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체 좀 하면 안 됩니까? /정임표
가르치려 들지 마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잘난 체 좀 하면 안됩니까?"라는 제목으로 글을 씁니다.
솔직히 말해서 다들 지 잘난 맛으로 사는데 흑싸리 쭉정이로 태어나서 쥐뿔도 배운 것 없이 개똥처럼 굴러다니다가 문방에 이름 석자 턱 걸고 등단까지하여 작가가 되었는 데 아는 척, 잘난 척 좀 한다고 그게 무슨 큰 허물이 되겠습니까?
돌아 가신 우리 어머니께서 "나도 날 좀 보소하며 살 때가 있다."는 말을 주기도문 외듯이 하며 살았습니다. 어머니 생전에 원하시는 것은 전화만 오면 다 해드렸습니다. 어머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그 어머님이 즐겨 부르시던 노래가 있는데 오늘 따라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혼자서 밀양아리랑을 불러 봅니다.
"니가 잘나, 내가 잘나, 그 누가 잘나"
인생 별것 아니니 잘난체 한다고 수군거리더라도 그런 조무래기들 말들은 무시하고 폼 재며 삽시다요!^^
우리어매가 이 노래라도 몰랐다면 가난하고 못배웠다고 무시하던 그 세상의 하대천시를 어이 이겨냈겠는지요? 요즘 노래로는 "쨍 하고 해뜰 날"도 있고,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마"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주머니에 땡전 한푼 없더라도 시인 이상 처럼 "천하를 놀려 먹을 비밀이 내게 있다"고 하면서, 만냥을 줘도 바꾸지 않는다는 뱃심도 부리면서, 등단작가가 되었으면 잘 난체 좀 하면서 삽시다. 잘난체 하는 거 나쁜 거 아닙니다. 참새가 "짹짹" 우는 것도, 장끼가 "꿩꿩"하며 우는 것도, 뻐꾹새가 "뻐꾹 뻐꾹" 우는 것도 자기 존재감의 표현이자 자기 삶의 희망과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살만큼 살았다" "딱 맞게 살았다"고 하시더니 여든 둘에 정말 자든 잠결에 영면하셨습니다. '날 좀보소' 하며 살아야 하는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손톱만치도 없으셨던가 봅니다.
그 어머니 돌아가시고 아버지 홀로 빈집을 지키시다가 2년 좀 못되어서 돌아가셨는데, 방을 청소하다 헌 장부책에 깨알 같은 글씨로 "이자이 사랑했다"고 한줄 적혀 있는 것을 발견 했습니다. 단 한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강골의 어른이셨는데 홀로 남겨진 자리가 텅빈 하늘 같았던가 봅니다. 내가 아버님 소원대로 절대로 요양병원에 모시지 않는다고 약속을 했는데 목 근육이 약해지니 가래를 밭아내지 못하고 , 음식을 삼키면 폐로 들어가는 지라 어쩔수 없이 요양병원에 모셨다가 7개월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에 상을 받으면 책가방에 소중하게 갈무리 했다가 집에 와서 부모님 앞에서 신나게 자랑했습니다. 그게 우리 어매 아배 삶의 유일한 끈이자 희망이며 자존심이라는 걸 어린 제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상을 받아도 기뻐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체의 상은 받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고 살고 있습니다. 물질의 허기는 알았으면서도 영혼의 허기는 조금도 이해를 못했던 부족한 제 마음을 자책하면서 먼 곳으로 가신 엄마에게 물어 봅니다.
"엄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싶은 거는?"
대답없는 하늘을 보며 혼자서 속으로 밀양아리랑을 불러 봅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살아내는 일 자체도 힘이 드는데 사람을 탁탁 윽박지르며, 하대하고, 무시하지 맙시다. 우리 엄마가 살아 생전에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씀입니다. (2023. 4.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