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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정서가 전국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일식집 오찬'과 '사케논란' 때문에 곤혹을 치르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명단) 제제에 대한 당 비상대책회의를 끝낸 직후 당직자들과 일식당으로 직행, 일본술 '사케'를 곁들여 오찬을 즐긴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한·일 갈등이 경제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는 시점에 일식당에 갔으니 야당은 한 건 잡았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민들이 일본맥주도 찾지 않는데 집권당 대표가 사케를 마셨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백색국가 제외 직후 사케를 마신 민주당은 사케가 목에 넘어가나"라며 비꼬았다.
이에대해 민주당은 ‘악의적 선동’이라고 반발하고 서울대 교수 복귀후 페북질을 재개한 조국은 "한일 경제전쟁중이지만 우리는 한국에 있는 일식집에 갈 수 있다"며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원하는 것은 전국의 일식집에 다 망하는 것이냐"고 논쟁에 가세했다.
교수 조국의 말은 틀리지 않는다. 국내 일식당은 아사히맥주와 유니클로 매장과는 다르다. 이름만 일식당이지 자영업자들이 주로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재료로 일본스타일의 음식을 내놓을 뿐이다. 반일정서에 일식당과 일본식 라멘집에 손님이 끊겨 타격을 받는다면 이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내고 차기 법무부장관이 유력한 폴리페서 조국이라면 이런 말을 해선 안된다. 비판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
정치인에겐 어떤 메뉴에 따라 정치적인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와 요리법 하나하나에도 숨은 의미가 들어있다.
2017년 가을,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취임 후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메뉴도 화제를 모았다. 청와대는 트럼프 환영만찬에 '구황작물소반'과 '독도새우'를 올렸다. 청와대가 하고 싶은 얘기가 메뉴에 담겨있다, 반면 일본은 육식을 선호하는 트럼프 취향을 고려해 오찬엔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간 햄버거, 만찬엔 와규 스테이크를 대접했다. 백 마디 말보다 더한 식탁이다. 현재의 한미, 미일 관계는 당시의 식탁이 웅변해주고 있다.
민주당이 벼랑에 몰린 일식당을 도와주고 싶다면 별도 정치적인 이벤트를 만들어 매상을 올려줘야 했다. 화이트리스트 지정으로 온 국민이 '일본 스트레스'가 극심한 이때 굳이 집권당 대표와 당직자가 일식당에서 ‘스시’를 안주로 '사케'든 '청주'든 일본식 술을 마시며 일본을 성토한 것은 정치적인 감각도, 개념도 없는 한심한 짓이다. 반대의 경우 일본 자민당이 비상대책회의를 끝내고 '한식당'에서 ‘갈비’와 ‘신선로’를 곁들여 ‘안동소주’를 마시며 식사를 했다면 한국 언론이 어떻게 반응했을까.
민주당 의원들은 시간날때 중국의 저명한 정치학자 '차이쯔 창'이 지은 '정치인의 식탁'을 읽어보길 권한다. 그는 역사적 인물 33인을 세계사 식탁에 초대해 음식 하나가 나라의 정책, 정치논리를 담아내고, 은밀하고 미묘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정치는 의회나 정부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식탁 위에도 엄연히 정치가 존재한다." 이해찬과 조국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출처/네이버블로그<박상준 인사이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