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왕의 양위 과정은 이성계와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세력이 **'역성혁명'을 마무리 짓기 위해 진행한 치밀하고도 압박적인 정치적 절차**였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왕위를 내놓게 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명분 쌓기: 왕씨 왕조의 정통성 부정
이성계 세력은 공양왕을 즉위시킬 때만 해도 '고려의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점차 고려 왕조 자체를 무너뜨리기 위한 여론을 조성했습니다.
* **왕씨 왕조의 한계론:** 정도전 등 급진 개혁파는 "고려 왕씨의 운명은 다했다"는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 **민심 선점:** 이성계는 황산대첩 이후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고, 정도전은 성리학적 명분을 통해 고려 왕실이 통치력을 상실했음을 끊임없이 강조했습니다.
### 2. 정치적 고립과 압박
공양왕은 즉위 초기,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일파와 타협하며 왕권을 유지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실권은 이미 이성계에게 넘어가 있었습니다.
* **정몽주의 제거 (1392년):** 이성계의 정적이자 공양왕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정몽주가 선죽교에서 살해되면서 공양왕은 더 이상 의지할 세력이 없게 되었습니다.
* **정치적 무력화:** 정몽주가 제거되자마자 이성계 일파는 고려의 모든 요직을 장악하고, 공양왕의 측근들을 대거 숙청하거나 유배를 보냈습니다. 공양왕은 이름뿐인 왕으로 전락했습니다.
### 3. 양위의 직접적인 과정 (1392년 7월)
1392년 7월, 이성계 세력은 본격적으로 왕조 교체의 시나리오를 실행했습니다.
* **배극렴 등의 주도:** 당시 이성계 일파의 핵심 인물이었던 배극렴, 정도전 등은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기로 결의했습니다.
* **공양왕의 퇴거:** 공양왕은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는 개경을 떠나 원주(이후 삼척 등지로 유배)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왕위를 내주는 **'양위(讓位)'** 형식을 취하게 됩니다. 이는 새 왕조가 단순히 찬탈한 것이 아니라, 전 왕조로부터 합법적으로 권력을 '이양'받았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 4. 양위 이후의 비극
공양왕은 왕위에서 물러난 후, 유배지를 옮겨 다니며 목숨을 부지했으나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 **사사:**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후, 고려 왕씨들에 대한 정치적 숙청이 이어졌습니다. 1394년, 공양왕은 삼척에서 이성계가 보낸 자객(혹은 명을 받은 관리)에 의해 살해(사사)당했습니다. 이로써 475년간 이어져 온 고려 왕씨 왕조는 완전히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 역사적 함의
공양왕의 양위 과정은 **왕조 교체의 마지막 의례**였습니다. 정도전은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즉위시키는 과정에서, 성리학적 명분을 극대화하여 이성계가 하늘의 뜻(천명)을 받아 왕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공양왕은 **"고려라는 멸망해가는 나라의 마지막 왕"**이라는 짐을 지고, 자신이 지키려 했던 나라가 자신의 손에 의해(형식적으로나마)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비운의 군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