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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4일(주일) 창세기 35:1~15 벧엘, 곧 예배의 자리로 가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Tolstoy, 1828~1910)는 일흔이 훨씬 넘은 나이에 삶의 성찰을 담은 단편집 [세 가지 질문]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에서 그가 던진 세 가지 질문은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입니다. 톨스토이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現在)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대하고 있는 사람이며,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일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것을 위해서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날마다 그 때 그 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 그리고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각자 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그것은 지금 현재 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과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요,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1조 1항은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면 우리의 영혼이 살고 육체가 살아납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예배는 가장 중요한 것이요, 가장 긴급한 것이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우상을 섬기는 일입니다. 십계명중 제2계명은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새긴 우상’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돌이나 나무나 금은으로 신의 형상을 만들어 그것을 섬기며 절할 때 모든 사람들은 제 자신이 잘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안위와 복까지도 포기할 수 있지만, 우상종교는 오직 제 자신과 가족의 이익과 복만이 목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나 자신이나 가족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먼저 되어야만 참 신앙입니다. 그럴 때 내 자신도 가족도 잘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24에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하나님은 절대 눈에 보이거나 만져볼 수 있는 육적인 존재나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식의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10월 마지막 주일이 종교개혁주일인데, 종교개혁의 모토가 바로 ‘오직 말씀’(sola scriptura)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어떤 형상으로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강조한 것이 종교개혁자들이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만이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벧엘, 곧 예배의 자리로 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상고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절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라’(1절)고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라’(1절)고 하십니다. 한마디로 우상의 자리에서 떠나 이제 벧엘, 곧 예배의 자리고 가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은 한마디로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말씀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을 통해 당신을 계시하실 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의 삶과 인생의 발걸음을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도 ‘말하는 존재’입니다.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뜻을 드러내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이처럼 ‘말’은 하나님과 사람의 공통점이긴 하지만, 하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사람의 말은 ‘아마르’라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다바르’라고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사람의 말인 ‘아마르’는 은 대부분 말로 끝나고, 말이 행동과 삶으로 열매를 맺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인 ‘다바르’는 말씀하시는 것이 곧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 내용대로 성취됩니다. 비나 눈이 하늘에서 내려 빈손으로 다시 하늘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토지를 적시어 식물의 싹이 나게 하고 농작물의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인 ‘다바르’도 결코 헛되어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게” 됩니다. 사람의 말은 공허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뜻을 ‘이루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번 선포된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다바르’를 기록한 성경 말씀은 반드시 사람이 지켜 행해야 할 의무이기도 합니다.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 “벧엘로 올라가서 제단, 즉 예배를 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야곱이 지키면 아주 유익하고 복받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복주시려고 말씀하시는 그 분의 축복의 초대장인 줄 믿으시고 때로는 순종하기 힘들어도, 또한 그 분의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되도 믿음으로 순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했을까요? 야곱에게 벧엘은 어떤 장소이기에 하나님은 거기로 올라가라고 하셨을까요?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이라고 하는 장소는 가장 중요한 인생장소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잘 찍은 사진을 ‘인생사진 혹은 인생샷’을 말하고, 정말 맛있는 집을 ‘인생맛집’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단어에 ‘인생’이란 말을 붙여서 사용하는 데요. 야곱에게 벧엘은 ‘인생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은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인생 장소는 어디이신가요? 저에게 인생장소는 ‘대전온천교회’가 인생장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청년시절 대략 5년 정도를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의 길인 목회자이 길을 가기로 결정하고, 인생의 말씀도 받았고, 지금의 배우자를 만난 곳이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 휴가 때 그곳을 다녀왔는데요. 지금은 교회도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들어와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늘 그리운 장소이고 생각나는 장소입니다. 마찬가지로 벧엘은 야곱이 고향을 떠나 가장 괴로울 때 가장 뜨겁게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장소였고, 가장 순수한 심정으로 가장 진실되게 자기 신앙을 고백했던 서원의 장소였습니다(창28:10~22).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곳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한 것은 야곱이 그 당시 벧엘에서 서원했던 내용들(창28:20~22)을 이제 이행할 때가 되었음을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언약의 후손의 가문이 세속에 휩쓸릴 뿐 아니라 평안한 세겜에 안주하는 것을 더 이상 참으실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오리새끼’에 나오는 내용처럼 못생긴 오치인줄만 알았던 새끼오리는 다름 아닌 아름다운 백조였던 것입니다. 이후에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미운 오리새끼는 백조 무리 속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처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세상속에서 타락하면서 살던 우리를 구원과 변화를 이끌기 위해 저와 여러분의 삶과 생명의 주도권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좋으신 목자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를 우상의 자리에서 예배의 자리, 축복의 자리로 부르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하나님은 창31:13에 야곱에게 이미 ‘벧엘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지만, 야곱은 그 말씀을 무시하고 평안한 세겜에 10여년을 안주했습니다(창 33:18). 자신이 백조인 줄 모르고 마치 미운 오리새끼처럼 살았던 것이죠.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말이지요. 그러다가 ‘딸 디나의 강간사건’(창34:2)을 겪고 나서야 드디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고난당함이 내게 유익이라’(시119:67)고 하시는 데, 야곱도 자녀들이 고난당하고, 자녀들이 문제를 일으키자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이제야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과 가정의 어려움을 통하여 부모가 온전한 회개와 구원을 받고 미운 오리새끼에서 나오도록 그들이 수고하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질곡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겜에 머물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벧엘로 가서 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신 것처럼(1절),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세겜과 같은 이방문화를 떠나라’고 자녀와 가정의 고난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형편 가운데 있습니까? 이런 고난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야곱은 이방 신상을 모두 버리고 자신과 집안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고, 벧엘에 이르러 제단을 쌓고 그곳을 ‘엘벧엘’(벧엘의 하나님)이라 부릅니다(2~7절). 오늘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저와 여러분도 여러분 삶의 고난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에 합당하지 못한 삶을 모두 떨쳐버리고 벧엘, 곧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적용)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상숭배의 자리에서 떠나 예배의 자리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내가 떠나야 할 이방문화의 장소는 어디입니까? 또한 내가 나아가야 할 예배의 장소는 어디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예배의 자리로 부르셔서 어떻게 하시려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예배자를 복주실려고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배의 자리는 축복의 자리요, 은혜의 자리요. 생명의 자리가 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창28:13; 출3:6)이라고 즐겨 소개하십니다. 여기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3대 족장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공통점은 예배자였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는 순종의 예배를 드렸습니다(창22:9,10).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창22:16,17) 이삭은 어려서부터 자신을 주의 제단에 드리는 희생의 예배를 드렸습니다(창22:9). 하나님은 이삭에게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창26:24)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희생의 예배자였던 이삭은 마침내 창대하고 왕성하며 거부인 족장으로 살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벧엘로 올라가는 결단의 예배를 드렸습니다(창35:7). 야곱이 하란에서 돌아온지 10년이란 시간 동안 기다리셨던 하나님은 그가 예배를 드리고 난 후 그를 축복하십니다. 11절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야곱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셨던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하셨던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까지 주십니다(10절). 적용) 내가 돌아가야 할 벧엘, 곧 예배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어디입니까? 바로 미국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민족은 비록 소수이지만 유대민족입니다. 그래서 유대민족을 연구해보니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민족이라고 합니다. 또 가장 범죄율이 적은 나라도 유대민족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가장 노벨상을 많이 받은 우수한 민족도 유대민족입니다. 그들은 “유대민족은 안식일을 지켰고, 그 안식일은 유대민족을 지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안식일이 유대민족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민족이 살고 개인도 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민족과 국가는 형통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개인도 인생에 축복을 받아 위대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축복을 받고 선한 일을 많이 하여 존경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미국의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 1839~1937)입니다. 록펠러는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세 가지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첫 번째는 역사상 가장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지만 가장 부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다른 사람에게 기부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98세까지 장수하고도 치아가 하나도 썩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살다가 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록펠러가 존경받고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부자가 되고 역사적인 인물이 된 데는 세 가지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 그는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리는 일을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둘째는 매일 성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반드시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을 뿐 아니라 십의 구조까지 드리는 물질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수동 교회 원로목사님이신 박희천 목사님은 성도들의 5대생활지침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1. 주일성수(출 20:8~11) 2. 온전한 십일조(말 3:7~12) 3. 매일 성경(행 17:11) 4. 매일 기도(살전 5:17) 5. 열심 전도(행 5:42)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가장 큰 계획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라면,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예배에 집중하고 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성도의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며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주님 앞에 나오는 일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일을 참으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받으시기를 원하시며 기뻐하십니다. 교회에서 우리와 만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시편 20편 2절에 보면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나오는 자를 좋아하시고, 사랑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시온에서 늘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집에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참으로 신령하고 신비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주셨습니다. 성전을 귀히 여기며 성전을 사랑하고 성전에 가는 것을 기뻐했던 개인, 가정, 민족 모두 인류 역사상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어디에 축복이 있습니까? 어디에 기쁨이 있습니까?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데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교회에서 집사 직분까지 받았으나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너무 지겨워했습니다. 그는 주일 날 아침만 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예배를 드리지 않을 궁리만 했습니다. 하루는 “여보, 오늘 우리 두 사람 중에 당신이 대표로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구려. 나는 대표로 남아서 집을 볼게.”라고 하면서 아내 혼자만 보냈습니다. 그는 예배 시간에 집에 혼자 남아 낮잠을 자다가 문득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천국 문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지요? 그럼 대표로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오시오!” 집사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배를 지루하게 여기며 자원해서 드리기를 거부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시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성도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방해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사는 동안 예배를 통해 주님을 친히 뵙고 교제하는 일을 무한한 특권으로 여겨야 합니다. 주일 예배로만 만족하시고 안주하지 마시고, 새벽예배도 참여하셔서 예배의 확장이 있기를 바랍니다. ‘벧엘, 곧 예배의 자리로 가라’ 야곱에게 뿐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습니다. 야곱처럼 순종하셔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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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4 오늘의 말씀카드, 감사카드
☆ 추석을 앞둔 미니 감사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