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언연(彦演), 호는 형구(亨九). 1616년(萬曆 44) 진사가 되어 명나라의 중요한 관료로 활약하다가, 청나라 군사에게 체포된 후 청나라의 중요한 막료가 되었다.
그는 새로운 정부하에서 내각의 최고직인 비서원(秘書院) 대학사(大學士)가 되어 중국 귀족층이 새로운 나라를 인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중국 남부지방에서 계속 저항하던 명나라의 잔존세력을 격파하는 전쟁에서 청나라 군대의 식량과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만주족들로부터 혹시 명나라 군사와 비밀리에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계속 의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이나 자신의 직책을 유지했다.
1659년 그가 이끌던 군대는 중국 남부에서 저항하던 명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황권을 주장하던 명나라의 황자 주유랑(朱由)을 중국 남부에서 미얀마로 몰아냈다.
그는 주유랑을 더 이상 추격하는 데 반대했으며 이 전쟁에 더 이상 관여하지 않도록 허락을 받았다. 1년 동안 더 대학사직을 유지하다가 공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허용되었다.
홍승주의 귀순
청태종(홍태극) 숭덕 6년(1641년). 군사의 요충지를 둘러싸고 명과 청은 혈전을 치뤘고, 청태종은 명의 계료총독 홍승주를 포획했으나 투항을 받아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뛰어난 장수 홍승주에게 투항을 받아내 귀순시키고 싶었으나
“내 신조를 말해주지. 내 사전에는 죽음이라는 단어는 있어도 투항이라는 단어는 없다.”며 홍승주는 쉽게 투항하지 않았다.
청태종은 가장 총애하던 후궁 장비에게 이 고민을 털어 놓았다. 장비는 미모가 뛰어났고, 사리에 밝았으며, 후일 대청제국의 기초를 닦은 순치황제의 친모이기도 했다.
장비는 직접 홍승주를 만나보겠다고 태종을 설득시켰고, 마지막 방법이라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청태종은 장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단식 이틀째였던 홍승주가 갇힌 감옥으로 찾아 간 장비는...
“저는 부처님을 믿습니다. 순국으로 살신성인 하시겠다는 장군님의 결연함에 탄복했습니다. 그러나 단식으로 죽음을 재촉하고 계신다는 말에 측은지심이 생기더군요, 아마도 식음을 전폐하여 죽으려면 7~8일은 지나야 숨이 끊어 질 것입니다. 그 고통은 목을 매거나 강물에 뛰어들어 죽는 것보다 훨씬 더하지요. 그런 장군이 불쌍하기도 하고 부처를 믿는 사람으로서 장군의 고통을 덜어드려야 하겠다는 의무감이 들어 독약을 준비해왔습니다,. 이약을 드신다면 빨리 세상을 뜨시고자 하는 소원을 이루실수 있습니다. 이 약을 드실 담력이 있으신지요?” 라며 홍승주를 떠보았다.
장비의 아름다움에 반한 홍승주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으나 장수답게 약을 마셨다. 그러나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장비는...
“장군 아마도 하늘이 장군께서 일찍 세상을 하직하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나 봅니다. 저는 태종의 애첩입니다. 장군께서 지금 죽는다면 명나라 조정에서는 장군의 가문에 어떤 혜택을 내릴까요? 기껏해야 장수로서의 지조를 지켰다는 공명이나 내리겠지요. 그것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입니까? 차라리 청나라에 머무시면서 명나라와 청나라를 화해시킨다면 두 나라에 모두 유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명나라 황제에게 편지를 한 통 써 보내세요, 몸은 청나라에 있지만 마음은 명나라에 있으니 힘을 다 할 것이라구요, 그러면 장군께서 정당하게 청나라에 머무실 수 있고 가족들도 무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드린 약은 인삼탕입니다, 장군의 힘을 돋울 수 있는 자양분이 가득 들어 있지요. 그러니 힘을 내세요.”라고 말했다.
결국 장비의 달변과 미모 앞에서 홍승주의 기개는 고개를 숙였고 태종에게 투항했다. 청태종 역시 약속을 지켜 홍승주를 참사관에 임명했고 홍승주를 귀순시키는데 공을 세운 장비는 공신으로 추대되어 더 큰 총애를 받았다.
홍승주와 장비의 일화는 미인이란 외모의 아름다움만이 아닌 총명함과 담대한 용기가 더해진 내적인 아름다움을 갖춘 여성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 편지는 제가 자주 가는 중국 문화 사이트에서 그 곳 운영자님께 드린 질문을 메일로 받았습니다. 그분은 지금 모 대학 중국문화과 교수님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강희제의 생모는 동가씨인가요? 아니면 동악씨 인가요?
강희제의 생모는 동소완(董小宛)인데, 그녀는 원래 모벽강(冒벽疆)의 소첩이었으나, 홍승주(洪承疇)에 의해 순치제의 비(妃)로 바쳐졌습니다. 그 후 그녀는 이름을 동악씨(棟鄂氏)로 바꾼 후 귀비(貴妃)에 책봉되었습니다.
첫댓글 이 사주는 1641년 즉 49세때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나라로 귀순을 했는데...귀순을 하고도 명나라의 잔당들을 소탕했으니... 비록 망해가는 나라이었지만.... 명나라 측에서 보면... 웬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