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우렁차고 담대한 지맥은 한반도의 남쪽을 기운차게 뻗어 내리며 설악산과 오대산, 그리고 속리산 같은 명산을 잉태시켰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지니고 있는 기백과 탄력이 소진되지 않아 내륙으로 줄달음치다가 문득 엎어질 듯 멈추면서 산맥의 속살을 격렬하게 드러낸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경북 청송과 영덕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주왕산이다. 본래의 이름은 석병산이었다. 혹은 세상을 등진 선비들이나 참선하려는 선사들이 들어와 살았다 하여 대둔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래서 대전사 같은 사찰도 있지만 그 자취나 흔적이 남아 있는 절터들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신라 왕족이었던 김주원이 여기서 은거했다고 주방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주왕산이 품고 있는 정기는 헤아리기 손쉽지 않은 수많은 전설과 기암괴석의 오묘하면서도 화려한 배열과 가을 단풍의 화려함에 있다. 특히 계곡 양편으로 배열돼 있는 바위 병풍들을 올려다보노라면, 그 아찔한 절경이 탄성을 자아낸다.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지금 당장 앞으로 무너져 내릴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벌였다는 기암. 주왕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 주왕이 은거하다가 숨졌다는 전설의 주왕굴. 그리고 3개의 폭포. 모두가 주왕산을 찾은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절경이다. 조선 인조 때 성리학자였던 장현광의 글에서도 주왕산의 바위 병풍들에 대한 예찬론이 길게 이어진다.
“이른바 부암이라는 바위 위에 이르면 좌우의 여러 바위가 눈앞에 펼쳐져 있어 천 가지 모습과 만 가지 모양이 모두 갖춰져 있다. 네모진 것이 있는가 하면, 둥글며, 쭈그러들고 혹은 삐쭉 나왔으며, 좌우가 서로 맞이해 마치 손을 잡고 읍하는 듯한 것이 있다. 그런가 하면 피차가 서로 높아 마치 누가 더 큰가를 다투는 듯한 것도 있고, 부부처럼 배합한 것이 있고, 형제처럼 나란히 자리한 것이 있으며, 원수처럼 서로 등진 것이 있고, 친구처럼 서로 가까이한 것도 있다. 혹은 한 바위가 우뚝 솟고 나머지 여러 바위는 함께 낮으니, 높이 있어 우러러 받드는 것은 군주와 스승과 같고 낮아서 압도당하는 것은 신하와 첩과 같으며, 동쪽 벼랑의 바위가 서쪽 벼랑에 연하지 않고 서쪽 벼랑의 바위가 동쪽 벼랑에 이어지지 아니하며, 마치 문을 나누고 진을 구별해 진법이 서로 뒤섞이지 않는 듯하다. … 머리를 숙이고 감추어 마치 시세를 두려워하는 듯한 것이 있고, 모서리를 드러내어 마치 세상의 어지럼에 분노하는 듯한 것이 있으니, 이것이 그 대략으로 그 형상을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바위들은 마치 신선들이 공깃돌 놀이하다가 던진 돌과 크고 둥근 바윗돌이 서로 엉키거나 흩어져 천연덕스럽게 놓여 있어 수달래가 피어 있는 골짜기로 들어서면서부터 등반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맑게 흐르는 물속에 작게 흩어져 있는 자갈돌 하나하나는 생선의 알집처럼 오돌오돌 살아 있어 우리의 시선을 매료시킨다.
그러나 배열된 바위마다 전설이 주절주절 열려 있고, 그 형상이 또한 평범하지 않아 발길을 멈추고 전설을 음미하자면, 반나절이 꿈처럼 지나간다. 계곡을 둘러싼 바위병풍들은 등반길에서 멀지 않아 쳐다보자면 고개가 아플 정도고, 등산길이라 하지만 가파른 곳이 없는 흙길이어서 3대 가족이 함께 걸어도 낙오가 걱정되지 않는다.
이 주왕산 기슭이 품고 있는 보배로운 저수지가 바로 주산지다. 주왕산에서 청송시내 쪽으로 나오다가 왼편 오르막길로 오르면 신비하기로 소문난 저수지가 나타난다. 주위는 주왕산 영봉에서 뻗어 나온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마치 별유천지에 당도한 것처럼 한적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라 속세의 혼돈과 마음속의 갈등과 저주를 삽시간에 씻어낼 수 있는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특히 봄가을 해뜨기 전에 주산지가 보여주는 안개의 흐름은 처용무처럼 서럽거나 아름답고 신비로워 사람들의 발길을 좀처럼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온 나라의 대지가 10년 가뭄에 시달린다 해도 주산지의 물은 마른 적이 없었다. 이 주산지 한가운데서 자라고 있는 수중 왕버들 수십 그루는 그래서 저마다 수령 수백 년을 자랑한다.
청송군은 북서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그 때문에 청송 일원에서 생산되는 청송 꿀사과는 전국에서 당도가 가장 높은 명품 사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므로 계통 출하가 되는 구입처가 아니면 진품을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사과와 곁들여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청송 고추는 영양 고추와 함께 전국 제일의 품질을 자랑한다. 흔히 매운맛이 진한 청양 고추를 충청도의 어느 지방에서 생산되는 고추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와전된 것이다. 청양 고추는 지금의 세미니스코리아의 전신인 중앙종묘에서 열대지방 고추를 모계로 해 소과종에 적합한 품종을 육성했다. 그래서 국내 최대 고추 산지인 청송과 영양에 재배시켜 청양 고추라 명명하게 된 것이다.
Tip
여행메모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진보에서 31번 국도로 갈아타면 청송 읍내다. 주왕산 입구의 대전사에서 아들바위를 거쳐 제1폭포를 돌아오는 등산로는 왕복 5.2㎞로 1시간30분 거리. 주왕산의 비경을 속속들이 감상하려면 절골 코스를 선택해야 한다. 절골매표소에서 대문다리∼가메봉∼내원마을∼제3폭포를 거쳐 대전사까지 14.9㎞로 5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청송군 문화관광과 054-870-6236.
김주영 소설 『객주』의 무대인 청송은 외지와 연결되는 4차로 도로가 없는 전국 유일의 군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 무대인 주산지 등 청정자연으로 유명하다. 상탕·중탕·하탕 등 10여 개의 약수터로 이뤄진
청송 꿀사과는 당도가 높고 과즙이 많은 육질이 단단해 신선도가 높다. 여느 지방과 달리 요즘이 출하 시기다. 매운맛과 단맛이 일품인 청송고추도 김장철을 앞두고 인기 다. 청송농협(054-872-7031)
덕촌민속마을의 송소고택은 청송 심씨 심처대의 7대손인 송소 심호택이 1880년께 건축한 고가옥이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큰 사랑채를 비롯해 작은 사랑채·안채·별채 등이 ‘ㅁ’자형으로 펼쳐진다. 체험 숙박도 가능하다. 요금은 방 크기에 따라 4만∼18만원. 054-873-0234.
위 치 :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333-1
홈페이지 : www.npa.or.kr/chuwang
관 리 청 : 국립공원관리공단 주왕산사무소 (054-873-0014~15)
주왕산 탐방안내소 (054-873-0018)
개 요 : 주왕산(720.6m)은 한반도 산맥의 중심 뼈대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이
국토 동남부로 뻗어나온 지맥에 위치한다.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3대 암산의 하나이다.
1972. 5. 30 관광지로 지정된 후 1976년 3월 30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
원의 총 면적이 105.582 평방km로 행정구역상으로 청송군과 영덕군의 2개군 5개면에 걸
쳐있고 북쪽에는 설악산과 오대산, 남쪽에는 경주, 서쪽에는 속리산과 덕유산 등의 국
립공원이 인접해있으며 태행산, 두수람, 가메봉등의 봉우리 외에도 주방계곡, 절골계곡,
월외계곡 등이 산재되어 있다.
급수대
시루봉
수백m 돌덩이가 병풍처럼 솟아있어 신라 때는 석병산이라 부르다가 통일신라 말엽부터
주왕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주왕산은 4군데의 폭포 외에 동굴, 대전사 및 부속 암자들
이 있어 천혜의 관광자원이 많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 달기폭포 )
달기약수탕에서 월외 계곡을 따라 약3km 거슬러 올라가면 높이11m의 장엄한 폭포가 앞
을 가로막는다. 주왕산의 제 1폭포를 여성에 비유하며 달기폭포는 마치 남성과도 같이
힘차다.
달기약수 상탕
달기약수 원탕
달기약수 중탕
( 달기약수탕 )
청송읍에서 동북쪽으로 3km거리에 있는 달기약수탕에는 하탕, 중탕, 상탕, 신탕을 비롯
해 10여개의 약수터가 개발되어 있다.
약수의 맛은 설탕을 첨가하면 사이다 맛이며 위장병, 신경통, 빈혈등에 효과가 있다 하
여 사람들이 줄지어 찾는 곳이다.
주왕산제1폭포
주왕산제2폭포
주왕산제3폭포
( 주왕산폭포 )
주왕산의 학소대 바로 위에 있는 3개의 폭포로 제 1폭포는 사면이 병풍바위로 둘러싸인
속에 옥같이 맑은 물이 쏟아지고, 바로 위에 선녀탕과 구룡소가 있으며, 그 1km 위에는
아담하고 주위 경치가 빼어난 제 2폭포가 있다. 왼편으로 500m 되는 곳에서는 웅장하고
거대한 2단의 제3폭포를 볼 수 있다. 이곳은 주왕산 국립공원의 핵심이라 하겠다.
주왕산국립공원계곡
학소대
( 절골계곡 )
주왕산 남동부 내주왕 계곡에 있는 조용한 장소로, 맑고 깨끗한 물이 사철 흐르고 있을
뿐 아니라 죽순처럼 우뚝 솟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별천지
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약 8km에 달하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외주왕산에 버금간다.
주왕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외부
주왕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 내부
이용시설 :
주 차 장 : 상 의 22,700평(대형 86대, 소형 183대)
약 수 탕 8,595평(대형 62대, 소형 110대)
야 영 장 : 상의 야영장 (경북 청송군 부동면 상의동)
편의시설 : 관리사무소, 탐방안내소, 휴게소
이용요금 : [문화재관람료]
구 분 어 른 청소년,학생,군경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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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인 2,000원 1,000원 600원
단 체 2,000원 800원 500원
대전사
탐방로
등산코스 : 1)주봉코스 : 9.2Km (4시간 30분)
상의매표소 -> 주왕산 -> 칼등고개 -> 후리메기 -> 제1폭포 -> 상의매표소
2)장군봉 코스 : 11.6Km (4시간 30분)
상의매표소 -> 장군봉 -> 금은광이 -> 제3폭포 -> 제1폭포 -> 상의매표소
3)가메봉 코스 : 14.6Km (7시간)
상의매표소 -> 제1폭포 -> 제3폭포 -> 내원마을 -> 가메봉 -> 상의매표소
4)월외 코스 : 13.5Km (4시간 50분)
월외매표소 -> 달기폭포 -> 너구마을 -> 금은광이 삼거리 -> 장군봉 -> 상의매표소
5)주방계곡 코스 : 9.2Km (3시간 30분)
상의매표소 -> 제1폭포 -> 제3폭포 -> 내원마을
입산통제 : 산불예방을 위해 개방 탐방로외 전지역 통제
기간 - 매년 춘계 3.1 ~ 4.30
매년 추계 11.15 ~ 12.15
개방등산로- ⊙주산지입구~주산지 ⊙제3폭포~대전사
⊙대전사~광암사 ⊙자하교~주왕암~학소교
⊙광암사~장군봉~금은광이
자연휴식년제 : 기암교∼자하교 (수달래군락지) (40,000㎡,식물군락지) ('06~'15)
야간산행 : 탐방객 안전과 산불방지 등 공원보호를 위하여 '91.11.15부터 야간산행(일몰 후부터 일
출 2시간 전)을 제한함.
도로안내 :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 -> 안동 -> 청송 방면 34번 국도 -> 37km -> 진보면 월전리에서
청송 방면으로 우회전 -> 31번 국도 -> 14.2km -> 청송 -> 4.6km -> 청운동에서 좌회전
-> 914번 지방도 -> 8.7km -> 주왕산 입구 주차장
현지교통 : 청송읍내에서 주왕산, 달기약수탕까지 시내버스 수시 운행.
절골계곡은 이전리행 시내버스 이용, 2시간 간격 운행
.
현지숙박 : 주왕산온천관광호텔(054-874-7000)
금강장여관(874-2121), 동성장여관(873-1222), 백운장여관(872-6400)
동원장여관(873-0808), 파라다이스장여관(872-8841), 코리아나여관(872-2881)
주왕산가든여관(874-4992), 주왕산장여관(873-5511), 파크장모텔(874-7080)
정보제공 : 경북 국립공원관리공단 주왕산사무소(054-873-0014~15)
주왕산의 교통 , 숙박
기점 교통, 숙박
교통
승용차를 이용할 경우 중부고속 이천IC에서 빠져 장호원, 제천, 안동을 거쳐 청송 도착.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를 경유 원주에서 영주로 내려간 뒤 36번국도(영주∼울진)를 이용해 봉화∼영양∼청송에 닿는 코스. 중부고속도로 증평IC에서 나와 괴산과 문경, 안동을 경유해 청송에 도착한다.
서울 동서울종합터미널(02-456-3181)
07:20, 08:50, 11:10, 13:40 출발하는 주왕산행 직행버스를 이용. 6시간 소요. 열차나 버스를 이용 안동이나 대구에서 청송으로 간다.
시내버스
청송읍내에서 1일 65회 운행하는 주왕산행 시내버스 이용. 20분 소요. 택시는 주왕산 입구까지 10,000원 균일. (054)872-7002 삼성택시.
전국일주횟집 송어회무침덮밥((054)873-3110) 전국일주횟집은 그 맛에 앞서 그림 같은 풍경이 즐거운 식당이다. 통나무 울타리 안으로 검정색 지붕이 덩그렇게 올라앉아 있어 목가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며 주위에 늘어선 사과나무 과수원은 한층 풍요롭고 싱그러운 느낌을 준다. 청송에서 주왕산 가는 길의 중간쯤 되는 지점인 송생리에 있다. 이 지역에서 양식한 송어로 만든 요리가 전국일주횟집의 주된 음식이며 특히 송어회무침덮밥이 유명하다. 이 집은 송어회, 밥, 나물, 각종 양념들을 따로 내 놓아 각자의 기호에 맞게 비벼먹도록 배려했다. 송어는 고단백 영양식품으로 성장기 어린이의 발육과 지능발달에 도움을 주며, 각종 노인성 질병 예방을 비롯해 항암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송여관식당 약백숙((054)823-2267) 달기약수탕은 거의 모든 집이 닭백숙을 한다. 그중 청송여관식당이 유명한 편이다. 위장병, 신경통, 만성부인병, 빈혈증 등 에 효험이 있다고 하는 달기약수를 넣어 만든 약백숙은 파르스름한 빛을 띠며 고기가 부드럽고 연한 특징이 있다. 이외에도 오골계백숙, 황기백숙, 삼계백숙도 인기가 높다. 이 집주인인 정애자씨는 음식을 만들 때 재료를 아끼지 않으며 밑반찬도 푸짐하게 내 놓아 단골들에게 마음씨 좋은 넉넉한 아줌마로 알려져 있다.
내원산방 도토리묵 내원동 마을에는 안주인 김희숙씨의 맛깔스런 음식솜씨로 유명한 음식점인 내원산방이 있다. 도토리묵, 야채전, 보리밥 같은 소박한 음식이 주요 메뉴지만 정갈하고 맛깔스러운 특징이 있다. 내원산방에서는 숙박이 가능하며 40여 장의 침낭이 준비되어 있다.
토속주 - 명일식당 사과동동주 명일식당 사과동동주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사과로 빚어낸 술에 인삼·더덕·생강 등을 넣어 만든 것으로 흔히들 사용하는 약주(藥酒)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술이다. 이밖에도 산채비빔밥, 황기백숙, 산더덕구이, 표고찌개, 약물백숙을 만들어 팔며 특히 산채비빔밥은 이 집주인이 자부심을 가지고 만든 것으로 중국산이 아닌 순수 국산 산채를 써서 만들었다고 한다.
주왕산의 명소
대전사(大典寺) 주왕산 입구에 위치한 대전사는 뒤에 솟아 있는 山 형상의 기암과 어울려 멋진 절경을 이루는 사찰이다. 고려 태조 2년(919) 보조국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주방사(周房寺)로 나와 있는 대전사의 당우들은 거의 모두 불타 버리고 현재 보광전과 명부전만이 남아 있다. 보광전 앞에 2기의 석탑이 있는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파편들을 모아다가 엉성하게 조립해 놓은 것이지만, 불상들의 부조(浮彫)가 섬세하여 관심을 끈다.
백련암 주왕의 딸인 백련낭자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오는 여승방. 대전사를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주방천을 건너 200m 정도 올라가면 있다. 절 툇마루 오른쪽에 사명대사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있다. '
연화암 제1팔각정을 지나 왼쪽으로 조금 가면(관리사무소에서 2420m) 연화사 입구가 나온다. 왼편 산길을 따라 150m쯤 가면 철거된 연화사터 바로 옆에 있다. 옛날 주왕이 군사를 훈련시키던 곳이라고 하며, 주왕의 딸 백련낭자가 성불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길이 15m, 폭 5m 가량의 천연 암굴이다. 굴 뒤의 협곡을 우회하여 오르면 바위 사이로 조그만 폭포가 흘러내린다.
기암(旗岩) 주방천 입구에 솟아 있는 주왕산의 수문장이며 얼굴 격인 높이 45m의 큰 암봉이다. 주왕이 마일성 장군 형제와 싸울 때 이엉을 덮어 노적가리로 허장성세했고, 마 장군이 점령해서는 대장기를 꽂았다는 전설이 있어 깃발바위, 즉 기암봉이라고 한다. 마치 게양대와도 같고, '山'의 상형문자 같기도 하다. 자연의 솜씨로 세운 비석 같은 암봉 정상에는 10여평의 풀밭이 있다. 기암 절벽 중심부의 움푹 파인 것은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바위가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기암 정상은 전망대 같은 곳이다. 외주왕 일원의 기암절벽과 암봉들뿐 아니라 청송, 영덕 일원의 산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기암 오르기 : 대전사 뒤 상가단지를 지나 다리를 건넌 다음 100m쯤 더 가면 계곡가에 둥그스름한 바위가 보인다. 돌을 던져 바위 위에 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다. 이 지점에서 탐방로 왼쪽의 너덜길을 따라 오르면 기암 뒤편의 안부에 이른다. 안부에서 기암 정상까지는 가파른 절벽 구간. 턱이 많이 져 있기는 하지만 워낙 급한 급경사이므로, 로프로 확보하면서 오르는 것이 안전하다. 기암 정상에 올랐다 다시 탐방로로 내려서는 데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아들바위(産神岩) 대전사 뒤 상가단지를 지나 다리를 건넌 다음 탐방로를 따라 100m쯤 가면 길 오른쪽 계곡가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 바위를 등지고 남자는 오른손에, 여자는 왼손에 돌을 집어 허리를 굽힌 채 가랑이 밑으로 던져 아들바위에 얹히면 아들을, 떨어지면 딸을 낳는다고 전한다.
주왕암(周王庵)과 주왕굴 <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산에 주방사가 있다고 기록돼 있는데 주왕암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학루(駕鶴樓), 나한전(癩漢殿), 신령각, 산신각 등이 관음봉을 배경으로 기와에 청태를 인 채 고색창연하게 앉아 있다. 신령각 옆으로 해서 오른쪽의 가파른 협곡을 올라가면 능선을 거쳐 주왕산 정상에 오른다. 주왕암에서 협곡을 지나 철제계단(약 100m 거리)을 오르면 30여 길 높이의 절벽에 바위굴과 굴 왼쪽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보인다(가물 때는 건폭). 주왕이 이곳에서 숨어 살다가 흐르는 물에 세수하러 나왔을 때 마(馬) 장군의 화살과 철퇴에 맞아 죽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는 굴이다. 폭포가 굴 입구를 가리고 있어 굴안에 숨어 있는 주왕을 찾을 길 없었는데, 폭포의 뒤를 의심한 마장군이 신통력을 부려 물줄기를 왼쪽으로 돌리고 주왕을 찾아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무장굴 주왕암의 가학루 못미처 오른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는 바위굴. 길이 16m, 폭 2m의 동굴로 주왕이 갑옷과 무기를 놓아두었던 곳이라고 전해온다. 가을철 단풍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학소대(鶴巢臺) 제1폭포 직전 휴게소 뒤편에 솟아 오른 기암절벽으로 청학과 백학이 떼지어 살았다는 곳으로, 해방 전 정상 부근에 청학과 백학 한 쌍이 살았데, 어느 날 일본인 포수가 백학을 잡아버리자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춰 버렸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학소대 밑에는 옛날 암자가 있었다 전한다. 그런데 암자에서 머물던 고승이 잠을 자다 꿈속에서 도사로부터 빨리 피하라는 명을 받고 절을 급히 뛰쳐나오자마자 바위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절이 바위에 깔려 없어졌다고 한다. 학소대 오른쪽의 바위는 마치 병풍을 세운 듯 바르게 솟아 있어 병풍바위라 부른다.
급수대 주방천계곡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암절벽인 급수대는 망월대에서 약 50m 떨어져 있는 높이 30여m의 수직암벽을 말한다. 옛날 주왕의 군사들이 암벽 꼭대기에 자새장치(급수기)를 설치해 놓고 계곡의 물을 길어 올렸다 하여 급수대 또는 자새대라는 이름이 전해 온다. 수직을 넘는 암벽이 위압감을 준다. 급수대에는 무열왕 6대 손인 김주원이 은신해 꼭대기에 대궐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제1폭포 학소대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사방이 암벽에 둘러싸인 방 같은 곳이 나타나고, 그 동쪽 맞은편으로 바위를 가르며 폭포가 쏟아져내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옆에 암벽을 깨뜨리고 만든 시멘트다리가 놓여져 있다. 옛날 폭포에 다다르자면 쇠사슬을 붙잡고 오르내려야 했는데, 일제때 내원동에 제탄전습소를 세우기 위해 차도를 개설하느라고 크게 훼손했다. 제1폭포 바로 위에 있는 탕을 선녀탕(仙女湯), 선녀탕 바로 위의 소를 구룡소라 한다.
제2폭포 제1폭포에서 2km 상류에 위치한 제2폭포는 상하단으로 나누어진 폭포로 2단 연폭으로 물이 떨어지는 곳에 아담한 탕을 이루며, 신비스런 자태를 지닌 극히 여성적인 폭포다.
제3폭포 제1폭포에서 내원동 쪽으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제3폭포는 2단 폭포로 주왕산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두 줄기의 2단폭포가 연이어 나란히 쏟아지면서 비말로 이루어내는 5색 무지개는 조화옹의 걸작이라 하겠다. 장마철에는 두 줄기 물이 한데 합쳐 웅장한 2단폭포가 된다. 영덕의 바닷물과 통하여 용이 머물고 있었다고 전하며, 그래서 용폭이라고도 한다. 상하단 모두 아래에 시커먼 물이 고인 깊은 소가 자리해 사고예방을 위해 철책을 친 관망대를 설치하였다.
내원동마을 대전사에서 주방천을 따라 1시간쯤 올라 제3폭포를 지나면 바위협곡을 벗어나고 이어 하상 넓은 골짜기를 따라 20~30분 오르면 계곡 개활지가 나타난다. 내원동이라 불리는 이곳은 아직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물론 국립공원 구역 내이기 때문이다. 내원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란 때 왜구의 침범을 피해 들어온 주민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면서부터였다. 그 후손들이 대를 이으며 일제 때는 70여 가구, 6·25전쟁이 끝나고도 50여 가구가 살았다 한다. 하지만 지금은 9가구 15명, 그것도 반쯤은 10여년 새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다. 내원동은 아직도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다. 흙집에서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식탁에 오르는 반찬은 산나물과 약초가 거의 전부다. 전기가 없다 보니 냉장고가 당연히 없고, 따라서 생선이니 고기니 하는 음식은 어쩌다 장보고 돌아온 날 저녁 한끼뿐이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을 불평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산다. 낮에는 푸르른 수림 혹은 하얀 눈을 벗삼고 밤에는 별과 반딧불을 동무삼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산나물과 지짐이, 약술들을 파는 음식점들이 몇집 들어서 있다.
달기약수탕 청송읍에서 동쪽 약 3km 떨어져 있는 달기약수는 조선 철종 때 금부도사를 지낸 권성하(權成夏)가 수로공사 중 바위 틈의 버드나무를 뽑자, 가스와 함께 물줄기가 솟아 이상히 생각하고 물맛을 보았더니 속이 편하여 그 후부터 약수로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또한 일설에 닭이 바위를 쫀 그 자리에서 물이 솟았다 하여 달기약수라 한다고 한다. 또한 물이 가스와 함께 솟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 역시 닭의 울음소리로 들린다고 한다. 빈혈, 위장병, 관능선신경질환, 만성부인병에 효혐이 높다고 한다. 이 물에 밥을 짓고 닭을 고아 먹으면 약이 된다고 한다. 특히 약물로 닭백숙을 해먹으면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다 하여 약수터 주변에는 약수백숙 전문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하탕에서 380m 지점에 중탕이, 중탕에서 300m 지점에 상탕이 있으나, 하탕의 약효가 으뜸이라 하며 가장 붐비고 있다. 달기약수가 널리 알려진 것은 30년 전 고인이 된 김석이 노인의 노력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탕(하탕) 약수터 옆의 안내판에 써 있듯이 45년 동안 약수터 옆에서 엿을 팔면서 약수를 관리해온 김 노인은 약수터 옆에 있는 무게 104.2kg의 '들돌'을 드는 사람에게 약물을 먼저 마시게 했고, 덤으로 엿까지 얹어주었다 한다. 그 사이 달기약수의 명성이 더욱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달기약수에서는 매년 음력 3월 그믐날 약수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영천계를 근거로 1947년부터 열린 약수제는 6·25 동란 때 계안이 분실되면서 사라졌다가 1962년 다시 계안이 만들어지면서 마을 행사로 자리잡았다가 1993년 제32회 때부터는 청송군민 문화 행사로 승격, 들돌 들기, 팔씨름, 엿치기 등 민속 행사가 열리고 있다. 달기약수행 노선버스는 청송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7:25부터 18:25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요금 900원. 전화 (054)873-2036.
달기약수 찾아가는 법 달기약수행 노선버스는 청송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7:25부터 18:25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요금 900원. 전화 (054)873-2036. 달기약수행 노선버스는 청송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7:25부터 18:25까지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요금 900원. 전화 (054)873-2036.
달기폭포 월외(月外)폭포라고도 불리는 달기(達基)폭포는 월외계곡 중간에 위치한 높이 11m의 폭포로, 양옆이 절벽을 이루고 있어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폭포 아래 용소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하나 일제 때 목탄을 끌어내리면서 돌이 쏟아져내려 메워졌다 한다 월외 마을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 콘크리트 포장도로 오른쪽에 위치, 폭포를 제대로 보려면 도로에서 오른쪽 탐방로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서야 한다.
주산지 청송 주왕산 남쪽 부동면 이전리에서 2km 동쪽으로 들어간 계곡에는 물속에 허리가 잠긴 채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기이한 풍광의 저수지 주산지가 있다. 나무들은 물에 잠기면 거의가 죽는데, 이곳의 나무들은 수분을 좋아하는 버드나무 수종이어선 지 멀쩡히 살아 있다. 이 주산저수지가 생긴 것은 조선 중기다. 1720년(경종 원년) 8월 착공하여 이듬해 완공하였다. 그러니 이곳의 나무들은 물에 잠긴 채로 300년간 살아온 셈이다. 주산지의 면적은 약 6,000평, 길이 100m, 너비 50m, 수심은 10m쯤 되는 아담한 저수지다. 이 저수지 기슭으로 아름드리 고목들이 허리를 물에 담근 채 살아가고 있다. 저수지 옆에는 주차장이 있으며 일부 비포장 도로이긴 해도 승용차도 조심하면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청송 주산지
주왕산 주산지는 화려한 단풍과 파란 호수가 인상적인 여행지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보여진 것처럼 몽환적 느낌의 호수는 누가 뭐래도 비경 그 자체다.
호수의 크기는 1만평 정도로 그리 크지 않다. 1720년 이공이란 사람이 하류의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인공 저수지라는데, 속세의 세월을 뛰어넘는 태고의 흔적인 듯 풍광이 신비롭다. 아무리 가물어도 쉽게 바닥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하니 이 또한 놀랍기 그지없다. 저수지엔 현재 20여그루의 왕버드나무가 물속에 뿌리를 박은 채 자라고 있다.
이 중 10여그루는 300~500년 된 고목들이고, 몇 그루는 그새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죽은 것들이다. 고사목 때문에 황량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 자체로 신비롭고 아름답다. 물속에 뿌리내린 왕버들의 자태와 수면 위로 은은하게 비친 물그림자는 신비 그 자체다.
저수지 가득 피어오르는 물안개 속으로 30여 그루의 버드나무가 세월이 지나간 몸뚱아리로 지나간 나날을 이야기한다. 물의 정령에게 기운을 빼앗겨 앙상해진 고목, 단풍으로 갈아입은 나무가 제 모습을 호수에 쏟아내면서 주산지는 절경을 펼쳐낸다.
단풍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정읍의 내장산이다. 20여종의 단풍나무가 이루어내는 절경으로 가을의 메타포가 된 산. 내장산 단풍은 작고 붉은 것이 특징이다. 이름하여 아기단풍이라 불리는 단풍나무가 내장산 단풍의 주역이다. 엄지손톱만 한 것부터 약 65mm의 아기 손바닥마한 것까지 잎이 5~7갈래로 갈라지며 내장산 일대를 빨갛게 불태운다.
주왕산 721 m [국] 경북 청송군 영덕군
주왕산은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있는 우리나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경북 제일의 명산으로 산의 모습이 돌로 병풍을 친것 같다하여 옛날에는 석병산이라 불리기도 하다가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주왕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주왕산은 신라말부터 주왕이 은거하였던산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주왕은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으로 진나라의 회복을 꿈꾸며 반역을 일으켰으나 당나라 군사에게 패하여 이곳 석병산 까지 쫓기어 왔습니다. 이에 당나라 왕이 신라왕에게 주왕을 잡아달라 요청하여 주왕은 이곳에서 신라장군(마장군 형제들) 에 의해 주왕굴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주왕산의 특징은 산 이름을 주왕이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주왕산은 주왕과 관련된 전설의 산이기도 합니다.주왕굴에서 생을 마친 주왕에게는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 현재 주왕산 내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주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중에 하나입니다.주왕산에슨 다양한 볼거리가 있습니다. 천년고찰인 대전사를 비롯한 사찰과 아름다운 계곡, 폭포와 굴이 있으며, 주왕산(720m), 가메봉(882m) 등의 산봉우리가 있습니다. 또한 공원내에 달기약수터와 아름다운 주산저수지(主山地)가 있습니다. 주왕산은 대전사 뒤편에 솟아있는 기암(旗岩)을 비롯하여 이곳 주방천 좌우로 도열해 있는 병풍바위, 급수대, 시루봉, 학소대 등의 기암괴봉과 제1,2,3폭포가 한데 어울러져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주왕산 3대 계곡중의 하나인 절골계곡은 사람의 발길이 적어 아직도 원시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인근에 수 백년 됨직한 왕버들이 물속에 자라고 있는 주산지는 한폭의 수채화 같답니다. 또한 월외계곡에는 하늘에서 물기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달기폭포가 있으며 주왕산 계곡마다 아름답고 장엄한 경관이 펼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합니다. 주왕산국립공원은 세계적 희귀수목인 망개나무를 비롯하여 둥근잎 꿩의 비름, 솔나리, 노랑무늬붓꽃 등 식물자원 888종과 수달, 너구리 등 동물자원 902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주왕산 산길은 대전사 앞 상의주차장과 달기약수 쪽 월외통제소 그리고 절골통제소에서 오를 수 있다. 먼저 상의주차장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주왕산의 가장 일반적인 산행코스이다. 주방계곡을 끼고 시작해 주왕산의 대표적인 명승지인 1·2·3폭포를 둘러본 후 내원마을까지 산책로가 연결된다. 거리 11.4㎞의 왕복소요시간은 약 4시간20분. 상의주차장에서의 또 다른 코스는 주왕산 주봉을 거치는 원점회귀코스이다. 대전사에서 시작하여 두 개의 폭포를 지나 후리메기로 들어서서 칼등고개를 오른 다음 주왕산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대전사로 내려서는 길이다. 소요시간은 4시간30분 정도이다.월외통제소에서 출발하는 코스는 달기폭포를 지나 너구마을∼금은광이삼거리∼장군봉을 거쳐 상의주차장으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거리는 13.2㎞로 약 5시간이 소요된다. 절골통제소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대문다리를 거쳐 가메봉에 오른 다음 1·2·3폭포를 거쳐 상의주차장으로 하산할 수 있다. 약 6시간20분이 소요되는 코스로 가메봉까지 오르는 데만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단 하산코스는 후리메기에서 칼등고개로 꺾어 정상을 오른 뒤 대전사로 내려서도 무방하다. 양쪽코스 모두 하산 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이 중 내원마을을 거쳐 가메봉∼절골∼주산지 코스를 소개한다. 지금은 모두 민가가 철거당한 내원마을을 지나 완만한 비탈을 1시간 올라가면 가메봉이 보이는 안부에 닿는다. 가메봉은 바위봉우리지만 정상에 오르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다. 안부에서 능선의 반대편으로 내려서는 길이 내주왕 계곡으로 가는 길이다.1시간 정도 완만한 비탈을 내려서게 되는데 중간에 무덤이 2기 있다. 대문다리라고 하는 너른 웅덩이는 갈전골과 절골이 만나는 합수점이다.이곳부터 절골 매표소까지 내려가는 길은 별다른 안전시설물이나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뚜렷한 길이 없기에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되는데 물을 여러 번 건너야 하고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는 곳도 있어 비가 많이 올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원시의 계곡과 같은 내주왕산 절골은 계곡산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제 1코스 (5:30) 상의매표소-대피소-제3폭포-금은광이-월외2리-달기폭포
제 2코스 (장군봉 코스2:00) 상의매표소-대전사-백련암-광암사-장군봉-월미기-금은광이
제 3코스(내원마을 코스 4:00) 상의매표소-대전사-2폭포입구-후리메기-사창골-가메봉-내원마을-3폭포-상의매표소
제 4코스(3:45) 상의매표소-대피소-칼등고개-주봉-매표소 제 5코스(가메봉코스6:40) 절골매표소-신술골입구-대문다리-가메봉-대피소-상의매표소 제 6코스(주왕상 정상 원점회귀 코스9.2Km 4:00) 상의매표소 -대전사-주왕산 갈림길-대피소-후리메기-칼등고개-정상-대전사 제 7코스 (금은광이 코스 9.3Km 4:00 ) 상의매표소-대전사-주왕암갈림길-대피소,3폭포-금은광이 삼거리-너구마을-달기폭포-노루용추-월외매표소
도로정보 서울:영동고속도⇒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서안동IC⇒34번 국도⇒안동⇒청송 부산·대구:경부고속도로⇒영천IC⇒35번국도⇒현서⇒현동⇒31번국도⇒주왕산
대중교통 동서울터미널·부산노포동터미널⇒ 청송터미널(054-873-2036)⇒주왕산 하루 60여편 열차(중앙선):안동에서 하차하여 버스로 이동.
절골 입구에는 마땅한 숙박시설이나 음식점이 없으므로 상의지구의 업소를 이용하도록 한다. 대전사 입구 식당들은 대부분 산채를 재료로 삼는 음식을 만들어낸다.
약수백숙 청송읍에서 동쪽으로 약 3㎞ 떨어져 있는 달기약수는 위장병, 신경통, 빈혈 등 성인병 치료에 효험이 높다는 약수다. 특히 약수로 닭백숙을 해먹으면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다 하여 약수터 주변에 약수백숙 전문 음식점들이 성업중이다. 토종닭, 엄나무, 황지, 표고버섯가루, 찹쌀, 녹두, 마늘, 대추 등을 압력솥에 함께 끓여내는 건강식으로, 토종닭백숙 30.000원, 토종닭불백숙 30.000원, 육계백숙 16.000원, 찜닭 15.000원이다.
주산지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으로 알려진 인공 저수지로, 조선 숙종 때인 1720년에 쌓기 시작해 경종 때인 1721년에 완공되었다. 길이 100m, 너비 50m 정도의 조그만 호수로,150년이 넘은 왕버들이 물속에 잠겨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이맘때면 한창 신록이 피어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곳이다. 별도 입장료는 없다.
높이 : 720.6m 위치 : 경상북도 청송군, 영덕군 면적 : 105.582㎢ 특징 : 소금강이라 불리는 경북 제1의 명승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이 빚어내는 절경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의 3대 암산 중 하나다. 1972년 5월30일 관광지로 지정된 후 1976년 3월30일 1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경북 제일의 명승지 주왕산(周王山)은 예로부터 석병산(石屛山), 대둔산(大遯山), 주방산(周房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 오는 경북 제일의 명승지다. 주방천(周房川)의 아름다운 계류와 폭담(瀑潭), 그리고 평지에서 툭 솟구친 듯한 암봉과 기암괴석, 여기에 울울창창한 송림이 한 데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빚어냄으로써 일명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어지기도 했다.
주왕산국립공원 하면 자칫 주왕산 하나만을 생각하기 쉬우나, 국립공원 전체를 놓고 볼 때 주왕산은 전체 면적의 10분의 1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주왕산은 북으로 태행산(933.1m), 대둔산(905m), 대관령, 우설령, 무장산으로 이어지며 크게 휘돌아치는 산릉의 중심에 위치한 하나의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산릉 가운데 으뜸 가는 산세는 역시 주왕산이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주왕산을 기준으로 석름봉(왕거암·893m), 먹구등(846.2m), 금은광이(812.4m) 등, 800m 안팎의 산봉들이 말발굽형으로 연결되어 자연성곽 같은 멋진 산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주왕산 등산로 잇기
어떻게 엮든지 기암 계곡은 꼭 포함시켜야 주왕산 등산로는 기암 경관지인 주방천을 기준으로 여러 가닥 나 있다. 가장 대표적인 탐방로는 대전사~제3폭포~내원동 코스로, 기암, 급수대, 학소대, 제1폭포, 석문, 제3폭포와 함께 '성안마을' 내원동까지 세세히 살펴볼 수 있는 코스다.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쉬엄쉬엄 오르더라도 왕복 5시간이면 족하다.
그러나 탐승과 산행의 묘미를 함께 맛보려면 주왕산 정상에 올랐다 칼등고개를 거쳐 후리메기로 내려선 다음 역시 주방천 절경을 탐승하고 돌아오는 코스가 적합하다 하겠다. 주방천을 골짜기 탐방로를 따르면서 보는 즐거움도 좋지만, 산등성이에서 내려다뵈는 주방천변의 기암괴봉 풍경도 역시 대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힘이 좋은 이들은 칼등고개에서 왕거암까지 뽑은 다음 큰골을 타고 내원동을 거쳐 주방천 탐방으로 산행을 종료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주왕산 국립공원의 일반 등산로
너구동기점 달기약수지구와 상의리 대전사 지구를 잇는 도로 변의 달기 마을에서 동쪽 약 5km 지점에 위치한 너구동 마을은 태행산과 대둔산 산행의 기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금은광이고개 코스의 기점으로 삼는다. 금은광이고개에서는 제3폭포 위 능선으로 내려서거나 혹은 남서릉을 타고 장군봉으로 향한다.
달기약수에서 동쪽으로 약 8km 떨어져 있는 너구동은 예전 여러 가구가 살았던 큰 부락이었으나 지금은 열 가구에도 채 못 미치는 산골 부락이다. 따라서 필요한 물품은 청송이나 달기약수지구에서 구입한 다음 들어서야 한다.
대전사 기점 주왕산 등산로는 사실 대전사 기점의 등산로가 거의 모두라고 할 수 있다. 주왕산 탐승객들의 거의 대부분이 대전사 기점의 코스로 흡수된다.
대전사 기점의 등산로중에도 가장 인기 높은 것은 단연 기암계곡을 꿰는 대전사~내원동마을 코스다. 이 코스로 하여 내원동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 가장 오래된 일반 코스다. 조금 더 걷는 수고를 하여 주왕산 정상을 다녀오는 이들이 그 다음으로 많고, 체력에 자신이 좀 있는 사람들은 정상을 밟은 뒤 가메봉까지 가서 내원동마을로 내려선 다음 대전사로 빠져나오는 긴 길을 택하기도 한다.
상이전 기점 상이전마을에서 뻗는 등산로는 절골 코스와 주산지 코스 두 가닥이 있다. 이중 절골매표소에서 절골로 하여 가메봉으로 잇는 절골 코스가 인기 높다. 이 코스는 안전 시설이 거의 없고 길 찾기도 까다로우므로 초행자는 길을 주의 깊게 찾아가야 한다. 주산지로 하여 별바위로 이어지는 코스는 이용객이 별로 없다. 별바위 서쪽의 우설령에서 능선을 따라 별바위까지 올라가 바라보는 조망이 뛰어나지만 비정규 코스여서 관리사무소가 출입을 제한한다.
주왕이 신라의 마장군과 싸울 때 군량미처럼 보이기 위해 낱가리를 둘렀다는 기암을 배경으로 대전사는 한폭의 그림이다. 67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임진왜란때는 사명당이 승군을 모아 훈련시켰던 곳으로도 유명하며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낸 친필의 목판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주왕산 단풍객
▲ 주왕산 급수대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중대 및 각부 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한 곳이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없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 주왕산 급수대 아래 단풍객
▲ 주왕산 학소대
학소교를 굽어보고 있는 큰 바위 봉우리로 청학과 백학이 떼를 지어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경사 90도의 가파지른 절벽의 모습을 한 학소대(鶴巢臺)는 급수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있다.
▲ 주왕산 시루봉
주왕산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같아서 시루봉이라 불리우는데 밑바닥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시루봉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고로 얼굴산이라고도 부른다.
▲ 형상이 마치 연꽃봉오리같아 연화봉이라 부른다.
▲ 학소대를 마주 보고 있는 병풍바위.
마치 병풍을 세운듯하여 병풍바위라 부른다
▲ 주왕산 제1폭포길
▲ 주왕산 제1폭포.
▲ 주왕산 제2 폭포.
▲ 제1폭포에서 내려다 본 학소대 다리와 기임절벽이 있는 풍경
▲ 주왕암
주왕굴입구 촛대봉 아래에 제비집처럼 날렵하게 지어진 암자로 대전사에서 주방천을 따라 오르다가 첫 번째 휴게소에서 오른쪽 다리를 건너면 주왕암으로 가는 길이다. 이 길은 단풍나무가 많아 단풍이 아름답다. 처음 주왕산을 찾는 등산객은 일반적으로 이곳을 그냥지나치고 제1폭포 방향으로 오르는데, 안보면 후회할 만한 곳이다.
주왕암 입구에 서면 사면이 바위 봉우리에 쌓여 하늘만 보이는 좁은 협곡의 촛대봉 아래 주왕암이 걸려있는 듯하다.
▲ 주왕굴 오르는 길
주왕암 마당에 올라 오른쪽으로 좁은 바위틈 길이 주왕암 가는 길이다. 촛대봉 아래 깊은 계곡으로기암괴석과 단풍이 우거진 계곡으로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 주왕굴
주왕굴은 밖에서는 안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숨겨진 장소로 주왕이 마장군에게 쫓겨서 숨어 살았던 동굴이라는 전설이 전한다. 주왕암 마당에 올라 오른쪽의 좁은 바위틈 길이 주왕암 가는길이다. 철제 계단으로 이어지는데 두사람만 지나도 어깨가 부딪칠 정도의 좁은 협곡에 놓인 철계단을 ㄱ자로 오르면 눈앞에 주왕굴이 보인다.
50여m 되는 절벽 하단에 세로 5m, 가로 2m, 깊이는 3m도 되지 않는다. 절벽에서는 폭포가 쏟아져 무지개를 만들고, 이물은 약수로 음용이 가능하다. 굴에는 주왕형상(?)의 신선이 안치 되어있다.
내려오는 길에.... 경운기 보다 더 예쁜것 같습니다.
주왕산 안내도
주왕산(周王山 : 720.6m)은 우리나라 중앙부에 해당하는 태백산맥의 지맥에 위치하고, 경북의 청송군과 영덕군 지역에 걸쳐져 있으며, 1976년 3월 30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 되었고 지정 면적은 총 107.425㎢에 달한다.
이곳에는 뛰어난 자연경관 요소가 많은데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학소대,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가졌던 기암,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하였다는 망월대, 주왕이 숨었다가 숨진 전설의 주왕굴, 그리고 폭포, 약수 등 탐방객을 매료 시키는 곳이 많이 있다.
특히 주왕암에서 별바위에 이르는 약 13㎞의 숲은 미로의 원시를 방불케 한다. 문화재로서는 약 1,300년전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창건한 대전사,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백련암 등을 들 수 있다.
주왕산의 유래
주왕산은 역사적으로 신라시대에는 석병산, 신라말부터 주왕산으로 불리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주방산 또는 대둔산(시증동국여지승람1530, 대동여지도1861,청송군읍지1861), 주왕산(양양기구록1757, 주왕산지1833)으로 불리었다. 이러한 기록은 관에서 발간된 문헌들은 주방산, 대둔산으로 불렀으나, 민간에서 발간되는 문헌에서는 주왕산으로 불린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는 주왕전설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그 후 청송군지(1937)에서 공식적으로 주왕산으로 기록한 후 정식으로 지명을 가지게 되었다.
신라 선덕왕의 후손인 김주원이 이곳에 와 있었다 하여 주방산이라 하였고, 신라말엽 중국 당나라 사람 주도가 자칭 주왕이라 칭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한뒤 이곳으로 패주하여 은거하였다 하여 주왕산으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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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오르는 특별한 아름다움...... (080809)
가을이 되면 더욱 아름다운 산인 주왕산을 여름에 이렇게 다녀왔다.
좀더 시간이 흐르면 울긋불긋 때때옷으로 가라입을 이 산이지만 아직은 푸르름이 가득한 주왕산의 모습도 보기 싫은 것은 아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편안한 산행을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 주왕산 국립공원 입구
조금은 복잡한, 어느 유명한 산에서나 볼 수 있는 각종 음식점들로 약간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모습이 내가 본 주왕산의 첫 이미지이다. 너무나 기대감이 컷던 탓일까?
주왕산이 나에게 줄 커다란 선물을 개봉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린양 그렇게 출발하는 내 자신이 그 당시에는 정당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을까? 북적거리던 가게들도 하나둘씩 줄어들고 푸르름만 눈 앞에 들어왔을 때 주왕산의 모습이 여기서 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주왕산 탐방코스는 크게 3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먼저 1.상의리에서 출발하여 제1폭포에서 3폭포를 거쳐가는 코스와 2. 주산지 입구의 절골탐방센터에서 올라가는 코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3.월외리에서 달기약수탕과 달기폭포를 거쳐 올라가는 코스이다. 물론 중간중간에 샛길들이 많아 무수히 많은 등산코스는 있지만 시작지점을 기준으로 정리해 본다.
그중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상의리 코스를 오늘 여행의 시작점으로 제1폭포와 2,3폭포까지의 여행이다. 여행사에서 단체로 오는 관광객들은 상의리에서 제1폭포까지만 구경하고 돌아오는 코스로 정해진 곳이 많다.
▲ 대전사와 주왕산의 기암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진 만큼 대전사에서는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다.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질 만도 한데 찾아오는 사람들은 2,000원이라는 금액으로 하루의 평온함을 잃어버리기는 싫은듯 혼잣말로 넘어가는 듯 하다.
주왕산의 상징인 기암과 대전사의 모습은 가히 기억에 남을만큼 인상적이다.
푸르른 하늘과 함께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풍광이다.
그리 비중을 두지는 않았지만 이왕 이곳을 거쳐가는 김에 대전사에 대해서도 잠시 알아보자.
대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672년 (신라 문무왕12) 의상이 세웠다는 설과 919년 (고려 태조12) 눌옹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내기>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 장군 오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이 붙였다고 한다. 또한 신라의 주원왕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창건 이후의 자세한 역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방사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과 주왕암이 있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이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펴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 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주요 건물로는 보광전과 명부전, 산령각, 요사채 등이,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과 사적비, 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은 정면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유정에게 보냈다는 친필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보광전 앞의 석탑은 근처에 흩어져 있던 석탑재를 짜맞춘 것이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에게 올리는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뒷날 한 도사가 와서 불이 난 이유를 설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이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메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두산백과사전)
자, 이렇게 대전사에 대해서 조금 둘러보고 다시 산행으로 들어가 보자.
우선은 제1폭포를 목표지점으로 잡는다. 중간중간 정상으로 향하는 샛길들이 많이 보이지만 목표는 무조건 제1폭포 방향이다.
▲ 제1폭포로 향하는 길은 편안한 길로만 되어 있다.
▲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물반 고기반.
▲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에도 들어가 있는 아줌마들
주왕산의 계곡은 철저한 보호속에 관리되고 있다.
길 가장자리에는 출입을 금지하는 울타리가 쳐져 있으며, 항상 순찰하는 관리인들이 오토바이를 이용해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힘일까?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 경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어이 계곡으로 내려가 발을 담그고 노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중간중간 신고 전화가 걸려 있어 쉽게 신고할 수도 있지만 이내 관리인들에 의해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 이쯤에서 주왕산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주왕산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앞서 대전사에서 잠시 언급했으므로 패수!!!
주왕산은 태백산맥 지맥에 위치한 경북 청송군과 영덕군에 걸쳐 있고 1976년03월30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105,582 Km2이다. 이 지역의 지형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형성되어 차별침식과 암석절리에 의한 산세와 기암괴석, 폭포 및 소 등이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경관미를 보여주며, 경북 제1의 절경지로 손꼽힌다. 또한 왕거암에서 별바위에 이르는 13Km의 숲은 미답의 원시림을 방불케하며, 희귀식물인 망개나무, 내주왕 계곡의 난티나무와 복장나무, 월외동의 자작나무 군락, 소나무 군락 등 식생이 풍부한 산이다.
이곳에는 주왕산 수달래의 전설이 전해온다.
수단화 또는 수달래라는 이 꽃은 다른 지방에서는 좀처럼 구경할 수 없는 꽃으로 여기 주왕산 계곡에서만 피는데 이 아름다운 꽃에는 남모르는 서러움이 숨어 있으니 그 옛날 주왕이 마장군의 공격을 피하여 주왕굴에 숨어 지내던 어느날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하다가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을 때 그의 피가 냇물에 섞여 붉게 흘러 내렸는데 그 이듬해부터 이 꽃을 주왕의 피가 꽃이 되어 핀 것이라 해서 수단화라고도 하였다 한다. (주왕산국립공원)
물론 필자가 방문할 당시에는 수달래를 볼 수 없는 계절이라 아쉽게 볼 수 없었다.
△ 주왕산의 수달래 (인터넷발췌사진 : 주왕산국립공원)
▲ 산책로 중간에 발견한 <자하성>
제1폭포를 향해서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수많은 돌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다.
아무런 설명이 없다면 그냥 지나쳐도 모를 그 곳은 바로 돌로 만든 성의 모습이다.
자하성이라고 불리는 이 성은 주왕이 신라 군사를 막기 위해 대전사 동편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가로막은 돌담으로 길이가 약12Km (30여리)에 달하였다 한다. 이 성은 주왕굴을 중심으로 사방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로 돌문과 창고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성의 형체는 거의 사라지고, 곳곳에 부서진 성터의 자취가 이끼와 칡넝쿨 등에 덮여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사진으로는 다 표현할 수도 없는 맑은 하늘과 이름모를 웅장한 바위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 저곳을 다 둘러봐도 보물창고 같은 기분이 든다.
▲ 주왕산의 <급수대>
이제부터 이름이 붙어 있는 이상한 주왕산의 암석들을 알아보도록 하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급수대의 모습이다.
급수대는 신라 37대 왕인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29대왕)의 6대 손인 김주원을 38대 왕으로 추대하엿으나, 때마침 그가 왕도인 경주에서 200리나 떨어진 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올 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산위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로 이곳을 급수대라 이름하게 되었다.
▲ 주왕산의 <시루봉>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고 있으며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전한다.
▲ 주왕산의 <학소대>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하여 학소대로 불린다. 어느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 오고 있다. 지금 학은 간데 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절벽 위에 남아 옛 주인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전한다.
▲ 제1폭포 주변 경관
이렇게 볼 것많고 구경할 것 많은 주왕산의 산책길을 걷다보면 드디어 제1폭포에 도달하게 된다. 물이 많지 않은 계절이라 그런지 폭포 자체는 자그마하지만 그 주변 경관에 이내 모든 것이 압도되어 버린다. 웅장하다는 표현이 이럴때 쓰는 구나 싶을 정도이다.
▲ 주왕산 <제1폭포>
여기서 잠시 자연의 대단함을 몸으로 느낀 후에 다시 2폭포를 향해서 올라가보자.
여행사에서 주관하는 단체 관광객들은 이곳의 웅장함만 맛본 후에 다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단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코스로 오는 관광객들은 이 곳 말고도 주산지와 여러군데를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돌아보려면 궁여지책으로 정해진 장소만 가야하기 때문이란다.
물론 편하고 저렴하게 온 여행지만 주왕산의 일부분만 보고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은 얼마나 클까?
▲ <제2폭포> 가는 길. 길이 약간 울퉁불퉁 하다.
<제2폭포>와 <제3폭포>의 간격은 그리 멀지 않다. 약400M 정도의 거리 차이로 떨어져 있다.
<제2폭포>가 좁은 길 사이로 발견한 오아시스라면 <제3폭포>는 계단을 통해서 어렵게 구경할 수 있는 긴장감이 도는 곳이다.
▲ <제3폭포>의 모습
▲ 하산길에 만난 주왕산의 모습
이렇게 주왕산의 폭포들을 모두 구경해봤다. 하지만 주왕산의 모든 면을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터. 이 외에도 무장굴, 촛대봉, 주왕암, 주왕굴 등 볼 것이 수없이 많지만 처음부터 자신의 체력에 맞는 선택을 해야만 가벼운 여행이 될 것이다.
평소 산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필자도 쉽게 갔다 올 수 있는 주왕산 여행.
주왕산은 그렇게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다른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주왕산은 오는 가을에는 또 어떤 때때옷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줄까 내심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