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방(祕方)
임병식 rbs1144@daum.net
도회지 외곽 변두리 길을 걷다보면 심심찮게 점집과 마주한다. 점집들은 대문에 깃발이 꽂혀있어 금방 알아보게 된다. 한 두 집이 아니다. 이렇게 많은 있어 밥벌이가 될까 싶기도 하지만 성업중이다. 그만큼 무속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는 뜻을 것이다.
점은 과학적으로 근거를 대지 못하지만 소문을 듣거나 경험을 통해 효험 보았기에 찾아올 것이다. 점집에 꽂힌 깃발이 휘날리는 걸 보면 마치 조업을 나갔던 배가 만선을 하여 깃대를 높이 올리고 돌아오는 광경이 그려진다. 그럽지만 점집을 드나드는 발길을 쉽게 만나기 어렵다. 대다수가 은밀히 찾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대체로 안심을 못하고 산다. 무슨 일이 생기면 기독교인은 하느님을 찾고 불교도는 부처님을 찾지만 그런 의지처가 없는 사람은 무속 인을 찾아 비손을 하면서 점이라도 본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예기치 않는 일들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그런 일 중에는 사람이 인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천재지변도 있고, 자기나 가족이 잘못하여 동티가 나는 상황도 맞게 된다. 동티는 금기된 일을 하였을 때 귀신이 노하여 받는 벌로, 한자로는 ‘동토動土’라고 쓰는데 구체적인 징후는 신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동티가 나면 뚜렷한 징후 없이 시난고난 앓는 경우가 보통이다. 이보다 강력한 것으로는 살(煞)이 있다. 모진 기운이 사람이나 짐승에게 해를 끼친다. 이것을 풀어내기 위해 사람들은 살풀이굿을 한다.
내가 직장 초임 시절의 일이다. 진도 소재지에서 며칠을 머물며 밤새껏 이어지는 살풀이굿을 구경했다. 어떤 이가 객지에서 비명횡사를 하여 영혼을 위로하는 굿이었다. 그때 보니 무녀는 종이로 접은 모자를 쓰고서 마당에 긴 무명베를 늘어뜨리고 구슬픈 목소리로 영가를 불러내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밤공기가 찬데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무녀의 목소리가 무섭기도 하고 처연하기도 하였다.
예전, 무녀가 공수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마을에서 자란 또래 친척이 객지에서 공직생활을 하다가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때였다. 그런지라 집에서는 그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알 수도 없었다.
가족은 고혼을 달래려고 씻김굿을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혼령이 나타나 무속인의 입을 통해 공수를 주는데 통장을 어디에 두었고, 누구에게 얼마만큼의 돈을 빌려주었으며 귀중품은 어디에 보관해 두었다며 생시의 목소리로 나타나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후정리를 깔끔하게 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얼마 전에는 지인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느 부인이 회를 먹고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렸는데 낫지 않았다. 처음에는 고장에 있는 병원을 찾았다. 경과가 좋지 않아 다시 도청소재지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그런데도 차도가 없어 급기야는 서울 대형병원에 가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낫지 않아 처음 입원했던 병원으로 내려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부인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마음속에 찜찜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그 일 때문은 아닐까. 불길한 생각에 이웃에 사는 지인에게 말을 하게 되었다. 들려준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고, 산책을 하다가 소피가 마려워 남의 무덤가에 용변을 본 일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여인은 무덤에 찾아가 쌀과 팥을 뿌리고 오라 하더란다. 그런데 그렇게 했는데도 차도는 없었다. 한데 내가 아는 지인의 부인이 그 말을 전해듣고는 어느 모임에서 그 말을 꺼내니 자기는 천주교신자지만 미신을 믿는다며, 정식으로 제물을 장만하여 당사자가 직접 무덤에 가서 빌어보라고 하더란다.
이때는 이미 상태가 극도로 악화되어 걷기도 어려울 정도가 되었는데, 가족들도 상태가 심각한 것을 알고 검은 상복까지 준비를 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맞아 지인 부인은 환자 남편과 함께 시장에 들러 떡과 과일 등 제물을 장만하여 묘를 찾아갔다.
이때는 지인이 환자를 업고 남편과 부인이 제물을 들고 뒤따랐다. 이날은 비까지 내려서 산길을 걸어가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음식을 진설하고 부인이 참회의 눈물을 흘리면서 빌었다.
" 우매한 제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앞으로 다시는 그리하지 않을 게요."
하면서 대성통곡하며 빌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방금 전까지도 혼자서 한 발자국을 떼지 못하던 환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부축도 받지 않고 스스로 걷는 것이었다. 그 이후 후일담이다. 엊그제는 지인이 그 환자가족과 식사를 했는데. 병은 씻은 듯이 낫고 예전처럼 건강해 졌다고 한다. 그 환자는 고마운 정을 잊지 못하겠다며 나중에 금일봉과 함께 과일 선물도 하더란다.
얼마나 신비한 일인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가지 현상들을 백안시 하여 마냥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한다. 무엇이 작용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비부리오 패혈증에 걸려 다 죽어 간 환자가 일어설 것인가. 그것을 생각하면 아무 곳에서나 분별없는 짓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비손을 하는 일을 두고서 미신이라며 마냥 터부시 할 일도 아니지 않는가 한다. (2023)
첫댓글 유난히 미신을 좋아하는 손위 형님이 계셔서
툭하면 손을빌고 신주님께 물었다며 어디를 가면 조심하라는등 어느날 집안에 씻김굿을 해야한다고 얼마씩 거출해서 큰굿을 했는데 굿의 명분은 젊을때 장가도 못가고 떠돌던 시아주버님이 객사를 했으니 원혼을 달래주는 씻김굿과 살풀이를 해야 한다며 동네가 들썩이게 굿을 했다 그런데 약10년만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후로 형님은 우리 몰래 무당을 찾아 다녔다. 잘못된 무당들도 있겠지만 선조들은 굿당이나 신선시하는 샤머니즘 하나씩은 믿음으로 가지고 사셨던거 같습니다.
점쟁이가 전혀 엉털이라면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시내 뒷골목을 들어가면 깃발을 꽂고 사람들을 불러들린 점집이 여러곳 보입니다.
지인의 비손 이야기를 듣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엎고 갔는데 빌고나서는 내려올때 혼자서 걸어내려왔다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