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곡항에 눈이 내렸다.
심곡항에 폭설이 내렸다.
인구 30 명의 작은 동네는 고즈넉 하다 못해 평화롭다.
심곡항은 625 때 인민군이 발견도 못하고 지나갔고, 심곡한 사람들 또한 전쟁이 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지였다.
정동진에서 산길을 한 시장 정도 걸어야 도착할 수 있고 금진항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정동진에서 바로 넘어오는 길이 생겼고, 옥계면 금진항과 강동면 심곡항 사이에는 아름다운 해안도로 ‘헌화로’가 생겼다.
‘헌화로’ 라는 이름을 짓기 위해 강릉시에서 공모를 했는데 모대학 교수가 주장한 ‘헌화로’ 가 당첨이 되었다.
그런데, ‘헌화로’에 나오는 ‘수로부인 전설’은 강릉시가 아니라 삼척군에 있다.
강릉 부사가 부임해 오다가 심곡항 근처에서 거북이가 나타나 방해를 해서 정신 나간 노인네가 부인인 수로부인에게 꽃을 바쳐서 거북이가 도망갔다는 믿기 힘든 전설이다.
그 전설이 거짓말이라는 이유는 금진항에서 심곡항까지 걸어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다.
대학 교수의 거짓말을 모르고 ‘헌화로’를 당첨시킨 공무원 또한 공범인 셈이다.
내가 기억하는 심곡항은, 항구가 생기기 전, 밤톨만한 까만 자갈이 있었다.
파도가 치면 자갈 구르는 소리가 짜르르 들렸다. 심곡항의 배는 동력선이 없었고 노를 젓는 무동력선 뿐이었다.
가구수는 열가구 정도였다.
지금은 심곡항과 정동진 사이에 ‘부채길’이라는 바닷길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조용하던 심곡항에 숙박업소가 들어오고 편의점이 들어섰다.
외지인들이 돈벌기 위해 들이닥쳤다.
땅값이 올라가고 집값도 올라가고.
모든 것이 정해진 수순이다.
심곡항 인심은 고약해졌다. 마을 사람들끼리 친척처럼 지내다가 툭하면 싸움박질이다.
관광지 개발이나 도시재생사업으로 마을이 뜨면 너무 많은 관광객이 밀려와 지역 내 역학 관계가 바뀌고, 주민들이 내몰리는 역설.
동네가 관광지로 뜰 기미를 보이면 땅값이 가장 먼저 움직인다
원주민들은 임대료 상승 또는 주택의 상업시설 전환 탓에 비자발적으로 이주하거나 집값이 오를 때 팔고 나가려는 자발적 이주 행렬에 올라탄다. 그렇게 마을은 텅 비어 간다.
마을 경쟁력을 키워온 핵심 집단이 쫓겨나듯 떠난다는 점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이다.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은 자발적으로 발전해야 할 지역경제가 중앙정부나 관광객등의 외부 의존도를 높이고 오히려 지역민들은 소외된다는 점이다.
그래도 심곡항에 눈이 내리니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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