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받은 것은 살리는 것에 사용하라
(행 11 : 19~26)
두 번째는 ‘기존신자들은 격려를 했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새 신자들이 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면 오래 된 신자들은 교회에서 주로 격려를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본문 23~24절에, “그가 이르되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분한 사랑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오래 머문 사람이 있으니 흐름을 알게 됩니다.
그 흐름 속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섬긴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똑같은 정보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정보를 가지고 사람 앞에 서서 너희는 이런 정보가 있는데도 몰랐지 라고 정죄합니다.
나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 사람에게 어떤 지식이 들어가면 갈 수 록 그것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정죄하고 갈취하는 것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정보가 들어가는 것은 공포입니다.
대부분 이런 사람이 정보를 쥐게 되면 분열이 일어납니다.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에게 정보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정보를 가지고 허물을 덮어주고 하나 되게 만들고 격려해주고, 힘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음으로 찾아가서 그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 좋은 사람입니다.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물질과 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형제들에게 복수하는 것으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형들을 살리고, 자기 가족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는 것에 사용합니다.
반면에 힘과 권력을 주었더니 오히려 사람들을 죽이고, 어렵게 만들고, 피폐하게 만든 사람도 있습니다. 나쁜 사람입니다.
똑같은 것이 주어져도 은혜가 되지 않는 다면 그것은 나쁜 용도로 사용될 가망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바나바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원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의 첫 번째는 기쁨이 넘칩니다.
기쁨이 없고 어두운 마음이 계속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두 번째, 이웃이 보입니다. 바나바에게 다른 사람이 보임으로 자신의 힘을 가지고 격려하는 것에 사용합니다. 세워줍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세우는 역할을 많이 합니다. 기존신자의 특권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정보와 물질 가지고 잘 격려하는 사람 되길 원합니다.
물질을 하나님께서 주셨다면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물질을 가지고 격려해주고, 밥도 사주고, 필요부분에 사용되도록 나눠줍니다. 선물도 사줍니다.
그런 사람이 돈에 대한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더 많이 부어준다면 더 많은 것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불철주야 섬기는 것에 최고가 될 것입니다.
빌게이츠처럼 재벌이 된다면 여러 나라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재능과 물질, 그렇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돈은 많은데 자기를 위해서는 풍성하게 사용하나 남을 위해서는 매정합니다.
오히려 돈을 가진 것으로 인하여 없는 사람을 무너뜨리고 자존심을 꺾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본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어떤 사람에게는 복으로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는 저주로 임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경주 최 부자집의 이야기를 보면 그 사람의 복이 주변에 유익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 돼야 다른 사람도 잘되는 구조가 돼야 합니다. 구조입니다.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가 잘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로부터 백성들까지 잘 돼야 합니다.
그런 구조가 필요합니다.
모든 교역자가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는 교회, 영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나누고 배품이 가득한 곳,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은 구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바나바가 바로 그 일을 담당했습니다.
바나바의 격려는 첫째,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더 확신 있게 붙잡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사울도 인정해줍니다.
사람들이 사울을 보고 두려워할 때에 사울도 쓰시는 하나님, 사울의 변화를 생각하며 인정해줌으로 사울이 쓰임 받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인정하는 것에 메말라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시키는 것만 해야 하고, 좀 더 가치 있는 일은 해본적이 없으니까 하지 말자고 하고 이렇게 성장한 청소년과 청년들이 어떤 일을 시키면 다들 멈칫 합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교회에서 격려를 받아 본적이 없고, 어떤 시도를 함에 있어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미 주눅들은 청년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곳으로 발길은 옮깁니다.
어떤 것을 인정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는 교회 문화, 바로 기존신자, 오랫동안 신앙생활한 분들이 자신의 신앙의 잣대로 자로 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나오기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전공자가 있는 데 비 전공자가 나와서 전공한 자신보다 잘 할 때 해야 할 말은 와 내가 전공자이지만 정말 그것을 잘 알고, 나도 배워야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인정해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다음세대를 위한 준비 작업입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원하십니까?
받은 은혜와 사명을 모두 살리는 것에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교회는 언제나 은혜와 감사로 충만한 것입니다.
살리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주님의 백성들이 다 되기를 원합니다.
PS.
나의 삶은 누구를 위하여?
나의 삶은 나를 위해 있다.
나의 삶은 자식과 아내를 위해 있다.
나의 삶은 부모를 위해 있다.
나의 삶은 노후를 위해 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삶은 늘 누군가를 위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분의 백성이다.
나의 삶은 그 분을 위해 있다.
특별히 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청지기이다.
- 박근원 교수의 ‘하나님의 청지기’에서 -
그리스도인이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하는 걸까요?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세상 어떤 사람들보다 더 진실하게 살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의 사명도 최선을 다해 이행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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