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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 found river의 2마디, 화웅(畵熊)여신 신화
향찰(鄕札)인 <단문(甘文)-국(國)>과 <고대 인더스-문명>
오늘날 밴쿠버 만(Vancouver Bay)에서 플레이져 강(Flaser river)을 중심으로 한 삼차(三岔)운하를 통해서 계산
(罽山: Rocky)산맥을 넘어서 팔관(八貫)운하로 8개의 강을 꿰어서 동부여(東夫餘) 쪽으로 넘어가는 수리시설을 갖춘
부상국(扶桑國)은 인더스 강(Indus river)의 지류가운데, 동류(東流)하는 ‘카불 강(Kabul river)’에 자리잡은 계빈국
(罽賓國)의 비구(比丘)5명을 받아들인 것이 남사(南史)의 기록에 의하면, 장수왕(長壽王) 46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원문(原文)]
宋大明二年(458年),罽賓國有比丘五人,遊行至其國,流通佛法經像,教令出家,風俗遂改。』
: “송(宋) 대명(大明)2년 (458년: 고구리(高句麗) 장수왕(長壽王) 46년)에 계빈국(罽賓國)의 비구(比丘) 5사람이 부상
국에 유행(遊行)해서 불법(佛法)과 경전(經典)과 불상(佛像)을 유통시켰기에, 불교(佛敎)의 교령(敎令)에 의해서
출가(出家)하게 되었으며, 풍속이 마침내 고치게 되었다.”라고 (부상국(扶桑國)의 승려 혜심(慧深)이) 말했다.
이는 부상국(扶桑國)이 인도대륙 동해안(東海岸)의 ‘풀리켓 호수(Pulicat lake)’에서 석탈해(昔脫解)의 난모(卵母)가
적녀국(積女國)의 왕녀(王女)로 왕래하는 것을 상관시켜 보면, 인도(印度)대륙과 부상국(扶桑國)의 교류는 인도대륙
서(西)쪽인 인더스-강(Indus river)쪽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뜻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감문국(甘文國)을 향찰(鄕札)로 읽으면, ‘단문 국(國)’이 되고 이 의미는 ‘매달아 놓은 호수(湖水)의 나라’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매달았다”는 뜻은 지금은 사라졌지만, ‘고대 인더스 문명’ 때부터 인더스-강(Indus river)의 바로 우측에서
평행(平行)되게 흘렀던 ‘각가르-하끄라 강(Ghaggar-Hakra river)’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강의 해구(海口)가
기역(ㄱ)자 모양으로 두 곳으로 나뉘어지면서 바다에 접(接)하는데, 거대한 <쿠치(Kutch) 염습지(鹽濕地)>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기역(ㄱ)자 모양의 염습지(鹽濕地)에 둘러쌓인 섬(島)같은 쿠치(Kutch)지역이 결국 ‘각가르-하끄라 강(Ghaggar-
Hakra river)’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매달아놓은 나라”라는 의미로 <단문(甘文)국
(國)>이라고 칭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흔히들 감문국(甘文國)은 <경북 김천시 개령면 지역>에 있는 소국(小國)이라고 거론(擧論)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
까지나 북(北) 인도(印度)의 ‘각가르-하끄라 강(Ghaggar-Hakra river)’의 하류에 매달린 듯한 오늘날 쿠치(Kutch)지역
에 있었던 단문(甘文)-국(國)에 대해서 지원(支援)하는 ‘본읍(本邑) 역할’을 하던 지역에 대한 미칭(美稱)일 뿐인 것
입니다.
이 지원업무는 생각컨데, 원(元)이 흥기하여서 바이칼(Baikal)에로 <청구(靑丘)-고리(高麗)>가 접근이 어렵게 되자,
전주(全州) 밑의 오늘날 옥정호(玉井湖)라고 칭하는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던 <구고(九臯)-금성호(金城湖)>를
바이칼(Baikal)에서 하던 <경병(炅兵)들의 배달화백을 하는 성호(聖湖)>을 옮기면서, 북인도의 단문(甘文)-국(國)에
대한 본읍(本邑)으로써의 지원 의무 역시 <구고(九臯)-금성호(金城湖)>로 옮긴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북인도에 있었던 단문(甘文)국(國)에 관련된 지리(地理)와 이에 따른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도(印度)의 강(江)들 가운데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베다(Veda)등등의 인도(印度) 고전(古典)을 근거로
지리 조사를 하게 되면, ‘각가르-하끄라 강(Ghaggar-Hakra river)’의 상류는 기이(奇異)하게도, 인더스 강(Indus river)
과 갠지스(Ganges)의 최대 지류(支流)인 야무나-강(Yamuna river)의 양쪽에 모두 대달아서 이 두 강이 서로 회통
(廻通)되게 하는 교량(橋梁)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단문(=甘文)국(國)>은 대운하(大運河)를 움켜쥐고 있는 나라였다고 할수 있기 때문에, 그 수계(水系)구조를
설명하자면, 복잡하긴 하지만, 일단은 인더스(Indus river)의 하류(河流)에서 부터 살펴보아야 할것입니다..
오늘날 인더스-강(Indus river)의 하류(下流)가 에스(S)자처럼 흘러서 역(逆)-씨(C)자 모양 불쑥 이런(⊃) 모양으로
배를 내민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래 <인더스-강(Indus river) 하류(下流) 상세(詳細)지도>에 보다시피,
[*1*] 인더스-강(Indus river)가 막 이런 (⊃) 모양으로 돌아가는 곳에 보면 인더스-강 좌측에 만취하르 호(Manchhar
Lake)가 있는데, 이 호수(湖水)는 비록 1930년대에 파키스탄(Pakistan)정부에 의해서 건립되긴 하였으나,
‘단문(=甘文) 국(國)’의 수리시설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민족이 들어가서 갑문(閘門)을 놓아서 배(船)가 다니게 한 곳에서는 근대(近代)에 들어서서 비록
예전에 비해서 규모가 작긴 하나, 지리적인인 동일한 조건(條件)을 활용하려는 특성 때문에, 같은 위치에 댐(Dam)
이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늘날 하북성의 태행(太行)산맥 동록에 있는 수많은 댐(dam)은 고구리 때 설치한 위치와 똑같은
곳에 위치해 있음을 통해서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을지문덕(乙支文德)장군은 이 댐(Dam)을 일시에 터트린 폭류(瀑流)로써 수(隋)나라의 30만(萬)의 대군(大軍)을 2일
만에 2000 명 내외의 병력을 제외하고는 전멸(全滅)시킨 것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적혀있을 정도인 것입니다.
아무튼 이 만취하르 호(Manchhar Lake)는 청정수(淸淨水: Flesh water)의 저장량을 아시아(Asia) 최대로 치는데,
특이한 것은 2개의 운하(運河)가 북류(北流)(↑)올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①아랄(Aral)j과 ②다니스터(Danister)라고 칭하는데,
(The lake is fed by two canals, the Aral and the Danister)
아래 지도를 보면, 이것이 (1)합쳐진 운하이름이 ‘다두 운하(Dadu canel)’라고 되어 있는데, (2)그 좌측에서는 발로치
스탄(Balochistan)산맥 서록(西麓)의 물을 모아서 역시 북류(↑)하는 운하가 라이스-운하(Rice canel)가 ‘다두 운하’와
함께 나라힌 병행(竝行)되어 올라가다가 에스(S)자 모양으로 인더스-강(Indus river)가 막 꺽이는(↙) 곳에 람다(Γ)
모양으로 꺽어들여서 동류(→)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인더스-강(Indus river)이 에스(S)자로 꺽이는 곳 이남(以南)부터는 의외(意外)로 남(南)
쪽이 높기 때문에, 작은 강(江)과 운하(運河)는 북류(↑)하는 지리(地理)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래 <상세 지도>에서 그 반대측인 인더스-강(Indus river)에스(S)로 흐르는 부분의 윗부분인 씨(C)자 처럼
돌아나가는 곳의 우하(右下)(↘)지역에서 서 서북류(↖↖↖)하는 수많은 지류(支流) 운하(運河)를 모아서 북류하는
로흐드-운하(Rohd Canal)와 또 그 우측에서 북류(↑)하는 나라 운하(Nara Canal)가 있음을 통해서도 확인이 됩니다.
흥미있는 것은 에스(S)자 모양의 왼쪽에서 올라온 2개의 운하(運河)와 오른 쪽에서 올라온 2개의 운하가 모두 ‘구두
바르즈(Guddu Barrage)’에 집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르즈(Barrage)는 여러 강(江)또는 운하(運河)가 마치 세례(洗禮)받듯이 결집하는 곳에 설치된 댐(dam)을 의미합
니다.
현재 ‘구두 바르즈(Guddu Barrage)’는 최대 8m 정도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참고 : The maximum flood level height of Guddu Barrage is 26 feet (8 m).)
이는 8m를 올려도 여러 운하(運河)가 북류(↑)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음을 의미히가 때문에, 인더스-강(Indus river)이
에스(S)로 도는 하류(下流)지대가 은근히 높은 지역임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 인더스-강(Indus river)의 하류(下流)가 에스(S)자로 돌아가는 곳에서 이런(⊃)모양으로 튀어나온 곳에 있는 도시
가<하이데라바드(Hyderabad)>이고, 이의 서남(西南)쪽(↙)쪽에 있는 호수 칼리 호(Kalri Lake) -이를 킨자 호(Keenjhar
Lake)라고도 함 - 라고 합니다.
(*)참고 : 카불 강(Kabul river), <하이데라바드(Hyderabad)>를 포함한 인더스-강 수계지도
http://en.wikipedia.org/wiki/File:Indus_river.svg
그런데, 에스(S)자처럼 인더스-강(Indus river)가 돌아가는 하류(下流)전체 다시 말하면, ‘구두 바르즈(Guddu Barrage)’
아래의 지역(地域)이 중요한 것은 이곳이 고대 인더스-문명이 유적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을 포함하면서 그 아랫부분
이 되기 때문입니다.
(*) 위 [1], [2]를 살필 수 있는 <인더스-강(Indus river) 하류(下流) 상세(詳細)지도>
http://www.columbia.edu/itc/mealac/pritchett/00maplinks/overview/pakphysical/sindhphysical.jpg
즉 고대(古代) 인더스-문명의 유적이 발견이 된 모헨조-다로(Mohenjo-dara) 유적이나 하라파(Harappa) 유적들이
발견이 되는 지역과 인더스 강 하류(下流)와 겹쳐져 있는 것입니다.
이 인더스-고대 문명은 대체적으로 B.C 2500년에서 B.C 1800년대에 걸쳐서 융성하였던 문명인데, 이 유적들이 발견이
된 것은 맨처음 사원(寺院)의 흔적일 것이라고 파악해서 ‘영국인 고고학자 ’죤 마셜(John Mashal)‘이 1930년대 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고대문명의 흔적이라는 것이 점차 확인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학자들이 인더스 고대문명은 B.C. 3000년 대라고 말하고 이는데, 이처럼 원래
B.C 2500년대에서부터 점점 거슬러 올라가게 된 까닭은 더욱 오래된 유적들이 점점 많이 발견이 되기 때문인데,
이 유적들은 여러 가지 역사의 수수께끼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인더스 고대 문명’의 실체(實體)에 대해서는 근대(近代)에 들어와서 겨우 알게 되었는데, 유적(遺跡)이 발굴
되면 될수록 ‘인더스 고대 문명’에 대한 ‘수수께끼’가 비례해서 증폭되고 있는 수수께끼의 문명이 되고 있는 것입
니다.
아래 ‘온고창신 블로그(blog)’를 보면, 이 ‘수수께끼’가운데, 특히 유의해서 읽어야할 것이2곳이 발견이 됩니다.
[1] 4번째의 수수께끼에서 신전(神殿)이 발견이 되지 않으면서 길이 12m, 너비 7m 그리고, 깊이 2.5m 이어서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대형 목욕탕이 있는데, 이는 ‘사람의 목욕탕’ 이라하기에는 지나치게 깊으면서 저수량 160톤을 견디기
위해서 벽돌로 3겹을 하고, 자연 방수(防水)시설인 역청(癧靑)을 바른 곳이 왜 존재하였는가? 하는 질문 부분입니다.
[2] 또 하나는 5번째의 수수께끼 ‘왜 고대 인더스 문명은 갑자기 증발하였나?“하는 관점입니다.
여러가지 가설을 모두 있는데, 그 중에서 (7)번째 가설(假說)로써 <유리가 되어버린 동네>라고 칭하면서 접근하기를
꺼리는 지역에 대한 소개 글이 있습니다. <유리가 되어버린 동네>는 반경 400m 지역의 원형(圓形)으로 된 지역으로써,
순간적으로 2000도 이상의 고열(高熱)에 의해 흙,모래가 유리(琉璃) 형태가 되어버린 곳을 뜻하는데, 방사성 유출이
다른 곳의 50배나 되기 때문에, <핵(核)폭발의 흔적>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는 지역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인더스 문명은 ’핵폭발에 의해서 증발된 문명‘이라는 가설을 소개하고 있는 셈인데, 이 부분을 유념해서 살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모헨조다라>이야기- 역사의 수수께끼”를 볼 수 있는 ‘온고창신 블로그(blog)’
http://blog.daum.net/naganchun/504
그런데, 우리는 전회(前回)에서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나오는 환국(桓國) 가운데, 그 ‘위치’를 모르는 ‘미지의 3 환국
(桓國)’이 [1]⑦객현한국 (客賢汗國) [2]⑧구모액국 (句牟額國) [3]⑩사납아국 (斯納阿國)의 3 환국(桓國)으로
우리는 파악을 하였습니다.
이 “고대 인더스-문명이 이 ‘미지(未知)의 3 환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우리는 먼저 할 필요가 있습니다.
환국(桓國)이 되려면, 그 역사가 배달국(倍達國)과 동시대를 같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되어야하는데, 일단 B.C
3000년이기 때문에, 이는 배달국 말기(末期)와 일치합니다.
따라서 환국(桓國)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문명(文明)임이 틀림없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인더스-고대문명에 있었던 나라가 “스스로의 국명(國名)’을 무엇이라고 칭하였는지?”가 힌두교의
고전(古典) 속에서도 명확히 들어나지 않고, 신화(神話) 속에 묻혀있기 때문에, “인더스 고대 문명은 무슨 환국
(桓國)이다!”라고 ‘미지(未知)의 3환국(桓國) 국명’ 명칭과 대비해서 단정(斷定)내릴만한 단서가 잘 발견이 되지 않
습니다.
그런데, 이 인더스-고대문명이 있었던 때의 지리(地理)와 현재의 지리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인더스 고대문명의 대표적인 두 유적지인 (1) 모헨조-다로(Mohenjo-dara) 유적의
위치와 (2)하라파(Harappa) 유적의 위치부터 파악을 해야 할 것입니다.
(1)의 모헨조-다로(Mohenjo-dara)의 의미는 ‘죽은 자의 언덕’이란 뜻인데, 이는 죽음과 삶이 윤회(輪廻)로써 순환
상생한다는 인도 철학을 이해하면, ‘생명의 새로운 탄생’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모헨조-다로(Mohenjo-dara)의 위치는 인더스-강이 에스(S)자로 돌아나가는 오늘날의 ‘구두 바르즈(Guddu Barrage)’
에서 약간 서남(↙)쪽인 것입니다.
(2)의 하라파(Harappa) 유적은 아래 인더스-강(Indus river)의 수계(水系)지도를 보면,
첸나브 강(Chenab river)이 여러 지류(支流)가운데서 한가운데서 이런(____↙)모양으로 변곡점(變曲點)을 지니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변곡점(變曲點)의 남안(南岸)에 있는 도시가 바로 하라파(Harappa)인 것입니다.
첸나브 강(Chenab river)의 뜻은 ‘달(月)의 강(江)’이란 의미인 것입니다.
(*) 참고: The Chenab River (, , , , literally: 'Moon(Chan) چن River(aab)' آب) is a major river of Jammu and Kashmir
and the Punjab in India (*)
(*) 첸나브 강(Chenab river)의 변곡점(變曲點)(___↙)의 남안(南岸)에 하라파(Harappa) 유적이 있음을 알게 하는
<인더스-강(Indus river)의 수계(水系)지도>
http://en.wikipedia.org/wiki/File:Indus_river.svg
이런 기본 두 유적지의 위치를 알고 나면서
(1) 아래의 ‘고대 인더스 문명 발굴 지도’를 살펴보면, 얼마나 광대한 지역에 이 문명(文明)이 자리 잡았는지를 파악
할 수 있는데,
(2) 일단 유의할 사실은 인더스-강(Indus river)밑에 꼭 인더스-강(Indus river)의 배필(配匹)이나 되는 듯이 평행(平行)
해 내려오다가 하류(下流)에서 에스(S)커브를 좀 더 크게 하면서 흐르는 강(江)이 하나 더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 강의 이름이 각가르- 하끄라 강(Ghaggar-Hakra river)‘인 것입니다.
이 강(江)은 베다(Veda)등등의 고전(古典)에서 존재하였고 근대에 들어와서 지리고증을 철저히 해서 강의 흐름이
“어찌 흘렀는가?”에 대한 흐름 자체는 확실해졌으나, 지금은 사라진 강인 것입니다.
(3) 그런데, 아래 <고대 인더스 문명 발굴 지도>를 보면, 각가르-하끄라(Ghaggar-Hakra) 강이 들어가는 곳이 ‘기역
(ㄱ)자 모양으로 된 보라색 지역’에 ‘Runn of Kutch’라고 되어 있는 부분이 있는데, 색인(索引: Index) 란(欄) 속에는
‘보라색’이 <Rann>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Runn은 <Rann>에 대한 오기(誤記)인 것입니다.
<Rann>은 영어(英語)가 아니라, 흰두어(=인도어(印度語))로 ‘소금기 있는 습지(濕地)(salt marsh)’인 것입니다.
(*) 참고 : The name "Rann" comes from the Hindi word ran (रण) meaning "salt marsh".(*)
따라서 <Rann of Kutch>의 의미는 <쿠치(Kutch) 염습지(鹽濕地)>지대임을 뜻하는데, 실제 오늘날 쿠치(Kutch)지구
(地區)의 절반(折半)이 이런 염습지(鹽濕地)>지대로 있을 정도로 그 크기는 매우 큰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이 흐르지 않는 관계로 이 지역은 ‘바싹 마른
논(田)’과 같은 모양으로 있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Rann of Kutch>가 ‘바싹마른 논(田) 모양’으로 있는 모습
http://www.thehindu.com/multimedia/dynamic/00016/AVN7_RANN_16216f.jpg
따라서 만약 예전처럼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이 <Rann of Kutch> 지역에 흘러들어오면,
이 <Rann of Kutch>지역에서는 어마어마한 수량의 함초(鹹草)가 자랄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중요한 것은 부상국(扶桑國)에서 플레이저 강(Flaser river)이 밴쿠버-만(Vancouver Bay)으로 들어가는
곳의 오늘날 시애틀(Seatle) 지역이 백인(白人)들이 도시(都市)를 만들기 전에는 강물이 넓게 펴져나가는 ‘부채꼴’
형태로 되어 있었고,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오는 관계로 <Rann of Kutch>지역처럼 어마어마한 함초(鹹草)재배지로
되어 있는 것과 유사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단문(甘文)국(國)>의 주(主)된 강물이 흘러나가는 곳에 대량의 함초(鹹草)재배지가 있었던 것과 부상국(扶桑國)
의 주(主)된 강물이 흘러나가는 곳에 대량의 함초(鹹草)재배지가 있었던 것이 기이(奇異)할 정도로 일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4) 그런데, 이런 기역(ㄱ)자 모양의 <Rann of Kutch> 바로 밑에는 어떤 반도(半島)가 있는데, 그 이름이 카티아와르
반도(Kathiawar Peninsula)입니다.
(*) 카티아와르 반도(Kathiawar Peninsula)의 반도를 볼 수 있는 곳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5/Gujarat_Gulfs.jpg
위 지도에서 보다시피, <카티아와르 반도>는 북서쪽은 <쿠치 만(Gulf of Kutch> 남서쪽은 아라비아 해,
동쪽은 캄베이 만(Gulf of Khambat.)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 참고 : 위 사진(寫眞)지도의 하단(下端)에 있는 설명문
Kathiawar in between Gulf of Kutch and Gulf of Khambat. Image NASA Earth Observatory (*)
따라서 <Rann of Kutch>는 기역(ㄱ)자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남류(↓)해서는 <쿠치 만(Gulf of Kutch>으로 들어
가는 해구(海口)가 있고, 또 서류(西流)(←)해서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의 원래 해구(海口)가 또
하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 그런데, 이 남류(↓)해서 <쿠치 만(Gulf of Kutch>으로 들어가는 지역이 염습지(鹽濕地)가 작기 때문에,
‘The Little Rann of Kutch’라고 부르고, 반대로 서류(西流)해 들어가는 지역의 염습지(鹽濕地)가 크기 때문에,
‘The grate Rann of Kutch’라고 구분해 줍니다.
(나) 이처럼 크고 작은 ‘Rann of Kutch’가 기역(ㄱ)자로 꺽이는 안(內)쪽에 보면, 수르꼬따다(Surkotada)란 지명이
나오는데, 이곳을 <단문(甘文)국>의 도읍(都邑)으로 보는 지역입니다.
이 “수르꼬따다(Surkotada)”란 지명을 ‘우리 말(言) 감각’으로 들어보면, “술(酒)꽃따다”란 말로 들립니다.
이는 ‘Rann of Kutch’에서 자라는 ‘함초(鹹草)의 꽃’을 따서 이를 ‘약(藥)술’로 담 그었음을 암시(暗示)하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또 술(酒)을 접두어(接頭語)로 쓴 까닭이 발효(醱酵)의 상징으로 썻는지는 알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Rann of Kutch’에서 대량 재배되었던 함초(鹹草)를 법제(法製)하는 이미지를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 “함초 꽃 보셨나요?”에서 볼수 있는 ‘함초꽃’
http://blog.daum.net/cjtsns7942/13109315
(다) 수르꼬따다(Surkotada)의 서북(↖) 쪽에 보면, 어떤 섬(島)에 도라이이라(Dholayira)란 인더스-문명의 도시
하나가 있음이 발견이 되는데, 이 섬(島)의 이름은 카디르-섬(island of Khadir)입니다.
‘도라이라’란 지명(地名)을 ‘우리 말 감각’으로 들어보면, “돌아이”가 회전(回轉)을 또 “이라”가 “밭을 일다”에서 보다
시피 개간(開墾)을 의미하기 때문에, 회전(回轉)하는 힘으로 이 섬(島) 밑에 있는 어떤 물질 - 이는 천연(天然)개스
(Gas)입니다. -을 개간(開墾)해내는 지역과 같은 느낌을 줍니다.
(라) 도라이이라(Dholayira)에서 서(西)쪽으로 계속 나가면, 데살푸르(Desalpur)란 도시가 있는데, - 이를 다야파르
(Dayapar)라고도 합니다. - 아래 <고대 인더스 문명 발굴 지도>를 보면 이 도시(都市) 바로 서북(西北)쪽에 염습지
(鹽濕地)에 이런(⊃) 모양으로 아라비아(Arabia)해(海)가 깊숙히 들어오고 있는 지역이 있는데, 바로 그 곳에 입맞
추듯이 이런(∧)모양으로 쿠치(Kutch)의 육지(陸地)가 올라간 지역이 되는 것입니다.
즉 이런(∧)모양으로 올라간 부분은 데살푸르(Desalpur)란 도시의 정북(正北)쪽에 있게되는데, 이 사실이 중요한
까닭은 ‘The grate Rann of Kutch’지역에 남북(南北)으로 세로지르는 곤(丨)자 모양의 제방(堤防)을 쌓아주고, 갑문
(閘門)을 설치할 경우에,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이 이곳(∧)의 동(東)쪽에서 남류(南流)(↓)하는
관계로 곤(丨)자 모양의 제방과 갑문을 놓는 곳이 데살푸르(Desalpur)란 도시의 정북에 있는 돌출(突出)(∧)부분
이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컨데, 남북(南北)으로 곤(丨)자처럼 길게 제방(堤防)이 내려와서 갑문을 쳐주는 위치는 돌출(突出)(∧)부분
바로 윗 쪽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곤(丨)자 제방(堤防)의 서(西)쪽에서 인더스-강(Indus river)가 남류(南流)(↓)해와서 토사(土砂)를 쌓는
지역이 상당(相當)부분이 있지만, 이곳에서 ‘3겹 갑문’을 쳐서 수위(水位)를 놓힌 다음에, 가운데의 경첩갑문을 순간
적으로 젖혀서 인더스-강(Indus river)의 토사(土砂)가 쌓이지 않도록 밀어내는 작용을 해야 만이 아라비아(Arabia)
해(海)에서 거선(巨船)들이 배 밑바닥이 뻘에 걸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데살푸르(Desalpur)란 도시(都市)이름을 ‘우리 말(言)의 감각’으로 들어보면, ‘댓살 푸른’ - 즉 ‘대차게
화살이 나가듯이 물(水)이 푸른 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데살푸르(Desalpur)란 말의 인도어 어원(語源)의 개념은 이와는 다르겠지만, 이 지역에 <단문(甘文)-국(國)>이
오랜 세월 있었다면, ‘우리 말’로 그 뜻을 풀어서 갑문 등의 수리(水利)시설의 설치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이, 결코
황당한 방법이 아니라, 오히려 반드시 검토해야할 방법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감문(甘文) 국의 갑문 이름을 <댓살 푸른 갑문>이라고 이름짓기로 합니다.
(마) 그런데, 이 데살푸르(Desalpur) 우측지역에 보면, 내륙(內陸)에 어떤 호수(湖水)가 있는데,상세(詳細)지도에서
찾아보면, 이는 “차리 댄드(Chari Dhand)” 호수로써 오늘날 조수(鳥獸)보호구역(Bird Sanctuary)“으로 되어 있는 곳
입니다.
이 “차리 댄드 호(湖)(Chari Dhand lake)”는 수평(水平)으로 길게 놓여져 있는 호수(湖水)로 아래 <고대 인더스 문명
발굴 지도>에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차리 댄드 호(Chari Dhand Lake)’를 우리 말(言)의 감각으로 들어보면, ‘차리 댄’ - 즉 대기(=닿게하다:
put)위해 차린 차린(=Set) 호수(湖水)로 느껴집니다.
즉 우리말로 해석해보면, 이 호수는 닿게 하는 것들을 잘 차려서(=setting)볼 수 있게 하는 호수란 의미를 지닙니다.
이 실제 이 호수(湖水)의 좌단(左端)에서 수직선(垂直線)을 올릴 때에(↑),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이
남류(↓)해서 ‘The grate Rann of Kutch’에 강수(江水)를 대고 있는 것입니다.
또 긴 ‘차리 댄드 호수(Chari Dhand lake)’의 우단(右端)의 북(北)쪽에 보면 한자(漢字)의 경(冂)자 처럼 어떤 곶(串)
이 툭 튀어나온 모양이 있는데, 이는 도라이이라(Dholayira)란 도시가 있는 카디르-섬(island of Khadir)의 왼쪽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세(詳細)지도를 보면, 이는 곶(串)으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파챰-섬(Pachham island)임이 확인이 됩니다.
파챰(Pachham)을 우리 말(言)의 감각으로서 보면, “파서(=dig)채운다.”는 의미로 볼수 있는데, 이는 이곳 ‘Rann of
Kutch’ 지역 밑에 있는 ‘천연 개스’를 굴착(掘鑿)해서(=파서) 거대한 ‘고무 판’에 채운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리 댄드 호수(Chari Dhand lake)’는 좌단(左端)에서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이 남류(↓)함과
우단(右端)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헬륨 개스를 모두 닿게하는(=댄, 댄드(Dhand))것을 ‘차리는(=set)’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 파챰(Pachham) 섬(島) 우측의 카디르-섬(island of Khadir) 한 가운데의 고대 인도문명의 도시 이름이
도라이-이라(Dholayira)로써 이 것 역시 ‘돌아가는 회전(回轉) 착암기에 의해서 천연개스’가 “일어나도록”하는 이미지
(Image)가 있는 것 역시 천연개스와 관련되는 지명(地名)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카디르-섬(island of Khadir)의 오른 쪽에 보면, 수르꼬따다(Surkotada)의 정북(正北)쪽에서 불(乀)자 모양으로
곶(串)을 내민 곳이 있는데, 이 역시 상세(詳細)지도를 보면, 곶(串)이 아니라, 벨라-섬(Bela island)로 나옵니다.
즉 파챰-섬(Pachham island)과 벨라-섬(Bela island)은 남(南)쪽으로 육지(陸地)에 가깝게 붙어있지만, 횡(橫)으로
된 염습지(鹽濕地)가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The grate Rann of Kutch’에는 3개의 섬(島)이 있는 셈인데, 서(西)쪽에서부터 열거하자면,
① 파챰-섬(Pachham island) ② 카디르-섬(Khadir island) ③벨라-섬(Bela island)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맨 동(東)쪽의 벨라-섬(Bella Island)이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벨라-섬(Bella Island)의 좌단(左端)에서
수직선(垂直線)을 내리게 되면, 우측의 이런(◀) 삼각형으로 된
‘The Little Rann of Kutch’과 ‘쿠치-만(灣)(Gulf of Kutch)’의 경계가 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 따라서 갑문과 제방을 곤(丨)자로 쳐줄 위치는 이 벨라-섬(Bella island)에서 수직선(垂直線)을 내려서 ‘쿠치-만
(灣)(Gulf of Kutch)’을 세로 지르는 것인데, 신기하게도 벨라(Bella)를 우리 말(言)의 감각으로 보면 “베어 버릴라
(cut down)"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아래 <고대 인더스 문명 발굴 지도>을 보면, 이 벨라-섬에서 수직선을 내린 곳의
‘쿠치-만(灣)(Gulf of Kutch)’남안(南岸) - 즉 카티아와르 반도(Kathiawar Peninsula)의 북안(北岸)에 <고대 인더스
문명의 어떤 도시(都市)>가 있었음이 그려져 있는데, 도시 이름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세(詳細)지도를 보면, 이 도시 이름은 ‘나바 안지야사르(Nava Anjiyasar)’로 나옵니다.
이 말을 우리 말(言) 감각으로 들어보면, “놔바(=놓아봐)앉지야 살~”로 들립니다.
이는 함초(鹹草)를 따기 위해서 작은 카누(canoe)들이 대거(大擧) ‘The Little Rann of Kutch’지역으로 들어간 다음에,
갑문을 활짝 열어서 염수(鹽水)를 놓으면(=방류하면), 카누(Canoe)들이 함초(鹹草)를 따기 좋게 살짝 앉는 이미지
(Image)를 주는 말로 들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갑문을 <놔바 앉지야 살~ 갑문(閘門)>이라고 이름하기로 합니다.
이곳은 현재 인도(印度)에서 댐(dam)을 쌓고, 그 위에 도로(道路)를 놓은 곳인 것입니다.
(*) 위 (1)모헨조-다로(Mohenjo-dara),하라파(Harappa) 유적
(2)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
(3) <Rann of Kutch>,
(4)
(가)대소(大小)Rann (나)수르꼬따다(Surkotada) (다)도라이이라(Dholayira) (마)‘차리 댄드 호수(Chari Dhand lake)’
파챰-섬(Pachham island) (바)나바 안지야사르(Nava Anjiyasar)
<고대 인더스 문명 발굴 지도>
http://www.crystalinks.com/indusmap.gif
(*) 관련 상세(詳細)지도
http://wikimapia.org/#lat=23.1340458&lon=70.5617523&z=11&l=0&m=b
우리는 수르꼬따다(Surkotada)를 <단문(甘文)-국(國)>의 도읍으로 추정하였는데, 이는 결코 인더스-고대문명의
성곽(城郭)자체를 단문(甘文)-국(國)에서 인계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옛 유적이 흙에 파묻힌 후에 그 ‘위’에 <단문(甘文)-국(國)>의 도읍이 설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단문(甘文)-국(國)>의 도읍의 유적은 인더스-고대문명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라졌을 개능성이
큰데, 아무튼 이 수르꼬따다(Surkotada) 지역을 발굴 해 본 결과 이 지역은 마치 한자의 일(日)자 처럼 두 구획으로
분리된 성곽도시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 1971~72년의 수르꼬따다(Surkotada) 지역의 발굴 결과의 일(日)자 모양의 성곽도시
http://www.hindunet.org/hindu_history/sarasvati/html/mapsurkot.jpg
(*) 수르꼬따다(Surkotada)의 복원도
http://www.hotelsurbhi.com/dolavera%20travel_files/surkotada_concept.jpg
그런데, 이 <감문(甘文)-국(國)>의 도읍(都邑)인 수르꼬따다(Surkotada)의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적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단서(端緖)를 제공한 도시로도 유명합니다.
그것은 이 도시에서 ‘말(馬)의 뼈’가 발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 수르꼬따다(Surkotada)의 말뼈 (Horse bones from Surkotada)
http://www.archaeologyonline.net/indology/2007/horse/horse-bones.jpg
(원 주소: www.archaeologyonline.net/.../horse-debate.html )
(*) 위 말뼈로 복원시킨 말(馬) 모습 (Horse remains at Surkotada)
http://media.photobucket.com/image/Surkotada/MGSG/EK.jpg
왜 이 점이 중요한가?!
이는 고대 인더스-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후에, 이 문명에 동참하였던 드라비다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남인도 지역
으로 이주(移住)하게 되는데, 북인도에 아리아 족(Arians)이 들어오면서 남아있는 여러 신화(神話)과 아리아 족
(Arians)의 문화를 습합(習合)시켜 이른바 베다(Veda)문명을 형성하게 됩니다.
서구학자들은 유럽 지대에 떠돌던 유목민(遊牧民) 아리아 족(Arians)이 원래의 인도인을 정복하고, 캐스트(Cast)
제도를 창안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좌계는 이 학설(學說)과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더스-문명을 일군 드라비다 족( Dravidian peoples)이 아리아 족(Arians)과 전쟁을 해서 패전(敗戰)
하였음이 확실한 사료(史料)와 흔적이 사실상 발견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좌계가 보는 관점(觀點)은 ‘고대 인더스 문명’이 일어나기 전(前)에 <초-고대 문명 시대>가 있었는데, 핵(核)전쟁
으로 이 문명들이 죄다 멸망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핵전쟁에 의한 멸망’에 대한 반성(反省)으로써 환국(桓國)문명이 있어나기 시작하였는데, 그중에서 환국
(桓國) 중에 하나인 ‘고대 인더스 문명’이 <방사능 피해>를 줄이는 문제에 대해서 정면 도전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는 ‘인더스 문명’ 속에 있는 <유리가 되어버린 동네>가 ‘인더스 문명’이 발흥하기 훨씬 까마득한 예전에 핵전쟁의
결과로써 만들어졌고, 이 ‘고대 인더스 문명’을 일으킨 드라비다 족( Dravidian peoples)들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정면으로 응전(應戰)하면서 문명을 일으켰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아리아 족(Arians)’이 유럽에 떠돌아 다니게 된 까닭도 그들이 북인도 지역까지를 유목(遊牧) 지역으로 삼고
있었는데, <유리가 되어버린 동네>에서 핵폭발이 있게 되자, 이 지역으로 감히 들어오지 못하는 금기(禁忌)를 지키
다가, <인더스 문명>이 방사능피해를 치유하는 방법을 정면승부해서 성공한다음에, 또다른 피해 대륙인 미주(美洲)
대륙에 같은 방식으로 치유하기 위해서 대거 이동하게 되자, 그 빈틈에 안심하고 들어온 것으로 파악하고 이는 것
입니다.
즉 <고대 인더스 문명>을 이룬 사람들은 핵심 중추는 일면(一面) 부상국(扶桑國)쪽으로 이동하고, 나무지 사람들은
원래 있었던 지역에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던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 드라비다 족( Dravidian peoples)의 인도대륙 분포도
http://ko.wikipedia.org/wiki/%ED%8C%8C%EC%9D%BC:Dravidische_Sprachen.png
아리아 족(Arians)이 들어와서 그들이 기억하고 있는 신화(神話)체계와 명상, 그리고 문물을 습합하여 카스트 제도로
묶는 이를바 베다(Veda)시대를 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상국(扶桑國)쪽으로 이동하였던 드라비다 족은 이곳에 진출해있던 삼한인(三韓人)들과 함께 다시 북인도
지역으로 들어가면서 성선(聖仙: Rish)문화를 기축으로 하는 배달화백을 캐스트 제도에 마찰을 일으키면서 북인도를
아리아 족(Arians)과 삼한인(三韓人)이 공유하는 체계로 바꾸는 것으로 변모시키는 것이 실제 역사의 진행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아무튼, 인더스 문명 다음으로 북인도에 자리잡은 베다(Veda)시대에 묘사된 내용에 의하면, 말(馬)을 대량으로 키워서
이를 기마(騎馬)하거나 운반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이 확실한데, 그 전(前)에 과연 인더스 문명 사람들이 대량으로
말(馬)과 마차(馬車)를 활용하였는지는 모호한 구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수르꼬따다(Surkotada) 등등에서 발견이 되는 인더스 문명의 말(馬)들은 주로 어디에 사용하였는가?
좌계가 볼 때에는 인더스-강(Indus river)과 각가르-하끄라 강(Ghaggar-Hakra river), 그리고 야무나-강(Yamuna river)
등에 설치된 갑문(閘門)에 동력(動力)를 부여하는 유압(油壓) 발생용으로 주로 말(馬)을 사용하고, ‘벽돌’을 굽는 석탄
(石炭)이나 정석(貞石)원통을 만들어날 때 감아야하는 철(鐵)테를 채굴할 때에 유압(油壓) 착암기(鑿巖機)의 용도로
더 많이 썼다고 보는 것입니다.
매우 이상한 이야기이지만, 인더스-문명의 수수께끼는 대부분 인더스-문명 이전(以前)에 있었던 초고대 문명 내부
에서 벌어진 핵(核)전쟁의 후유증이란 도전(挑戰)받은 문명의 문제를 “어찌 치유(治癒)하는가?”에 훌륭한 응전
(應戰)의 결과로써 탄생하였다는 것이 좌계의 관점입니다.
당시 인류는 방사선 피해가 있었는데, 함초(鹹草)를 대량으로 재배해서 이를 복용하면서, 수압(水壓)이 강한 곳으로
잠수(潛水)할 때에 치유(治癒)됨을 발견하고, 이에 총력을 다 기울린 응전(應戰)의 결과로써 인더스-문명이 흥기
(興起)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더스-문명에서 깊이 2.5m 로 목욕탕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깊은 수조(水槽)는 결국 법제화된 함초
(鹹草)를 먹고, 수압이 큰 해저(海底)로 들어가는 기본적인 훈련을 하는 것 일종의 ‘재활(再活)기구’였다가 보는 것
입니다.
이런 좌계의 관점은 인더스-고대문명이 도전받았던 문제에 유효한 응전(應戰)임이 발견이 되자, 당시대 때 ‘방사능의
피해’에 있었던 사람들을 대거(大擧) 대동(帶同)하고, 이를 보다 더 적극화하기 위해서 부상국(扶桑國)을 개척하였
다고 보는 것입니다.
즉 좌계는 초고대문명 안에 있었던 핵전쟁의 피해, 방사능이 오염된 세계에서 “다시는 인류가 이런 방향으로 문명이
설계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관점에서 환국(桓國)문명들이 지구촌에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인더스 문명 자체를 미지(未知)의 3 환국(桓國)인 - (1)객현한국 (客賢汗國) (2)구모액국 (句牟額國)
(3)사납아국 (斯納阿國) 중에 “어떤 환국(桓國)인가?” 하고 비정(比定)하려하는 맥락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단문(甘文)국(國)은 환국(桓國)의 특성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이곳에는 (1)헬륨 개스를 채취하고,
(2) 정석(貞石)원통의 외곽(外槨)을 둘러싸는 <철(鐵)-테>를 만들 수 있는 철광(鐵鑛)이 발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Rann of Kutch>에서 “놔바(=놓아봐)앉지야 살~ 갑문(閘門)”을 열고 나가면, 쿠치-만(Kutch Bay)인 것입니다.
이 쿠치-만(Kutch Bay)의 동남(東南)쪽이 카티아와르 반도(Kathiawar Peninsula)인 것입니다.
카티아와르 반도(Kathiawar Peninsula)를 <사우라쉬트라(Saurashtra)지역>이라고도 함이 <고대 인더스 문명 발굴
지도>에 적혀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Rann of Kutch>지역과 이 <사우라쉬트라(Saurashtra)지역>에서 천연 개스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는 최근에 <인도, 27개 연근해 석유.가스 광구탐사 국제입찰>이란 글에 보면, 인도 서해안 대륙붕(大陸棚)에서
석유와 개스(gas) 탐사 계획이 있는데, “이보다 보다 물인 얕은 광구는 Gujarat-Saurashtra, Kerala-Konkan 지역에
각각 2개씩의 광구가 ---” 운운(云云)하는 귀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우라쉬트라(Saurashtra)지역> 다시 말하면, 카티아와르 반도(Kathiawar Peninsula)에서 천연 개스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천연(天然)개스는 대개 석유(石油)가 나오는 지역과 일치하는데, 천연(天然)개스 중에서 고대 환국(桓國)사람들이
중요시 여긴 것은 바로 가볍되, 불(火)에 폭발하지 않는 ‘헬륨 개스’인 것입니다.
천연(天然)개스 상태에서 헬륨 개스를 분리해내는 방법은 크게 ‘썩는 고무 판’을 덮은 다음에, 자연 상태에서
(1)제일 가벼운 수소(水素)가 맨 윗층에 (2) 그 다음 가벼운 헬륨이 그 다음 층에 (3) 맨 아래에 질소(窒素)가 자리잡는
특성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즉 ‘썩는 초대형 고무 판’ 위에 ①불(火)심지(芯紙)와 ② 콩(=두(豆))을 이열(二列)로 심게 되면, 헬륨 개스가 있는
부분은 불(火)심지(芯紙)도 꺼지고, 콩도 시드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 부분에 마치 혁대끈 사이로 혁대(革帶)가
들어간 줄(rope)를 위 아래로 조인다음에 이를 ‘뒤틀어서’ 더 이상 새지 않게 한다음. 정석(貞石) 원통으로 마치
홍두께 밀듯이 밀어서 청동(靑銅) 원통 안에 압축해 넣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우라쉬트라(Saurashtra)>을 우리 말(言) 감각으로 들어보면, “싸~라(=포(包)” 쉽게(=‘쉬’) 트라(=‘틀어라’)
에 3 어소(語素)가 결합한 것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또 <Rann of Kutch>의 3 섬(島) 가운데 가장 서(西)쪽에 있는 파챰-섬(Pachham island)도 우리 말로 들어보면, 천연
개스를 “파서” 거대한 ‘썩는 초대형 고무 판’ 속에 <채우는 것(=챰)>으로 볼수 있는 것입니다.
(*) <인도, 27개 연근해 석유.가스 광구탐사 국제입찰>이 있는 곳.
http://www.globalwindow.org/wps/portal/gw2/kcxml/04_Sj9SPykssy0xPLMnMz0vM0Y_QjzKLd423CDQASYGZAR76k
ehiXiYIsSB9b31fj_zcVP0A_YLc0IhyR0dFAHPA0Kw!/delta/base64xml/L3dJdyEvd0ZNQUFzQUMvNElVRS82X0VfOEw1?1=
1&workdist=read&id=58460
심지어 염습지(鹽濕地)가 있는 쿠취(Kutch)라는 이름 까지도 어떤 면에서 보면, 이 어원(語源)이 천연개스가 땅에서
올라올 때의 소리 - “쿳 취~”의 의성어(擬聲語)에서 따왔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쿠취(Kutch)를 때로는 <카취~ㅎ(Kachchh)>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압축된 개스(gas)가 분출할
때의 의성어(擬聲語)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우라쉬트라(Saurashtra)>에 천연 개스가 나온다는 사실은 아래의 <인도의 석유및 개스의 잠재성
(Indian Oil and Gas potential)>이란 논문(論文)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입니다.
The continental on the western margin in wide and, tapering 300Km wide off Kachchh-Sauraacchtra in the north,
narrowing down progressively Southeward to 60Km In Kerala offshore
: 인도 대륙의 서쪽의 (바다와의) 경계(margin)지역과 쿠치(Kutch = 카취~ㅎ(Kachchh))와 <사우라쉬트라(Saurashtra)>
의 북녘의 300Km의 너비와 남쪽의 60Km 너비에서 (역(逆)사다리 꼴로 점점 좁혀지는) 테이퍼(Taper)구조가 점진적으로
남향(南向)을 하여 (인도대륙 남서(南西) 쪽에 있는) 케랄라(Kerala)해안(海岸)에 이를 때까지, (천연 개스가 있다.)
(*) 참고: <인도의 석유및 개스의 잠재성 (=Indian Oil and Gas potential -P.K. BHOWMICK and RAVE MISRA>의
논문(論文)을 볼수 있는 곳.
http://www.iypeinsa.org/updates-09/art-41.pdf
따라서 인더스-문명과 또 이 인더스-문명 지역 맨 아래에 매단듯이 있는 <단문(甘文)국(國)>에서는 ‘비행선(飛行船)’
의 운영에 필수불가결한 ‘헬륨 개스’가 산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위 <고대 인더스 문명 발굴 지도>자 들어있는 곳은 논문(論文)인데, 그 속에 보면, 인더스-문명의 수송
능력과 교역(交易)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논(論)하고 있습니다.
[*] 참고 : 아래 글의 발췌(拔萃)한 글의 원(原) 논문(論文)이 들어있는 곳의 주소 [*]
www.crystalinks.com/induscivilization.html
Transportation : 수송(輸送)
People used camels, oxen and elephants to travel over land. They had carts with wooden wheels. They had ships,
with one mast, probably used to sail around the Arabian Sea.
(인더스-문명의) 사람들은 낙타(camels)와 황소(oxen ) 코끼리(elephants )를 활용해서 육행(陸行)하였다.
그들은 ‘나무 바퀴’가 달린 수레(carts)를 사용하였다.
그들은 선박(船舶)들도 사용하였는데, 한대 박이 (=돛을 하나쓰는 것을 뜻함)를 사용하였는데,
아마도 (인도대륙 서해안인) 아라비아 해로 수행(水行)하였을 것이다.
Seals with a pictographic script, which has not as yet been deciphered, were found at the Indus Valley sites. Similar
seals were found in Mesopotamia, which seems to indicate possible trade between these two civilizations.
: 아직까지 해독(解讀)되지 않은 상형(相形)문자의 대본(臺本)이 도장(圖章)과 함께(=Seals with) 인더스 강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의 도장(圖章)과 유사하기 때문에, 이 두 문명 사이에 교역(交易)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Trade : 교역(交易)
The Indus civilization's economy appears to have depended significantly on trade, which was facilitated by major
advances in transport technology.
인더스 문명의 경제는 두드러질 정도로(significantly) 교역에 의존하면서 출현하였는데, 이는 수송수단의 기술이
중요한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These advances included bullock-driven carts that are identical to those seen throughout South Asia today,
as well as boats.
이들 발전된 기술들은 ‘거세(去歲)한 숫소’가 끄는 수레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남쪽 아시아(Asia)지역의 도처
(到處)에(throughout) 발견이 되는 것과 동일(同一)한 것이며, 이는 선박(船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Most of these boats were probably small, flat-bottomed craft, perhaps driven by sail, similar to those one can see on
the Indus River today; however, there is secondary evidence of sea-going craft. Archaeologists have discovered a
massive, dredged canal and docking facility at the coastal city of Lothal.
: 이들 선박은 아마도 작았을 것이며, 평저선(平底船)이고, 오늘날 인더스-강(Indus river)에서 보는 것과 같이 아마도
돛에 의해서 운영되는 도강(渡江)형(形)과 동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차적 증거로써 (secondary evidence)
항해(航海)용(用) 선박이 있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중형(重型)의 선박과, 준설(浚渫)된 운하(運河), 그리고 독크(dock)시설들을 로탈(Lothal)의 해안(海岸)
도시에서 발견하였다.
[해설(解說)]
여기에 보면, 고대 인더스 문명에 <중형(重型)의 선박>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고고학자들이 <중형(重型)의 선박>
을 발견하자, 이를 우표(郵票)에 실은 선박이 있는데, 범노선(帆櫓船)으로써 돛은 2대 박이이면서, 노(櫓)는 7노(櫓)
체제로 되어 있습니다.
좌계는 이 우표(郵票)에 묘사된 선박을 보고, “아니??!! 이럴 수가??!!”하고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선박이 난함선(欄檻船)에서만 발견이 되는 ‘높은 노(櫓)’ 즉 입수 각도가 수직(垂直)에 가깝게 가파르기
때문입니다.
‘높은 노(櫓)’는 물(水)속에서 지그-재그(zig-zag)로 움직이는 ‘수평 젖기’ 이외에 ‘날개 젖기’를 첨가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수각도가 날카롭습니다.
‘높은 노(櫓)’는 ‘노(櫓) 주걱’ 즉 즙(楫)이 선저(船底) 바닥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날개 젖기’를 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노축(櫓軸)을 - 정식명칭은 노철(櫓凸)입니다. - 세우고, 최소 2개층에 걸쳐서
층 마다 ‘노자루(=노병(櫓柄))’에 4명 혹은 5명이 배치된 것을 수직봉(垂直棒)을 내려서 그 힘을 통합합니다.
위 아래 층의 수직봉을 내리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는데 (1)하나는 선심허공(船心虛空)을 통해서 내리는 방식이고,
(2) 또 하나는 노축(櫓軸) 바로 안쪽에 원호(圓弧) 홈통을 통해서 연결시키는 방법입니다.
아무튼 아래 우표(郵票)에 실린 선박의 외형(外形)만으로써는 이 ‘높은 노(櫓)’가 선박 내부에서 어떤 형태로 연결
되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정확한 ‘발굴 보고서’를 읽어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좌계가 이 우표(郵票)에 실린 범노선(帆櫓船)을 보고,
“높은 노(櫓)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선박(古船舶) 가운데, ‘인도(印度)의 선박’과 우리의 선박이 가장 유사성
(類似性)이 크기 때문입니다.
대개 선박을 제조할 때에는 용골(龍骨)이나 저판 따위의 골조(骨組)를 만들고, 여기에 외판(外板)내판(內板)을 붙
이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오직 우리의 선박과 인도(印度)의 선박 만이, ‘선박의 껍데기’부분을 먼저 만들고 그 속에
골조(骨組)가 들어가서 좌정(坐定)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이처럼 삼판(杉板)을 -이는 배(船)를 ‘싸는 판’을 뜻합니다. - 먼저 만드는 방식은 골조(骨組)에 ‘독립’해서 껍데기들
끼리 붙여야하므로, (1)피쇠(皮槊)를- 나무 못을 뜻함- 매우 촘촘히 박음은 물론, (2) 각각의 삼판을 휘게하는 것이
외압을 주는 금형(金型) 속에 뜨거운 증기(蒸氣)를 넣어서 나무를 쪄서 목형(木型) 자체가 휘게 하는 것을 겸비(兼備)
하게 하는 특성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처럼 “삼판(杉板)을 먼저 만드는 방식이 왜 발전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월해(越海)- 다시 말하면 대양(大洋)을 가로질러가는 항해를 할 때에는 선단(船團)을 형성해서 가게되는데,
폭풍이 불면, 배(船)들끼리 충돌하기 마련이고, 이 때 골조(骨組)가 뿌러져도, 독립된 삼판(杉板)이 감싸면서 침몰
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범노선(帆櫓船) 가운데서 오직 우리의 난함선(欄檻船)과 인도 선박 만이 처음부터 월해(越海)용도로
선박을 제조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래 우표(郵票) 속에 그려진 선박은 돛을 이물(船頭)돛 과 고물(船尾)돛을 단 ‘두 대 박이’입니다.
그런데 월해(越海)용 선박은 최소한 ‘세 대 박이’는 되어야만 바다를 가로질러서 나갈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誤解)하는 것과는 달리 ‘3대 박이’ 이상의 범노선(帆櫓船)은 고고학적으로 발견이 잘 안됩니다.
그 이유는 이런 선박이 침몰(沈沒)이 될 때에는 대양(大洋) 한 가운데이기 때문에, 침몰하기 때문에, 연안(沿岸)에서
발견이 안됩니다. 또 ‘세대 박이’ 이상의 범노선(帆櫓船)은 그 <웅장한 규모> 때문에, 처음 만들 때부터 <재(再)-활용
(活用)>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배려를 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즉 우리의 난함선(欄檻船)은 유난히 금속(金屬) - 청동(靑銅)과 은정(銀釘)이 =니켈(Nickel)합금(合金)을 뜻합니다.
- 많이 들어가는데, 이는 목재(木材)가 6~7년에 걸쳐서 한번씩 개삭(改槊)을 해주는 소비재(消費財)이기 때문에,
내구성이 큰 금속을 활용함으로써 <재(再)-활용(活用)>을 충분히 안배(按配)한 것입니다.
이런 선박이 전투선으로써 침몰할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예를 들면, 임진왜란 때, 사고(事故)-패(敗)를 일으킨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에서 침몰(沈沒)한 판옥선과 거북선을 발굴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이는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왜냐?
매영(梅營)에서는 선직(船直)이라는 직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선직(船直)은 배를 만드는 고급 기술자로써 배의 안전(安全)을 점검하면서, 수리(修理)를 총괄하면서,
항시 돌아가면서 숙직(宿直)을 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선직(船直)의 임무 가운데 하나는 불의(不意)의 습격을 받을 때에는 ‘물 속에 뜨는 항아리’에 철삭(鐵索: Chain)을
묶어서 수중(水中)에 띄운 다음에, 선박을 자진(自進)해서 침몰 시키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배(船)의 내구재
(耐久財)를 나중에 회수하기 위함인 것이지요.
아무튼, ‘세대 박이’ 이상의 월해(越海)용(用) 선박은 고고학적인 발굴을 하기 어려운 조건에 있는 선박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아래 ‘두 대 박이’ <높은 노(櫓)>의 인도(印度)의 범노선(帆櫓船)이 발견이 된 것은 발견하기 힘든
인도의 ‘3대 박이’ 이상의 <월해(越海)용(用) 선박>의 실재하였음을 오히려 반증(反證)하는 발견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아래 ‘두 대 박이’ 범노선(帆櫓船)은 로탈 항(港)과 독크(Lothal port and dock)에서 발견이 된 것이 분명한데, 만약에
노축(櫓軸)이 있었다면, 목재(木材)로 되어 있거나, 아니면, 금속으로 된 노축(櫓軸)을 ‘갈아 끼우기 위한 대기(待期)
상태’에 있는 형태에서 발견이 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무튼, ‘높은 노(櫓)’를 쓰는 범노선(帆櫓船)임은 틀림없고, 이는 인더스-문명의 선박이 우리가 발견(發見)이 된 것
이상으로 초대형의 월해(越海)용 선박이 있었음을 방증(傍證)하는 유물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월해(越海)용 선박>
은 재활용성 때문에, 고고학적으로 발견하기 힘든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 <The discovery of Lothal port>이란 제목 아래,
우표(郵票)에 실린 인더스-문명의 중형(重型) 범노선(帆櫓船)을 볼 수 있는 곳
http://2.bp.blogspot.com/_-SPxOvsSOWU/S8clw2FllKI/AAAAAAAADI8/Li7mMZCuK6Q/s320/mariti.jpg
아무튼, 인더스-문명의 특성에 대해서 소개한 논문(論文)에서 중형(重刑)급 선박 다음에 나오는 말은
매우 놀라운 이야기 인 것입니다.
로탈(Lothal)의 해안(海岸)도시에 발견된 <준설(浚渫)된 운하(運河), 그리고 독크(dock)시설>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는데,이 로탈(Lothal)이란 도시는 아래 <인더스 고대 문명 지도>에서 보다시피, <사우라쉬트라(Saurashtra)> 즉
카티아와르 반도(Kathiawar Peninsula)의 동남(東南)(↘)쪽에 있는 캄베이 만 [Gulf of Cambay]쪽으로 남류(南流)(↓)
하는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이 한 가운데, 오늘날의 도시 아마다바드(Ahmadabad)란 도시가 있는데,
이곳에서 서남(西南)(↙)쪽에 보면, 로탈(Lothal)이란 도시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로탈(Lothal)은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과 한글의 <어(ㅓ)>자와 같은 내륙 수로(水路)에 있는 도시인
것입니다.
(*)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의 아마다바드(Ahmadabad)와 그 서남(西南)(↙)의 로탈(Lothal)을 볼 수 있는 곳.
http://mwww.crystalinks.com/indusmap.gif
그런데, 이 로탈(Lothal)에 있었던 독(dock)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발굴된 로탈의 독(Lothal's dock)
http://www.indianetzone.com/photos_gallery/1/212_Lothal_Dock.jpg
(*) 물을 채웠을 때의 로탈의 독(Lothal's dock)의 모습
http://farm6.static.flickr.com/5012/5501714714_c2c305ba00.jpg
문제는 이런 독크(dock)가 운하(運河)(canel)로써 연결되도록 되어 있어서 다음과 같은 모습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 로탈(Lothal)의 항구(港口)에서 운하(運河)로 연결된 것의 복원도
http://4.bp.blogspot.com/-BZfKn8KM83Q/TX-ulT8FJDI/AAAAAAAASlA/IeUmCK9-UGE/s400/Lothal-Harappa_com.jpg
이처럼 운하(運河)와 연결되는 로탈(Lothal)의 독크(dock)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Lothal's dock—the world's earliest known, connected the city to an ancient course of the Sabarmati river on the trade
route between Harappan cities in Sindh and the peninsula of Saurashtra when the surrounding Kutch desert of today
was a part of the Arabian Sea.
: 로탈(Lothal)의 독크(dock)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만들어진 독크(dock)로 알려졌는데, 이는
①‘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과 ③신두(Sindh)의 하라파(Harappa)와 ② 오늘날 ‘쿠치(Kutch)-사막’을 둘러쌀 때의
<사우라쉬트라(Saurashtra)반도(半島)> 사이의 교역(交易)의 길로 도시(都市)들을 연결하는 고대적 코스(course)
로써 아라비아(Arabia)해역(海域)의 한 부분인 것이다.
위 설명에 번호를 차례대로 붙이지 않는 까닭은 ①‘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에서 하라파(Harappa)에 가기 전에,
먼저 ②즉 <사우라쉬트라(Saurashtra)반도(半島)>를 통해서 쿠치-염습지(鹽濕地)-호(湖)(Rann of Kutch)로 해서
각가르-하끄라 강((Ghaggar - Hakra river)을 타고 하라파(Harappa)까지 들어가는 대운하(大運河)가 있었음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긴 운하(運河)에서 일단 우리를 당황케 하는 것은 로탈(Lothal)에서 동(東)쪽으로 나가서 남류(南流)(↓) 하는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을 소류(遡流)해서 북행(北行)(↑)한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되면, 사우라쉬트라
(Saurashtra)지역 - 즉 카티아와르 반도(Kathiawar Peninsula)의 동북(↗)쪽으로 올라간 것이 되는데, <Rann of Kutch>
가 기역(ㄱ)자로 돌아가서 이윽고 쿠치-만(Kutch bay)쪽으로 동남류(↙)하는 하천이 있어야만 대운하(大運河)로써
가능할 터인데, “과연 쿠치-만(Kuthc bay)쪽으로 동남류(↙)하는 하천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래 지도를 보면,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의 유역(流域: Basin)이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보라색’을 남북으로 3:2로 나눈 지점에서 보면 서남(西南)(↙)쪽으로 흐르는 강이 ‘사라스완-강(Sara swan river)’라고
적혀있습니다. 이 강이 쿠치-만(Kuthc bay)에 도달하도록 그려지 않은 까닭은 기역(ㄱ)자 모양으로 돌아가는 쿠치
(Kutch)-염습지(鹽濕地)호(湖)(Rann)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의 유역(流域) ‘보라색’의 2/3지점에서 서남류(↙)하는
‘사라스완-강(Sara swan river)’이 그려진 지도
http://cgwb.gov.in/watershed/SABARMATI.jpg
아래 지도를 보면,
[1] 이 사라스완-강(Sara swan river)과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의 상류는 똑같이 서남류(↙↙)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양쪽을 갑문으로 막으면, 즉각적으로 물을 수평(水平)으로 두 강을 이어질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2] 그런데, 아래 지도에는 각가르-하끄라 강((Ghaggar - Hakra river)이 건천(乾川=dry bed)로 되어 있는 것으로써
초록색 ‘두 선(線)’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강 이름이 사라와띠-강(Saravati river)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원래 사라와띠(Saravati)는 ‘학문(學問)과 예술(藝術)의 여신(goddess)’을 의미합니다.
(*) 사라와띠(Saravati) 여신(女神)의 모습
http://visaoswal.info/images/Saravati_200.jpg
따라서 사라와띠-강(Saravati river)이란 것은 <사라와띠(Saravati) 여신의 강(江)>이란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위 [1], [2]를 살필 수 있는 지도(地圖)
http://micheldanino.voiceofdharma.com/images/map.jpg
이런 사실은 인더스-고대문명이 운하(運河)시설과 선박 기술이 아주 고대에서 부터 발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인더스-문명의 교역(交易)에 관한 논문(論文)가운데, 인용할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Judging from the dispersal of Indus civilization artifacts, the trade networks, economically, integrated a huge area,
including portions of Afghanistan, the coastal regions of Persia, northern and central India, and Mesopotamia.
: 인더스-문명의 유물(遺物: artifacts)이 확산(dispersal)되어 있는 것으로 부터 판달할 때에, 교역(交易)네트워크는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과 페르시아(Persia)의 해안, 인도대륙의 중앙부와 북쪽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Mesopotamia)를 포함하는 거대한 지역을 경제적으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로탈(Lothal)이 내륙 수로에 자리잡은 인더스-문명의 국제적인 해양(海洋)도시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 로탈(Lothal)의 뜻은 이 지역인 구자라트(Gujarat)언어의 로트(Loth)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죽음(dead)’으로써
모헨조-다로 (Mohenjo-daro)와 같습니다.
(*)참고 :Lothal from the Gujerati loth = dead, hence meaning the same as Mohenjo-daro)(*)
이 로탈(Lothal)을 우리 말 감각으로 들어보면, “로(櫓)+탈(mask)”로 볼 수 있습니다.
로(櫓)라는 말은 우리 민족의 고유어가 한자화(漢字化)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탈(mask)는 내면(內面)의 세계를
밖으로 들어내기 위해서 가면(假面)을 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일상생활의 삶이 죽이고 있는 억압된 내적 진실을 들어내는 것이 바로 탈(mask)인 것입니다.
특히 선박과 관련해서 보면, 탈(mask)에 해당하는 삼판(杉板)은 <배(船)의 골조(骨組)>에 의존하여 억압된 배(船)의
진실 - 예를 들면, ‘높은 노(櫓)’를 통한 날개젓기 등등을 들어내게 하는 탈일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말로 보면, 오히려 로탈[Lothal = 로(櫓)+탈(mask)]이란 지명(地名)의 실질적인 의미를 더욱 잘 알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튼 로탈(Lothal)이 내륙 수로(水路)에 있는 인더스-문명의 최고의 해양(海洋)도시임을 인정할 때에, 이 도시에서
발굴된 유명한 사제(司祭)상(象)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래 사제(司祭)상(象)은 ‘고대의 로탈에서 <구상(構想) 중에 있는(= envisaged)>’이란 제목 (Ancient Lothal as
envisaged by)의 사진(寫眞)입니다.
즉 명상(冥想)과는 달리 ‘깊은 구상(構想)속에 있는 모습’이 예술적으로 잘 표현된 모습인 것입니다.
(*) 로탈(Lothal) 사제(司祭) 상(象) (Ancient Lothal as envisaged by)
http://1.bp.blogspot.com/_Uw_AQhV2RCA/Sg8Wqck214I/AAAAAAAABMc/cPeAcrZE0YQ/s400/I2.bmp
위 로탈(Lothal) 사제(司祭)의 모습을 보면, 깊은 명상에 들어서 법열(法悅)을 느낀 모습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배달화백의 운영을 두고 현실적인 깊은 구상(構想)을 하는 듯한 화백회의 의장(議長) - 즉 단군의 모습인데 유의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각설(却說)
아무튼, 고대 인더스-문명에서 로탈(Lothal)이라는 해양 도시를 왜 캄베이 만 (Gulf of Cambay)으로 남류(南流)(↓) 해
들어가는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 주변에 건설한 것일까?
이는 아래 인도(印度)의 철광(鐵鑛)( Iron ore)지도를 보면 그 이유를 알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인도 서해안(西海岸)에 보면, 북(北)-고아 강(North Goa river)과 남(南) 고아 강(South Goa river)의 하류(下流)
지역에는 철(鐵) 광석이 있는 지역이 있는 것입니다.
(*) 인도 철광(Iron Ore) 지도 가운데, (N Goa, S Goa)를 볼 수 있는 곳.
http://www.mapsofindia.com/maps/minerals/iron-ore-mines.gif
고아-강(Goa river)은 두 강이 모두 서북류(↖↖)하는데, (1) 마르마고아-만(灣) (Marmagoa Bay)로 서북류(↖)
남(南) 고아 강(South Goa river)과 (2) 그 북(北)쪽에서 올드-고아(Old Goa)를 거쳐서 미라마르(Miramar)해안(海岸)
으로 서북류(↖)해 가는 북(北)-고아 강(North Goa river)으로 되어 있습니다.
(*) 남북(南北)의 고아 강(Goa river)
http://www.mapsofindia.com/maps/goa/goa-physical-map.jpg
(*) South Goa River Map
http://www.indiamapstore.com/maps/goa/rivers/images/south-goa-river-map.gif
(*) North Goa river map
http://www.indiamapstore.com/maps/goa/rivers/images/north-goa-river-map.gif
(*)참고 : Old Goa
http://www.greenstone.org/greenstone3/sites/nzdl/collect/hdl/archives/HASHd100.dir/p083.png
남북(南北)의 고아-강(Goa river)의 해구(海口)에서 인접한 지역에서 대량의 철광(鐵鑛)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고대 인더스-문명’과 우리 역사의 상관성을 연구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더스-문명에 존재하는 운하(運河)는 상상을 초월하게 길게 발달되어 있었음이 드러나는데,
유적(遺蹟)에서 발견되는 기술로만 이 운하(運河)의 운용및 유지가 불가능 하기 때문입니다.
즉 로팔(Lothal)을 경유하는 운하는 ①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 ② 사라스완-강(Sara swan river) →
③ 쿠치 염습지(Rann of Kutch)→ ④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사라와띠 강(Saravati river)→
⑤ 각가르-하끄라-강 중류(中流)에서 ‘구두 바르즈(Guddu Barrage)’지역에서 인더스-강(Indus river)를 동류(東流)케
하는 운하(運河)와 접속→ ⑥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 시원(始源)에서 접속된 갠지스-강(Ganges
river) 지류(支流)인 야무나-강(Yamuna river)→ ⑦ 갠지스-강(Ganges river)으로 실질적으로 북(北)인도(印度) 전체를
하나로 꿰고 있는 대운하(大運河)입니다.
이런 강(江)들의 연결에는 ‘지금도 전래(傳來)되는 아니쿠트(Anicut)’형식의 수문(水門)이 달린 댐(Dam)으로만으로는
운용할수 없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갑문기술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운하(運河)를 놓음에 있어서 ‘유적(遺蹟)은 물론이거니와 지금도 전래(傳來)되고 있는 벽돌로 된 제방(堤防)
벽’으로써는 역시 북(北)인도(印度) 전체를 관통하는 대운하를 운용하기 힘든 것입니다.
역시 우리식 ‘거대 벽돌로 된 미세한 사다리꼴로 되어 있으면서도 각 면(面)이 한자(漢字)의 회(回)자’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이를 죽사(竹絲)로써 묶어서 고리(=환(環)’을 만들고, 또 이런 고리들을 연결해서 원통(圓筒)을 만든 다음
- 철(鐵)테를 밖에 두르게 하면서도 안에는 메쉬(mesh)가 지게하는 정석(貞石)-원통(圓筒)들로 이루어진 기술이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정석(貞石)원통은 ①동전(銅錢) 식으로 쌓기도 좋고, ② 낚싯대 끼듯 수직(垂直)으로도 끼울 수 있는 조립
(組立)형인 동시에 ③ 이동이 편리하기 때문에, 이런 기술이 있어야만 하상(河床)높이 150m로 올리는 우리 갑문
(閘門)을 설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정석(貞石)원통을 만들려면, 바로 철광석(鐵鑛石)이 대량으로 나는 지역이 인근에 있어야하는데, 바로
남북(南北) 고아-강(Goa river)이 해구(海口)쪽에 있기 때문에, 이의 운반의 편리를 위해서 결국 인더스-문명은
사바르마티 강(Sabarmati river) 근처에 해양도시 로탈(Lothal)을 설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대 인더스-문명>의 유적들이 대부분이 ‘벽돌’을 구워서 이를 건설, 토목의 재료로 쓴 문명이라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아래 석탄 매장량 지도를 보면, 가장 석탄이 많이 매장되어 있는 위치는 바로, 각가르-하끄라-강
(Ghaggar-Hakra river)이 쿠치-염습지(Kutch Rann)로 들어가는 좌측에 있음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 인더스-강(Indus river)과 각가르-하끄라-강(Ghaggar-Hakra river) 주변의 석탄 매장 지도
http://www.ecogeodb.com/Data_SD/Pakistan/Included_SD/Pics/Resources%20&%20Reserves08.jpg
=======================(*)좀더 깊은 연구를 위한 참고 (*) ===============
[*) 참고 1 :퍼온 곳 주소
http://www.alternatehistory.com/discussion/showthread.php?t=168922
[*) 참고2: 위 ‘지도’가 들어있는 원문 논문
www.crystalinks.com/induscivilization.html
===================(*)좀더 깊은 연구를 위한 참고 마침 (*)==================
- 각설(却說)
놀랍게도, ‘각가르 하트라 강(Ghaggar-Hakra river)’이 <단문(甘文)국(國)>으로 들어오는 주변에 있었던 ‘고대 인더스
문명’은 신기하게도 부상국(扶桑國)의 지리(地理)와 일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는 함초(鹹草)를 대량으로 재배하면서, 수압(水壓)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훈련하는 시설이 있었다.
둘째는 철광석(鐵鑛石)과 석탄 지대를 모두 중요한 문명의 기초로 잡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고대 인더스 문명>을 이룬 <드라비다 인>이 부상국(扶桑國)을 삼한인(三韓人)들과 함께 ‘초고대문명을
멸망으로 가게 한 핵전쟁의 방사능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이 문제에 대한 최대한의 응전(應戰)을 하면서 공조하면서
부상국(扶桑國)을 개척하였다는 가설을 세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주(美洲) 대륙의 방사능 피해를 줄이는 응전(應戰)을 부상국(扶桑國)을 통해서 성공하자, 함께 북(北)인도
지역으로 베다(Veda)시대 때에 재진출해서 성선(聖仙: Rish)문화를 중심으로 한 배달화백을 다시 북(北)인도 지역에
아리아 족(Aria) 일색(一色)으로 있던 지역에 나타나서, 삼한인(三韓人)들이 들어가게 된 것으로 볼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미지(未知)의 3환국(桓國) 가운데 하나는 부상국(扶桑國)에 배정해야하고, 또 하나는 각가르-
하끄라 강(Ghaggar-Hakra river) 주변에 배정해야됨이 확실해진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결국 각가르-하끄라 강(Ghaggar-Hakra river) 주변에 있던 환국(桓國)이 부상국(扶桑國)에 진출하기
전(前)에는 <드라비다 인>이 주축을 이루다가, 북 인도 지역에 재진출해 들어올때에는 삼한인(三韓人)이 주축이
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철광(鐵鑛)이 대량으로 발견이 되는 고아-강(Goa river) 하류 지역에는 <고대의 핵전쟁>과 인도
대륙과 미주대륙의 상관성에 관한 신화가 나타나있는 것입니다.
(좌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