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Today’s Meditation)
본문 : 마가복음(Mark) 7장 24절에서 30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다른 사람들처럼 때때로 어려움과 환난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자녀들이며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움과 환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시며 믿음 안에서 성장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환난과 어려움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가 더욱 하나님을 의지할 기회를 주셔서 믿음을 증진시키려 하신다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7:24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신 후에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하셨으나 숨길 수 없었습니다. 미소와 재채기는 아무에게도 숨길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예수님의 존재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의 존재를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따르며 복음의 말씀을 따라 산다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존재를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은 복음 증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나타내야 합니다.
7:25~28 예수님께서 계신 곳이 알려지니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 즉 헬라인이며 수로보니게 족속인 여자가 예수님이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수로보니게' (Συροφοινίκισσα 수로포이니키싸)는 '시리아'(Syrian) 지방의 '페니키아(Phoenicia)'라는 뜻입니다. 마가는 이 여인이 유대인들이 짐승보다 더럽게 여기고 적대시하는 이방인으로 묘사합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려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수로보니게 족속의 여인인 것을 알아보시고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이방 여인을 다른 유대인들처럼 개(dog)라고 언급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 여인을 개라고 하셨을까요? 인종 차별을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방 여자이고 유대인들이 개와 같이 여기는 여인일지라도 그녀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아주 특별한 민족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또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해한 것은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들을 유대인들에게 보내신 이유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 즉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여 땅의 모든 족속들도 이스라엘과 같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게 해야 할 사명이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깨닫지도 못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깨달았다면 이방인들을 개와 같이 여기거나 혹은 이방인들을 지옥 불을 떠 뜨겁게 할 장작과 같은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그런 오해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그러한 모욕적인 대답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대답하므로 자신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여인이 이렇게 믿음을 보여준 이유는 첫째 자신은 유대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지만 부스러기 은혜라도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둘째 그럼에도 그 여인은 예수님은 자신의 딸에게 붙어있는 귀신을 능히 쫓아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믿었습니다. 셋째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께 요청해야만 한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은 예수님의 그러한 모욕적인 말에도 굴하지 않고 주님의 응답을 완전히 얻기까지 나갈 수 있었습니다.
7:2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시기 위해 심한 말을 하셨던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즉각적으로 태도를 바꾸셔서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부정적인 표현을 원치 않으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믿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믿음의 표현을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은 인간 자신을 믿거나 자신의 능력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믿음으로 요청하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집에 돌아갔을 때 그녀의 아이는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가 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녀의 믿음의 요청이 예수님에 의해 허락되었고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브리서 11장 6절)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Hebrews 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