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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德用圓滿
佛子야 如來가 不爲菩薩하야 說諸如來究竟涅槃하시며 亦不爲彼하야 示現其事하나니 何以故오 爲欲令見一切如來가 常住其前하며 於一念中에 見過去未來一切諸佛의 色相圓滿을 皆如現在호대 亦不起二不二想이니 何以故오 菩薩摩訶薩이 永離一切諸想着故니라
“불자여, 여래는 보살을 위하여 모든 여래의 구경열반을 말하지 아니하며, 또한 저들에게 그 일을 나타내지도 아니하느니라. 왜냐하면 일체 여래가 그 앞에 항상 있음을 보게 하고자하며, 잠깐 동안에 과거와 미래의 일체 모든 부처님의 모습이 원만하여 모두 현재와 같음을 보게 하며, 또한 둘이라 하고 둘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도 일으키지 아니하느니라.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은 일체 모든 생각에 집착함을 아주 떠난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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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용원만(德用圓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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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야
여래(如來)가 : 여래는
불위보살(不爲菩薩)하야 :보살을 위하여
설제여래구경열반(說諸如來究竟涅槃)하시며 : 제여래의 구경열반을 설한다. 그래도 부처님은 보살을 위해서 완벽한 열반을 말하지 아니하며, 여래는 말하지 아니하는데 그 근기가 되는 사람이 자기가 ‘열반을 어떻게 어떻게 알아들어야 된다’라고 하는 이야기와 똑같다.
‘49재 일곱 번 지내야 되지요?’
‘예 일곱, 그래야죠.’
저는 일곱 번 지내라는 소리를 안 했는데 자기가 일곱 번 지내기로 해놓고는 ‘일곱 번 지내야 된다’고 한다는 말이다.
역불위피(亦不爲彼)하야 : 그들에게 또한
시현기사(示現其事)하나니 : 그 이야기를 나타내지지도 않는다.
전등록에 보면 부처님께서 열반회상에서 자마금신(紫磨金身) 가슴을 풀어헤치시고 가슴의 만자를 어루만지시면서 ‘내가 조금 있으면 열반에 들 것인데, 내가 열반에 들었다 하면 너희는 내 제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서 또 만자를 만지면서 ‘너희는 내가 열반에 안 들었다고 해도 더 내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럼 어찌해야 되는가?
선어록에는 그렇게 기록해 놓았다.
부처님께서 열반회상에서 자마금신 금색 몸을 만지시면서 ‘열반에 들었다고 해도 내 제자가 아니고 열반에 안 들었다고 해도 내 제자가 아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본래 없는 것을 가지고 ‘토끼뿔 잘 갈아서 화살촉 만드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거북이털 야무지게 짜면 거위털보다 뜨뜻하다니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본래 없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하면서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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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 하이고
위욕령견일체여래(爲欲令見一切如來)가 : 일체여래께서
상주기전(常住其前)하며 : 항상 그 앞에 있다. 모든 여래가 그 앞에 항상 있음을 보게 한다.
그러니까 ‘나무영산불멸(南無靈山不滅)’이잖은가.
왜 영산불멸인가? ‘불생이었기 때문에 불멸이었구나’ 이렇게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대승찬(大乘讚)이나 십사과송(十四科頌)에는 이렇게 해놨다.
‘대도(大道)는 상재목전(常在目前)이라, 본래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우리 눈앞에 있다.’
저는 그것을 간단하게 현전일념(現前一念)이라고 말한다.
해인사 법보단에는 뭐라고 써 있는가?
‘원각도량(圓覺道場)이 하처(何處)냐? 부처님의 원각도량, 정각도량, 깨달은 도량이 어디냐?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니라. 지금 생멸법을 온전하게 집착없이 살아내는 것, 현전에 한발 디딘 것이 바로 극락이다’ 그렇게 해놓았다.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니라.
위욕영견일체여래께서 상주기전하야
어일념중(於一念中)에 : 일념 중에 항상 그 앞에 있음을 보게 하려면 잠깐 동안에도
견과거미래일체제불(見過去未來一切諸佛)의 : 과거나 미래 모든 부처님의
색상원만(色相圓滿)을 : 모습, 색상이 원만하여
개여현재(皆如現在)호대 : 현재와 똑같다.
없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허공이 옛날 허공 다르고 여기 허공 저기 허공 안 다르다. 동서고금 빈부귀천 남녀노소가 똑같다.
이 말을 여기에서 동일법성(同一法性)이라는 말로 써 놓았다.그래서 아미타불이 몇 분이냐 해놓고 나중에 아미타불 염불할 때 뭐라고 하는가? ‘동명동호(同名同號) 대자대비(大慈大悲)’ 동명동호라고 하지 않는가. ‘니 아미타불도 아미타불, 내 아미타불도 아미타불 동명동호라’ 이것이 화엄경에 고대로 나온다.
모든 이름이 누구다? 보현이다. 개동보현(皆同普賢)이다. 이름이 똑같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전부 똑같다.
역불기이불이상(亦不起二不二想)이니 : 또한 둘이라고 하거나 둘이 아니라고 하거나, 이(二)나 불이(不二)라고 하는 생각조차 일으키지 아니하니
하이고(何以故)오 : 어떻게 하느냐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영리일체제상착고(永離一切諸想着故)니라 : 영원히 떠나버렸다. 무엇을? 일체제상착고니라. 일체 모든 생각의 집착을 아주 떠나 버렸기 때문에 선악 시비가 하나도 없다.
육조스님은 뭐라고 했는가?
첫 법문에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하라. 정당임마시(正當恁麼時)에 도명상좌(道明上座)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여하시(如何是)냐?’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마음이 아니다. 선악은 생각이지 마음이 절대 아니다. 선한 것도 마음이 아니고 악한 것도 마음이 아니고 그것은 심소다.
마음에서 밀려나 한참 저 뒤에 와서 찌그러져 있는 선악시비는 마음의 파편이고 생각의 쪼가리일 뿐이다. 그것을 가지고 마음이라고 하면 안 된다.
(3)出沒常寂
佛子야 諸佛如來가 爲令衆生으로 生欣樂故로 出現於世하시며 欲令衆生으로 生戀慕故로 示現涅槃하사대 而實如來는 無有出世며 亦無涅槃이니라 何以故오如來가常住淸淨法界하사 隨衆生心하야 示現涅槃이니라
“불자여, 모든 부처님 여래는 중생들로 하여금 기쁨과 즐거움을 내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사모함을 내게 하려고 열반을 보이지마는 실로 여래는 세상에 출현함도 없고 또한 열반함도 없느니라. 왜냐하면 여래는 청정한 법계에 항상 계시면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열반을 나타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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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몰상적(出沒常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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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제불여래(諸佛如來)가 : 제불여래가
위령중생(爲令衆生)으로 :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생흔락고(生欣樂故)로 : 즐거움을, 기쁨을 내게 하려고
출현어세(出現於世)하시며 : 출현하며,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해서 출현하시는 것이다.
욕령중생(欲令衆生)으로 : 중생으로 하여금
생연모고(生戀慕故)로 : 불법에 대해서 사모하는 마음을 내게 하시라고
시현열반(示現涅槃)하사대 : 시현열반을, ‘아이고 부처님 돌아가셔서 안타깝다’ 그런 마음으로 또 열반을 보이시고
이실여래(而實如來)는 : 실제로 여래는, 참으로 여래는
무유출세(無有出世)며 : 무유출세라. 이 세상에 출세한 바가 없다. 그러니까
역무열반(亦無涅槃)이니라 : 또 역무열반이라. 열반에 드신 바도 없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셨다, 열반에 들었다’ 하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다.
‘아이구 그러면 우에 해야 되노, 와 이리 헷갈리게 해놨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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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 왜냐하면
여래(如來)가 : 여래께서는
상주청정법계(常住淸淨法界)하사 : 상주청정법계하다.
우리가 염불 대회참을 할 때 ‘상주법신(常住法身) ’이라고 얼마나 많이 하는가. 대회참 뿐만 아니라 칠정례를 할 때도 ‘상주일체(常住一切) 누구누구’ 하지 않는가.
예불문이 정확하게 우리 본심, 정각의 자리이고, 열반의 자리다. 여래가 상주청정법계하야 여래의 청정 법계에 항상 계시면서
수중생심(隨衆生心)하야 :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시현열반(示現涅槃)이니라 : 열반을 보일 뿐이라.
거기에 줄 긋겠다. ‘수중생심(隨衆生心) 시현열반(示現涅槃)’이지, 열반을 보이고 싶어서 열반한 것이 아니다.
구매자도 없는데 상품 만들어 봤자 아무 의미 없잖은가.
고객의 입맛에 맞춤형으로 부처님이 설법하시고 열반을 보이시고 하는 것이다.
(4) 如來의 智日
佛子야 譬如日出에 普照世間하야 於一切淨水器中에 影無不現하야 普徧衆處호대 而無來往하며 或一器破에 便不現影하나니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彼影不現이 爲日咎不아 答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但由器壞라 非日有咎니이다
佛子야 如來智日도 亦復如是하사 普現法界에 無前無後하야 一切衆生淨心器中에 佛無不現하나니 心器常淨이면 常見佛身이어니와 若心濁器破하면 則不得見이니라
“불자여, 비유컨대 해가 떠서 세간에 두루 비추되 모든 깨끗한 물이 있는 그릇에는 그림자가 다 나타나서 여러 곳에 두루 하지만 오거나 가는 일이 없으며, 혹 한 그릇이라도 깨지면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느니라.
“불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음이 해의 탓이겠느냐?” 대답해 말하되 “아닙니다. 그릇이 깨진 탓이요, 해의 허물은 아닙니다.”
불자여, 여래의 지혜의 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법계에 두루 나타나되 먼저도 없고 뒤도 없으며, 모든 중생의 깨끗한 마음그릇에는 부처님이 나타나지 않는 데가 없느니라. 마음 그릇이 항상 깨끗하면 부처님의 몸을 항상 보고, 만약 마음이 흐리고 그릇이 깨지면 보지 못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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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如來)의 지일(智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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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일출(譬如日出)에 : 비여일출에, 드디어 나온다.
보조세간(普照世間)하야 : 세간을 널리 비춰서
어일체정수기중(於一切淨水器中)에 : 일체 깨끗한 물그릇 가운데에
영무불현(影無不現)하야 : 그 해가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 없다. 물 담아놓으면 다 나타난다.
보변중처(普徧衆處)호대 : 보변중처라. 그릇에 물 담아놓은 데마다 해가 다 나오지만
이무래왕(而無來往)하며 : 이무래왕이라. 거기에 줄을 긋겠다.
오거나 가는 일이 없다. 저 해가 오고 감이 없지만 다 있기는 있다. 해가 안 왔다고 할 수는 없다. 물빛처럼, 따뜻한 데 해가 오는데
혹일기파(或一器破)에 : 혹 그러나 그릇이 한번 깨지고 나면
변불현영(便不現影)하나니 : 변불현영이라. 깨진 그릇이라고 하는 것은 번뇌에 찌들어서 파기해서 아주 지저분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그릇에는 해가 안 나타난다.
그래서 범망경 같은 것을 설할 때 뭐라고 하는가?
파기불수(破器不水)라, 이렇게 얘기한다. 파기 깨진 그릇에는 선정의 물이 담기지 않기 때문에, 선정의 물이 없으면 우리 마음 본심의 지혜 광명 자비가 나타나지 않는다.
파기불수라고 한다. 깨진 그릇에는 물이 담기지 않는다.
변불현영이라 그래서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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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여
어여의운하(於汝意云何)오 : 어찌 생각하느냐?
피영불현(彼影不現)이 : 저 해그림자가, 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위일구부(爲日咎不)아 : 깨진 그릇의 허물이냐? 태양의 허물이냐?
답언(答言)하사대 :답하기를
불야(不也)니이다 : 불야니이다
단유기괴(但由器壞)라 : 단유기괴라. 단지 그 그릇이 깨져 물이 안 담기는 것이 허물이지
비일유구(非日有咎)니이다 : ‘태양한테는 허물이 없습니다’
부처님이 여기서 화엄경을 실컷 가르쳐 주는데 자기가 화엄경을 알아듣지 못하면 지 잘못인가, 화엄경 잘못인가?
그래놓고 우리는 죽어도 그저 고집스러워서 ‘내 어리석다’ 소리 안 하고 ‘화엄경 어렵다’ 그런다.
‘화엄경 골치 아프고 어렵다’고 하지 ‘내가 어리석다’ 소리를 하는 사람은 잘 못봤다.
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지일(如來智日)도 : 여래의 지혜 태양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사 : 이와 같아서
보현법계(普現法界)에 : 법계에 다 나타나고, 어디든지 눈코 입귀에 부처님의 태양이, 여래의 태양이 다 걸려있건만, 그러니까 무엇인가?
염도염궁무념처(念到念窮無念處)이면 육문상방자금광(六門常放紫金光)이라, 잡념이 다 끊어져서 분별심이 끊어지면 눈에 거슬리는 것도 없고 마음에 부대끼는 것도 없다. 귀에 무슨 욕이 들려도 다 소화가 되고 이해가 간다. 그게 안 되면 염도염궁무념처가 아니고 염도염궁유념처에 간 것이다. 그러면 별 생각이 다 든다. 안 미운 놈도 갑자기 미워진다. 보현법계에
무전무후(無前無後)하야 : 무전무후하야 법계에 먼저도 없고 뒤에도 없고 그렇다.
법고경명(法鼓競鳴)에 하선하후(何先何後)요, 뭐가 먼저고 뭐가 뒤에 있는가? 원래 앞뒤가 없는데, 허공이 앞뒤가 있다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일체중생정심기중(一切衆生淨心器中)에 :일체중생의 깨끗한 마음 그릇 가운데는, 그 법기에서는
불무불현(佛無不現)하나니 : 부처님이 무불현이라.
그것도 적어 놓으면 좋겠다.
정심기중에 불무불현이라.
이거만 하나만 해도 한짐이다.
심기상정(心器常淨)이면: : 마음 그릇이 항상 깨끗한 사람은
상견불신(常見佛身)이어니와 : 항상 부처님을 보고, 신심이 난다. 그러니까
약심탁기파(若心濁器破)하면 : 마음이 탁해서 그릇이 흐리고 깨지면
즉부득견(則不得見)이니라 : 즉부득견이나, 부처님의 몸을 못 본다. 부처님이 안 보이는 것은 내가 탁해서 그렇다.
(5) 無生無滅
佛子야 若有衆生이 應以涅槃으로 而得度者면如來가則爲示現涅槃이나 而實如來는 無生無歿이며 無有滅度니라
“불자여, 만약 어떤 중생이 응당 열반으로써 제도를 얻는다면 여래께서 곧 열반을 보이거니와, 실로 여래는 나는 일도 없고 죽는 일도 없고 열반하는 일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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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무멸(無生無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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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생무멸, 생사도 없고, 열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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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약유중생(若有衆生)이 : 그 어떤 중생이
응이열반(應以涅槃)으로 : 열반으로써
이득도자(而得度者)면 : 제도할 사람이 있으면
여래(如來)가 :여래께서는
즉위시현열반(則爲示現涅槃)이나 : 바로 열반을 보이지만
이실여래(而實如來)는 : 그러나 실제로 참으로 여래께서는
무생무몰(無生無歿)이며 : 무생무몰이다. 생멸이 없다.
무유멸도(無有滅度)니라 : 무유멸도니라. 중생을 열반으로 제도하는, 멸도하는 일도 없느니라.
(6) 緣起緣滅
佛子야 譬如火大가 於一切世間에 能爲火事하나니 或時一處에 其火息滅하면 於意云何오 豈一切世間火가 皆滅耶아 答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佛子야 如來應正等覺도 亦復如是하야 於一切世界에 施作佛事하나니 或於一世界에 能事已畢하고 示入涅槃하면 豈一切世界諸如來가 悉皆滅度리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應如是知如來應正等覺의大般涅槃이니라
“불자여, 비유컨대 큰 불이 모든 세간에서 불붙는 일을 하다가 혹 한 곳에서 불이 꺼진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찌 여러 세간의 불이 모두 꺼지겠는가?” 대답하여 말하되 “아닙니다.”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세계에서 불사(佛事)를 지으시다가 혹 한 세계에서 할 일을 마치면 열반에 드심을 보이면 어찌 모든 세계의 모든 여래가 모두 열반함이겠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여래 응공 정등각의 크게 열반에 드심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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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연멸(緣起緣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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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화대(譬如火大)가 : 마치 저 큰 불이, 여화대가, 우리가 사대라고 하지 않는가? 지대 풍대 수대 화대 하면 단단한 것부터 지대가 단단하고 그다음 말캉한 것이 물이고 보이기는 하는데 기체에 가까운 가벼운 것이 불이고 눈에도 안 보이는데 촉감만 있는 것이 풍대다.
거기에서 조금 더 나가면 공대(空大)가 있다.
지수화풍공 그보다 조금 더 한발짝 나가면 견대(見大)라고 있다. 그보다 한 발짝 더 나가면 식대(識大)가 있다.
그 식대 우리 의식 너머는 심대(心大) 진짜 심대가 있다.
마음, 본심이 제일 뒤에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지수화풍 오온이 개공한 걸 느끼고 분별심을 끝내고 나서 미세한 허공부터 느끼고 견대를 제대로 보고 듣는 걸 아는 것을 제대로 알아차려서 식대로 넘어가고 공무변처(空無邊處) 식무변처(識無邊處) 이렇게 하지 않는가.
나중에 심대(心大) 마음이 웅장한 걸 알아차리면 견성성불 부처님이라고 이야기한다.
대(大)자는 각성스님께서 전에 우리 어릴 때 강의해주시기를 ‘대자는 그게 다 커서 대라고 한다, 무진장 크다’라고 말씀하셨었다.
지대는 끝도 없잖은가. 풍대 그것은 한도 끝도 없다.
풍대 지대 수대 생각해 보면 너무 크지 않은가.
상대적으로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큰 것이 대(大)다.
여기 화대라고 하는 말은 그냥 어디든지 다 처박혀 있으니까 대다. 요즘은 현대 과학적으로는 원소라고 한다. 비여화대가
어일체세간(於一切世間)에 : 모든 세간에
능위화사(能爲火事)하나니 : 능위화사라 불붙는 일을 하다가
혹시일처(或時一處)에 :혹시 일처에서
기화식멸(其火息滅)하면 : 그 불이 꺼졌다고 하면
어의운하(於意云何)오 : 어떻게 생각하느냐.
기일체세간화(豈一切世間火)가 : 일체 세간의 불도
개멸야(皆滅耶)아 : 모두 다 꺼졌느냐?
답언(答言)하사대 : 답언하되
불야(不也)니이다 : 불야니이다. ‘아닙니다’ 한 중생이 망했다 해서 이 마음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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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도 : 여래 응 정등각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이와 같아서
어일체세계(於一切世界)에 : 일체세간에
시작불사(施作佛事)하나니 : 불사를 다 짓지만
우리 축원할 때 하는 시작불사(施作佛事)가 화엄경 여기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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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어일세계(或於一世界)에 : 혹은 한 세계에
능사이필(能事已畢)하고 : 일을 마치면
시입열반(示入涅槃)하면 : 열반에 드심을 보이거니와, 부처님이 한번 꺼졌다 해서 진짜 부처님의 불신이 다 꺼졌느냐? 그렇지 않다. 광대무변하다. 그래 중생한테 살짝 보여주는 것이다.
기일체세계제여래(豈一切世界諸如來)가 : 일체 세계의 모든 여래가
실개멸도(悉皆滅度)리오 : 모두 열반한 것은 아니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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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보살마하살이
응여시지여래응정등각(應如是知如來應正等覺)의 : 응당히 이와 같이 여래 응 정등각의
대반열반(大般涅槃)이니라 : 대반열반을 알아야 된다.
불자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여래 응공 정등각의 크게 열반에 드심을 알아야 된다.
(7)有無俱現
復次佛子야 譬如幻師가 善明幻術하야 以幻術力으로 於三千大千世界一切國土城邑聚落에 示現幻身하야 以幻力持하야 經劫而住나 然於餘處에 幻事已訖하고 隱身不現하면 佛子야 於汝意云何오 彼大幻師가 豈於一處에 隱身不現으로 便一切處에 皆隱滅耶아 答言하사대 不也니이다
佛子야 如來應正等覺도 亦復如是하야 善知無量智慧方便種種幻術하사 於一切法界에 普現其身하사 持令常住하야 盡未來際호대 或於一處에 隨衆生心하야 所作事訖하고 示現涅槃이면 豈以一處에 示入涅槃으로 便謂一切에 悉皆滅度리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應如是知如來應正等覺의大般涅槃이니라
“또 불자여, 비유컨대 요술쟁이가 요술하는 방법을 잘 알고서 요술의 힘으로 삼천대천세계의 여러 국토와 도시와 마을에서 환영과 같은 몸을 나타낼 적에 요술의 힘으로 여러 겁을 머물렀으나 그러나 다른 데서는 요술하는 일을 이미 마치고 몸을 숨기고 나타내지 않느니라.
“불자여,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요술쟁이가 어찌 한 곳에서 몸을 감춘다고 해서 여러 곳에서도 모두 없어지겠는가?” 대답하여 말하되, “아닙니다.”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지혜 방편인 갖가지 요술로 모든 법계에 몸을 널리 나타내어 항상 머물러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하다가도 혹 한 곳에서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하는 일이 끝나고 열반함을 나타내 보인다면 어찌 한 곳에서 열반에 듦을 보인다고 해서 곧 말하기를 일체 처에서 모두 없어진다 하겠는가.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여래 응공 정등각의 크게 열반에 드심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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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구현(有無俱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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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또다시 불자야
비여환사(譬如幻師)가 : 비유컨대 요술쟁이가
선명환술(善明幻術)하야 : 요술할 방법을 분명하게 잘 알아서
이환술력(以幻術力)으로 :이 환술력으로 환술, 요술의 힘으로써
어삼천대천세계일체국토성읍취락(於三千大千世界一切國土城邑聚落)에 : 삼천대천 세계 일체 국토 성읍 취락에다가
시현환신(示現幻身)하야 : 그 헛것의 몸을 나타낼 적에
이환력지(以幻力持)하야 : 이 요술의 세력으로 버티면서
경겁이주(經劫而住)나 : 여러 겁을 보내지만 그러나
연어여처(然於餘處)에 : 나머지 곳에서
환사이흘(幻事已訖)하고 : 환사가 이미 마치면
은신불현(隱身不現)하면 : 몸을 숨기고 나타내지 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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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어여의운하(於汝意云何)오 : 너의 뜻에 어떠하냐.
피대환사(彼大幻師)가 : 저 대환사가
기어일처(豈於一處)에 : 어찌 한 곳에서
은신불현(隱身不現)으로 :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써 문득
변일체처(便一切處)에 : 일체처에서
개은멸야(皆隱滅耶)아 : 다시 몸을 숨겨 모두 없어지겠느냐?
답언(答言)하사대 : 대답하여 말하되
불야(不也)니이다 : 아닙니다. 불야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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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도 : 여래 응 정등각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선지무량지혜방편종종환술(善知無量智慧方便種種幻術)하사 :선지(善知) 잘 안다. 무량한 지혜 방편의 종종환술을 잘 알아서
어일체법계(於一切法界)에 : 모든 일체 법계에
보현기신(普現其身)하사 : 두루 그 몸을 나타내어서
지령상주(持令常住)하야 : 항상 머물러서
진미래제(盡未來際)호대 : 오는 세월이 다 끝나도록 하다가도
혹어일처(或於一處)에 : 혹 일처에서
수중생심(隨衆生心)하야 :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소작사흘(所作事訖)하고 : 짓는 바 일을 마치고, 내 일을 마쳤다 싶으면
시현열반(示現涅槃)이면 : 열반을 보이시지만
기이일처(豈以一處)에 : 한 곳에서, 어찌 일처에서
시입열반(示入涅槃)으로 : 열반을 보이신 것으로써
변위일체(便謂一切)에 : 일체처의 모든 온갖 곳에서
실개멸도(悉皆滅度)리오 : 모든 멸도를 했다, 열반해 없어진다고 할 수 있겠느냐.
*
불자(佛子)야 : 불자여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응여시지여응정등각(應如是知如來應正等覺)의 : 응당히 이와 같이 여래 응 정등각의
대반열반(大般涅槃)이니라 : 대반열반을 알아야 하느니라.
(8) 大用無盡
復次佛子야 如來應正等覺이 示涅槃時에 入不動三昧하나니 入此三昧已하야는 於一一身에 各放無量百千億那由他大光明하며 一一光明에 各出阿僧祗蓮華하며 一一蓮華에 各有不可說妙寶華蘂하며 一一華蘂에 有獅子座하며 一一座上에 皆有如來가 結跏趺坐어든
其佛身數가 正與一切衆生數等하야 皆具上妙功德莊嚴하니 從本願力之所生起라 若有衆生이 善根熟者면 見佛身已에 則皆受化나 然彼佛身은 盡未來際토록 究竟安住하사 隨宜化度一切衆生하야 未曾失時니라
“또 불자여, 여래 응공 정등각이 열반함을 보일 적에는 부동(不動)삼매에 드나니 이 삼매에 들어가고 나서는 낱낱 몸에서 각각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 큰 광명을 놓고, 낱낱 광명마다 각각 아승지 연꽃을 내고 낱낱 연꽃에 각각 말할 수 없는 묘한 보배꽃술이 있으며, 낱낱 꽃술에 사자좌가 있고, 낱낱 사자좌 위에 모두 여래께서 가부좌하고 앉으셨느니라.
그 부처님 몸의 수효가 일체중생의 수효와 같으며, 모두 가장 묘한 공덕과 장엄을 갖추었으니, 본래의 원력으로부터 생긴 것이니라. 만약 어떤 착한 뿌리가 성숙한 중생이 부처님의 몸을 보면 교화를 받거니와 저 부처님의 몸은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구경까지 편안히 머물면서 마땅한 대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되 한 번도 때를 놓치지 않느니라.”
*
대용무진(大用無盡)
*
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부차불자야
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이 : 여래 응 정등각이
시반열반시(示涅槃時)에 : 열반을 보일 때에
입부동삼매(入不動三昧)하나니 :부동삼매에 들어가나니
입차삼매이(入此三昧已)하야는 : 이러한 삼매에 드시고는
어일일신(於一一身)에 : 낱낱 몸에서
각방무량백천억나유타대광명(各放無量百千億那由他大光明)하며 : 각각 한량없는 백천 나유타 광명의 큰 광명을 놓고
일일광명(一一光明)에 : 낱낱 광명마다
각출아승지연화(各出阿僧祗蓮華)하며 : 수많은 아승지의 숫자만큼 많은 연꽃을 출생시키고
일일연화(一一蓮華)에 : 낱낱 연꽃마다, 아승지 만큼 많은 연꽃 위에다가
각유불가설묘보화예(各有不可說妙寶華蘂)하며 : 각기 불가설
묘한 보배 꽃술이 있으며
일일화예(一一華蘂)에 : 일일 꽃술에는
유사자좌(有獅子座)하며 : 사자좌가 다 있다. 굉장하다.
일일좌상(一一座上)에 : 사자좌 위에는
개유여래(皆有如來)가 : 여래께서
결가부좌(結跏趺坐)어든 : 가부좌하고 계신다. 그러면 아승지숫자 몇 배의 부처님이 사자좌 위에 앉아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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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불신수(其佛身數)가 :그 불신의 수가
정여일체중생수등(正與一切衆生數等)하야 : 일체중생 수와 같다. 요것도 아주 중요한 대목이다.
불신의 수는 무조건 중생 수와 같기 때문에 등신이다.
개구상묘공덕장엄(皆具上妙功德莊嚴)하니 : 개구상묘공덕장엄하니, 이런 것만 좀 잘 이해하고 알아도 사람 사는 것이 팍팍하지 않다.
살다가도 ‘아이고 니도 부처고 나도 부처인데, 니 많이 떼먹어라 이놈아, 니는 떼먹는 부처다’ 이러면서 잘 넘어갈 수 있다. 모두 가장 묘한 공덕과 장엄을 갖추었으니
종본원력지소생기(從本願力之所生起)라 :본래의 원력으로부터 생긴 것이니라. 부처님은 전부 다 원력으로부터 생긴다.
약유중생(若有衆生)이 : 모든 중생이나
선근숙자(善根熟者)면 : 선근이 성숙해서 푹 익은 사람들은
견불신이(見佛身已)에 : 부처님의 몸을 보고는
즉개수화(則皆受化)나 : 교화를 받지만, 아주 땡감 같은 사람은, 땡감 가지고 홍시 만들려면 욕본다. 안 된다.
엔간히 좀 익어야 그래도 홍시가 되니까.
연피불신(然彼佛身)은 : 저 부처님의 보는 몸은
진미래제(盡未來際)토록 : 오는 세월이 끝나도록
구경안주(究竟安住)하사 : 필경까지 편안히 머물러서
수의화도일체중생(隨宜化度一切衆生)하야 : 마땅한 대로 따라서 교화해서 제도한다. 일체중생을 제도해서
미증실시(未曾失時)니라 : 일찍이 한 번도 때를 놓친 적이 없고 딱딱 맞췄다.
(9) 二邊遠離
佛子야 如來身者는 無有方處하야 非實非虛로대 但以諸佛의 本誓願力으로 衆生堪度면 則便出現하나니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如來應正等覺의 大般涅槃이니라
“불자여, 여래의 몸은 방소(方所)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참된 것도 아니고 허망한 것도 아니니, 다만 모든 부처님의 본래 서원한 힘으로써 중생이 제도를 받을 만하면 나타나는 것이니라.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여래 응공 정등각의 크게 열반에 드심을 알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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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원리(二邊遠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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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신자(如來身者)는 : 여래의 몸이라고 하는 것은
무유방처(無有方處)하야 :무유방처라. 여래의 몸은 동서남북 그 어디에도 없다. 여래의 몸은 방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옆에 써놓으면 되겠다. 본무동서남북이라, 본래 동서남북이 없다.
비실비허(非實非虛)로대 : 참된 것도 아니고 허망한 것도 아니되
단이제불(但以諸佛)의 : 다만 모든 부처님의
본서원력(本誓願力)으로 : 본서원력으로
중생감도(衆生堪度)면 : 중생이 제도를 받을만한, 제도를 감당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가르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제가 학인들 강의하려다가 강의 안 하는 것은 강의해버리면 터져 죽어버릴 것 같아서 강의 안 한다.
다른 것만 살살 꼬셔서 공부시키고
즉변출현(則便出現)하나니 : 즉변출현이라. 감당할만하면 부처님이 출현해 나온다. 아무 때나 나오시는 것이 아니고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응여시지여래응정등각(應如是知如來應正等覺)의 : 응 여시지 여래 응 정등각의
대반열반(大般涅槃)이니라 : 대반열반이니라.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여래 응공 정등각이 크게 열반에 드심을 알아야 하느니라.
(10) 無住
佛子야 如來가 住於無量無礙한 究竟法界와 虛空界와 眞如法性과 無生無滅과 及以實際언마는 爲諸衆生하사 隨時示現호대 本願持故로 無有休息하야 不捨一切衆生과 一切刹과 一切法이니라
“불자여, 여래는 한량없고 걸림 없는 구경의 법계와 허공계와 진여법성과 나는 일도 없고 멸하는 일도 없음과 아울러 진실한 경계에 머물지만 중생들을 위하여 때를 따라 나타나고, 본래의 서원으로 쉬지 아니하며, 모든 중생과 모든 세계와 모든 법을 버리지 않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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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無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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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如來)가 : 여래께서
주어무량무애(住於無量無礙)한 : 한량없고 걸림이 없는
구경법계(究竟法界)와 : 완벽한 구경의 법계와
허공계(虛空界)와 : 허공계와,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법계라 하고 생각이 푹 꺼져 버린 것을 허공계라 한다. 법계와 허공계에 머무시나니
진여법성(眞如法性)과 : 진여법성은
무생무멸(無生無滅)과 : 무생무멸이며, 우리 마음의 본심, 본래면목은 불생불멸이며
급이실제(及以實際)언마는 : 그것이 아울러 진실한 경계이지만
위제중생(爲諸衆生)하사 : 위제중생하야, 부처님의 입장에서는 불생불멸인데 중생을 위해서 할 수 없이 유생유멸로 간다는 말씀이다.
위제중생하여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라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
수시시현(隨時示現)호대 : 수시로 시현하야, 때를 따라서 나타나고
본원지고(本願持故)로 : 부처님 본래의 서원으로, 부처님 본원은 무엇인가? 당념본원(當念本願) 도중생(度衆生)이라, 화엄경 십지품에 나온다. 다 아시는 구절이다.
여수이멸번뇌화(汝雖已滅煩惱火)라도, 그대 이미 번뇌의 불이 꺼졌다 하더라도 세간혹염유치연(世間惑焰猶熾然)이라, 세간의 중생들은 치열한 번뇌의 불꽃 속에 뜨겁게 살지 않느냐, 마땅히 네가 화엄수행자라면 생각해 봐라. 당념본원 부처님의 본래 원력을 생각해서도 도중생이라 저 중생들을 제도해야 될 보살 수행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실사수인(悉使修因) 취해탈(趣解脫)이라, 그들로 하여금 전부 인(因)을 닦게 하라. 바라밀 행을 닦게 해서 취해탈이라. 해탈로 갈 수 있게 해줘야 된다, 이고득락(離苦得樂) 하도록 해줘야 된다. 이것이 화엄행자의 갈 길이다.
십지품에 그렇게 해놓았다.
이세간품에는 더 적나라하게 해놓았지만 그것은 생략하고 넘어간다. 본원지고로
무유휴식(無有休息)하야 : 무유휴식하야
불사일체중생(不捨一切衆生)과 : 버리지 않는다. 일체 중생과
일체찰(一切刹)과 : 일체 세계와
일체법(一切法)이니라 : 일체법, 일체중생과 일체찰과 일체법을 모두 버리지 않느니라.
(11) 如來涅槃의 重頌
爾時에 普賢菩薩摩訶薩이 欲重明此義하사 而說頌言하사대
如日舒光照法界에 器壞水漏影隨滅인달하야
最勝智日亦如是하야 衆生無信見涅槃이로다
如火世間作火事에 於一城邑或時息하야
人中最勝徧法界하사 化事訖處示終盡이로다
幻師現身一切刹하야 能事畢處則便謝하나니
如來化訖亦復然하야 於餘國土常見佛이로다
佛有三昧名不動이라 化衆生訖入此定하야
一念身放無量光하사 光出蓮華華有佛호대
佛身無數等法界하니 有福衆生所能見이라
如是無數一一身에 壽命莊嚴皆具足이로다
如無生性佛出興이며 如無滅性佛涅槃이라
言辭譬喩悉皆斷이나 一切義成無與等이로다
그때에 보현보살마하살이 그 뜻을 거듭 밝히려고 게송을 설하였습니다.
태양에서 광명 펴서 법계 비추되
그릇 깨져 물이 새면 그림자 없듯
가장 훌륭한 지혜의 태양도 그와 같아서
중생이 믿음 없어 열반을 보도다.
불기운이 세간에서 불이 타다가
도시나 시골에서 혹시 꺼지듯
부처님이 법계에 두루 하시나
교화가 끝난 데서 열반을 보이도다.
요술쟁이가 모든 곳에 몸을 나타내다가
할 일이 끝난 곳에선 없어지나니
여래 교화 끝난 곳도 또한 그러하나
다른 데선 부처님을 항상 뵙도다.
부처님 삼매는 이름이 부동(不動)이라
중생교화 마치면 이 선정에 들어
순식간에 몸에서 한량없는 광명 놓으니
광명에는 연꽃 나고 연꽃에는 부처님 있어
부처님 몸 수없이 법계와 같거든
복이 있는 중생들은 능히 보나니
이와 같이 무수한 낱낱 몸에는
수명과 장엄을 모두 구족하도다.
나는 성품 없이 부처님 출현하시고
멸하는 성품 없이 부처님 열반하시어
말이나 비유들이 모두 끊어졌으나
온갖 이치 이루어 짝할 이 없도다.
*
여래열반(如來涅槃)의 중송(重頌)
*
이시(爾時)에 : 이시에
보현보살마하살(普賢菩薩摩訶薩)이 :보현보살이
욕중명차의(欲重明此義)하사 : 이 뜻을 거듭 펴시려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
여일서광조법계(如日舒光照法界)에 : 마치 해가 빛을 비춰서 법계에 환하게 비추되
기괴수루영수멸(器壞水漏影隨滅)인달하야 : 그 그릇이 깨져서 수루(水漏) 물이 찔찔 새면 영수멸이라.
물이 새면 그 해 그림자도 해도 물에 담겨 있때 해그림자도 사라지고 없듯이 지저분하게 살면 부처님, 불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승지일역여시(最勝智日亦如是)하야 : 가장 좋은 지혜의 태양에도 이와 같아서
중생무신견열반(衆生無信見涅槃)이로다 : 중생이 무신하면 중생이 믿음이 없으면, 중생이 믿음이 없어 열반을 보이고, 열반드실 것도 없는데 중생 때문에 할 수 없이 열반을 보이고 정각을 이루고, 그렇게 한다는 말씀이다.
*
여화세간작화사(如火世間作火事)에 : 화대가 세간에 불을 붙이다가
어일성읍혹시식(於一城邑或時息)하야 : 혹 도시나 시골에서 한 곳에 꺼지면
인중최승변법계(人中最勝徧法界)하사 : 부처님, 인중(人中)에 가장 수승하신 분이 법계에 두루 하시지만, 부처님께서 세상에 두루 하시지만
화사흘처시종진(化事訖處示終盡)이로다 : 부처님께서 불사를다 마친 곳에서 열반을 보이시고
*
환사현신일체찰(幻師現身一切刹)하야 : 요술쟁이가 모든 곳에 몸을 나투다가
능사필처즉변사(能事畢處則便謝)하나니 : 일이 다 없는 곳에서는 즉변사하나니 시들 사(謝)자다. 요술해놨던 그 몸이 딱 숨겨 버리나니
여래화흘역부연(如來化訖亦復然)하야 : 부처님께서 교화를 마치시면 또 그와 같아서
어여국토상견불(於餘國土常見佛)이로다 : 다른 데서는, 한쪽에는 부처님이 안 계시지만 다른 데는 늘 있다, 이 말씀이다.
*
불유삼매명부동(佛有三昧名不動)이라 : 부처님의 삼매 이름이 부동이라고 하는데
화중생흘입차정(化衆生訖入此定)하야 : 중생을 교화해서 마치고 입차정이라. 그 부동삼매에 부처님이 들어가시는데
일념신방무량광(一念身放無量光)하사 : 일념신방무량광이다. 그 몸에서 방광한다. 무량한 광명을 놓아
광출연화화유불(光出蓮華華有佛)호대 : 그 광명이 나와서 연꽃이 되고 화유불이라. 그 꽃에는 꽃술도 있고 사자좌도 있고 그 사자좌마다 부처님이 앉아 계셨다고 앞에서 말했다.
연꽃이 나오고 연꽃 위에는 부처님이 계시는데
*
불신무수등법계(佛身無數等法界)하니 : 불신이 무수 등법계라. 부처님의 몸은 수없이 법계와 똑같다. 등신(等身)이다.
유복중생소능견(有福衆生所能見)이라 : 유복중생은 복이 있는 중생은 능히 본다.
거기에 줄을 긋겠다. ‘유복중생이 소능견이라’ 복없는 중생이 부처님을 보려면 보이겠는가? 안 보인다. 유복중생이 소능견이요
여시무수일일신(如是無數一一身)에 : 여심무수일일신이라. 이와 같이 이렇게 수없이 낱낱 몸에는
수명장엄개구족(壽命莊嚴皆具足)이로다 : 목숨이나 장엄을 모두 구족해서
*
여무생성불출흥(如無生性佛出興)이며 : 나는 성품이 없듯이 무생성이다. 자성이 무생이라. 나는 것이 없듯이 불출흥이라. 그렇게 부처님께서 나시고, 부처님의 출흥은 어떤가? 무성으로 나고 무상으로 나고 무념으로 나고 불생불멸이다 이 말이다.
여무멸성불열반(如無滅性佛涅槃)이라 : 멸하는 성품이 없듯이 부처님 열반도 멸함없이 멸한다. 본래없다.
언사비유실개단(言辭譬喩悉皆斷)이나 : 말이나 비유들이 모두 끊어지나
일체의성무여등(一切義成無與等)이로다 : 일체 뜻은 성무여 등이다. 뜻은 무궁무진하고 말이나 표현이나 비유나 이런 것은 끊어질 때가 있지만, 부처님의 진심에 대해서 그 뜻은 제일이 되어 짝할 것이 없다. 말로 해도 무궁무진하게 끝없이
찰진신념가수지(刹塵信念可數知)
대해중수가음진(大海中水可飮盡)
허공가량풍가계(虛空可量風可繫)라도
무능진설불공덕(無能盡說佛功德)이라
그렇게 되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오늘은 진도를 많이 나갔다.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오래된 세계, 화장세계품을 법문하실 때
“내일은 제가 경주에 세미나가 있어서 한 이틀 있다가 올 계획입니다. 내일하고 모레까지네요. 노트북을 가지고 경주라고 하는 딴 곳에 가서 화엄법석을 마련하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가 되고 여러분들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12월 7일 유튜브 화엄법회가 끝나갈 즈음 큰스님께서 말씀하셔서 모두의 기대가 컸다. 전에 없이 각명스님께서도 전화를 하셔서 큰스님께서 세미나에 잘 다녀오셨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유튜브 방송 들을 줄 모른다고 하셨지 않느냐’고 여쭸더니 ‘연구 끝에 컴퓨터로 방송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다. 댓글로 인사를 쓰는 법은 아직 모른다고 하셨다.
다음날 어김없이 아침 8시에 유튜브 염화실TV로 화엄법회가 있었다.
황룡원 탑이 보이는 창을 배경으로 큰스님께서 방송을 하셨다. 함께 세미나에 참석하셨던 도반스님들이 속속 들어오셨고, 큰스님께서 덕담을 청하셨다. 그 부분을 녹취하여 정리한다.
경주 세미나, 도반스님들 인터뷰
-無比스님-
오늘은 보시다시피 여기 경주의 황룡원 앞에 있는 호텔에서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한 60여년 전에 해인사에서 아주 어려울 때 함께 동문수학 하신 스님들이 이번에는 16명이 왔는데 한 번씩 모여서 세미나를 합니다.
저는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운동삼아 이런 새로운 환경에 한번 적응해 보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오늘 방송을 준비한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몇 번 맞춰보고 이렇게 저렇게 해보고 이제 방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기술이 대단합니다. 정말 훌륭합니다.
어디 가나 우리가 다 연결이 돼 있는데, 그 연결돼 있는 것이, 우리가 접속만 하면 얼마든지 이렇게 잘 나타납니다.
*
무비스님 : 무관스님 이리로 와요. 우리 대한불교 조계종 청정율사 전계대화상 무관스님, 오늘은 공부보다도 스님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전계대화상 워낙 그 일을 잘하시기 때문에 이번에 또 전계대화상이 됐습니다. 무관스님 인사하십시오.
무관스님 : 무관입니다 해인사 살고 있고요. 해인사에도 부서가 많습니다만 저는 율원에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살아가는 동안에 누구나 다 본인에 대한 신념이 있어야 되고 그리고 그 신념이란 것은 불교에서는 신심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부지런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다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걸 근면이라고 하죠. 불교에서는 정진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신념과 근면 두 가지를 가지면 누구나 다 하고 싶은 일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부지런히 노력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무비스님 : 그다음에 금남스님, 극락선원에 조실로 계시고 법문 한 마디 여기서 하십시오.
금담스님 : 금담입니다. 저는 동진 출가로 부처님 도량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85해가 넘도록 날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법당에 나가서 부처님께 예경하고 정진하고 기도합니다.
이 몸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 법을 받들어서 다음 생에는 금강반야지혜를 얻어서 일체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원력을 세워서,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일곱시간씩 정진 수행하고 있습니다.
조계종 모든 불자들이 신심을 내어, 날마다 게으름 없이 열심히 정진 수행해서, 모두 다 부처님 가피를 입고 이고득락, 확철대오하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무비스님: 종호스님, 조실스님 이리와요. 간단하게 한 말씀 하시오. 이게 전세계로 다 나가니까 그리고 오래오래 여기 저장이 됩니다. 이 스님은 우리 모임에서 제일 연로하신 큰스님이신데 제주도에 계십니다. 제가 존경하는 스님이고요. 스님, 불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하십시오.
종호스님 : 불자님네들 귀의삼보하옵시고. 저는 일찍이 출가해서 지금 현재는 제주도 23교구 본사 조실로 있습니다. 오늘 길게 말할 수는 없고요. 우리 불자님네들은 근수청정하고 바라밀을 잘 닦으면서 항상 보리심을 잊지 마시고 정진하다 보면 모든 업장이 소멸되고, 일체묘행이 다 성취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사바세계에서는 중생으로 태어났지만 부처님에게 큰 인연을 갖고 금생에 사시다가 부처님 진리 잘 배우시고, 내생에는 반드시 아미타세계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무비스님 : 그다음에 혜성스님 우리 고향 스님인데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해서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스님입니다. 부산 온천장에 금강사라고 하는 좋은 아주 아름다운 절이 있는데 그 절 주지하시고 여기서 다도회라든지 아주 아름다운 좋은 활동을 많이 하시는 스님입니다. 스님 소개하고 좋은 말씀 좀 하시고 금강사도 선전하고 미국 백림사도 선전해주십시오. 오늘 메뉴가 아주 넘쳐난다.
혜성스님 : 고맙습니다. 화엄학의 천하대종장 화엄학의 무비큰스님을 모시고 이런 법석을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저희는 어릴 때 한 40년 전에 미국에 가서 오늘까지 미국에 한국 선불교를 전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포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부산 금강사에 와서 또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항시 우리 큰스님의 덕화로 정진하고 또 큰스님께 좋은 지도를 받으면서 이렇게 건강하게 잘하고 있습니다. 큰스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비스님 :감사합니다.
*
무비스님 : 일면스님, 스님은 좀더 길게 이야기하셔야 돼. 일부러도 나가는데. 스님 여기 미스박이라고 시애틀에 서래사 있잖아. 서래사 신도님이 여기 들어와 가지고 그 신도님이 일면스님 열반 소식을 댓글로 달아서 알게 됐어. 지금은 이런 세상이라. 그 일면스님하고 또 다른 일면스님 오셨는데 여기는 차원이 전혀 다른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이고 오랫동안 벌써 해왔습니다. 스님 인사하시고 말씀 좀 하세요.
일면스님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일면입니다. 평상시에 항상 마음에 존경하는 화엄 대종주 무비 큰스님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무비큰스님은 화엄경뿐만 아니고 한국불교에 살아계시는 아주 훌륭한 대학자이십니다.
저는 생명나눔실천본부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눔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생명을 함께 나눈다, 이런 뜻입니다. 그런데 살아계실 때 손가락을 잘라가는 것이 아니고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마음으로 생명을 나누든지 아니면 참 어려운 사람에게 다만 천원이라도 치료비를 보태주는 역할을 하고요. 또 사후 세계에 내가 만약에 이 세상 살다가 떠난다 그러면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건 각막입니다. 그래서 각막을 주고 떠나는 겁니다.우리 생명나눔에 회원은 한 25만 명이 되고요. 백혈병 알고 계시죠? 저는 의사가 아니어서 잘 모르기는 하지만 우리 몸 가운데 피를 만들어 낸다든가 하는 조직이 망가져 버린 것이 백혈병이라는 거예요. 백혈병에 걸린 분을 위해서 건강한 사람이 조혈모라는 세포를 이식해 주면 그분은 건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명나눔에서 1년에 한 오육십 명을 새 생명을 살려주고요. 환자 치료비는 한 2억에서 3억 정도를 모금해서 새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고 요즘 보면 ‘자살한다’ 이런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절에 가서 스님이나 그가 존경하는 분에게 상담도 하지만 우리 생명나눔에 전화하면 인생상담도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들이 항상 건강한 것이 최고입니다. 건강을 잘 지키시고 또 어려운 이에게 한 번만 눈길을 주시면 누군가 새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다시 한번 존경하는 무비대종사님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서 참 기쁩니다.
시청자 여러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무비스님 : 예 고맙습니다. 스님 이렇게 어렵게 모셔서 한 일이 분 동안 이렇게 간단하게 하는 건 너무 아쉽고 안타까운데 다음에 또 기회 있으면 출연해서 더 좋은 말씀하십시오. 스님만 해도 방송국 하나를 하고도 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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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 선용스님 이 스님은 인품이 매너하면 선용스님, 선용기심이라고 여기 우리 댓글 쓸 때마다 늘 선용기심 선용기심 올리잖아요. 이 스님이 선용기심입니다. 선용스님입니다 우리 아주 좋은 도반 어릴 때 해인사에서 공부 같이 한 스님입니다.
선용스님 : 해인사에서 왔습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무비큰스님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서 큰 영광입니다. 계묘년이 지나가고 새해 갑진년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묵은 때를 다 말끔히 치워 버리시고 새해에는 더 좋은 희망찬 한 해가 되시기를 부처님께 서원합니다.
우리 무비스님 우리나라의 국보이시고 세계의 보물이신 무비스님의 회상 인터넷 방송에 출연하게 되어 거듭거듭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불자 여러분 모두 복 많이 받으시고 필경에는 성불하십시오. 특히 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을 열심히 독송하시고 사경하셔서 마음먹은 모든 소망들이 이루어지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성불하십시오
무비스님 : 고맙습니다. 스님도 일이 분 출연하는 거 가지고 너무 아쉽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음 좋은 기회에 또 한번 출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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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 이 스님은 선운사 스님이신데 제가 아주 좋아하는 스님입니다. 마침 공양하고 올라오기에 모두 다 붙잡았습니다. 그런데 반은 도망가 버리고 반은 지금 남아 있는데 스님, 자기소개하고 덕담 한 말씀 하십시오.
선운사 법현스님 : 고맙습니다 저는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데 인터넷에 이렇게 출연하게 됐습니다. 다 성불하십시오. 저는 여기 큰스님들 모임에 제일 막내인데 어렸을 때 큰스님들 모시고 살면서 아주 꾸지람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심한다고 하는데 자꾸 뭔가가 일어나요. 그래서 뭔가 일어날 때는 다시 내려놓고 또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서 내가 왜 그런 경지에서 이렇게 마음이 일어났을까, 다시 한번 돌아다보고 다시는 내 나쁜 버릇이 일어나지 않게끔 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항상 내려놓는 마음을 연습합니다.
우리 다 같이 공부도 좋고, 다 좋지만 마음 내려놓는 것, 욕심을 내려놓고 여러가지 번뇌 망상이 일어나는데, 그런 일어나는 마음을 좀 쉬는 그것이 진정한 내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큰스님 대단히 고맙습니다.
무비스님: 감사합니다 이 스님은 법명을 소개 안했는데 법현스님, 법이 그대로 세상에 드러나기를 발원하는 법현스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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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 용덕스님 우리 고향스님, 나는 남산동이고 이 친구는 남산동 위에 내앞이라고 하는 동네에서 살았는데 출가하고 보니까 한 절에서 같이 공부하게 됐어요. 그런 인연입니다.
용덕스님 : 반갑습니다. 예, 무비스님 하고는 고향은 한 고향이지만 10대 때 해인사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쭉 유지합니다. 같은 도반이고 친구지만 늘 존경하고, 늘 그냥 우리 한국불교에서 보배입니다. 그 보배를 우리가 잘 간수하고 잘 받들어서 더욱더 빛나는 보석이 되기를 여러분들이 힘써 주시고, 여러분들이 아껴 주시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많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불하십시오.
무비스님 : 반갑습니다. 이 스님은 염불도 잘하고 얼굴도 잘났고 그래서 신도님들한테 얼마나 인기가 좋은지 말도 못해. 내가 같이 있으면 늘 배가 아픈 사람이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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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님 :그 다음에 선효스님 불러봐라. 선효스님은 제가 해인사에 가서 화엄법회 할 때 말씀드렸던 스님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 학인들 세 사람이 모여야 촛불을 켤 수 있었어요. 초동아리죠. 그 짧은 초 하나 켜는데 세 사람이 모여야 촛불을 켜놓고 경을 읽도록 규정을 해서 살던 시대입니다.
선효스님하고 같이 글을 읽다가 오후가 되어 배도 출출하고 해서 둘이 산책을 나가게 되는데 나가다가 그때는 홈통으로 해서 가야산 물이 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홈통을 통해서 물을 받아먹는 시절인데 나는 한 바가지 물을 퍼가지고서 배를 채웠어요. 그야말로 찬물 한 바가지 마시고 배를 채우던 시절입니다. 그래가지고 잔뜩 먹고 선효스님한테 권하니까 자기는 안먹는대, 왜 찬물을 먹냐고 그래요. 배고프면 찬물 먹지 뭘 먹느냐고 그랬더니, 고개를 딱 넘으면 우리 늘 산책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 가니까 마침 가을이라 고추가 잔뜩 열어가지고 붉은 고추가 꽉 달려 있어요. 근데 선효스님이 그 고추밭에 들어가더니 양손으로 고추를 막 따서 그냥 막 먹는 거예요. 양손으로 고추를 따가지고 이쪽 손에 있는 것 먹고 저쪽 손에 딴 것도 먹고 한 골을 지나가면서 사정없이 고추를 따서 그렇게 먹더라고요. 보니까 매워 보이는데 맵지도 않는지 아주 달다고 하면서, 아 이렇게 단 고추 이런 걸 먹어야지 왜 그 찬물 마시냐고, 나 보고 그렇게 말씀한 선효스님이 여기 왔는데 아까 들어왔는데 어디 가버리고 없네요. 여기 방송에 출연하라니까 안 했어요.
스님들도 방송출연하고 지금 다 가버렸는데 그 스님이 또 이번에 내가 아프다는 소리를 듣고 여기 부산에 구룡사라고 하는 절,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구룡사라고 하는 그 절에 계세요. 거기 신도들하고 왔는데 내가 병원에 있을 때 봉투를 하나 내놓는데 무려 오백만원이나 들어 있더라고요. 참 그래서 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 도반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중에 이런 스님도 있구나 하고. 여기 출연시키고 소개하고 내가 이야기할 게 많고 그랬는데 그 스님이 기어이 사양하고 당신 방으로 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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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효스님은 맨처음 무관스님이 인터뷰 하실 때 “무비스님 옛날에 백두산 천지 가는 사진 그것도 그대로 가지고 있잖아요 사실상 그걸 보여 줘야 돼. 나는 범어사 선방 나면서 그걸 스님한테 청했잖아요.” 하신 스님인 것 같았다. 백두산 천지에서 수영까지 하셨다는 그 사진들은 슬라이드로 구성해서 큰스님이 보여주셨다고 했다. 다음으로 큰스님은 화장세계품의 몇 구절을 더 읽어주시면서 법회를 마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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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되고 물들고 청정한
한량없는 모든 세계종이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일어나며
보살들의 힘으로 유지되도다.
중생들의 업력과 보살들의 원력에 따라서 사는 환경과 세계가 잡되고 물든 세계냐 아니면 청정한 세계냐 하는 것이 달라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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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그 사람 마음의 경계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누리고 사는 세계가 그렇게 달라집니다. 제가 도반들 좋아하고 또 오랫동안 인연이 있는 사람들 좋아하기 때문에 오늘 이렇게 많은 도반들을 소개했습니다.
평소에 한 20명 전후로 오는데 이번에 16명밖에 안 왔더라고요. 제일 적게 왔는데 30년 이상 세월이 경과한 모임인데도 그래도 이렇게 16명이나 되는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같이 공부했어도 못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한번도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늘 참석하는 사람도 있고 전부가 마음 씀씀이에 따라서 우리의 그 삶이 그렇게 펼쳐지는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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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엄법회에 동참하신 많은 분들 건강하시고 이러한 시간도 또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잘된 시간이다’ 말씀을 드립니다.
업력과 교화로 이루어진
이 아름다운 세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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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佛子야 如來身者는 無有方處하야 非實非虛로대 但以諸佛의 本誓願力으로 衆生堪度면 則便出現하나니 菩薩摩訶薩이 應如是知如來應正等覺의 大般涅槃이니라...고맙습니다 _()()()_
🙏🙏🙏
열반에 들어다(?)
고맙습니다
@연기의 도리와 인생을 알고자 감사합니다^^
대방광불화엄경 감사하여라 환희로워라 아름다워라 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근념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_()()()_
와 정말 진수성찬 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