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머리)
강진과 다산 정약용.
남도 답사 일번지라고 할 수 있는 강진은 북으로는 월출산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남쪽으로는
강진만의 갯벌은 물론 하천과 평야까지 담고있다.조선시대에 천문,건축,행정,정치등
어떤 분야에서든 정점에 서 있었던 르네상스 맨, 다산 정약용을 강진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정조대왕의 총애를 받고 수원 화성축조에 총괄감독으로 부임하여 거중기(지금의 크레인)를
발명한 다산은 수원과도 인연이 깊다.거중기라는 획기적 발명품 의해서 화성은 2년9개월
만에 축조되었고 후일에 훼손된 성곽복원도 다산이 만들어 놓은 의궤에 의해서 가능했다.
다산은 위로 첫째형인 정약현과 둘째형인 정약전이 있었는데 정조대왕 승하후 정약현의
사위인 황사영이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연좌제로 집안이 풍비박산되기에 이른다.
이사건으로 첫째형 정약현과 조카사위 황사영이 참수되고,첫째형 부인은 거제도에
관노로,황사영의 처인 조카딸 정난주(정마라아)는 제주도 관노로,둘째형 정약전은
흑산도로,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된다.정약전은 18년 유배생활 중 우리나라 연근해
어종을 집대성한 수산자료의 보고, 자산어보를 남기고 고단했던 생을 마감한다.
제주올레 11코스에서 만난 정난주마리아의 묘.
트래킹 및 답사코스.
향촌마을->명발당->만덕호->고갯길 쉼터->백련사->다산초당->백련사/4시간10분
향촌마을 명발당입구
명발당은 다산 정약용의 아버지 정재원의 벗인 윤광택이 주인이었고 다산은 귀양살이
하는동안 아들 윤서유와 교분을 쌓았다.다산은 자신의 딸을 윤서유의 아들과 혼인시킨다.
다산과 강진의 역사는 향촌마을 명발당에서 시나브로 시작된다.
명발당
서울까지 이어지는 삼남길은 이렇게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고샅길도 되고
산간과 마을을 이어주는 보부상의 길이기도 하다.
남도에서 생산되는 모든 물화가 보부상의 등짐으로 이길을 따라 한양으로
올라갔다.이길은 호남의 젖줄이자 동맥이었다.
이길에 봄의 생명이 약동하고 들꽃이 개화 되자마자 어느새 깨어난 꿀벌들의 군무도 요란하다.
연녹색 보리싹이 대지를 뚫고 성큼 올라와서 풍성한 들녁을 예고한다.
지금 이순간,보리밭에서 서있는 나의 눈앞에는 시큼한 김치에 동동주 한사발이 떠오른다.
이른 봄,고즈녁한 만덕호의 풍부한 수량은 마음을 넉넉히 적신다.
만덕호 제방을 스치는 초속 2~3m의 봄바람은 계절의 영향으로 뺨을 부드럽게 스친다.
만덕산 백련사 일주문.
고려시대 원묘국사 요세가 만덕결사를 일으킨 유서깊은 절이다.
고려시대 귀족불교에 맞서 귀족과 일반백성 모두를 아우르는 신앙운동인 백련결사를
일으킨 불교개혁의 상징같은 곳이다.
온대지방의 수종인 동백나무는 개화시기에 따라 춘백,추백,동백으로 나뉘어 지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500그루의 백련사 동백꽃은 춘백으로 3월 초에 개화하여 3월말에 낙화한다.
백련사 법당 초입.
이절에는 몇백년은 되었을 오랜 수령의 배롱나무가 곳곳에서 운치를 더해주고있다.
여름에 오면 꽃이 장관일듯~
범종각.
이른 봄에 마라톤대회 참가를 겸해 떠난 남도트래킹을 마라킹이라고 불러야 하나?
스틱과 아이젠을 제외한 대신 마라톤복장이 추가되어 모든 장비의 내용물 비중이
겨울과 다르지 않다.하지만 배낭의 무게는 만만치 않아도 마음은 새털같이 가볍다.
카메라 파인다를 응시하는 내눈에는 희열이 넘치고 피부는 전율이 솟는다.
그늘진 어두운 곳에서 樓下進入하여 밝은 곳으로 올라오며 마주하는 하일라이트,
대웅보전은 팔작다포집의 형태로 하늘을 향해 날개를 활짝 편듯한 형상으로
우뚝 서있다.
법당이나 성당,교회의 내부는 언제나 숙연하게 만든다.
전체적인 가람배치가 위압적이고 무게감이 실려있다.백련결사를 일으킨 절답게
이절의 내력은 무인과 인연이 깊다고 한다.왜구로부터의 자체방어를 위해
토성도 쌓았다고 한다.
돌의 생김새 그대로를 충분히 살리면서 다듬어 석축을 쌓았다.
자연에 인간의 손길을 더하면 인공이 되어 자연미를 잃는 다지만
원래의 자연모습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음이 녹아들어
합일화되는 정성이 담겨 있으면 그 예술적 가치는 배가된다.
남도의 산자락은 이미 봄이 농 익어 부드럽고 요염한 능선의 자태를 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때쯤에는 인간의 눈빛에도 春情이 느껴진다.
남도에서 절을 지키는 목장승들은 하나같이 무섭기 보다는 어딘가 해학적인 모습이다.
수문장에게 잘 보이려고 발밑에 동전을 투척해 넣은 분들,부디 극락과 천당으로
왕생하소서! 사바사바~
절에서의 정면뷰,강진만.
백련사에서 다산초당 가는 길.
백련사 차밭.
차의 성인으로 불리는 초의선사도 한때 이곳에 머물렀다.
다산도 혜장도 차를 무척 좋아했다.다산은 혜장에게 차를 좀 보내 달라고
자주 졸랐다고 한다.인간적으로 조금만 더 달라고~~~ㅋ ㅋ ㅋ
길은 느리게 걷는 만큼 더 많은 것을 보게되고 깊이 느끼게 만든다.
트래킹도 경관만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 인문학을 가미하면 훨~풍요롭고
새롭고 재미를 더 한다.
해월루(海月樓)
해월루에서 바라 보이는 강진만.
강진만과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한폭의 수묵화처럼 전개된다.
보름달빛 비치는 바다를 이 망루에서 바라보는 상상의 날개도 더 펼쳐본다.
절은 조형미가 뛰어 나면서도 담백하고 고졸하다.
가람의 배치에도 독특한 아름다움이 흐른다.백련사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온기가 가득 넘친다.
무제.나도 멋 좀 부려 보았당!
천일각.
다산은 형제 중에서도 특히 둘째형인 정약전과 우애가 돈독했다.
다산의 유배시절에는 없던 건물인데 흑산도에 유배중인 둘째형을 그리면서
자주 이언덕에 올랐다고 하여 1975년에 강진군에서 고인을 기려 새로 세웠다.
앞의 바다는 강진만 구강포이다.
다산초당이 여기에 자리잡은 것은 천일각에서 바라보는 구강포의 전망때문이다.
동암.
당시에는 초가였던 것을 1976년 서암과 함께 복원하였다.2천여권의 책을 갖추고 기거하던 곳이다.
목민관이 지녀야 할 정신과 실천방법을 적은 목민심서를 비롯하여 이곳에 기거하던
18년 동안 경세유표등 500여권의 책을 저술한 곳이기도 하다.
목민심서는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이 가장 애독하던 책이기도 하다.
나무홈통을 이용하여 산속의 샘물,약천을 연못으로 흘러 떨어지게 하였다.
비류폭포라고 이름지었다.초당 옆의 연못은 다산이 유배에서 누린 가장 큰
취미이자 호사였다.
다산도 한국의 전통적인 연못 축조형식을 취했다.
연못 한가운데 석가산이라 명명한 인공섬은 우리나라 전통연못의 대표적인
방식이다.미적으로 연못을 크게 보이게 만들며 흘러드는 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돌아서 배수되는 기능을 한다.
멀리 건물 앞에 보이는 하얀 반석은 차를 끊이는 부뚜막이란 뜻의 다조로
솔방울을 지펴 끓인 물로 차를 우려 냈다고 한다.차는 당시 백련사의 주지스님인
혜장스님이 재배하여 공급하였다.
바닷가에서 직접 돌을 가져다가 만든 연못에는조그만 봉을 쌓아 "석가산"이라 이름하였다.
금붕어를 기르면서 물고기의 행태를 보고 그날의 날씨를 알아 냈다고 한다.
이지역 이곳저곳을 7년간 전전하던 다산이 1808년 봄에 이곳 윤씨의 산방에 들렸다가
머물고 싶은 마음을 전했고 윤씨는 혼쾌히 허락하였다.
이렇게 하여 윤씨의 산방은 다산초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다산의 아버지 대에서 부터 이어온 교분은 계속 이어져 다산은
딸을 윤씨의 아들과 혼인시킨다.
이곳에서 다산과 교유했던 혜장선사도 30세의 젊은 나이에 대흥사의 12대 대강사를 지낼만큼
학식과 수행력이 높았다.유배를 온 다산과 주역 논쟁을 하다가 다산의 학문세계를 깊이
흠모하게 된다.두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은 차와 학문을 사이에 두고 너무도 깊고 아름다웠다.
초당 서편에 있는 바위에 다산이 새겨 놓은 정석의 탁본이다.
서암,다성각이라고도 하였다.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
거대한 힘줄같은 나무뿌리가 튀어나온 이흙길을 시인 정호승은 "뿌리의 길"이라고 명명하였다.
다산과 혜장선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이길을 오갔다.
두사람의 아름다운 우정은 이길을 통해서 열리고 이루어 졌다.
다산의 시에는 혜장스님과의 인연에 얽힌 내용이 많다.
삼경에 비가 내려 나뭇잎 때리더니
숲을 뚫고 횃불이 하나 왔다오
혜장과는 참으로 연분이 있는지
절간 문을 밤 깊도록 열어 놓았다네
아직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동백꽃이 앞 다투어 피기 시작하는 해탈문 앞으로 원점복귀하였다.
강진으로 가는 대중교통 정류장과 주차장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통솔하는 방법에는 오직 위엄과 신의가 있을 따름이다.
위엄은 청렴한데서 생기고 신의는 충성한데서 나온다.
충성되면서 청렴하기만 하면 능히 대중을 복종시킬 수 있을 것이다."
목민심서 중에서/정약용
위당 정인보는"다산 한사람에 대한 연구는 곧 조선사의 연구요,조선 근세사상의 연구요,
조선혼의 밝음과 가리움 내지 조선 성쇠존망의 연구이다"라고 설파하였다.
다가오는 정치의 계절에 앞서 위민을 꿈꾸는 자들이 미리 목민심서를 읽거나
다산초당이라도 한번 다녀 가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망상일 뿐일까?
강진을 거쳐 내일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장흥까지 왔다.
강진에서 장흥은 시외버스로 20분 거리이고 수시로 버스가 있다.
*팁:장흥맛집
장흥에는 반찬 푸짐하고 오리주물럭,육회비빔밥이 유명한 001회관(061.863.9001)이 있지만
오늘은 불고기가 먹고 싶다는 마눌의 뜻을 존중하여 소머리국밥,육회비빔밥,낙지삼합전골이
유명한 토요시장내 정남진 음식사랑(061.864.9876)으로~
불고기 전골을 주문한다.불고기전골에 낙지와 표교버섯이 들어 간다?안 들어 간다?
당근 들어간다.여기는 장흥삼합의 고장이니까.
같은 남쪽 바다의 해안지방으로 사천,통영,고성의 경상도지역과 여수,보성,장흥같은
호남지역은 음식의 맛이 사뭇 다르다.
호남지역은 맛이 깊고 정갈하며 경상지역은 맛이 강하고 자극적이다.
술이 없어서 뭔가 허전하지만 낼 대회 끝나구 마시는 걸로 나와 어렵게 타협한다.
(투 비 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