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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유 소
눈이 내린다. 창밖엔 온통 눈뿐이다. 유리창에도 성에가 하얗게 끼어 있다. 나는 지금 하릴없이 유리창에 글씨를 쓰고 있다. 지…독…한… 폭…설… 윤기 없이 바스러진 손톱 밑으로 얼음 가루가 들어와 박힌다. 글씨를 썼던 오른손 검지가 푸르스름하게 얼어 있다. 어깨에서 등을 따라 내려가는 견갑골 언저리가 추위에 단단히 뭉쳐 있어 팔을 들어 올릴 때마다 얼음장처럼 삐걱이는 느낌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에서는 하얀 김이 피어나고 있다.
넓은 들판으로 향한 뒤창문은 열리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지면서부터 열어볼 일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창문 또한 단단히 얼어붙어 한껏 위세를 떨치고 있다. 지…독…한… 글자 사이의 공간으로 회백색의 벌판이 뿌옇게 내다보인다.
조용하다, 는 것은 때로 사람을 질식하게 만들만큼의 위력을 지녔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 있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 열리지 않는 창문에 글씨를 쓰는 행위는, 지루한 시간을 죽이는 나의 오래된 버릇이다.
사실, 나는 유리창에 글씨만 쓰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나선형의 줄을 긋는다. 성에가 끼어 있는 유리창에 지그시 손가락을 대고 있으면 손가락의 따뜻한 기운으로 서서히 길이 만들어진다. 그 길에 입김을 보태어가며 글씨나 무늬를 그려 가는 것이다.
유리창에 얽힌 얼음의 무늬는 보는 이를 황홀하게 한다. 한 무리의 새떼가 아름다운 깃털을 벌린 채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눈 덮인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숲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충분히 들이마신 뒤, 유리창에 대고 천천히 토해낸다. 창공을 날던 새 몇 마리가 흔적 없이 스러진다. 나는 똑같은 행위를 되풀이하여 많은 새들을 녹여 없앤다.
새들은 보이지 않는다. 온 천지가 눈에 덮여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다. 지난날의 그 많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는가. 창문으로 바라보이던, 황금빛 가을 들판에 오종종 모여 앉아 이삭을 쪼던 새들이 산 너머에서 들리던 총소리에 놀라 훠어이 훠어이 날아오르지 않았던가. 그 새떼들을 바라보느라 나는 가을 햇살에 눈을 찔리곤 하지 않았던가.
많은 새들이 스러 없어진 창문에 다시 눈을 갖다 댄다. 창문에 닿은 이마에서 서느런 기운이 느껴진다. 미열에 달뜬 머리가 식는 듯 차분해진다. 끝없이 내리는 눈.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벌판 속에 움직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강아지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모두 죽어 있다. 다만 지칠 줄 모르는 눈만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죽는다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내가 죽는다 해도 눈이 이대로 계속되는 한, 나는 쉽게 발견되지는 않을 것이다. 영하의 눈 속에 푹 잠긴 채 오랫동안 미라처럼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설사 꽁꽁 언 땅에 자리를 만들어 나를 묻는다 해도 당분간은 형체 또한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덤에 누운 채 다시 세상에 나가볼까, 라고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성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비좁은 관속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여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가 단단히 결박된 관을 어쩌지 못한 채 결국 그만 두게 되겠지.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겨 앞쪽 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본다. 조금 전과 똑같이 따뜻한 입김을 쐰 다음, 손바닥으로 성에를 쓸어내린다. 오가는 사람이나 자동차는 전혀 없다. 다만 흰 들판을 배경으로 서 있는, 내 삶의 기둥인 세 개의 주유기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휘발유'라는 빨간색 글씨 아래 '무연'이라는 노란색 글씨가 쓰여 있고, 그 옆에는 '등유'라는 파란색 글씨가, 맨 마지막으로는 '경유'라는 주황색 글씨가 붙어 있는 주유 체크박스다. 그곳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지붕을 머리에 이고 있어 비를 맞지도, 눈이 쌓이지도 않는 공간이다. 그 위로 내가 살고 있는 본채의 지붕에 중심을 매단, 정확히 여덟 줄의 바람개비가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면서 팔랑거리고 있다.
저 세 개의 주유기에 나를 비롯한 몇 사람의 끼니가 달려 있다. 땅 밑 기름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주유기에 기대어 나는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내 몸에서는 항상 기름 냄새가 난다. 내가 입는 옷은 계절에 따라 두께의 차이가 있을 뿐, 똑같은 색깔로 된 여러 개의 옷 중의 하나다. 모두 짙은 감색으로 되어 있어 자칫 하나의 옷으로 일 년을 사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옷마다 등 언저리에는 정유회사의 로고가 커다랗게 찍혀 있다. 나는 그 잠바를 입고 있다.
*
날마다 하루는 똑같았다.
*
문득 고등학교 시절의 첫눈이 떠오른다. 벼랑에 서듯 발 디딜 좌표 하나 얻지 못한 채 사회에 내몰리게 될 우리들은, 읍내 실업고등학교의 교실 창문으로 내다보이던 학창 시절의 마지막 첫눈을 바라보며 얼마나 크게 환호성을 질렀던가. 텅 빈 들녘만큼이나 황폐한 가슴으로 메마른 시간들을 겨우겨우 지탱해 가던 그때의 우리들. 저마다의 가슴들이 모여 토해내는 환호성이, 끝내 공허한 울음으로 터트려지게 했던 첫눈.
첫눈의 기쁨을 잃어버리듯, 세상에 대한 어떤 설렘도 가질 수 없게 된 나는, 그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 가슴 안을 뜨겁게 달구던 희망이나 설렘 따위와는 이미 결별해버린 지 오래다. 희망을 반납한 대가로 어른이란 훈장을 가슴에 달고, 그저 하루의 매출액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앉아 있는 지금의 내게, 눈은 먹먹한 가슴을 짓누르는 존재일 뿐이다.
눈을 '죽은 비'라고 했던 사람이 루쉰이었던가. 그의 말대로 온 세상에 비의 시체들이 난무하는 지금, 나 또한 시체처럼 무료한 얼굴이 되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여전히 무섭게 쏟아지는 눈발. 이런 기세로 계속 쏟아진다면, 세상은 오늘밤을 넘기지 못한 채 눈에 파묻히고 말 것이다.
언젠가 TV를 통해 외국 서커스단의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광대들에 의해 행해지던, 가무백희 속에 들어 있다는 ‘토화(吐火)’라는 묘기가 그곳에서도 행해지는 모양이었다. 기름을 입에 털어 넣고 불을 뿜어내는 그들의 생생한 묘기를 보면서 까닭 없이 내내 몸을 떨었다.
그후, 나는 자동차에 기름을 넣으며 가끔 기름을 내 입에 털어 넣는 상상을 하곤 한다. 한 입 가득 기름을 머금고 입을 벌린 채 불을 붙인다. 순식간에 번져 오는 불꽃. 내 몸은 점점 뜨거워진다. 나는 참을 수 없어 불을 꿀꺽 삼키고 만다. 불덩이는 식도를 훑고 지나간다. 가슴과 배가 뜨거워진다. 나는 곧 털썩 쓰러지고 만다. 상상은 언제나 시커멓게 그을려진 개처럼 참혹해진 몰골의 흑백 사진 한 장으로 끝난다.
그뿐이 아니다. 간혹 아귀 맞지 않는 삶이 공허하게 삐걱일 때마다, 자동차에 기름을 보충하듯 손에 든 기름 호스를 내 몸의 은밀한 곳으로 들이밀고 싶어진다. 독기를 품은 뱀의 아가리처럼, 기름이 가득 들어 팽팽해진 호스를 그곳에 대고 깊숙이 분사하고 싶다. 숨겨진 비밀의 문을 찾아내어, 한껏 달아오른 육체를 광포하게 찢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곳에 불을 놓는 순간, 솟구치는 불덩이가 순식간에 안에서부터 나를 허물어뜨릴 것이다. 일상의 남루함만큼이나 누덕진 냄새를 풍길 나의 존재는 마치 영화의 엔딩 자막처럼 천천히 공중분해 될 것이다.
하지만 참혹한 몰골은 꼭 기름에 의해서만 저질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아닌, 지금처럼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도로를 내다보고 있을 때다. 정적 속에서 혼자 깨어 있는 밤, 칠흑의 어둠이 눈앞에 망망대해처럼 놓여 있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참담한 고독에 가슴을 벼리곤 한다.
가게의 불을 내린 후 문을 잠그고 방에 누워 있으면, 간혹 급한 목소리로 기름을 넣어 달라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긴 긴 외로움의 회랑에 놓여 있는 나를 건져주는 사람이다.
아, 가끔씩은 여자 혼자 있는 방을 흘끔거리며 음험한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가 나의 손목을 잡는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얼마지 않아 전혀 표정을 담지 않는, 우울하고도 낮게 가라앉아 있는 나의 시선에 기겁하게 될 것이므로. 차가운 내 손목을 내려놓고 재수 없다는 듯 손바닥을 탁탁 털어 내며 자신이 타고 온 자동차로 다시 떠날 것이므로.
도로변의 눈발이 바람결을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다. 분분히 날리는 눈발이 마치 허공을 날아다니는 흰나비 떼처럼 보인다. 한 무리의 나비 떼들이 내가 앉은 유리창에 날아와 부딪히기도 한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본채는 자동차에 필요한 모든 부품이 진열되어 있는 가게 한 칸과 방 한 칸, 그리고 북향의 창을 가진 작은 부엌으로 나뉘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가게와 방과 부엌으로 이루어진 세 칸짜리 건물이다. 가게의 전면 유리창으로는 도로를 배경으로 서 있는 주유기가 내다보이고, 반대편 창문으로는 계절마다 색채가 달라지는 들판의 풍경이 내다보인다. 창문 아래에는 해질 무렵의 노을을 볼 수 있도록 의자가 놓여 있다. 방은 가게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가게에는 자동차에 관한 한, 그래도 많은 것이 비치되어 있는 편이다. 핸들 커버를 비롯하여 방향제, 타이어, 의자 커버, 와이퍼, 워셔액, 엔진오일, 부동액, 체인, 스노타이어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구비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물건을 팔기만 할 뿐, 직접 손을 써서 엔진오일을 교환해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장갑이나 화장지는 손님에게 반드시 후사(厚謝)되는 물건이므로 왼편 귀퉁이에 쌓여 있다. 내가 일 년에 쓰는 장갑은 서너 개에 지나지 않는다. 주유를 할 때에도 장갑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씩은 손에 기름이 묻기도 한다. 손뿐만이 아니다. 내 몸 어디든 기름 냄새가 배어 있다. 체취처럼 익숙한 냄새다. 그럼에도 기름 냄새는 자주 나를 질식하게 만든다.
가게에는 난로를 켜지 않은 지 오래다. 어젯밤부터 내린 폭설로 자동차의 왕래가 거의 끊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는 스스로를 위해서 불을 피우지는 않는다. 발이 꽁꽁 얼어 있다. 창문 전체가 두꺼운 성에를 달고 있어도 답답하기는커녕 오히려 안도감이 든다. 나를 들여다볼 다른 사람의 눈앞에 두꺼운 휘장을 쳐버린 것 같은 쾌감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혼자 지내야 했던 데서 나온, 일종의 자기 보호 본능일 것이다. 이런 나를 보고 사장은 혀를 끌끌 찼다. 네 혼자 사는 가게에서 기름을 쓰면 얼마나 쓰겠느냐고, 아끼지 말고 따뜻하게 지내라며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사장은 이미 저승으로 잠자리를 옮겨버린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다. 사장은 어깨에 힘을 잔뜩 들인 허랑한 사내아이들을 고용하려고 하지 않았다. 시간만 나면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마을의 다방 아가씨들을 태우고 스피드와 굉음을 즐기려드는, 빼돌린 기름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노랑머리의 사내아이들을 경멸했다. 오히려 사장은 매출액이 그다지 많지 않는 자신의 가게를 건실하게 지켜주고 있는 내가 고맙다고 했다.
사장은 친구의 딸이 가난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발을 구르며 사는 꼴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런 사장도 종국에는 이틀에 한 번씩 가게를 찾아와 얼마 안 되는 지폐를 걷어 갔다. 그럴 때마다 사장은 나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곤 했다. 장사가 너무 안 돼 큰일이구나, 넋두리처럼 혼자 중얼거린 후 사장은 목발을 짚은 채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또각또각 목발 소리를 내면서 지방도의 가장자리를 걷는 사장의 오른쪽 바짓가랑이가 바람에 나비처럼 풀풀 날았다.
병신이 가게에 있으면 손님이 안 드는 법이여. 사장은 목발을 짚기 시작하면서 면내 사거리로 거처를 옮겼다. 주유소가 평생 모은 돈의 전부였던 사장이 정유회사의 수송차량에 받혀 나동그라졌을 때, 어머니는 내 등을 주유소로 떠밀었다. 믿을 사람은 너 밖에 없단다.
사장은 내게 주급(週給)으로 지급하는 몇 장의 지폐를 전달하기 위해 일 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을 찾아갈 것이다. 그 돈은 식구들의 일주일 분의 양식이 될 것이고, 어머니의 약값이 될 것이다. 앞산 너머에 엎드려 있을 단칸방의 식구들은 사장이 건네는 일주일 분의 지폐로 일주일 단위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내 손에 들어와 본 적이 없는, 내 노동의 대가로.
가족이란 어차피 그런 것이다. 애정을 담보로 하여 밑동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서로를 쇠사슬처럼 옭아매는 관계. 질척거리며 끌려가더라도 가족은 가족인 것이다.
다시 창문에 눈을 들이댄다. 여전히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시간은 적요 속에서도 끊임없이 흐르는 모양이다. 절대 어둠을 허락하지 않을 듯한 순백의 벌판에도 어느덧 회색빛이 천천히 드리워지고 있다.
정오 무렵, 나는 딱 한 사람의 차에 기름을 넣어주었을 뿐이다. 검정 양복에 검정 넥타이를 맨, 키가 크고 메말라 보이는 품이 자칫 바람에도 휩쓸릴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주유를 한 뒤 잔돈과 함께 사례용 장갑을 가져왔을 때, 남자는 쉼 없이 내리는 눈발에 시선을 모둔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남자를 한 번 더 눈 여겨 보게 된 것은 남자의 얼굴색이 마치 내리고 있는 눈발처럼 창백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검정색 양복 때문이었을까. 병자처럼 지쳐보이던 얼굴에 둘러치던 담배 연기는 남자의 눈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나는 그때 우수(憂愁)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것 같다. 절망에 빠져본 사람만이 절망의 눈을 알아보는 법이라면, 이 남자가 바로 그 경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남자는 내가 건네주는 잔돈과 장갑에 전혀 관심을 갖는 것 같지 않았다. 더구나 나를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남자는 자신의 행선지를 가늠하면서, 내리는 눈의 양을 주시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지친 얼굴에 어려 있던 피곤을 지우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남자는 두 개비의 담배를 연속 피웠고, 오래되어 낡은 자동차에 체인을 감발처럼 둘러친 후 눈길을 엉금엉금 기어서 떠났다. 나의 뇌리에 한 번 입력된 남자의 모습은 그 후 아무 것도 입력할 내용이 없는 시간들 속에서 한동안 기억에 남아 있기는 했다. 그러다가 계속 눈이 쌓여 가는 들판으로 시선을 옮기고 난 뒤부터 남자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 후 지금까지 하릴없이 이렇게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다.
늘 그랬다. 기름을 채우고 떠나는 자동차를 볼 때마다, 나는 호스를 든 팔을 늘어뜨린 채 망연히 서 있곤 했다. 점점 작아지다가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자동차에 시선을 거두고 나면 눈앞은 언제나 캄캄한 절벽이었다. 떠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자동차의 꽁무니에 매달려서라도 저 산을 넘어갈 수만 있다면. 밤새워 걸어도 좋을 것이다. 부르튼 발가락을 문지르며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시의 새벽 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다면. 그렇게 동경해 왔던 도시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
어차피 삶은 그저 견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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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쉽게 어둠이 드리워진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창문을 내다보면서 가게에 사람이 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불을 내리고 방으로 들어온 나는, 전기밥통의 밥을 담아 김치에 버무려 먹는다. 김치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난다. 나를 위하여 난로의 불을 밝히지 않듯, 나 스스로를 위하여 요리를 하지도 않는다. 먹는다는 것. 그것은 내게 지리멸렬한 삶만큼이나 기계적이다. 삶을 그저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모든 행위가 그렇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빈 그릇을 부엌의 설거지통에 담근 후 방으로 들어온다. 다시 할 일이 없어진다. TV를 켠다. 어두워진 후에 반드시 나와 동반되는 친구가 바로 TV다. 볼륨을 있는 대로 올린다. 내가 창을 통해 밤 풍경을 바라볼 때에도, 방안의 불이 꺼져 있을 때에도 TV 소리는 여전하다. 혼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싫은 나를 착실하게 보호해주는 가슴 따뜻한 친구다. 나는 마감 뉴스가 끝나고, 애국가와 함께 종료 멘트가 나올 때까지 TV를 켜 둔다. 그럼에도 내 시야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TV 화면은 그저 그렇게 옆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해주는 것으로 착실히 내 곁에 머문다.
그러다가 깊은 밤이 되면 방의 불을 끈다. 참혹한 어둠을 견디기 어렵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불을 내리고 싶어진다. 방의 불을 내리고, 마음 안에 드리워진 모든 등불까지 끈 이후에야 비로소 생의 이면이 보일 것 같은 막연함 때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어둠 속에 유령처럼 서서 들판 너머 드문드문 박혀 있는 불빛들을 내다보곤 한다.
봄, 여름을 지나 가을을 건너 겨울에 이르기까지 밤 풍경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들녘의 가장자리에 가물거리던 불빛이 하나 둘 꺼지고, 마을 앞 고샅길을 밝히는 가로등만 남게 될 무렵이면 나는 헛헛해진 가슴을 쓸어내리곤 했다. 이마에 등불 하나를 매단 채, 고요와 어둠 속에서 평생 눈비 맞으며 살아가는 전봇대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긴 한숨을 내쉬며 창 곁을 물러 나온 내가 방의 스위치를 올릴 때마다, 방의 구석구석 배여 있던 어둠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곤 했다.
불빛에 모습을 드러내는 집안 가구는 많지 않다. 아랫목 귀퉁이에 개켜져 있는 이불과, 인피(人皮)처럼 벽면에 걸린 몇 개의 잠바, 윗목에 놓인 TV와 전화기 한 대가 전부다. 유일하게 나를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전화는 항상 제자리에 놓여 있지만, 불행히 나는 전화를 걸 만한 곳이 많지 않다. 몇 군데의 거래처와 산 너머 단칸방에 웅크린 나의 가족에게만 사용될 뿐이다.
지금 나는 TV를 켜둔 채 엎드려 있다. 방바닥으로 기어가는 개미를 바라본다. 작은 몸뚱이보다 더 큰 짐을 진 채 끙끙대는 개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끝으로 가만히 건드려 본다. 몸을 한 번 뒤집더니 개미는 다시 일어나 그의 짐을 짊어지고 가던 길을 간다.
가만,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는 쥐며느리처럼 몸을 웅크린다. 분명 바람 소리는 아니다. TV 소리에 섞여 거의 가늠을 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분명히 누군가 문을 두드려대는 소리다.
한참을 망설이던 나는 몸을 일으켜 방과 가게의 불을 모두 밝힌다. 가게 문을 연다. 한 남자가 산더미 같은 눈을 머리에 이고 서 있다. 남자의 뒤편으로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는 눈발이 칠흑의 어둠 속으로 스러진다. 낮에 기름을 넣고 떠난 남자다. 그의 서 있는 모습이 위태롭다. 곧 쓰러질 것만 같다. 그의 신발이 눈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를 내버려둔 채, 그는 저 자욱한 눈 속을 걸어온 것일까.
그는 눈 덮인 산을 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멈춰버린 자동차. 그는 점점 짙어오는 어둠보다 포위하듯 음험하게 쌓여가는 눈의 공포를 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자동차 속에서 그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거쳐 왔던 나의 주유소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추위와 어둠의 공포 속에서 내 집의 따뜻한 불빛을 그렸을 것이다.
눈과 추위에 굳어버린 그의 입이 움직인다. 그러자 남자의 머리 위에 쌓여 있던 눈이 뭉텅이로 쏟아져 내린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백짓장처럼 창백한 얼굴, 두려움에 찬 벌건 눈에 눈물처럼 이슬을 달고 있다. 그의 눈이 나를 바라본다. 간절하다. 제발 거절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빛이 내 가슴을 찌른다.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을 비켜선다. 그의 눈빛에 안도가 어린다. 그는 퍽퍽한 다리를 힘겹게 떼면서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그에게 머리와 옷의 눈을 털어 내도록 수건을 내민다. 수건을 받아 쥔 그는 얼음처럼 굳어버린 자신의 몸을 어쩌지 못하고 서 있다. 방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한 채, 방문 앞에 머뭇거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앞장서서 방안으로 들어간다. 그러자 그가 힘겹게 신발을 벗고, 방문턱을 넘는다. 휘청, 그의 몸이 앞쪽으로 쏠린다. 나는 재빨리 그를 부축하여 방에 들어앉힌다. 정물처럼 방의 한 귀퉁이에 앉은 그의 머리와 옷에서 눈 녹은 물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기를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수건으로 닦기 시작한다. 그는 말을 잘 듣는 유치원생처럼 내가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둔다. 물기를 닦아낸 후,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 소주를 꺼낸다. 유리컵에 술을 부어 그에게 준다. 잠들기 위해 한두 잔씩 버릇처럼 마시던 술이다. 그는 목마른 사람처럼 벌컥벌컥 소주를 들이킨다. 이윽고 유리컵을 방바닥에 내려놓은 그는 고개를 벽에 기댄 채 눈을 감는다. 이제 서서히 그의 몸은 열기를 띠어갈 것이다. 그러면 추위에 단단히 굳어졌던 그의 몸이 천천히 풀려가겠지.
나는 다시 TV의 볼륨을 올린 후, 그가 앉은 반대편 벽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양다리를 접어 가슴에 댄 채 화면을 응시한다. 마감 뉴스가 끝난 화면에서는 기상예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이십 년만의 폭설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상 리포터는 눈 때문에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말투와 표정으로 호들갑을 떤다. 기상이변에 대한 우려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 허리를 껴안고 쏟아지는 눈발에 즐거워하는 연인들의 모습들이 화면에 가득 찬다.
나는 화면을 이물스럽게 바라보다 문득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는 여전히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다. 물기에 젖은 머리카락이 말라서 꼬질꼬질 비틀려져 있다. 술기운 탓인지 그의 얼굴에 서서히 홍조가 어린다.
우리는 갇혀 있다. 사방을 죄어오는 적군 병사들처럼 눈은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다. 차라리 이대로 깊이 잠들고 싶어진다. 오랫동안 깨어나지 않아도 되는 겨울잠. 곰이나 박쥐나 고슴도치처럼 땅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겨울잠을 잘 수 있다면. 그러다가 봄날 따뜻한 햇볕 속으로 기지개를 켜고 나갈 수만 있다면, 나 또한 길고 긴 겨울잠에 빠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나는 뒤꼍으로 돌아들다가 담 아래에 뚫려 있던 작은 구멍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구멍은 햇볕이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 있었는데, 입구에는 얇은 허물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의 투명할 정도의 얇은 막은 바로 뱀 껍질이었다. 긴긴 동면을 위해 뱀은 허물을 벗어 내리고 땅속 깊이 침잠한 모양이었다. 뱀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듯, 나는 한참 동안 구멍을 들여다보며 앉아 있었다.
뱀이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의 살아남기'로 동면을 택한 것처럼, 나 또한 동면에서 깨어난 뱀처럼 이곳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갈망해 왔다. 질척거리는 가족으로부터, 숨 막히는 기름 냄새로부터, 아무런 일상의 변화가 없는 단조로움으로부터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이틀 단위로 지폐를 걷어가는 외다리의 사장, 해바라기처럼 나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구차한 일상은 내 목을 옥죄는 사슬이었다.
불현듯 TV 위에 놓여 있던 친구의 편지에 시선이 멎는다. 친구는 회사에서 연수차 찾아 간 중국이야기를 썼다. 명분이 연수일 뿐, 사실은 놀러 다녔던 거라고 친구는 내게 자랑했다. 홍구 공원에 있는 루쉰의 묘에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도 친구는 소년의 목소리를 가진, 능글맞은 대머리 상사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썼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아무런 희망도 되지 못하는 도시를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때 내가 친구에게 답장을 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답장을 썼다면 나는 친구에게 나를 데려가 달라고 떼를 썼을 것이다. 이곳으로부터 나를 구원해달라고.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매달렸을 것이다.
화면이 자글자글 끓고 있다. 앉은 채로 깜빡 졸았나 보다. 벽에 기대고 앉아 있던 그 또한 잠이 들었는지 상체가 옆으로 꽤 기울어져 있다. 위태로워 보인다. 나는 그를 부축해 방바닥에 누인다. 그가 잠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감는다. 눈 속을 힘겹게 헤쳐 온데다가, 한꺼번에 들이킨 술로 하여 그는 쉽게 몸을 추스르지 못할 터이다.
반듯이 누운 그의 상체에서 외투를 벗겨낸다. 그러다가 숨이 훅, 막힌다. 외투 속에 감추어진 정갈한 와이셔츠가 눈에 부시다. 깃 속으로 단단히 매인 넥타이. 그 위에 박힌 넥타이핀이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나의 눈을 찌른다.
아! 거기에 내가 꿈꾸던 도시의 공기가 스며 있다. 유니폼을 입은 사원들이 자판기에 몸을 기댄 채 깔깔대며 마시는 커피 향, 한없이 가벼운 그들의 대화, 얼굴이 들이비칠 듯한 건물 로비에 경쾌하게 울려 퍼지는 구두 굽 소리, 묵은 서류철을 뒤적일 때 엷게 퍼지는 곰팡이 냄새, 고층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몇 안 남은 노란 은행잎, 건물 모퉁이를 돌아 나올 때 기다렸다는 듯이 턱을 후려치고 달아나는 칼바람까지 그의 깨끗한 와이셔츠에, 넥타이에, 핀에 꽂혀 있다.
나는 가만히 그의 가슴에 얼굴을 대본다. 차가운 바람의 흔적은 이미 방 안의 훈기에 녹아 사라진 지 오래다. 반지가 끼어 있는 그의 하얀 손가락이 가냘프다. 나는 조심조심 그의 손등에 내 손을 댄다. 출장길에 나선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아내가 가슴을 졸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떠나온 도시를 향한 간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그를 쉽사리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를 내게 보냈다. 오늘 밤, 그를 내게로 오게 한 것이다. 그의 손이 따뜻하다. 엷은 술기운이 배인 그의 숨결에서는 단내가 느껴진다. 나는 그의 가슴에 엎드린 채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듣는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그의 팔이 자신의 가슴에 엎드려 있는 나를 힘주어 끌어안는다. 스르르 녹듯이 나는 그의 품 안으로 스며든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그래, 정말 아무 것도 아니야. 그에게서 은근한 장미향이 난다. 그가 몸을 뒤척여 나의 목덜미에 입술을 댄다. 아, 가슴이,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하다. 몸이 점점 달아오르며 불에 델 듯한 그리움이 인다. 대상을 알 수 없는 막연함.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그의 목을 껴안으며 한 손으로는 그의 머리칼을 헤집는다. 손끝에 힘이 느껴진다. 그의 얼굴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엄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어린 아이처럼 안도하는 그의 입김이 따스하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그가 내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가 하는 대로 몸을 내맡긴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 마름모꼴 천장의 무늬가 시야에 들어온다. 둔탁한 잠바가 벗겨져 나간 뒤, 뒤꼍에서 보았던 뱀의 허물처럼 차례차례 속옷이 벗겨진다.
벗은 몸과 몸이 뜨겁게 만난다. 나는 그를 가슴에 안는다. 그의 입술은 뜨겁다. 젖가슴을 입안에 넣은 채 부드럽게 굴린다. 나는 참을 수 없어 헉헉댄다. 아, 지금의 내가 아닐 수만 있다면. 누군가의 몸속에 스며서라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수만 있다면. 그의 손가락이 나의 머리칼을 헤집으며 불붙는 화산처럼 강렬하게 밀어오는 순간, 내 머리 속은 용암의 분출처럼 뜨겁게 솟구친다.
누워서 천장을 본다. 그때가 언제였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는 까마득한 시원(始原)으로 지금 나는 되돌아간 것일까. 비로소 껍질을 벗게 된 것일까. 본래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봄이 되면 양지바른 구멍에 대고 말할 것이다. 내가 일러주리라고 벼려왔던 뱀의 과거를. 새로 돋은 껍질을 가리키며 그가 허물을 벗고자 몸부림쳤던 증거를 그의 눈앞에 보여주리라.
문득 가슴에, 눈에, 뜨거운 슬픔이 차오른다. 뱀에게 말할 수 있는 나 자신의 과거는 무엇이고, 현재는 무엇인가. 옆에 누운 그는 누구인가. 이렇게 날이 샌다 한들, 내게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외로이 있는 것을 견딜 수 있었다면, 나는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손을 건네준다면, 그의 손을 있는 힘껏 부여잡으리라 마음먹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꽁꽁 언 외투를 입은 사람처럼, 왜 나는 외로움에 옥죄인 채 이토록 떨고 있는 것일까.
그가 열에 달아오른 손을 내게 건넨다. 나는 손이 이끄는 대로 그의 가슴속에 얼굴을 묻는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는 나를 가슴에 안은 채 우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둘 뿐이다. 그 후.
나는 삶이란 그저 견디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고, 그는 삶이란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지는 수렁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나는 방기할 수 없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고, 그는 잃어버린 가족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수런수런 몽롱한 의식으로, 우리는 끝도 없는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다.
*
눈을 뜨자 창밖이 뿌옇게 밝아오고 있다. 무심결에 손끝에 닿는 감촉을 느낀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킨다. 낯선 그가 신열을 앓듯 끙끙대고 있다. 열에 달뜬 그의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다. 머리에 손을 짚는다. 불같이 뜨거운 기운이 손끝으로 전해져 온다.
나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온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의 열을 식혀야 한다. 밖에는 눈이 말끔히 걷혀 있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았지만 오늘은 날씨가 맑을 모양이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발목이 푹푹 빠져드는 눈 속으로 나는 내달리기 시작한다. 사람도 차도 오가지 않는 한겨울의 들판은 고요하다. 이대로라면 면내 약방까지는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몸은 물기가 다 빠진 듯 가뿐하고, 바람 또한 상쾌하다. 들판이며 나뭇가지들은 온몸에 솜이불을 걸쳐놓은 듯 화려하다. 가지가 꺾일 정도로 풍성해 보인다. 머지않아 이 눈은 흔적 없이 녹아 없어질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가지마다 새순이 고개를 내밀 것이다. 그러다가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새순은 모두 등불처럼 벙글어질 것이다. 꽃잎에 향기 어리듯 킁킁거리며 봄은 개선장군처럼 밀고 올 것이다. 나는 한 마리의 짐승처럼 힘차게 들판을 가로지른다.
면내 사거리에 도착하자, 나는 좌우로 도열해 있는 가게들을 낱낱이 살피기 시작한다. 다른 대부분의 가게가 그렇듯 약방도 그때까지 문을 열지 않고 있다. 나는 눈길을 달려오느라 푸릇해진 주먹을 움켜쥔 채 약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꽤 오랫동안 두드렸음에도 안쪽에서는 전혀 반응이 없다. 조급해진 나는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더 크게 두드린다. 그때서야 문의 안쪽에서는 주인이 기지개를 켜는 듯 아아아……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후,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고 번데기의 주름처럼 내려뜨려져 있던 셔터가 출렁이며 올라간다. 나는 문을 열고 약방 안으로 들어선다. 주인이 벽의 스위치를 올리자, 어두컴컴했던 실내가 금세 형광 불빛으로 환해진다. 약장 안의 약들이 빛 속에서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며 깨어난다.
열이 많아요. 식은땀도 흘리구요. 예? 아니…… 남자예요.
약방 주인은 자꾸만 나를 힐끔거린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는 주인 남자는 기어이 나를 기억해내는 모양이다. 해열 진통의 알약 상자를 약장 안에서 빼든 주인 남자는 나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는 봉지에 약을 집어넣는다. 나 또한 내 가게를 거쳐 간 여러 얼굴들 속에서 그를 끄집어낸다. 돈을 건네고 약봉지와 함께 따뜻한 드링크제를 받아든다. 나는 드링크제는 품속에 집어넣고 약봉지는 주머니에 넣은 후, 아까 밟아왔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한다. 가슴께의 약이 따뜻하다.
뒤에서 덜덜거리며 커다란 차가 따라온다.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길옆에 비켜 서 있는 동안, 차는 내 곁을 지나쳐 간다. 제설차다. 모래주머니와 염화칼슘을 잔뜩 실은 제설차가 눈을 헤쳐 내며 지나가자, 길은 모양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나는 제설차의 뒤꽁무니를 따라 달린다. 내 입에서는 입김이 하얗게 뿜어져 나온다. 아까보다 더 맑은 기운이 온 들판에 퍼져 올라 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아침 해가 환하게 떠오르기 시작한다. 나는 주머니 속의 약을 다시 확인하며 방문을 연다. 그런데 방에는…… 그가…… 없다. 이부자리는 단정하게 개켜져 있고, 그의 옷이 걸렸던 벽은 깨끗이 비워져 있다.
열에 달달 끓어오르던 몸으로 그는 어디에 간 것일까.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퍽퍽했던 다리에 갑자기 쥐가 난 듯 꼼짝할 수가 없다. 허물어지듯 벽에 등을 기댄다. 눈을 감는다. 어젯밤 그가 그랬듯. 품속의 약은 여전히 따뜻하다. 천천히 다리를 편다. 순간, 이물감처럼 발끝에 치이는 게 있다. 눈을 뜬다. 넥타이다. 상단에 꽂혀진 넥타이핀이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햇빛을 받아 형형한 눈빛처럼 반짝인다. 그의 목을 옥죄었을지도 모를 넥타이는 마치 허물을 벗은 뱀 껍질처럼 보인다.
*
나는 얼른 밖으로 뛰쳐나온다. 벌판의 흰빛이 햇살에 반사되어 비수처럼 눈 속으로 파고든다. 얼핏 바람이 인다. 눈발이 회오리바람처럼 솟아오르다 내 얼굴을 후려친다. 순간, 나는 질끈 눈을 감는다. 티가, 티가…… 눈 속이 가시로 헤집는 것처럼 따갑다. 눈 속에서 뜨거운 불덩이처럼 눈물이 솟아난다. 그는 어디만큼 가고 있을 것인가. 그의 모습은 눈물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나는 기어이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겁게 솟구쳐 오르는 울음소리는 희디흰 들판을 가로지르며 퍼져 나간다. 울음소리는 맞은 편 언덕 위에서 들려오는 제설차의 달달거리는 소리에 흔적 없이 빠져든다. 나는 눈물 어린 눈으로 모자이크처럼 일그러져 있는 풍경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준다.♠
첫댓글 드뎌 올렸구나 ㅎㅎ 참 정갈하게 잘 쓴 소설이야. 겨울 눈발과 바람의 향취가 물씬나는 삶의 외로운 무막함! 또 좋은 소설 써서 올려주라.
진즉 우리 카페에 올랐어야 됐는데. 이제라도 올려주니 반갑고 고맙고. 참고로 친구들에게 알려요. 장정희씨(직녀님)의 이 소설은 제 6회 '문학과 경계' 신인상 수상작품입니다.
중국산 참깨는 못읽어. 안뵈. ....이걸 다시 내컴에서 튀겨서 읽어볼란다..-.-
헐...내컴으로 옮겨서 튀겨서 읽어볼라했드만, 아예 스크랩도 금지라서리...중국산 참깨는 시로..책을 찾아서 읽어야긋따..쩝;;
그나저나 김진희와 윤희숙은 이글씨가 잘 뵜단말여?시방?
??? 참깨 아녀. 되게 큰 글씨로구만.
그러게 큰 글씬디 ??
희숙이랑 진희는 성자으 큰 뜻(?)을 아직도 파악못하고 있구마이. 여러사람 읽게 할라고 부러 그러는거여^^. 나도 참깨라 안보여서 돋보기로 키워서 봤당께. ㅋㅋ
앗, 죄송해요. 조짱 언니의 큰 뜻(?)을 파악하지 못해서. 고쳤시요. 더 키울까요? (제가 덜 떨어진 데가 좀 있어요...히히)
한적한 주유소를 배경으로 한 주인공의 도망치고 싶은 현실, 그 모든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었다가 그 기대가 무너지는 반전. 마치 잘 찍어놓은 흑백 사진 같아요. 겉으론 단순한것같지만 많은 사연이 담기고, 어떤 끌림 때문에 자세히 음미하며 보게되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작은 글씨지만 돋보기 쓰고 읽어봤어..나도 참깨는 싫어하지만 직녀의 글이니 특별히..역시 읽어보기를 잘했어..
오후에 들어와서 몇줄 내려 읽다가 먼저 미리 본 꼬릿말이 아무래도 걸려서 일단 정리해봅니다..돋보기도 쏀찮고 그러믄 어떻게 할꺼시냐! 다음과 같이 합니다 - - 1) 일단 인터넷창을 최대로 키워 놓는다..2)창의 위에 있는 명령어들중에서 보기를 점잖게 마우스로 찍어본다.. 3)오메?그러고봉께 여태껏 신경도 안쓰고 넘어가던 낱말이 눈에 들어오네? [텍스트크기] 란 넘이..4)그짝으로 마우스를 옮겨봉께 옆에 창이 열림서 보통에 연지가 찍혔다?고로,쪼까 큰거에다가 찍어보란 것이것찌라?여기까지 오믄 일단 마우스로 [크게]에다 놓고 버튼을 누른다..(이 대목에서도 오른쪽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뉘여?)... 이상!
제송제송제송... (이렇게 쓰다보니 뭔가 송알송알~~ㅎ)
아녀라~ 쓴 사람은 죄없슈..잘 볼 줄을 모르는 사람이 답답한거져^^
거 이상허네...난 첨부터 큰 글씨였는디....그래서 백마님 충고를 따라보니 나는 "크게"가 아니라 "가장 크게"로 찍혀있그만 ㅋㅋ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에 나오는 Evelyn이 생각난다. 먼지털이를 휘두는 대목과 성에낀 유리창에 글씨쓰는 장면이 오버랩됨서..허지만 직녀의 글에는 넥타이가 남겨져있군. 눈에 덮힌 불씨 파는집의 구원천사를 봤네그랴..ㅋㅋ 잘 읽었어욤*^^*
이 소설은 책에서 읽었는데, 읽으면서 참 따뜻한 인간의 정이 느껴지는 글이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자신도 힘겨운 내면의 고통을 안고 살면서도 다른 사람의 고통에 연민의 정을 보낼 줄 아는 주인공, 그 주인공에게서 인간 본연의 고향과 같은 향수를 느끼게 되었다면 내가 너무 감상적인가요? 난 감상적인 사람 아닌데... 나 같은 사람이 그런 걸 느낄 정도이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가슴 가득한 감동으로 다가왔을까요? 직녀 님,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인간의 따스한 정을 느끼게 하고 참 인간의 내면을 아름답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글을 자꾸 써 주세요~~~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