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밭(막4:1-20)
갈등
1.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이어 오늘부터는 예수님의 비유를 나눕니다. 비유, 파라볼레는‘옆에 가까이 던지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 언어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많아요. 사도 요한도 계시록에서 천국을 설명하는데 ㅇㅇ같고, ㅇㅇ같다고.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나 사건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이에요.(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같이) 오늘 본문과 같이 농사짓는 이야기나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 등을 통해서도. 주님은 비유를 창작하시는데 탁월하셨습니다. 오늘 첫 번째,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역사를 바꾼 위대한 알갱이, 씨앗』이란 책에서 저자는 씨앗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왔다고 합니다.
씨앗은 쌀, 밀, 옥수수, 감자, 고구마, 차, 커피, 설탕 등이에요. 이 씨앗들을 얻으려고 무역을 하기도 하고 전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씨앗 때문에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갈리기도 했어요. 우리나라 삼국 시대 가운데 백제가 초기에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벼농사를 잘했기 때문이고, 로마제국은 밀 때문에 망했고, 영국의 산업혁명은 감자가 이끌었습니다. 근현대 역사에서는 커피, 차, 후추, 설탕 같은 기호식품의 씨앗이 역사를 바꾸었고요. 저자는 세계 역사를 주도한 것은 인간이지만, 인간의 역사를 바꾼 것은 자연, 씨앗이라고 합니다. 씨앗이 인간의 미래라고 말해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도 씨(앗) 이야기를 하세요.
2. 씨뿌리는 비유에는 등장인물이 셋이 나옵니다. 첫째는 씨 뿌리는 자, 둘째는 씨(앗), 셋째는 밭(땅)입니다. 씨를 뿌리자면 이 세 가지가 필요한 것은 농경사회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이 다 아는 이야기였습니다. 주님은 씨를 뿌리는 밭을 네 종류로 구분해서 말씀하셨어요. 길가-돌밭-가시떨기-좋은 땅. 이 가운데 좋은 땅에 뿌려진 씨들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쉬운 비유에요. 이 말씀과 함께 9절,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말하고 있으니 너희는 들으라고 예수님이 적극적으로 말씀을 하셨어요. 사람들이 이 비유의 말씀을 듣게 하려면 뭔가 부드러운 말을 해야 하는데, 주님은 예상을 빗나가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11-12절,“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시며 적극적으로 들으라고 하시고는,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보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말씀이 아닌가요? 주님은 구원받지 못할 대상들을 정해놓고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것일까요?
갈등 심화
3. 오늘 본문에 네 가지 밭이 나옵니다. 좋은 땅에 씨를 뿌려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은 마땅한 이야기인데, 왜 씨뿌리는 자(농부)는 아까운 씨를 길가-돌밭-가시떨기에 뿌렸을까요? 이런 땅에 씨를 뿌린 것은 농부의 잘못일까요? 신약학자 요야킴 예레미야스는 루터교회 목사님이었던 아버지가 예루살렘에서 목회를 하면서, 그곳에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예레미야스는 이스라엘의 언어, 문화, 종교 등에 어떤 신학자들보다 익숙하였어요. 그가 예수님 시대에 씨를 뿌리던 방식을 소개해 주었어요. 씨를 뿌리는 방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농부가 씨를 손에 들고 뿌리고, 또 하나는 구멍이 뚫린 자루를 짐승(주로 나귀)의 등에 싣고 다니며 씨를 뿌렸습니다. 특이한 것은, 고대 유대인들은 씨를 먼저 뿌리고-땅 상태를 구분하지 않고 씨를 뿌린 후 밭을 갈았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씨를 뿌리고 밭을 가니 오늘 비유와 같이 네 곳에 씨가 뿌려진 것이에요. 씨가 좋은 땅에만 아니라 좋지 않은 여건의 땅에 씨가 뿌려진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어요. 예수님의 비유를 듣던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이야기였어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에 씨가 뿌려진 것은 씨뿌리는 자-농부의 책임이 아닙니다.
해결의 실마리
4.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12절 말씀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이는’-hina-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을 하느냐에 번역이 전혀 달라집니다. 이 접속사를 목적으로 보느냐, 결과로 보느냐에 따라 번역의 차이가 커요. 우리가 읽은 개역개정은‘목적’으로 번역을 했어요. 비유를 듣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아도 깨닫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결과’로 번역을 하면, 비유를 듣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말이에요. 번역의 차이가 크죠. 오늘 비유를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가 다 전합니다.
마13:13,“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여기서는 목적이 아니라 결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11절,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다고 합니다.(비밀은 뮈스테리온, 미스터리, 신비)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누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비밀(신비)을 풀어주셔야 가능해요. 사람들이 이 비밀을 스스로 풀고 깨달을 수 없어요. 결국 12절 말씀은 어떤 이들에게는 비밀을 알게 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알게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도 사람들이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안타까운데, 하늘 아버지께서는 더 그렇지 않겠습니까?
5. 이 말씀에는, 비유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깨닫게 되기를 기대하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좋은 땅과 같은 사람들만이 들은 것이 아니에요. 길가-돌밭-가시떨기 밭과 같은 사람들도 들었어요. 오늘 비유를 들었던 사람들 중에는 막3:21- 22,“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이 밖에도 예수님의 제자들과 순진한 군중들이 있어요. 길 가는 사람들이 다니니 딱딱하고, 사탄이 말씀을 빼앗아 버립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이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출석하며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이 살았어요. 어느 날 성경을 읽으면서 이런 의문이 생겼어요.
“나는 이렇게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 환경에도 익숙하고, 설교도 수없이 들어 왔는데, 내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없이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 자리에 앉아 있을까?”번연이 오늘 본문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떨어지는“말씀의 씨”를 빼앗아가는 것이 사단이라는 사실에 그는 놀랐어요. 내가 지금까지 사단에게 속고 있었다 사실을 발견하였어요. 그날부터 설교를 듣는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6.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좋은 땅-옥토 밭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영국 성공회로부터 신앙박해를 받으며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신앙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며 넘어지지 않았어요. 도리어 위대한 책-신앙인들에게 성경 다음으로 도움을 준-썼습니다. 돌밭에는 뿌리가 깊게 내릴 수가 없어요. 잠시 기쁨으로 말씀을 들었지만, 위기-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넘어져요. 가시떨기는 햇빛을 가려 농작물이 자라기 못하게 합니다. 7절, 기운을 막았다(아페프니크산)는 말은 씨앗을 목졸라 죽였다는 의미입니다.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욕심이 성도들의 숨을 못 쉬게 만들어요.(거라시인의 광인에게 있던 귀신이 돼지 2,000마리에게 들어가 갈릴리 호수로 빠져 죽게 한 것고 같은 말)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들어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어떤 학자는 오늘 비유를 사람의 머리에 비교해서 설명합니다. 길가는 귓가, 가시떨기는 뇌, 돌밭은 마음, 옥토는 영혼이라고요. 귓가를 통해서 머리로, 마음으로, 그리고 영혼 속에까지 말씀을 심어야 이 말씀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머리는 염려의 장소, 마음은 번뇌의 장소, 영혼은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 그래서 영혼 속에 뿌려진 씨앗들은 사탄이 거두어 가지 못합니다.
복음 제시
7. 오늘 본문의 씨뿌리는 자, 호 스페이론은‘씨를 뿌리는 어느 한 사람’(a sower)이 아니고, 정관사가 있어‘그 씨 뿌리는 사람’(the sower)입니다. 그 씨 뿌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씨를 뿌리는 주님은 좋은 땅에만 씨를 뿌리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떨기에도 씨를 뿌리시는 분입니다. 씨는 차별이 없습니다. 주님은 좋은 땅에서 100배의 열매를 맺는 씨나, 나머지 세 밭에 뿌려진 씨 모두 동일한 최고의 품질의 씨를 뿌리십니다. 예수님이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대한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이 변화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 밭이 지금은 길가, 돌밭, 가시떨기와 같을지라도, 끝내 좋은 열매를 맺는 마음 밭이 되기를 기대하셨어요.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그들이 잘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하셨습니다. 3절,“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오늘 본문 마가복음 4장에 들으라는 말씀이 13번이나 반복하고 있어요. 9절에서도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유대 전통에서‘들으라’(shamar)는 단지 듣고 흘려도 되는 말이 아니에요. 들은 것은 마음에 새기고 간직하였다가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선택해서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은 오늘 비유를 말씀하시며 제자들이 단지 듣기만 하지 말고 순종하기를 기대하셨습니다.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롬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8. 말씀이 이해하기 어렵고, 잘 들리지 않으면 전문가에게 물으며 계속해서 듣고자 힘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물으니.”오늘 비유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어요. 열두 제자와 함께 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줘요. 이런 자세가 소중합니다. 성경 말씀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모르면 묻고 듣는 자세입니다. 제자들은 비유의 겉 내용은 듣고 알았는데 실제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말았어요.
예수님은 모르고 묻는 자에게 알 때까지 말씀해 주십니다. 니고데모와 대화(요한복음3장),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질문했던 율법사에게도.(누가복음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까지) 약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주님은 우리가 무지하고 연약하더라도 변화되고 성숙할 것을 기대하면서 씨를 계속 뿌리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끝날까지요. 주님이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실 때 씨를 뿌렸다는 동사를 6번이나 반복하셨어요. 여기에 복음이 있지 않습니까? 씨를 뿌리며 우리를 향해 기대하시는 주님의 긍휼하심입니다.
기대
9. 오늘 비유의 말씀을 들으며, 나는 어떤 종류의 밭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 길가와 같은 나에게도 씨를 뿌려주시는 예수님, 돌밭 같은 나에게도, 가시떨기 같은 나에게도 씨를 뿌려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내게 씨를 뿌려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더욱 열매를 맺는 밭이 되도록 힘씁시다. 내 마음 밭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은 우리 인생의 밭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듯이, 우리도 능동적으로 내 마음 밭을 바꿔봅시다. 씨는 항상 최고의 품질이기에 밭의 장애 요소를 제거하고 개선하면 됩니다.
길가는 땅을 갈아주기만 하면 햇빛이 잘 비치니 좋은 땅이 될 수 있어요. 돌밭은 돌을 캐내고 흙을 보강해주면 되고요. 가시떨기는 낫이나 톱으로 베고 뿌리를 뽑아버리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좋은 땅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고 기다리십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이런 예화를 말씀하셨어요. 입시를 앞둔 자녀를 둔 부모님은 자녀가 서울대학교에 갈 수 없는 실력임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한 기대감도 동일하다는 메시지에요.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서 찬송하며, 우리가 좋은 땅이 되지 못하는 요소를 주님께 고백하며 우리 마음 밭을 갈아주시고, 돌을 제거해 주시고, 가시를 제거해 주시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찬송: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