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한결이 임보일기를 쓰지 못했네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베티 생각하면 한결이 잘 지내고 있다고 글 올리기가 미안해서요. 그래도 혹시 한결이 이야기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실지 몰라서 오늘은 원고 마감한 뒤 이렇게 한결이 이야기를 씁니다. 완전 무릎 강아지가 된 한결이는 지금 제 다리 위에서 완벽한 도너츠를 만들며 자고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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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방영된 건데, 저는 얼마 전에야 보았던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MBC 스페셜'에서 방영되었던 '노견 만세'라는 프로그램이에요. 평생을 함께 해온 늙고 병든 강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사람들...... 사람도, 동물도, 숨이 끊어지는 게 쉽지 않은 건 매한가지인지 그 아이들의 황혼은 더없이 힘겨웠습니다.
그중에서도 평생을 맹인 안내견으로 살아온 리트리버 '대부'의 이야기가 특히 마음 아팠어요. 사람을 위해 봉사하느라 자신의 본성은 항상 억압당해야 했던 아이. 자연스러운 욕구를 분출해보지 못해서인지 마지막엔 치매에 걸려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
사람을 위해 살아온 아이에게 그래도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만 깜빡일 수 있을 뿐 스스로는 발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하는 대부에게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여주고, 똥오줌을 받아내주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뒤집어주는 가족이 계셨거든요. 그 분은 대부 때문에 외출 한 번 마음대로 할 수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을 그냥 '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것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면, 그 강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것은 '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그렇게 보면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원했기에 책임져야 하고, 내가 선택했기에 그 선택을 완성해야 하는 것. 그것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기본자세임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한결이 털이 제법 많이 자랐지요? 얼마 전 한결이 데리고 산책 나갔다가 귀가 복실복실한 스탠다드 푸들을 만났는데 무척 예쁘더라구요. 한결이도 털이 더 자라면 하루님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예요. 스탠다드 푸들의 견주되시는 아주머니와 5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아이도 열두 살로 꽤 나이가 많았어요.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말이죠. 12년을 함께 해온 아주머니와 그 강아지의 동행이 참 아름답더군요.
그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한결이는 제 다리 위에서 지금처럼 도너츠를 만들며 자고 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끝날 때쯤 한결이를 내려다봤는데 살짝 굽은 한결이의 등뼈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한결이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셨던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한결이 또한 추정나이가 열살 전후로 적지 않습니다. 한결이도 한때는 지금보다 더 작고 여린 아기 강아지였겠지요. 누군가는 한결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고 웃었겠지요. 안타깝게도 저는 한결이의 그 빛나는 순간들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우리 가운데 누구도 그런 한결이의 모습을 보지 못했지요.
한결이에게도 저런 사람이 나타나줄까?
그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꼭 나타나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오히려 정말 그렇게 될 거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한결이에게도 저런 사람이 나타날까. 아기 때부터 한결이와 웃고 울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제부터의 한결이 삶을 지켜줄 수 있을까.
저는 한결이에게 아직도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다고 믿습니다. 그 다큐멘터리에 나온 노령견들만큼 산다면 한결이에게도 6,7년 정도의 세월이 더 남아 있을 겁니다. 우리의 인생 전체에서는 긴 시간이 아닐지 모르지만, 강아지들의 견생에서는 아주 긴 시간입니다.
무엇보다 한결이는 건강하고 밝고,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아이입니다. 한결이의 최초 구조요청자인 사비나님이 말씀하셨듯이 길거리에 살 때 한결이는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동구협에 입소한 뒤에는 그곳 수의사 선생님을 무척 따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결이는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을 구제해줄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던 게 아닐까. 다시 누군가의 품에 안겨 사랑 받을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게 아닐까. 저는 한결이의 그 희망이 절대 배신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한결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줄 때, 외출했다 돌아온 저를 보고 온몸으로 기뻐하는 한결이를 안아줄 때, 잠자리에 들기 전 한결이의 몸이 폭 싸이도록 담요를 덮어줄 때, 그때마다 그런 믿음이 더 강해집니다. 귀여운 아기 강아지 시절의 한결이를 못 봤던 사람이라도, 한결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웃고 울었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토록 사랑스러운 한결이를 평생 보듬어줄 분은 반드시 계시다고요.
사실 피피나 한결이나 다른 강아지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산책 나갔을 때 보면 피피는 아예 다른 강아지를 피하는 편이고, 한결이는 피하지는 않지만 있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쓰는 쪽이고요. 그래도 둘이 매일 붙여놓았더니 제법 같은 방석에서 몸을 맞대고 있기도 합니다. 피피가 불편한지 자리에서 막 일어나는 중이네요. ^^
피피는 다시 자리를 고쳐앉고 한결이는 제 쪽으로 돌아보고 있어요. 요 녀석, 얼굴만은 완전 베이비페이스예요. ^^
지난 주말 맥주 한 잔 하자며 근처 사는 동생이 놀러왔어요. 강아지를 오래 키운 친구라 한결이를 보자마자 안아줬는데 한결이는 저 표정으로 오매불망 제 얼굴만 쳐다봐요. 친구가 그러네요. "언니, 한결이는 나 말고 언니한테 안기고 싶은 거야."
제 다리로 옮겨줬더니 바로 실신 모드로 잠들어버리는 한결이. '그래, 이 다리야'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ㅎㅎㅎ
사실 요즘 한결이가 무릎 강아지가 되기는 했어요. 푸들 중에 말괄량이 아가씨들이 많다지만 한결이는 꽤 얌전한 편이라 다른 것에 대해서는 조르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요즘은 무척 안겨 있고 싶어 하네요. 제 다리를 늘 한결이에게 양보하는 피피에게 미안하고... 그래요.
첫댓글 대부이야기.. 보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요.. ㅠㅠㅠ
한결이에게 어떤 스토리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남은 삶은 대부처럼 사랑 받고 행복할거에요..따뜻한 무릎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대부 화장장에 들어갈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대부의 가족들처럼 좋은 분들이 한결이 맞아주신다면 정말 기쁠 텐데... 반딧불이님, 늘 감사합니다.
저도 그 대부이야기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피피님 위에서 하신 좋은 말씀에 동감해요.
한결이 잘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추운데 고생 많이 하셨죠? 같이 하지 못해 죄송해요.
저도 대부이야기보면서 콧물눈물 줄줄흘렷더랫지요...전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지만 나중에 우리아이들도.....ㅠ
한결이에 많은사랑주셔서 감사해요
은영님, 뭉치한테 사랑 많이 주셔서 저도 감사해요. 지금 마음처럼만 하시면 아이들 모두 많이 행복할 거예요.
한결이 이야기를 보면 한결이의 성품이 침착하고 조용한 것같아요. 한결이는 항상 피피님을 응시하면서 눈으로 관심을 받고 싶다고 말하는것같아요. 요즘 아이들의 표정을 가만히 보게되요. 사람도 그렇듯이 얘들도 말이 아닌 표정이나 눈빛에서 기분을 읽을수가 있더라구요.
나이가 있어서인지 푸들치고 아주 차분한 편이에요. 산책 준비할 때랑 닭고기 삶을 때, 제가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빼고는 의젓하거든요. 그 세 가지 상황에서만 푸들 특유의 점프를 보여주죠. ^^ 한결이 눈빛이 참 맑은 아이예요. 다른 사람이 와도 늘 저만 쳐다보더라구요. 한결이를 마주보면 그 눈에서 너무너무 사랑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읽혀요. 정말 넘치도록 사랑 받아야 하는 아이인데...... 싶어요.
내가 너무좋아라하는 한결이 임보이야기^^ 한결이가 나이가 많은 아이였지... 워어낙 동안이라 잊고있었네요.
피피와 한결이가 더 친해진 것 같네요ㅎㅎ 등을 기대고 앉은 모습이 참 이뻐요.
한 방석에 누워 있는 사진도 있는데 그것도 조만간 올릴게요. ^^ 코코뭉치님, 한결이 이야기 좋아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피피님을 바라보는 한결이의 애절한 눈빛이 이름그대로 한결같네요.
이소명님, 한결이는 누구에게든 한결같은 사랑을 줄 아이예요. 그런 한결이가 역시 누군가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받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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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루루님 말씀처럼 한결이는 같이 있는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가진 아이예요. 늘 한결이한테 애정 어린 시선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리타와 림보를 만나면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한결이가 피피님을 바라보는 눈길이 너무 애잔하네요...한결이 한 테는 피피님 무릎이 세상에서 제일 편안한가 봅니다~
치즈님, 정말 그래요. 유기견 아이들에게 막연한 연민만 가지고 있을 때랑, 막상 한결이를 임보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아주 많이 다르더라구요. 단 한 아이라도 온전히 마음을 주고 나면 다른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까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지금도 한결이는 제 다리에 올라와 있는데 이 녀석, 제 다리를 베고 눕기만 하면 금세 잠들어버려요. ㅎㅎㅎ
한결이가 표정이 한결 편해졌네요...털도 제법 자라서 미모도 더 돋보이고요...
좋은 소식이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띨이네님, 한결이 축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멍했지만 한결이에게 좋은 일이라면 저도 좋아요.
한결이 입양소식이 들리네요..좋은일임에도 피피님이 먼저 생각나네요. 앞으로 한결이 임보일기는 못보게 되는걸까요?!!
행복맘님, 행복이랑 잘 지내고 계시죠? ^^ 그냥 차분히 기다려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