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하재준 | 날짜 : 10-01-08 19:16 조회 : 1553 |
| | | 고요히 눈 오는 밤에 하 재 준 hajun41@hanmail.net
오늘따라 유난히도 깊어가는 밤이다. 자정이 넘어선 이 시간에 다정한 손님처럼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쌓여만 가는 밤이다. 사나운 눈보라가 방탕한 것처럼 어지럽게 쏟아지는 그런 눈이 아니라 까마득하게 망각의 피안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그러한 생각들을 오붓이 붙잡아두게 하는 고요에 젖은 눈이다. 지금 내 마음에도 그런 눈이 내리고 쌓여만 간다. 한없이 내리는 저 눈송이는 즐거운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즐거움으로 쌓이고 외로운 사람에게는 외로움이 지치도록 쌓여가지도 모른다. 참으로 즐거운 밤도 좋고 외로운 밤도 좋다. 그런데도 외로워 눈물 흘리는 밤만은 유독 애달픈 밤이라고 우리는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용히 생각해보면 외로움이 쌓이고 괴로움에 몸부림친다는 것은 결국은 보다 즐겁고 보다 아름다운 것을 갈망하는 몸부림이요, 보다 풍부한 인생을 희구하고 내일의 행복을 추구하는 몸부림이 아닐 수 없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란 송대관이 부른 노랫말의 의미를 되새겨 보면 쉬 알 수 있다. 이 가사 속에 얽힌 가난의 한 맺힌 몸부림, 외롭고 괴로움의 몸부림이 얼마나 한 밤을 지새우게 했던가를 넉넉히 엿볼 수 있지 않는가. 눈물로 얼룩진 칠흑의 밤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찬란한 태양이 찾아올 것을 굳게 믿고 바라는 몸부림이라 여겨도 좋다. 그러고 보면 눈 오는 밤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즐기는 밤이 아닐 수 없다. 아니, 때로는 눈이 내리지 아니해도 고요에 젖어 사색할 수 있는 밤이면 그지없이 좋다, ‘나’만의 세계에서 한갓 외롭고 허전하며 무상한 존재같이 새삼 느껴지는 밤이라도 좋다. 그토록 하잘 것 없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 올린다면 얼마나 값진 시간이요 인생을 풍부하게 이룩해 놓을 시간이겠는가. 2009년 1월 초순 어느 날이다. 극심한 설인신경통증으로 나는 3일 주야간 한잠을 이루지 못했고 통증의 공포에 사로잡혀 지옥 같은 밤을 보낼 때에 느낀 일이다. 온가족들도 나를 간호하며 시중드느라 한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3일 째 되는 날은 자정이 되어 출근할 딸을 재워놓고 아내 혼자서 나를 간호했는데 육신도 한계가 있는지라 새벽녘에는 순간순간 졸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통증이 시작되면 1회에 10여분씩 계속 된지라 그 아픔은 자지라지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 하루에 40~50여 회나 찾아든 통증, 그 간격은 짧으면 10분여, 길으면 50여분 간격으로 계속 찾아오는데 그 공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생지옥을 체험케 한다. 그 통증을 앓고 있는 어느 부인의 말에 의하면 출산의 통증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고 의사의 말도 “그렇다. 의학적으로 볼 때 병으로 인하여 가장 아픈 통증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설인신경통증이라고 하면서 출산의 통증은 그 다음 차례라고 보아야 옳다.” 고 했다. 언제 곧 찾아올 줄 모르는 그 통증, 불안에 떨고 있는 내 모습, 바로 그 앞에서 아내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와중에 졸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서운하고 야속하게 느껴졌다. 맹렬히 타오르는 분화구처럼 끓어오르는 화를 참다못해 폭발 하려는 그 순간에 언 듯 예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잠자는 제자들을 향해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제자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사랑의 언어다. 예수는 제자 셋을 데리고 개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의 일이다. 그들에게 “기도하라” 당부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돌아와 보니 제자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 말도 아니하고 다시 “깨어 기도하라” 간곡히 당부 하고 또다시 기도하고 와 보니 여전히 자고 있었다. 이때 잠자는 제자들에게 한 말이었다. 예수는 당시 33세 혈기 방장한 나이임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사랑으로 제자를 대해주었는데 70이 다 된 내가 이게 무언가!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 그간 나는 수양을 좀 쌓은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와 보니 수양은커녕 양두구육(羊頭狗肉)격인 비인격자가 아닌가. 사랑이 많은 척, 고상한 척 해왔던 지난날이 부끄럽고 장로란 직분도 내려놓고 싶다. 이래가지고 예수의 향기가 내게서 어찌 나겠는가. 그간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참회하지 않고 이대로 내가 죽는다면 하나님이 나를 심판할 때 어찌하겠는가. ‘이 배신자야!.’ 라고 호되게 책망할 것이 아닌가! 아니면 ‘나는 너를 전혀 일지 못한다.’고 부인할 것이 아닌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내 영혼이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선 그날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두려운 마음이 앞서는 그때였다. 또다시 강한 통증이 시작된다. 어쩌면 이 고통은 하나님께서 내게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통증을 통하여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를 잠시 체험해보고 그간 네가 지은 죄를 철저히 회계하라는 하나님의 사인(sign)으로 느껴졌다. 의식을 분별할 수 없는 아픔 중인데도 그러나 퍽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 숨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저 마음 밑바닥에서 흐르는 진한 생각이었다. 통증이 잠시 갈앉자 아내는 “어찌 이번에는 이리도 잘 참아내었느냐?” 고 물었다. 나는 통증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고 말 대신 글로써 나의 의사를 솔직하게 전달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아내는 미안하다며 앞으로는 졸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마치 베드로가 스승인 예수께 약속한 것처럼 그렇게 들렸다. 그래 놓고도 베드로는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힐 당시 닭 울기 전 세 번이나 부인하지 안했던가. 그런데도 부활하신 뒤 예수는 베드로에게 한마디 꾸중도 없이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진정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세 번이나 확인한 뒤 내 양을 먹이라고 했다. 참으로 놀라운 분이다. 이웃을 용서할 때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가르치신 그 교훈의 뜻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면서 나는 그분 앞에 철저히 무릎을 꿇고 말았다. 거룩한 신앙으로 되돌아온 귀한 그 날 밤이었다. 지금 창 밖에서는 흰 눈이 내리고 쌓인다. 고요히 깊어만 가는 밤이다. 칠흑 같은 밤이 깊으면 깊을수록 지난날 병마에 신음할 때 옷깃을 적시던 참회의 맑은 눈물이 되새겨 진다. 그 때 나의 눈물을 읽어 줄 그분의 가슴에 기어이 안겨보고 싶은 심정으로 몸부림쳤던 자아의 모습이 지금 이 순간에도 영안(靈眼)으로 보이는 듯하다.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건강이 회복되고 정상적인 활동이 시작된 지금, 지난날의 통증으로 인한 괴로움과 슬픔이 이젠 눈송이처럼 맑고 희어서 좋다. 더없이 차가운 이 밤이기에 냉정을 되찾아 진실한 감정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고요에 젖은 시간이라서 더욱 좋다. 눈 속에 덮인 보리는 차갑기는 하나 이불처럼 덮여 모진 한파를 막아 주기에 동상에 걸리지 아니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듯 그러한 현상이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그간 끝없는 길을 덧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처럼 까닭모를 아쉬움과 허전함으로 살아왔던 나는 지금 고요히 눈 내리는 밤에 또다시 그분 앞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
| 임재문 | 10-01-08 21:39 | | 하재준 선생님! 하재준 선생님과 저는 우리 한국수필작가회의 쌍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저와 함께 데뷔 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아픔을 혼자 감내하신데 대해 너무나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쌍둥이는 옷도 같은 빛갈을 입고, 그런다는데, 저는 그렇게 하재준 선생님의 그 아픔을 까마득히 모르고 살았으니 말입니다. 이제 그 아픔 견디시고 일어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욱 더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맣이 받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기독교인이니까요. 쌍둥이 하재준 선생님! | |
| | 이진화 | 10-01-08 21:48 | | 하재준 선생님, 그런 아픔이 있으셨군요. 잘 이겨내시고 이제는 하얀 눈을 행복하게 바라보실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올해는 내내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 |
| | 변영희 | 10-01-09 07:56 | | 선생님의 건강이 안좋으셨단 말씀 전해 들었지만 이 번 글을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군요. 90년 첫눈 오던날 저의 <마흔넷의 반란> 출판기념회에 와주신 고마운 선생님. 먼데서 오셨는데 변변히 살펴드리지 못한 점 정말 죄송했습니다. 출판기념회 마치자마자 죽기살기로 아파 서너달 움직이지 못하다보니. 저는 세상살며 어려울 때마다 다윗이 "나의 도움은 어디로부터 오는가"라고 절규하던 성경구절이 떠오르곤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는 성가도 이따끔 불러본답니다. 선생님의 글 읽으며 그런 모든 것들이 되살아 났지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 |
| | 정진철 | 10-01-09 09:16 | | 죄송한 말씀인지만 저는 병명자체도 처음듣는데 희귀병인것 같군요. 아무쪼록 건강을 되찾으시길 기원 합니다 | |
| | 일만성철용 | 10-01-09 11:34 | | 오랜만에 하 작가님의 글을 읽습니다. 저도 백혈병동에 입원하여 죽음을 생각하고 그 병상일기를 쓰다가 살아났습니다. 퇴원하면서 보니 세상이 어찌나 빠르게 돌아가던지, 그리고 그 세상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그래서 새로운 삶을 다짐했는데 원상복구가 되었답니다. 작년에는 대장내시경, 위내시경에 금년에는 폐렴예방주사를 맞았습니다. 안과에는 2달에 한번씩 들르구요. 물론 아프기 전의 일입니다. 예방은 노년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부디 신경을 쓰시기를. | |
| | 임병식 | 10-01-09 12:35 | | 글에서 투병하시는 아픔이 많이 느껴집니다. 새해에는 병마도 훌훌 털어내시고, 건강을 회복하시길 빕니다. 서설을 보셨으니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 |
| | 박원명화 | 10-01-09 12:50 | | 온 몸을 조여오는 통증은 사람의 정신까지도 좀먹게 할만큼, 힘들고 어려운 역경의 시간들이지요. 선생님께서 몸이 안 좋으시다는 말씀, 전화로 듣긴 했지만 이 글을 읽어보니 눈시울이 뜨거워지네요. 하선생님! 부디 용기 잃지 마시고 병마와 싸워 예전의 건강 되찾으시기를 소망합니다. | |
| | 정동호 | 10-01-10 00:06 | | 예부터 긴 병에 효자 없다 했지요. 사모님의 지극한 간호도 때로는 서운하게 생각했던 것은 인간이기에 그럴 수 있는 감정 아닐까요. 더욱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 |
| | 최복희 | 10-01-10 22:38 | | 그런 아픔이 계셨군요. 이제 건강을 회복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셔서 좋은 글 많이 남기시길 기원합니다. | |
| | 김정자 | 10-01-11 00:00 | | 하선생님!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픈 고통의 병이시라니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제 좀 나아 지셨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부디 강건하시어 밝은 모습 뵙기를 원합니다. 전 하선생님과 인사도 제대로 못드린 청주 김정자입니다. 꼭 건강하시길 기도드릴께요. | |
| | 이방주 | 10-01-13 20:44 | | 하재준 선생님 저는 건강을 잃는 것은 남들이나 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지난해 2월 정말 우연찮게 20일간 이나 입원하여 병원에서 컸습니다. 그 때 "정말 건강이 제일이구나. 나도 건강을 잃을 수가 있구나."하고 자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1년간 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지냈습니다. 선생님 건강 회복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올해는 더욱 더 건강해지시길 빌겠습니다. | |
| | 하재준 | 10-01-15 18:26 | | 참으로 고맙습니다. 걱정해주신 마음,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 완쾌되어 축하해주신 마음 그 정겨운 마음 마음이 응결되어 저의 마음을 뭉클하게합니다. 한분 한분의 마음을 저의 마음에 고이고이 답아둡니다. 임재문 님, 정진철 님, 이진화 님, 정동호 님, 변영희 님, 성철용 님, 임병식 님, 박원명화 님, 최복희 님, 김정자 님, 이방주 님, 다시한 번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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