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남짓 시골집 어머니 곁에서 지내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영혼에는 심란한 바람이 불어쌓는다. 늙으신 어머니를 또 시골집에다 홀로 유폐시킨다는 죄책감, 60대 중반의 삶이, 앞으로 몇 년을 더 사실지 모를 노모와 함께하지 못한 채 빈자소인(貧者小人)의 삶을 이어간다는 자괴감, 잠시일지라도 어머니와 나누는 이별의 정한(情恨)들이 소소리바람처럼 불어대는 것이다.
어머니와 헤어질 때 나는 어머니가 마루에서 배웅하기를 원한다. 마당을 걸어 나와, 대문 밖에서 떠나는 아들의 뒤태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몹시 아프기 때문이다. 초라한 아들의 뒷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이기 싫어서도 그러하다. 시골집에서 어머니와 헤어질 때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애옥살이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어머니가 90세가 되던 해, 어머니를 더는 시골에서 홀로 지내게 할 수 없어서 두 집 살림을 하기로 하였다. 출판사의 출간 업무가 대부분 컴퓨터로 이루어지니 외장하드 두어 개만 챙겨 시골로 내려오면 시골집에서 일해도 별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그리 결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치 모든 일이 내가 서울에만 있어야 이루어질듯, 서울 사무실 자리를 비우면 금세 회사가 기울기라도 할 듯 불안해하며 선뜻 결정하지 못한 채 시골 어머니를 향해 까치발을 세우며 마음만 동동거렸다. 어머니 혼자 시내버스를 타고 병원을 다닐 만큼 건강이 우선하다지만, 서울의 나는, 90세라는 어머니의 나이가 늘 불안할 뿐이었다.
결국, 모험하는 심정으로 한 달이면 서울과 시골에서 절반씩 보내기로 한 것이다.
비바람이 90년 세월을 스치면 바위도 상할 터, 지난한 세월을 헤쳐온 육신이야 오죽할까. 어머니는 여기저기 통증을 달고 사신다.
시골에서 안주하는 생활이 익숙지 못하던 처음에는 내가 어머니를 챙기는 일은 쥐코밥상일 뿐이었다. 아침과 점심을 때맞춰 간편히 차리는 일, 식사 후 설거지하는 일, 저녁 후 어머니랑 도란도란 꽃차를 마시는 일이 전부였다. 시골 생활의 발씨가 익으면 좀 더 나을 성싶었지만, 온종일 이어지던 어머니의 침묵을 짬짬이 해체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스러웠다.
예전에는 내가 시골로 내려와 있을 때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자식이 아까워 물 한 방울 묻히게 하고 싶지 않다던 어머니가, 이제는 아들의 설거지를 으레 받아들인다. 어머니와 지내며 끼니마다 설거지를 해보니, 우리나라 어머니와 아내의 손들은 우리 삶의 기초를 이루는 기둥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어머니를 위해 서울과 시골 이중생활을 결정할 때, 사실 나는 어머니와 아기자기한 행복을 꿈꾸었다. 늙으신 어머니와 60대의 아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시골에서 머물기 시작할 때 어머니의 좌골신경통의 통증이 시작되었고, 어머니를 모시고 시내 병원을 찾아다니기 일쑤였다. 뇌종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 형을 간호하다가 얻은 통증과 신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어머니와 생활하며 발적을 하였다. 밤이면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신 채 내뱉는 어머니의 신음이 잠결의 귓가를 맴돌았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의 방문을 열어보면, 어머니가 침대에 앉아 있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무너질 가슴도 없는 가슴이 또 휘우청거렸다.
이제 어머니와 나의 시골 일상이 익숙하다. 아무리 모자지간이라 해도 오랜 세월 각자의 공간에서 살았던 터라, 함께 지내는 데는 서로 적응 기간이 필요하였었다. 특히 이번 MBN 휴먼다큐 사노라면 658회를 찍으면서 어머니와 나는 예전보다 훨씬 돈독해졌다. 방송을 통해 나를 향한 어머니의 가슴 뭉클한 속내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의 삶이 익숙해질수록 당신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어서 해드림출판사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어, 회사 걱정 없이 어머니와 1년 365일 함께할 날을 소망하지만, 세상사 어디 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질 때가 있던가.
어머니와 내가 출연한 MBN 사노라면 658회 해드림출판사
https://youtu.be/C-30bsWaYbo?si=hpZMcumY7w6Kk7_V
https://youtu.be/nS99xbvasSw?si=VIzVcbg7tA81LQ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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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bn.co.kr/vod/programContents/previewlist/564/2801/13702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