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8. 레지오 훈화- 마음이 가난한 사람
찬미예수님!
이번 주에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 대해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에게는 오욕락(五慾樂)이 있습니다. 재욕(財慾) 색욕(色慾) 식욕(食慾) 명예욕(名譽慾) 수면욕(睡眠慾)이 그것입니다. 이 오욕락에 대한 사람들의 욕망은 거의 맹목적이라 할 정도로 본능적인 것이어서, 보통사람들로서는 절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욕락 중에서도 재물욕을 그 첫 번째에 둔 것은 그 어느 욕망보다도 강렬하고 무섭다는 뜻입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던 한 형제가 어린 나이에 상경하여 고생하면서 잘 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야간대학도 마쳤습니다. 그리고 착실한 처녀와 결혼해서 가정도 이루었습니다. 자그마한 사업을 하면서 성실하게 벌어 새집도 마련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도 드릴 겸, 음식을 준비하고 그들을 초청했습니다. 시골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사는 사촌 형도 찾아왔습니다. 자기 생각에는 조그마한 집이나 한 채 마련했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대문간에 들어서니 대궐 같은 집이라 공연히 배가 아프면서 혈압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가서 쓰러져 드러눕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촌 잘 사는 것이 배가 아파, 자기가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가난하게 하는 것이 자기가 사는 길입니다.
가난해지는 것과 가난뱅이는 다릅니다. 무지하고 게으르고 방탕해서 가난한 것은 저주입니다.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가난은 지옥의 그림자입니다. 빈곤(貧困)과 성빈(聖貧)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부자 되기를 원하지만, 부자라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찬바람이 날 수도 있고, 단칸방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감돌기도 합니다. 편안한 집이나 가정의 행복,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처럼 소중한 것들은 호화로운 큰집이나 돈만으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모자라지만 자족함에서 오는 정신적 보람이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자를 부러워하지도 않습니다. 행복은 재물의 많고 적음에 의하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우리가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가난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가난을 사랑하여 가난과 결혼했다고 했고, 가난을 아내라고 불렀습니다.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유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자가 행복한 자입니다.
예수님은 땅에 쌓아두는 부자에게 복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가난이 있는 자를 복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마음으로 가난한 자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했으면 참 좋겠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