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일한 종교화가, 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1871~1958)
파리 출생의 루오는 H.마티스, P.피카소 등과 함께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프랑스화가다. 가구 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예술적 재능을 나타내어, 10세 때부터 그림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14세 때부터 공예미술학교 야간부에 다니면서 주간에는 스테인드 글라스 업자의 견습공으로 일하였다. 거친 질감과 두꺼운 윤곽선에서 느껴지는 깊은 맛은 스테인드 글라스의 조형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마티스와 함께 모로의 제자였던 루오(Georges Rouault)는 포비즘의 주변에 있어 독자적인 세계� 구축하였다. 그의 색채는 깊고 탁하며, 힘차고 단순화된 선에 의한 형태가 두터운 색 층속에서부터 배어져 나온다. 검은 윤곽선에 의한 색면들은 중세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볼 수 있는 구획성을 상기시키며 그의 그림을 중세의 종교화와 같은 무게감을 갖게 한다.
루오는 스스로를 현대사회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인물로 실제로 그의 삶은 대성당을 짓던 중세기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림이 점점 순수한 회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20세기에 있어서 루오는 끝까지 인간애의 정신을 관철시켰다.
老王(늙은 왕)
노왕(老王)의 표정은 몹시 침통하다.이 작품에서는 왕의 권위나 위신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왕관 그리고 화려한 의상에서도 그와 같은 허영심은 없다. 마치 <수난의 그리스도> 나 <상처입은 도화사> 상과 일맥 상통하는 인간상이다.
신비롭게 가라앉은 화면 처리는 마치 중세 시대의 없는 것을 보면 다시 가필하려는 작가의 고원(高遠)한 인간상을 물씬 느끼게 된다. 한편 이 작품은 루오 인간상의 작품 중에서 가장 작가의 정신 내부를 잘 표현한 걸작이다.
聖顔(성안)
루오를 가리켜 흔히 20세기 최대의 혹은, 혹은 유일한 종교화가라 일컫는다. 확실히 그는 그리스도를 많이 그렸고, 성서 이야기를 주제 삼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루오가 그리는 그리스도는 예배의 대상으로서의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의 인간의 죄와 악을 미워하고 슬퍼하는 마음의 충동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여러 얼굴을 통한 상징적 화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루오의 그리스도에는 진실을 갈구하는 인간의 고뇌가 빚어져 있다. 그것은 분노와 절망을 감춘 고독의 모습이다. 1930년대에 접어 들면서 루오의 색채는 더욱 깊고 투명해지며, 힘차고 단순화된 필선의 형태가 두터운 색층 속으로 부각돼 나온다. 후년에 가면서 그는 노랑색을 많이 쓰게 되는데, 이 작품에 그 초기의 징후가 나타나 있다. 루오는 타락한 세계의 모습을 우려한 반 고호와 고갱의 진정한 후계자이다. 여기 이 걸작은 루오의 작품으로서 프랑스 국립미술관에 들어간 최초의 작품이다.
저녁놀
루오는 1937년부터 39년까지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1920년경에 그린 <교외의 그리스도>, <성탄절 풍경> 등에 비하면 화면(색조)이 맑아졌다. 이미 그의 풍경화는 시각의 자연에서 심각(心覺)의 자연으로 변해 온 것이다.
구도나 여기 등장되는 건물, 인물들은 물론이지만 광선 처리나 화면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종교인으로서의 심각적 감정에서 솟아난 새로운 차원의 세계이다. 그리스도와 2, 3명의 인물들이 노상에 서 있을 뿐이다. 자유로운필치, 굵은 선, 충만된 구성 등 실로 놀라운 경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녹색조(綠色調)의 하늘 처리 등은 격조 높은 그의 품위를 말해 주는 듯하다.
푸른 새
전쟁 중 연극계에서 명성을 얻은 여배우마리아 라니가 모델이 되었다.
고개를 약간 갸우뚱한 자세로 눈을 아래로 깔고 있는 이 미녀는 루오 자신이 화면 윗부분에 표기해 둔 바와 같이 '푸른 새'를 상징적으로 그리면서 화면을 정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새에게 노래를 시키려면 눈을 멀게 하라'는 습관이 있다. 그와 같은 속세적인 것에서 취재, 비록 새를 상징한 얼굴을 그렸지만 루오는 이를 자신의 예술과 비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루오는 훨씬 더 차원 높은 그의 인간상을 주제에 용해시켜
소가족
대작을 별로 안 그린 루오에게는 예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작이다. 높이만 2m가 넘는다. 원래 이것은 규도리 부인에 게서 의뢰받은 다피스리를 위한 그림이다.
매우 감동적인 표현이다. 상처 입은 가족 중의 한 사람을 두고 서로가 위로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생활의 고통을 나누려는 표정은 무한한 인간의 사랑을 말해 주는 듯, 아니 보다 더 종교적인 차원에까지 끌어 올리고 있다.
道化師(도화사) 빨간 코
관객들 앞에 나와서 웃음을 팔던 도화사들이 이제부터 자취를 감추게 된다.
주로 수채를 써서 그린 제 1기에 해당되는 작품 들은 인간 사회에서 최고로 노동을 강요당하던 비애와 슬픔에 얽힌 군상들이다. 그러다가 제 2기에 들어서면서 내면적인 변화가 점차 심화되어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수채화가 아닌 유채화이다. 뿐만이 아니라 관중 앞에 나온 도화사도 아니다.
그의 억세고도 굵은 상과 그리고 강렬한 색채 및 표정 등은 전자보다 더욱 작가의 내면적인 상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양식은 만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거울 앞의 娼婦
루오는 1902년 이후 무서운 정열로 일련의 창부들을 그리게 된다.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유명한 작품이다. 그는 많은 나체의 창녀들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의 고달픈 삶의 탓일까? 모두가 노기(怒氣)가 서린 표정들이다.
이 작품 역시 냉정한 입장에서의 사회 관찰이나 비판성은 전연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노기에 찬 격렬한 고발심과 격정적인 분위기를 표출하고 있다.
이 작품이 단숨에 그린 수채화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드가나 로트렉도 나부를 많이 그렸지만 화면에서 풍기는 냄새가 전연 이질적으로, 루오 특유의 세계가 잘 나타나 있다.
예수그리스도
루오는 우리나라 이중섭을 비롯한 일본의 여러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작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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