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비 내리는 영동교를 건너 아차산엘 왔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후문을 들머리로 하여
아차산을 오르는 길은
내 발걸음 흔적이 가장 많이 나 있는 길이다.
바람막이 하나 걸치고 빗길을 가도
그저 좋고 만족한 길이다.
이곳은 아까시나무가 많아
이맘 때 쯤이 되면 밀원지(蜜源地)가 된다.
조랑조랑 매달린 억만송이 꽃들은
비를 맞으며
하얀 치아를 보이면서 자괴(自愧)하고 있다.
은근 다정하게 들리는 뻐꾸기 소리도 들리고
홀딱벗고! 홀딱벗고! 하며 애절하게 우는
홀딱벗고새(鳥)의 애절한 울음소리도 들린다.
가시가 달린 나무들은
어릴 적에는 "나를 함부로 꺾지 마세요"란 표시로
온 몸에 가시를 달아 놓지만
사람이 꺾지 못 할 정도로 줄기가 굵어지고
나이가 들면 가시는 없어지고
껍질은 검은 색으로 변한다.
찔레나무. 엄나무. 탱자나무.장미.아까시나무 등
그러나 꽃이 피는 어린 가지에는 항상 가시가 있다.
우리의 삶도 꼭 가시나무를 닮았다.
아름다운 기억은 꿈과 희망을 낳고
얼룩진 망각은 평온과 안녕을 잉태하지만
중생의 삶은
기억 해야 할 것은 기억하지 못하고
망각해야 할 것은 잊지 못하는
얄궂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힘들어 하고 무거워 한다.
내가 기억해야 할 사람 중에는
이 졸문을 읽어 보는 사람도 포함이 된다.
기억과 망각을 구분 하기 좋은 곳은
우중 산길이다.
우중(雨中) 산길은 아까시꽃 향기가 충만하다.
우리가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나무는
사실은 아까시(아깝다)나무이다.
우리에게 향기를 주고 단꿀을 주는
아까운 나무는
일제 강점기인 1900 년 초에
경인선 철로변과 용산 육군본부 자리에
처음 심어진 나무이며
아까시꽃을 일명 자괴화(刺槐花)라고도 한다.
어릴적 조불식 석불식(朝不食夕不食) 하던 시절,
참꽃도 따먹고 자괴화도 따먹고 자란 사람들은
아카시아나무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소나무를 잠식시키기 위하여
이식하였다고 하여
천대 받는 나무가 되기도 하였다.
역사는 밉지만 나무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동구 밖
과수원 길에 심어진 아카시아는
뾰족한 가시를 만들어
접근금지 !
건드리면 찌른다고
엄포를 놓으며
조랑조랑 하얀 꽃을 매달아
향기 날려 아이들을 부르면
배고픈 아이들은 하나 둘 동요를 부른다. <쇳송.428>
첫댓글 아차산 에서의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