은 일제히 외쳤다. “불을 지르지 마라.” 그들 중에서 뚱뚱한 중년 부인이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여자의 높은, 째지는 듯한 음성은 살벌하게 극장 안을 울려놓고 있었다. 그러다 그 여자는 그만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데모대들
은 계속해서 불을 지르고 있는 중이었으며, 파괴 행동은 또한 그대로 계속되고 있었다.
주민들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불이 번지기 시작하는 곳으로 달라붙었다. 성난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불길을 짓밟았다. 거기에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 데모대들은 어떤 본능적인 느낌으로 이들을 적수로 간주하여 달려들 태세를 취했다. 주민들은 또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그들의 재산을 보호하려 하였다. 그것은 마치 혼란의 세계를 맞이한 두 가지 계층의 사람군(群)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불길이 어느 정도 잦아들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일제히 합창을 하듯이 말하기 시작했다.
“불을 지르지 마라. 그러면 이 동네가 타버린다.”
그러나 주민들의 말은 아직 데모대에게는 설득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었다. 마치 그들은 주민들이 떠드는 소리 또한 ‘부정선거 다시 하라’는 따위의 구호처럼 듣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장내에는 전등불이 켜졌다. 누군가 스위치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어둠은 물러나고, 대낮과도 같이 환해졌다. 사람들은 놀라서 천장을 쳐다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더욱더욱 놀라버렸다. 그들은 과연 어느 곳에 서 있는 것일까? 그들은 극장 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해파리와 조개껍질들이 잔뜩 깔린 바닷가에라도 와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마치 그들의 흥분을 믿지 못해 하는 것 같았다. “여러분” 하고 파자마 바람의 장년 사내가 말했다.
“여러분 불을 지르지 마시오, 그러면 이 동네가 불바다가 되어버린다 말요.”
그 사내의 말소리는 자세히 들린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비록 놀라서 정신을 차렸지만, 다음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다시 주변의 물건들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저 이층, 영사실에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어떤 녀석들은 이 극장 안에 있는 물건들을 훔치기 위하여 광분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자신의 육체가 깨어진, 텅 비어버린 무대 위에 포복하는 자세로 엎드려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나는 반만큼 일어나 앉으려다 말고 다시 엎드려져 있었다. 너덜거리는 막(幕)이며, 찢어진 하얀 스크린은 주변에서 나를 감싸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파괴된 극장의 무대에서 단독 주연배우로서 어처구니없는 연기라도 하고 있는 꼴이었다. 그것은 언젠가 읽은 적이 있는 이차대전 때의 어떤 극장 광경을 상기시켜주었다. 철저하게 파괴되어버려서, 거의 다 피난을 가버리고 만 텅 빈 도시에 남아 있는 약간의 사람들은 이미 태반이 폭격을 맞아 파괴된 극장 안에서 관중이 없는 연극놀이를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러한 연극놀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절망 가운데에서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었다.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은 왕왕 어떤 연극의 연기자에 비유되기는 하지만, 극장 파괴라는 이 놀음에 있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저 냉혹한 도취, 사회와 역사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왜곡된 광장(廣場), 또는 완성된 무질서 상태는 어떻게 제지를 받아야 할 것인가. 위정자들은, 그들의 협소한 현실감각에 의해서, 고달픈 광범위한 현실을 이해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의 무의식의 영역에 위치하는 무거운 분노를 떨구어내지 않는 한 견딜 수 없었을 것이었다. 더욱이 정치적인 현상이 모든 다른 현상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게 마련인 후진국 사회에서, 그 정치가 잘못되어 있다면 여타의 모든 것이 엉망이라는 사실에는 이의가 없다. 사람들은 그 정치의 개선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부면의 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 것처럼 생각하여 데모를 벌인 것이나 아닌가? 그 데모는 궁극적으로 퍼져나가 이와 같은 광란의 도취에까지 이른 것이 아니던가? 어느 결엔가 전등은 다시 나가버리고 말았으며, 찌꺼기만 남은 불더미와, 사람들이 피우고 있는 담뱃불이 마치 밤의 대지에 얼른거리는 도깨비불 같았다.
“군인들이 달려오고 있어” 하고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계엄사의 군인들이 오고 있다” 하고 누군가가 그 말을 받았다. 그러자 데모대들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난 것 같았다. “임화수는 도망가버리고 없다”라고 그들은 말하면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흡사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쳤다가 밀려나가는 것과 흡사한 형국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부순 의자며, 방음벽을 왕그랭 땡그랭 차면서 나가버렸다. 파도는 거센 힘으로 밀려와 상륙하여 거친 흔적을 남긴 뒤에는, 순식간에 깨끗이 물러가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까 장내에는 나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정적이 찾아왔다. 왁자지껄하던 소리는 차츰차츰 멀어지더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공기는 여태까지의 혼란스러웠던 회전에서 마치 죽음의 세계를 맞이한 듯이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하도 고요했으므로, 나는 그 고요하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그것은 나를 무섭게 만들었으며, 고독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대의 가운데에 자빠져서 숨을 죽이고, 과연 이것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의심했다. 나는 전혀 꼼짝할 수가 없었고 오늘 밤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감감하게 몽롱해져와서, 내가 과연 죽은 것이나 아닌가 생각하였다. 나는 비어버린 객석의 그 무거운 집념에 도저히 혼자 견뎌낼 자신을 잃었다. 심하게 몰아닥치던 폭풍우가 지나가버리고 엉뚱한 기슭에 난파하여 과연 그곳이 죽음의 섬인지나 아닌지 의심이 들 때의 그 곤혹한 의문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군인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전혀 꼼짝하지 않았다. 방금이라도 그들에게 발각되어, 비참한 몰골로 사살되어버리고 말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군인들은 플래시를 비추었다. 한 줄기의 광선은 파괴된 극장의 내부를 처참하게 드러내 보였다. 군인들은 플래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플래시는 바루 내 몸뚱아리를 핥고 있었다. 나는 군인들이 나를 발견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군인들은 플래시를 이동시켰고, 나는 간신히 어둠 속에 매장될 수가 있었다. 군인들이 '밥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개똥 같은 새끼들” 하고 군인 중의 하나가 욕을 했다. 그 목소리는 지독한 혐오감과, 무질서에의 분노를 담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나라는 어찌될 것인가? 모두들 빠방 쏴버려야 돼” 하고 다른 군인 하나가 절망적인 어조로 개탄했다. 둔중한 구두 발자국 소리는 계속해서 울려 퍼졌고, 그들의 개탄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그들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더럭 염증이 나버렸는지 바깥으로 나갔다.
이제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군인들은 파괴된 극장의 주변을 유령처럼 끈질기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플래시는 간단없이 이쪽저쪽을 비추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군인 중의 하나가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거기에서 총소리가 한 번 났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가 하더니, 아래층에서부터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이 새끼 넌 무어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 살려주십시오” 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으로 끌고 들어가.” 다른 목소리가 이렇게 받았다. 이층의 출입구가 열리더니 서너 명의 군인들이 민간인 청년 하나를 끌고 들어왔다. 그리고 다른 군인 하나는 커다란 푸대자루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래 너는, 이런 혼란통에서도 물건을 홈치는 거야? 개새끼” 하고 푸대자루를 든 군인이 말했다. 알고 보니 민간인 청년은 구내매점의 물건을 쌓아둔 곳에 들어가 물건을 훔친 모양이었다. 캐러멜 등속, 빵, 과자, 껌, 사이다, 쥬스가 쏟아져나왔다. 포로가 된 민간인 청년은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있었다. 군인들은 그를 한가운데 놔두고 나서 성급하게 빵과 캐러멜 같은 것을 먹기 시작했다.
“제기랄, 그럴듯하군. 여기서 파티나 열자” 하고 그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그들은 부서진 나무판자를 바닥에 깔았으며, 적당히 주저앉아서는 한결 기분이 풀렸다는 듯이 잡담을 나누며 데모대들을 욕하고 있었다. 그러자 조금 뒤에 이 극장의 관리인인 듯싶은 사내가 한 명 들어왔다. 그 사내는 거의 사십이 가까워 보였다. 그 사내는 군인들에 게 설설 기면서 데모대에 관해 욕설을 퍼부었다.
이제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군인들은 유령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무대에는 나 혼자밖에는 없었고, 주변은 삭막할 만치 괴괴하였다. 나는 절실히 담배가 한 대 피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는 담배를 피울 수는 없었다. 배때기를 바닥에 깔고 앉아서 나는 이 무서운 밤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나는 아득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아픔과 괴로움, 그리고 의욕만 가지고 뛰어들게 된 우리의 이러한 현실 참여에서, 우리가 일종의 보상처럼 받게 되는, 이 세상의 잔학한 진상을 생각하고 있었다. 파괴된 공간, 정지된 시간이라고 어떤 시인은 말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생각할 능력과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크낙한 고통의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나는 깨닫고 있었다.
과연 이 밤은 지나갈 것인가? 사람들이 아픔을 느끼며 희구해 마지않았던 새날은 찾아올 것인가? 능히 무질서를 수용하며 그것을 승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질서는 찾아올 것인가? “희망을 말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도적놈들이다”라고 어떤 시인이 쓴 말은 과연 정확한 것인가? 1950년대에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것을 통하여 잔학한 무질서를 익혔었다. 그리고 1960년대로 넘어가는 이해에는 한국에 있어서 또 하나의 크낙한 변혁이 오고 있었다. 이 변혁을 정치적인 의미로만 해석 해버리기 이전에, 사람들은 그들이 어째서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인가? 화석 (化石)과도 같은 질서―마치 죽어가는 나비를 대(臺)에 고정시켜놓은 나비 채집가의 핀과도 같은 질서를 파괴하였을 때, 사람들은 이를 능히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볼기를 맞고 있는 그러한 사람의 자세로서 객석 위의 넓은 공간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다란 어둠의 장막이 거기에 깔려 있었다. 어둠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 형태도 포착할 수 없었다. 어둠은 마치 안개인 양 몽릉하기만 했다. 그 몽롱한 어둠 속에 미래가 서려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둠 속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그 희부연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차츰차츰 아침이 되어가고 있었다. 추웠다. 가슴속은 텅 비었으며 목이 탔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심해지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둠이 물러나자 나의 육신을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희미한 박명에 나의 몸뚱이는 드러나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군인들은 나를 발견하리라. 나는 소리를 내지 않으며, 비어 있는 무대를 벗어나서 객석으로 내려왔다. 아침이 찾아온 극장의 내부는 더욱 처참하게 보였다. 아침은 지나간 밤의 광포했음을 너무도 선명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새날의 출발은 비참한 상처에서부터 비롯되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의 번창했던 극장은 여지없이 망가져버리고, 그 파괴된 폐허에서 새날은 우뚝 그 밝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부서진 객석을 서서히 포복해 나갔다. 몸은 비록 무겁고 정신은 혼미했으나, 절실한 아픔과 함께 어떤 밝은 빛깔이 보여오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가 확실히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파괴된 극장과 함께 과거의 시간이 무너져 내려앉았다. 지난 십 년의 시간이 파괴당했다. 과거의 극장은 부서져버렸으나 과연 새로운 극장, 새로운 무대는 어떻게 등장하려는 것인가?
두 명의 군인을 빼놓고는 그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낭하로 나왔을 적에 나는 두 명의 민간인을 만났다. 아마 그들도 파괴된 극장의 어느 구석엔가에 나처럼 숨어서 저 소란의 밤을 뜬눈을 보냈으리라.
그중 한 사람은 팔에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다만 고통의 그늘이 엿보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살그머니 극장 바깥으로 기어 나와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대가하여 그 아침을 얻은 것이었다. 바로 그날 4월 26일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진 날이었으며 20세기로 들어온 이래 한국에 있어서 가장 긴 하루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날 너무도 피곤하여 바깥에 나가지 않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우리가 잠에서 깨어났을 적에는 확실히 이 세계는 뒤바뀌어 있었다. 어떤 시인의 말마따나 좁은 골목길에까지 치평선이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아마 사람들은 일종으 시민혁명이라고짜지 생각되는 그들의 승일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았다고 믿었을 것이며, 그것이 어찌하여 고귀한 것인지를 마음 터놓고 얘기하였을 것이다. 일방통행적인 질서의 함몰된 세계를, 마치 저 평화극장을 부수듯 잔인하게 부숴버림으로 인해서, 그들이 몰고 온 고귀한 무질서가, 미래에 있어서는 고귀한 자유, 고귀한 행복, 고귀한 가치로 축조 건설되리라고 몇 번이고 강조해서 생각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날의 흥분을 얼마든지 과대평가해보는 것처럼 유쾌한 일은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그 타종(打鐘)의 울림을 새로운 세대였던 우리가 거느리고 나타낼 수 있었음은 그 얼마나 행복하며 영광되며 축복스러웠던 것인지? 그러나 우리는 얼마 안 가서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한순간의 흥분을 너무 과대평가하여 기억하는 것의 무의미함”을 어느덧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그리하녀 우리가 힘들여 끌어올렸던 그 무질서의 위대한 형식이 역사성 속의 미아처럼 다만 한순간의 고립에 불과하고 말았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여전히 의연히 버티고 있음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그날 밤에 우리가 이룩하였던 그 놀라운 긴장감의 괴리를 부정하고 모든 변혁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물론 우리는 결코 속아넘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혁명은 의연히 게속 진행중임을 도리어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생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우리의 시련이 도리어 그때로부터 출발되고 있었던 듯한 느낌으로……
『월간중앙』 5호(1968. 8); 『낯선 거리』 (다남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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