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소식을 전하다
일월 중순 일요일 새벽잠을 깨 전날 남강 하류로 다녀온 트레킹을 글로 남기고 ‘백곡교에서’라는 시조도 한 수 곁들였다. 이어 일전 내가 속한 동아리 한 여성 문인이 첫 시집을 펴내 보내와 단숨에 읽었다. 문우와는 동향인데 작은 공장을 경영하는 부군을 내조하며 소시민으로 살아오는 중년의 궤적이 드러났다. 수록 시편에서 따뜻하고 착한 심성으로 여리게 사는 모습에 공감했다.
날이 새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한 가지 할 일을 앞두었다. 시골에서 보내온 무청이 있었는데 그사이 베란다에 펼쳐 마르기를 기다렸다. 그게 다 말랐는지 엊그제 아내가 삶아두어 이후에 내가 마무리를 짓는 일이다. 무청 시래기는 삶아 된장국이나 무침으로 그냥 먹어도 되나 우리 집에는 매번 껍질을 벗겨 먹음이 상례였다. 날이 밝아오길 기다리며 식탁에서 시래기 껍질을 깠다.
이후 날이 밝아온 아침인데 서둘러 길을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이번에는 집에서부터 걸어 가까운 곳으로 산책을 다녀올 요량이다. 아침 최저는 영하권에 머물러도 햇살이 퍼지자 기온이 올라가는 듯했다. 두꺼운 겉옷 대신 얇은 잠바를 입고 현관을 나섰다. 외동반림로에서 퇴촌 삼거리로 나가 사림동 주택가 골목으로 갔다. 사격장으로 가는 천변을 따라 한 구역 골목길로 들었다.
주인장과는 안면을 익혀 지내는 사이가 아님에도 봄이 오는 길목에 일찍 피는 꽃을 완상하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다. 정원수를 잘 가꾼 주택의 담장 안은 엿볼 수 없어도 울타리에 걸쳐진 영춘화가 노란 꽃을 피우면 화사해 아주 멋졌다. 올겨울이 그리 춥지 않아도 영춘화는 망울이 부풀지 않아 입춘은 지나야 꽃이 필 듯했다. 곁에 자라는 매실나무도 꽃망울이 조금 부푸는 정도였다.
천변을 따라 사격장으로 올라 운동장 잔디밭 바깥 트랙을 따라 걸었다. 아름드리로 자란 벚나무가 펼친 가지에 맺은 꽃눈은 망울이 부푸는 기미를 느낄 수 있었다. 교육단지나 창원대로를 비롯해 시내 곳곳 벚나무들이 많으나 사격장 운동장 가장자리는 수령도 오래되고 볕 바른 곳이라 꽃꽂이 피면 꽃 대궐을 이루는 명소다. 훗날 벚꽃이 필 무렵이면 사격장으로 다시 찾을 생각이다.
잔디밭에서 관광사격장과 언덕으로 이어진 비탈엔 지난가을 피어난 민들레꽃이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꽃잎이 온전한 채 남은 송이가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면서 휴대폰을 꺼내 피사체로 삼았다. 이후 잔디밭을 벗어나 소목고개로 오르자 휴일 아침나절에 산행을 나선 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약수터에 이르러 샘물을 받아 마시고 고갯마루로 올라섰다.
여러 갈래길 가운데 가마불약수터 방향 숲길을 걸어 야트막한 산등선에서 봉림사지 가는 숲길로 들었다. 낙엽이 진 가랑잎이 바닥에 깔린 오솔길을 따라 봉림사지에 이르니 인기척이 들려왔다. 경남연구원 문화재 역사 문화센터 문화재 발굴 조사팀에서 쉼터를 만드는 중인데 불자들도 보였다. 법륜스님 정토회 소속이라는 한 여성 신도로부터 문화재 시굴 현황을 간략히 소개받았다.
봉림사지에서 대숲을 벗어나 버섯농장에서 다시 산자락으로 올라 창원 컨트리클럽 산기슭을 따라갔다. 가마불약수터 못 미쳐 숲을 빠져나가자 분재원이 나왔다. 거기도 아까 사림동 주택처럼 이른 봄에 피는 꽃을 보는 곳인데 울타리에 걸쳐진 영춘화 가닥에 핀 샛노란 꽃잎을 몇 송이 만나 반가웠다. 해가 바뀌어 수목에 핀 꽃으로는 가장 이르게 본 꽃이 금초원 분재원 영춘화였다.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다가 뜰 안으로 들어섰다. 주인은 인기척 없고 묶어둔 개도 없어 내가 살피려는 매실나무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수형이 잘 잡힌 운룡매로 가지가 용트림하듯 비틀어져 자랐다. 가지마다 자잘한 꽃눈이 맺혀 부푸는 중인데 몇 송이는 벌써 반쯤 핀 송이도 보였다.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가장 일찍 피는 매화를 완상한 걸음이었다. 대한을 하루 앞둔 매화 송이다. 25.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