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呂祖儉、張栻︰敬鬼神而遠之,鬼神之德 및 영혼 불멸의 찬반 논의
2026년 8월 20일
목차
1. 여조검과 장식 서신 본문 설명
2. 서신 3통 본문 (張栻,『南軒集』,卷三十二,「答吕子約」)
3. 3. 성리학 영혼 불멸의 찬반 논의
여조검과 장식 서신 본문 설명
남송 시기에 여조검(呂祖儉, 1146-1200)은 정명도와 사량좌의 종교적 견해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조검이 장식(張栻, 1133-1180)에게 여쭙고 장식이 대답한 서신 3통이 남아 있습니다. 서신 3통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문답에서 여조검은 『논어』 “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에서 “지(知, 智)”는 『중용』 “鬼神之爲德”을 잘 아는 것(知)이라고 넓혀서 이해하였습니다. 『중용』에서는 산 사람의 눈과 귀로 감지할 수 없는 “귀신은 어떤 사물에도 붙을 수 있다(體物而不可遺)”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조검은 “붙는다(滯物)”의 주어가 귀신이 아니고 산 사람이라고 뒤집어서 보았습니다. 귀신이 산 사람에게 잘 붙었다면 산 사람도 자신에게 귀신이 붙어 있다는 것을 잘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논어』의 “지(知)”와 『중용』 “體物”의 “체(體)” 둘을 똑같이 놓고 이해하였습니다.
여조검은 한 걸음 더 나가서 “지(知)”가 밝으냐 밝지 못하냐 문제는 “체(體)”를 잘하느냐 못하느냐 방법에 달렸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중용』에서 말한 귀신의 속성(鬼神之德)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何從而可識乎?) “체(體)”하는 방법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 방법이 해결되어야만 『논어』에서 말한 경원(敬遠)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지(知, 智)”의 문제가 풀린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여조검은 장식에게 “체(體)”하는 방법을 여쭈었습니다.
장식은 13살 어린 여조검의 의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또는 원래 관심이 없었는지 정이천의 대답을 인용하여 잘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넘어갔습니다. 정이천은 “敬鬼神而遠之”의 대강 뜻(大綱)이 귀신에 현혹되지 말라는 것이라고 소극적으로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에 가까이 접근하여 알려고 들수록 헛된 엉터리(妄, 非) 오해만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문답에서 여조검은 “敬鬼神而遠之”의 문제가 단순히 길흉화복(禍福) 관점에서 보려는 정이천의 견해(大綱, 개략적 의미)에 반대하고 귀신이 있느냐(有)와 없느냐(無)의 문제에서 보아야 한다고 관점을 바꾸어서 다시 「系辭」(上) “귀신의 실제 모습(鬼神之情狀)”을 물었습니다.
장식은 앞의 서신에서 인용한 정이천의 대답을 되풀이하고 더 이상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셋째 문답에서 여조검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꺼내서 장식이 대답하길 재촉하였습니다. 먼저 일반적으로 도교(『莊子』,「知北遊」:“人之生,氣之聚也。聚則爲生,散則爲死”。)와 의학에서 말하는 생사(生死)에 관한 상식(氣聚則生,氣散則死)을 말하였습니다. 이 상식은 사량좌도 말한 것입니다.(『上蔡語錄』:“謝子曰:人死時氣盡也”。) 뒤이어 태어나 늙어가는 생명(『列子』,「天瑞」:“人自生至終,大化有四:嬰孩也,少壯也,老耄也,死亡也。”)이 바뀌어(죽은 뒤에)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혼(魂)과 기(氣)이고 땅으로 떨어지는 것이 체(體)와 백(魄)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혼(魂)이 하늘로 올라가고 백(魄)이 땅으로 내려가면 형질(形質, 體, 몸덩이)이 어디 남아 있겠습니까?(『靈樞』, 「天年」:“神氣皆去,形骸獨居而終矣。”) 사람의 몸(形質)이 없어지는 것은 확실한 상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여조검이 이렇게 몇 가지 상식을 들어 죽음(死)을 설명한 까닭은 죽음을 단순히 의학 또는 자연 현상(「계사」:遊魂爲變)이라는 설명에 그치지 말고 영혼 불멸을 논의할 수 있는 신이(神異)한 현상을 토론하여 결론을 내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두운 곳을 혼자 다닐 때 무서운 마음이 드는데 정말로 귀신이 있나 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미신(習俗) 때문에 마음(中主)이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이 감지하지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隱微之中)에서 신명(神明)이 마음(心, 舍)에 응집하는 현상(『靈樞』,「大惑論」:“;心者,神之舍也。” 「邪客」:“心者,精神之所舍也。”)은 누구도 스스로 부정할(揜)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신(流俗)을 믿는 것은 상식(理)에 어긋납니다. 그렇지만 허무맹랑(孟浪)하다고 믿지 않다가 갑자기 놀랄 만한 일을 겪어 귀신 때문에 죽는다면(其不爲所移)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 여조검은 귀신이 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혼백이 산 사람에게 영향을 끼친다거나(魂魄之影響) 죽어서 다시 환생한다(奪胎受蔭)는 주장들은 상식(理)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도 의심이 없도록 확실하게 이해하여야 옳습니다. 정이천이 말한 것처럼 애매모호한 설명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장식은 여전히 애매모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여조검 말처럼 이 문제는 반드시 끝까지 따져서 실제 사실로써 의심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몇 가지 미신에 막히거나 혼백이 영향을 끼친다는 도교의 주장 또는 다시 환생한다는 불교의 주장에 휘둘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조검이 “알지 못하는 상황(隱微之中)에서 신명(神明)이 마음(心, 舍)에 응집하는 현상(隱微之中,神明集舍)”을 말한 것은 북송 시기에 맹자의 방심(放心 : 出入無時,莫知其鄉)에 관한 논의를 다시 꺼낸 것입니다. 물론 이정은 출입이 아니고 조사(操捨)라고 보았습니다. 남송 시기에 홍상학파와 주희의 논쟁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불교에서 보면 간단한 말이지만 북송 시기에 성리학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느 집 어린 딸아이가 어른들의 논의를 듣더니 출입이 어디 있냐고 말하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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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熹(1130年—1200年)
張栻(1133年9月15日-1180年3月22日)
呂祖謙(1137年4月9日-1181年9月9日)
呂祖儉(1146年-1200年,1198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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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신 3통 본문 (張栻,『南軒集』,卷三十二,「答吕子約」)
宋、張栻,『南軒集』,卷三十二,「答吕子約」︰
(呂祖儉問︰)
“樊遲問知。子曰:‘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所謂知者,知鬼神之德是已。知事乎此則敬,敬則有事乎此矣。有事乎此,勿忘勿助,則鬼神著矣。故其‘洋洋如在者,狀其昭著’云耳。於此知之有所未明,體之有所未盡,迫切而求的見,則愈近而愈妄,愈親而愈非,計度想料,妄而益妄,所謂鬼神之德,何從而可識乎?其爲不知,孰大於是?『中庸』論鬼神之德,如曰︰‘視而不見,聽而不聞’,而又繼之曰︰‘體物而不可遺’。觀乎此,恐是敬而遠之之旨,敢祈指誨。
(張栻答︰)
『遺書(二程遺書)』中有一段:“或問:‘知鬼神之道,然後能近能遠否?’
(程伊川)曰:‘亦未說到深處,且大綱說當敬不惑也。迫切而求的見,則愈近而愈妄,愈親而愈非。’”此數語好,但更當深思。
宋、張栻,『南軒集』,卷三十二,「孔子答子路之意」︰
(呂祖儉問︰)
“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惑而信之,非知也;孟浪不信,非知也。能近能遠,始謂之知。敬而不能遠者,則其敬也生於畏禍與福而已,非所謂敬也。遠而忘乎敬者,則其遠也生於忘禍與福而已,非所謂遠也。二者均於疑以爲有,疑以爲無,非的實有見乎!此兩句固大綱說示人以知之事,然非知鬼神之情狀,則安能敬而遠之乎?
(張栻答︰)
“敬鬼神而遠之”。或問伊川:‘知鬼神之道,然後能敬能遠否?’先生曰:亦未說到如此深遠處,且大綱說當敬不惑。此是玩味經旨之法。若更别生出事,卻失了當時意。
(呂祖儉問︰)
氣聚則生,氣散則死。大化一移,升於天者爲魂氣,落乎地者爲體魄。魂游魄降,形質安有?其理固然。然闇處獨行,畏心或生,則疑以爲或有,豈非緣於習俗而中主不立故耶?又豈非隱微之中,神明集舍,而自有不可揜者耶?今固不敢徇於流俗,而返之於理。然孟浪不信,卒然撞出駭異之事,安敢自保其不爲所移乎?如魂魄之影響、奪胎受蔭之說,理安有之?然亦當了然無疑,乃爲可耳。窺識髣髴,何得於己?
(張栻答︰)
此等事不可放過,須窮究到實然無疑處。不然,被一兩件礙阻著,或爲異說動了,未可知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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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리학 영혼 불멸의 찬반 논의
양송(兩宋) 시기 성리학에서 귀신에 관하여 토론한 내용을 보면 귀신이 있다(有)도 아니고 없다(無)도 아니고 결론은 귀신이 “있는 듯 없는 듯(若有若無)” 제3의 견해입니다. 이 결론은 『논어』 “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 구절을 보고 이정(二程)이 판단한 것입니다. 성리학의 귀신론은 사실상 불교의 윤회설 또는 도교의 귀신 강림 같은 믿음에 비교하면 무신론에 가깝습니다.
성리학에서 귀신이 있다고 보려는 의도는 조상님 귀신에 제사를 올리기 위하여 종교적 이유를 만든 것입니다. 귀신이 없다고 보려는 견해는 『주역』 「계사전」에서 말하는 음양의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한 것입니다.
남송 시기에 여조검(呂祖儉, 1146-1200)은 귀신이 있다고 믿는 미신이나 풍속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수양 공부와 조상 제사를 위하여 영혼 불멸에 관한 유가의 귀신론을 설정하고 싶었습니다. 여조검은 선배 학자 장식(張栻, 1133-1180)에게 서신 3통을 보내 설명을 요청하였으나 장식은 정이천이 말한 대충 뜻(大綱 : 若有若無)을 지키고 끝까지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조검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던 의도는 분명히 있는데 바로 영혼 불멸입니다.
선진시기 문헌에는 귀신을 보려는 관점이 둘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된다고 믿는 종교적 이해가 있고, 둘째는 음양 자연의 작용으로 보려는 자연 현상의 이해가 있습니다.
공자는 『논어』 “敬鬼神而遠之,可謂知矣” 구절에서 知는 敬과 遠을 잘 조절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귀신을 맹신하지 않되 조상님 귀신께는 제사를 지내라고 말하였습니다.
공자에 앞서 기원전 524년(昭公十八年) 5월에 화성(火星)이 저녁에 나타나고 바람이 불어오는데 마침 宋、衛、陳、鄭 4개 제후국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따라서 정(鄭)나라 점성가(裨灶)는 정나라에 또 화재가 나겠다고 예측하고 제사를 지내 화재를 없애자고 건의하였습니다. 鄭子産은 미신을 믿지 않고 제사 지내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정자산은 “하늘 화성이 나타나더라도 사람 사는 땅(지구)에서 너무 멀고 사람이 화재 방비를 잘하면 괜찮다.(天道遠,人道邇,非所及也)”고 반박하였습니다.(『左傳』, 昭公十八年, 기원전 524년) 이 말은 춘추시기에 미신을 믿지 않으려는 견해이며 뒤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전국 시기 『중용』에서 “鬼神之爲德”은 사람의 눈과 귀로 감지할 수 없으나 어느 사물에도 내려와 붙을 수 있다(體物)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산 사람들은 마음을 경건하게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제사를 올려야 하며 마음속에서는 귀신이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곁에 계신다고 여겨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子曰:“鬼神之爲德,其盛矣乎!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體物而不可遺。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
『논어』와 『중용』에서는 조상님 제사에 관련하여 영혼(soul)의 존재를 믿는 종교적 해석입니다.
전국시기 「系辭」(上)에는 종교적 견해도 말하였으나 당시 천문학과 역법(曆法) 지식을 갖고 자연의 신비로운 현상과 조상님 귀신을 음양의 작용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첫째, 하늘과 땅을 관찰하는 까닭은 죽은 사람의 귀신(幽)과 산 사람(明)이 서로 감응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仰以觀於天文,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 나아가 사생(死生)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둘째, 정(精)과 기(氣)가 응집하여 사물(物)이 되고 영혼이 몸에서 떠나 멀리 하늘로 올라간 것(遊)이 혼(魂)이라고 설명하면서 이것이 귀신의 모습(鬼神之情狀)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첫째 구절은 죽은 사람의 귀신과 산 사람이 서로 감응하는 것을 설명하였는데 영혼(soul)이 불멸하는 존재로서 산 사람과 감응한다고 보았습니다. 둘째 구절은 전국시기 의학(『靈樞』,「本神」:“生之來謂之精,兩精相搏謂之神。”「天年」:“神氣皆去,形骸獨居而終矣。”)에 근거하여 태어나는 것(精氣爲物)과 죽는 것(遊魂爲變)을 구별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논어』 “敬鬼神而遠之”와 『중용』 “鬼神之爲德”은 생사(生死)와 조상님 귀신 및 제사에 관련하여 영혼(soul)의 존재를 설명한 종교적 해석입니다.
둘째, 「系辭」(上)에서 유명(幽明)과 생사(生死)는 영혼의 존재를 설명하고 정기(精氣)와 유혼(遊魂)은 생사와 영혼의 존재를 의학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소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방법(天地之道)은 『주역』이라고 주장합니다.(『易』與天地准,故能彌綸天地之道) 결론은 사람이 상(象)과 수(數)로도 쉽게 알 수 없는 음양 작용의 현상을 신(神)이라고 보았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앞에서 말한 신(神)을 음양 작용이라고 보려는 관점입니다.(陰陽不測之謂神) 다시 말해 과학적 방법(天地之道) 관점에서 귀신의 모습(鬼神之情狀)도 이해하였습니다.
북송 시기에는 귀신에 관하여 장재(張載)는 음양 작용을 강조하고 소옹(邵雍)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정명도와 사량좌는 조상님 귀신께 제사 지내기에 앞서 제주(祭主)가 조상님 귀신과 감응하려는 영혼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사량좌 어록 : “求諸陰陽四方上下”) 사량좌의 문인 증염(曾恬)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것(“求諸陰陽四方上下”)은 「계사」︰“仰以觀於天文,俯以察於地理,是故知幽明之故”에 근거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명도와 사량좌 및 증염 모두 산 사람(明)이 조상님 귀신(幽)을 감응하려고 하늘(天文)과 땅(地理)까지 찾는(觀察) 종교적 의식을 설명하였습니다.
금나라 李純甫는 귀신에 관하여 『논어』와 『중용』 및 「계사전」 셋을 경전 자료로 들었습니다.
朱熹는 여조검과 주고받은 서신에서 鬼神을 陰陽 작용으로 보면서 體物而不可遺에서 體를 굳이 本體와 理라고 고집하였습니다. 주희는 산 사람이 눈과 귀로 알 수 없는 귀신이 에게 내려와 붙는다는 뜻에서 “體物”의 “體”를 이해하는 것을 반대하였습니다. 이것은 정명도와 사량좌가 귀신(鬼神, 靈魂)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보려는 종교적 의도를 무시하였습니다.
주희의 견해는 張載가 「系辭」:“陰陽不測之謂神”을 확대해석한 것이고 朱熹가 장재를 이어받아 해석하였습니다. 주희는 여조검과 주고받은 서신에서 여조검의 말뜻을 무시하고 음양 작용으로만 보려고 고집하였는데 정작 조상님 귀신께 제사를 지내려는 여조검의 종교적 의문을 잠시 잊었습니다. 다시 말해 명말청초(明末淸初)에도 논의하였듯이 주희가 굳이 귀신을 본체와 理라고 고집한다면 본체와 理에 제사를 지내야 하고 조상님 귀신께 지사를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신(神)이 빠진 理는 공리(空理)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여조검이 의문을 가진 불멸하는 존재(귀신, 본체)를 “지(知)”하거나 “체(體)”하는 방법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천지 우주가 생성되기 이전 소위 선천(先天)을 어떻게 깨닫냐는 문제까지 확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조검은 정중심토(靜中尋討) 공부 방법이 이정(二程)과 사량좌(謝良佐, 1050-1103)가 주장한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정중(靜中)은 정좌한 선정(禪定)상태이고 심토(尋討)는 천리를 관조(觀照)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정(二程)이 맨날 밥 먹듯이 “본체를 체득(體得, 體認)하라”고 자주 말하였던 문제입니다.

첫댓글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성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