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한 나라의 민족이 살아온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과거의 정치는 오늘의 역사고 오늘의 정치는 미래의 역사다. 그럼에도 '역사는 가공이고 미래는 환상이며 오직 현실 많이 진실이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고했다.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 국가의 미래를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근대사는 좌익 역사 학자들이나 교육자. 정치인들의 이념에 따라 왜곡하고 가공되어 거짓이 많다. 민주당 의원들은 김문수 노동부장관의 인사청문회와 예산결산심의위원에서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냐 48년이냐, 일제강점기 조상들의 국적이 일본이냐 아니냐를 갖고 노동부장관과는 관련도 없는 불필요한 질문으로 논쟁을 벌였다.
김장관은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건국일이고 우리 조상들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창씨개명 호적에 올렸으니 국적이 일본라는 주장이다. 좌파인 민주당의원들은 1919년 4월 11일 상해 임시정부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이라며 국적도 대한민국이라는 주장이다. 현대사의 진실을 모르는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건국논쟁의 발단은 바로 좌파 문재인이 일으킨 것이다. 2019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1919년 상해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행사를 전국에 대대적으로 펼쳤다.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건국역사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북한 정권은 1948년 9월 9일로 김일성이 세운 조선 인민공화국 창건기념을 대대적으로 펼친다. 종북주의자 문재인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를 남북한 한반도 역사로 주장하다 보니 김일성이 정권마저 부정하는 것이됐다. 김정은이 날벼락을 때렸는지 그 후 상해임시정부 건국 이야기는 입밖에 꺼내 지도 못 했다.
우리나라 독립과 건국일은 언제일까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이 미국에 항복을 선언한 날이다. 우리는 일본 통치에서 벗어났다는 심정적(心情的) 해방감으로 당시 '해방'이다. '독립'이다 하다가 광복절로 변경 기념하고 있다. 비록 일본의 통치를 벗어나 해방을 맞이했지만 일본의 속국인 우리는 승전국(勝戰國)인 미 군정청의 통치를 받게 된다. 중앙청에는 일장기 대신 미국 국기가 계양되었다. 미 군정청의 시대는 국적도 주권도 없는 난민 신세가 된 시기였다.
그 후 1948년 5월 10 일 역사상 최초로 유엔 감시하에 국민들의 총선거를 통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중앙청에는 대한민국 상징인 태극기가 계양였다. 정부는 미군정청으로부터 행정권과 국방경비대, 경찰 등을 인계받아 40여 년 만에 우리의 자유와 주권을 되찾은 독립국가 대한민국이 탄생되었다. 이날이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진정한 독립이고 건국의 날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대사다.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들은 건국일은 기념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승전의 날인 45년 8월 15일을 우리의 광복절로 기념해오고 있다. 이런 것이 역사의 가공이다. 그럼에도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건국일을 기념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 한 분 뿐이다. 이대통령은 2008년 대한민국 건국 60 주년 및 광복 63주년 중앙경축식을 가졌다.
일제강점기 조상들의 국적은 대한민국가 일본인가
좌파들이 대한민국 건국 논쟁을 벌이는 1919년 은 한일합병한 지 10년째다. 영토와 국적, 주권을 일본에 침탈당하고 국민들은 창씨개명으로 일본 호적에 올렸다. 일제강점기 태어나면 일본 이름으로 호적에 올려 일본인이 됐다. 굳이 말하자면 조선계 일본인이다. 일본 정부 여권으로 외국유학을 가거나 여행을 다녔다.
손기정 선수도 헬싱키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면서 일본인으로 일본 정부 여권을 갖고 출전했다. 유니폼에 일장기를 달고 뛰었고 금메달 수상식에도 일본 국가와 일장기가 계양됐다. 좌파들의 주장대로 1919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면 정부는 일제 때 태어난 자손들을 일본호적에 올리게 방치하고 손기정 선수에게 대한민국 정부 여권을 발급하지 못해 일본 국기를 달게 했는지 명쾌한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상해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군의 국적은 대한민국이었나
영토와 국민, 주권을 갖춘 정상적인 국가의 정부라면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하는 대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의무를 진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는 이런 국가나 정부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자기들 살아가기에도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임시정부 요인들도 살아남기 위해 중국에 귀화해 중국 국적을 취득하였고 만주에 거주하는 교민들과 중국 장개석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유지하는 처지였다.
독립군도 중국 국적을 취득 장개석 정부로부터 식량, 군복, 무기 등을 지원받았고 군사 작전권도 중국이 갖고 있어 중국 내에서 중국 정부의 허락 없이는 자의적으로 전투를 벌일 수도 없었다. 중국에 귀화해 중국 국적을 갖고 일본군과 싸웠다면 중국군인가 독립군인가? 1919년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면 독립운동은 왜 했나. 대한제국이 망한 후 내국인들은 일본국적 만주로 간 조선인들은 중국 국적 연해주나 블라지보스톡으로 간 조선인들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해야만 했다. 생존할 방법이 그것밖에 없었다.
조선인 중에 유일한 무국적자는 이승만뿐이었다. 24세의 청년 이승만은 영국이나 일본식 공화제를 주장하며 고종황제 폐위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무기징역형을 받고 한성감옥에 복역 중이었다. 한편 대한제국 만주 해안일대에서는 러일전쟁(1904,2,8~1905,9,5) 이 발발했다. 강대국들의 전쟁이라 어느 나라가 승리하던 대한제국은 불안한 상황이었다. 미국이 휴전 중재를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고종은 대한제국 보호를 위한 외교로 미국 대통령에게 특사를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내각에는 영어를 잘하는 인물이 없어 고민 중이었다.
그러자 충정공 민영환과 월남 이상재선생이 이승만을 추천했다. 이승만은 미국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배재학당에서 영어를 배웠고 영어실력이 출중했다. 이승만은 29세에 고종의 특별사면으로 5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비공식 특사로 미국으로 가게 된다. 막상 미국에 가보니 태프트 미 국무장관과 가쓰라 일본외무상간의 밀약을 알게 된다. 미국은 스페인 속국인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는데 상호 관여를 않는다는 내용의 밀약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에 남아 워싱턴대학교학사, 하버드대학교석사, 프린스턴대학교 정치학(국제법)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업을 마친 후 이승만박사는 해방 후 귀국할 때까지 평생을 독립운동에 전념했다. 유창한 영어로 미국, 유럽, 러시아 등을 돌아다니며 조선을 독립시켜야 동양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언론인터뷰와 연설을 하고 다녔다. 일본 정부는 이승만 박사에게 30만 엔 현상금을 걸고 수배령을 내렸다.
이승만은 외국에 나갈 때마다 무국적자로 여권이 문제였다. 이때마다 미국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비공식 여권으로 출국을 했다. 미국 국무성은 미국 국적을 취득하라고 권고했지만 이박사는 "나라가 망했데 무슨 국적이냐"라며 한사코 거부해 40여 년을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무국적자로 남은 유일한 한국인 애국자다. 해방 후 귀국할 때도 무국적자로 여권 발급을 받지 못하자 절친인 일본 점령군사령관 맥아더장군에게 연락해 맥아더 장군이 보내준 특별기로 귀국했다.
독립운동가라고 해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 북한 정권수립에 동참하고 6,25 남침에 가담한 자들까지 과거 독립운동을 했다는 과거사만으로 노무현, 문재인정권에서는 독립운동가로 칭송하고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수여하고 국민세금으로 가족들에게 연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정부 전복을 획책한 반정부세력들을 민주화 운동가로 둔갑시켜 수억 원 대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무덤에서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일이다. 이런 걸 알면서 방기 하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정부라 할 수 있는가. 지금은 범죄자들이 집단화 국회를 장악하고 행정부와 사법부를 농단하는 난세(亂世)다.'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듯이 나라가 어려운 시기에 김문수 노동부장관이 좌파 민주당의원들과 국가관과 역사관으로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에 국민들은 위로가 되고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