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로애락이 담긴 음식, 치킨 맛집 멋집
치킨은 누가 뭐래도 국민 간식이다. 때론 한 끼 식사로, 때론 술안주로 변신하기도 한다.
어른들은 ‘치맥’, 아이들은 ‘치콜’ 한 마디면 어느새 멘탈이 무장해제된다.
▲ 국민간식 치킨 아침을 깨우는 동물은 닭이다. 동이 틀 때면 요란하기 짝이 없다.
사방팔방에서 외쳐대는 “꼬끼오” 소리는 “아침이네, 일어나야지” 하는 애인의 이불 속 달콤한 속삭임이 아니다.
“빨리 밭 갈러 나가란 말이야” 하는 악처의 악다구니다.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다.
치킨은 잘 튀겨진 튀김옷의 바삭거림, 그 속에서 뜨겁게 드러내는 하얀 속살이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을 닮았다.
‘이제 봄이야, 밖으로 나가자’는 유혹이자 보챔이다. 그래서 인지 3월에 접어들면 집 안에 틀어박혀 배달시켜 먹던 치킨을 밖으로 나가 먹는 횟수가 슬금슬금 늘어난다. 초·중·고교는 물론 대학가의 졸업식이나 입학식 뒤풀이 메뉴로, 연두색 잔디 위의 소풍 간식으로 야구장 안주거리로 활개를 친다. 거리 곳곳에 닭 튀기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 역시 버틸 재간이 없다. 뒷다리 하나 들고 “와그작” 한 입 씹어줘야 한다.
치킨의 원조는 ‘명동영양센터’의 전기구이통닭
치킨은 우리 사회에서 음식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역사는 비록 반세기 정도에 그치고 있지만 그 안에 우리의 어제와 오늘이 보인다.
국내 치킨의 원조는 ‘명동영양센터’의 전기구이통닭이다. 1960년 명동 한복판에 기묘한 닭고기집이 들어섰다. 발가벗은 생닭 여러 마리를 긴 꼬챙이에 끼워 빙글빙글 돌려 구웠다. 시간이 흐르면 하얀 껍질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해갔다. 유리창 너머 전기오븐 속 풍경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기름이 쪽 빠진 살코기와 새콤달콤한 하얀 깍두기. 생전 처음 먹어보는 것이지만 둘이 제대로 어울렸다. 대도시 중심가에 속속 ‘영양센터’가 들어섰다. ‘전기구이’란 얘기를 들으면 잠자던 아이가 벌떡 일어날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전기구이통닭의 등장은 ‘치킨시대’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물을 붓고 끓여 양을 늘려 나눠 먹는 ‘닭’이 아니라 통째로 불에 구워 뜯어 먹는 ‘치킨’이 된 것이다.
프라이드치킨에 이은 매콤달콤 양념치킨의 등장
1970년 말 ‘림스치킨’이 국내 최초의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등장하면서 닭 조각 튀김이 급속히 퍼졌다. ‘OB비어’ 등 생맥주 체인점에서도 닭 조각 튀김을 취급하면서 프라이드치킨은 맥주 안주의 대명사가 됐다. 닭튀김을 치킨으로 부르기 시작한 건 미국계 대형 프랜차이즈 브랜드 ‘KFC’가 서울에 진출한 1984년부터다. 태평양을 건너온 치킨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국내 치킨 브랜드도 잇따라 생겨나면서 프라이드치킨은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는 국민 메뉴가 됐다.
한국어로 귀화한 치킨은 양복 위에 한복을 겹쳐 입는 신메뉴로 변신한다. 새빨간 양념을 온몸에 바른 ‘양념치킨’이다. 고추장, 마늘, 물엿 등을 넣는 매콤 달콤한 소스에 튀긴 닭 조각을 버무린 것으로, 1982년 대전에서 출발한 ‘페리카나’에서 처음 내놓았다고 한다. 이후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까지 가세하면서 프라이드치킨을 밀어낼 기세로 ‘반반(프라이드치킨 반, 양념치킨 반)’이란 말까지 생겨났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TV 앞에 앉아 스포츠 경기를 볼 때면 으레 치킨을 배달시키게 됐다. 손가락을 쪽쪽 빨아가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했다.
치킨의 변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1990년대 말부터는 ‘찜닭’과 ‘불닭’이 혜성처럼 나타난다. 안동의 재래시장 골목에서 팔던 찜닭이 서울 대학로에 먼저 상륙한다. 안동찜닭은 닭과 함께 당면, 청양고추 등을 넣고 간장소스에 볶은 요리다. 양이 넉넉해 지갑이 얇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인기를 누렸다. 그 뒤를 이은 입안에 불이 난 것처럼 매운 불닭. 2002년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오르며 응원단 붉은악마의 물결이 온 나라를 뒤덮었을 때 불닭도 신바람이 났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몇 년 뒤 조용히 사그라졌다. 찜닭과 불닭을 통해 모처럼 일던 ‘닭의 부활’ 기운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2008년엔 웰빙 바람을 타고 튀김이 아닌 구운 치킨이 출시된다. 몸에 나쁜 트랜스지방의 부담이 덜하고, 칼로리도 상대적으로 낮다고 열심히 선전했지만 프라이드치킨의 아성을 넘기엔 역부족이다. 최근엔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일으킨 ‘통큰치킨’까지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세기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늘 서민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눈 치킨. 그 변신과 발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유지상이 꼽은 치킨 맛집 '베스트 8'
▲ 명동영양센타
1960년 서울 명동에 처음 문을 연 전기구 이통닭집. 기름기가 쪽 빠진 쫄깃하면서 도 담백한 속살과 바삭하면서도 느끼하지 않는 닭 껍질로 인기를 끌며 전기구이통닭 을 국민 별식으로 끌어올렸다. 닭을 1시간 정도 전기오븐에서 구운 뒤 테이블에 내기 전 기름에 한 번 더 튀겨서 내는 게 맛내기 비결이다. 반 마리에 모닝빵과 샐러드 등 으로 꾸민 런치스페셜이 있다.
메뉴 통닭 한 마리: 1만4500원, 런치스페셜: 9000원
문의 02-776-2015
주소 서울시 중구 명동2길 52
▲ 반포치킨
전기오븐에서 기름을 쫙 뺀 치킨에 특제 마늘소스를 올려주는 ‘전기 구이 마늘치킨’이 인기 메뉴다. 알싸한 마늘 향이 자칫 느끼할 수 있 는 닭고기의 뒷맛을 잡아준다. 닭을 전기오븐에 넣기 전에 다진 마 늘 한 숟가락을 닭 속에 넣어 살점 깊숙한 곳에도 마늘 맛이 배도록 했다. 몇 년 새 골뱅이 무침 등 맥주 안주 메뉴가 많이 늘었다.
메뉴 전기구이 마늘치킨 1만6000원, 골뱅이무침 1만5000원
문의 02-599-2825
주소 서울시 서초구 신반포로 56-7
▲ 맛나숯불바비큐치킨
튀기지 않고 굽는 치킨이다. 오후 2시가 되면 직원들이 출근해 숯불을 피우고 닭고기를 통째로 굽기 시작한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 초벌구이 닭 바비큐 가 산더미처럼 숯불화로 앞에 쌓인다. 인근 회사원들이 퇴근길에 들러 생맥주 와 함께 깔끔하게 해치운다. 기름지지 않은 숯불 향이 가득 밴 치킨 고기 맛과 매콤한 양념 맛이 매력적이다.
메뉴 숯불바비큐 양념치킨 1만8000원
문의 02-755-1508
주소 서울시 중구 서소문로 132-1
▲ 양재닭집
치킨이란 메뉴 딱 한 가지만 있는 곳. 시장 건물 지하에 있어 허름하지만 가격과 양을 따져볼 때 만족도가 가장 높다. 짭조름한 튀김옷에 기름이 적당히 배어나오는 투박한 맛이 기분 좋게 다가온다. 오후 10시가 넘어 서까지 2차, 3차 손님들이 줄을 잇고 있어 맛보기 쉽지 않다.
메뉴 치킨 1만3000원
문의 02-572-1741
주소 서울시 서초구 남부순환로356길 15
▲ 계열사
다른 곳에 비해 튀김옷이 바삭거리고 짭 짤하다. 치킨만 먹기엔 부담스럽다. 맥 주나 음료를 부르는 맛이다. 속살은 부드 러우면서도 씹는 맛이 있다. 큼직하게 썬 감자튀김과 함께 소쿠리에 담아낸다. 감 자튀김 덕에 추가 주문을 안 해도 배가 든 든하다. 부암동의 명물로 자리 잡아 주말 엔 문 앞에서 대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메뉴 프라이드치킨 2만원
문의 02-391-3566
주소 서울시 종로구 백석동길 7
▲ 새로나호프
1977년부터 청담동의 변화를 쭉 지켜봐온 터줏대감 치킨집. 2000년 카레를 접목시킨 퓨전통닭을 내기 시작한 게 손님들 에게 제대로 먹혔다. 닭고기를 재울 때부터 카레를 뿌리고 튀 긴 치킨을 테이블에 낼 때도 카레가루를 듬뿍 뿌려서 낸다. 중독성 강한 카레 맛 때문에 자주 찾을 수밖에 없다는 단골손 님들의 볼멘소리도 들린다.
메뉴 카레치킨 1만8000원
문의 02-544-2802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522
▲ 신호등장작구이
뱃속에 찹쌀, 인삼, 대추, 마늘, 은행 등을 품은 닭 한 마리가 뜨거운 철판에 납작 엎드려 나온다. 삼계탕처럼 뱃속에 식재료를 채운 닭을 쇠꼬챙이에 끼워 기름을 빼며 장작불에 익힌 뒤, 손님상에 내오기 직 전 뜨겁게 달군 철판에 올려낸 것이다. 마지막에 철판의 누룽지를 긁 어먹는 재미가 있다. 식사용 가락국수도 별미다.
메뉴 닭장작구이 1만5000원, 가락국수 3000원
문의 031-382-4536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293
▲ 종가집
‘발가벗은 프라이드치킨’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튀김옷이 얇다. 일본의 ‘가라 아게’라는 닭튀김과 흡사하다. 겉은 아삭하다 싶을 정도로 바싹 튀겼지만 속 은 부드럽고 연하다. 퇴근 시간에는 직장인들이 몰리기 때문에 자리 잡는 일 이 쉽지 않다. 직장인이 아니라면 문 여는 시간(오후 4시)에 맞춰 일찌감치 나서는 게 답이다.
메뉴 프라이드치킨 1만5000원
문의 02-822-1898
주소 서울시 동작구 여의대방로24길 10-4
(2015년 3월 14일 헬스조선)
글.. 유지상
음식전문기자 출신의 음식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해태제과와 한국소비자원에서 근무한 현장 중심 전문가다. 한국음식평론가협회 회장, <DMZ 10경 10미> 심사위원장, <2012 ZAGAT 서울레스토랑> 선정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경기대학교 외식조리학과 겸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유지상의 테마 맛집> <내 남자의 앞치마>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