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소설 세계관의 프리스트는 신성력 + 마나의 조화로 스킬을 사용.
신성력은 즉, 순결력을 뜻한다.
둘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프리스트는 스킬 사용에 지장이 생긴다.
빛의 신이시여.
저는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태로 깨어났습니다.
첫째, 이불이 반쯤 사라져 있었고.
둘째, 몸이 묘하게 기운이 빠진 느낌이었으며.
셋째—
목덜미가 간지러웠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목을 만졌다.
그러자…
"…뭐야, 이거…?"
살짝 부어오른 듯한, 붉은 자국.
입술 자국.
그것도 마법진이 섞인 형태의—
키스 마법의 흔적.
"우아아아아악—!!!"
나는 침대에서 그대로 굴러떨어졌다.
몸을 일으켜 벽에 등을 대고 벌벌 떨었다.
"저, 저기요?! 당신이죠?!
소서리스!! 지금 무슨 짓 한 거예요!!!
이거 뭐예요!!! 이거!!!"
그녀는 조용히 이불을 정리하며 말했다.
"아, 일어났어?"
"일어났냐가 아니잖아요!!!
저 지금… 마법 걸린 거 맞죠?!
이거 유혹계 마법이에요?! 저 저항 못 했어요!!!"
그녀는 망토를 걸치며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 웃음.
그 쿨한 도시 여자 특유의 어조.
그 눈빛…!!!
"아, 그거?
그냥 마나 회복 마법.
너 말고, 나.
요즘 마력이 잘 안 돌아서."
"그걸 왜 저한테 해요?! 그럼 제 목덜미 말고 딴 데 하세요!!"
"너 잘 자고 있길래.
목덜미가 제일 잘 흡수돼."
"저 그냥 조용히 자고 있었거든요?!
근데 눈 뜨니까 목에 키스마법?!
이게… 무슨 판타지예요?!"
"효율 좋은 마나 회복 방식이야. 나한텐."
그녀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나저나,
피부 상태가 꽤 좋던데?
다음엔 그냥 뺨으로 해볼까?"
"신님, 저 지금 신성력 0이에요.
진짜예요. 다음 전투 때 힐 안 나갈 수도 있어요…"
"그럼 오늘은 내가 조심할게.
하지만…"
그녀는 속삭였다.
"기회 되면,
또 할지도 몰라."
나는 고개를 벽에 박고 기도했다.
‘빛의 신이시여…
제가 지금
아주 나쁜 마법사와 파티 중입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친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베개를 발로 차며
신성한 멘탈을 복구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그녀— 그러니까 이름도 모르는 소서리스는
벌써 여관 1층으로 내려가 조식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엘프 전통 빵에 슬라임젤 버터까지 곁들인 세팅.
숙련된 여관 이용 스킬.
저게 진짜 어둠 속의 마법사 맞아?
"너 늦네."
그녀가 가볍게 말했다.
나는 로브를 끌고 뒤뚱거리며 테이블에 앉았다.
"…피곤해서요."
"목덜미 때문?"
"그 얘기 하지 마요!!!"
주변 모험가들이 쳐다보자 나는 로브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에
꿀술— 아니, 벌꿀주를 입에 머금고 웃음을 삼켰다.
"오늘 던전 간다고 했죠?"
"응. 이스트게이트 산맥 너머, 폐허가 된 고대 성소.
룬 해독 퀘스트. 위험도 B.
고블린은 없고, 대신…"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
"속옷 도둑 슬라임이 출몰한다더라."
"그게 RPG 세계관에 왜 존재하는 거예요?!"
"R18 확장팩 때문 아닐까?"
"이게 공식 퀘스트라고요?!"
"왕국 공인.
게다가 퀘스트 설명엔 '신성한 자의 복장을 노린다'고 써 있었지."
"…저 프리스트 잖아요?"
"정답."
나는 조용히 포크를 내려놨다.
'이거… 내 전직이 문제인가?'
던전 내부는 예상보다 깊었다.
이스트게이트 산맥 너머,
폐허가 된 고대 성소.
이곳은 한때 신관들의 사원이었고—
지금은 변태 슬라임들의 천국이었다.
"아까 고대 룬 해독 퀘스트… 위험도 B라고 했잖아요."
"응."
"근데 왜 변태 같은 슬라임이 나와요?!"
"도감 기준으로는 '속옷 포식종-하급 슬라임'이래."
"그걸 왜 공식화했어요!!! 누구예요, 그 분류한 변태는!!!"
나는 로브 자락을 꼭 붙잡았다.
프리스트의 순결은 방어구보다 얇다.
"근데 이상하네. 아직 안 튀어나오는데?"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눈을 감고, 마력 탐지에 집중했다.
"없어요… 마력 반응은 없—"
쫍.
"…응?"
다리 한쪽이 미끄러웠다.
무언가 미지근하고 말랑하고 젤리 같은 것이
쭈우우우욱— 미끌, 꿈틀대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뭐야! 뭐야 뭐야 뭐야!!!"
나는 비명을 질렀다.
"저기, 이거… 지금 다리 타고 올라와요!!!
아악!!! 안 돼! 올라오지 마!! 제발!!!"
그 감촉은 끈적한 젤리.
단단하지도, 완전히 말랑하지도 않은 미묘한 탄성.
미세하게 떨리는 진동,
그리고 그 속에서 전해지는…
‘꿀꺽’ 소리.
"우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로브를 걷어올리고 그 녀석을 떼어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녀석은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허벅지 사이,
무릎 안쪽을 스윽스윽 문질러오며
천천히, 정말로 교활하게,
속옷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지금 공격하면… 너한테 튈 수도 있어."
소서리스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침착함을 잃었다.
"무슨 튀어요!!! 얘 지금 제 속옷 잡았어요!!!
진짜예요!!! 진짜 쥐고 있어요!!!
이거, 슬라임 손 맞죠?! 손 있죠 이거!!!"
그때였다.
슬라임이 쯥 소리를 내며—
퓽! 하고 튀어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내 속옷도 함께 날아갔다.
"………"
침묵.
진짜 침묵.
슬라임은 바닥에 떨어진 속옷을 흡수하며
끈적하게 으스댔다.
그녀는 잠깐 말을 잊더니,
…그리고는.
크게 웃었다.
"푸흐—하하하!!"
"지금 웃어요?! 이게 웃겨요?!
당신 뭐예요?! 진짜 사람 맞아요?!"
"아니… 미안, 근데 너무 정확하게 가져갔잖아.
속옷만. 완벽하게."
"그게 더 굴욕이거든요!!!"
나는 로브를 끌어내려 필사적으로 가리며 외쳤다.
"힐로 어떻게 안 되나요?! 신성력으로 복원이라든가!!"
"그건 치유계 마법이고,
의류 생성은 비전 계열이야.
너무 늦었네."
"그럼 지금 저… 아무것도 없이 로브만 입은 거예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그리고 슬라임이 네 팬티 가지고 저쪽으로 튀었고,
지금 마법진 안으로 들어갔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손에 지팡이를 쥐고,
입술을 떨며 조용히 말했다.
"가죠."
"어디로?"
"그 팬티… 아니, 그 마법진 안으로요."
"그거 회수해도 경험치 안 줘."
"가자고요!!!"
나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이미 눈에서 광선이 나가고 있었다.
소서리스는 피식 웃더니
검은 장신구를 띄우며 말했다.
"좋아.
팬티 하나로 그렇게 분노하는 프리스트,
처음 봤어."
"다음에 당신도 당해봐요.
전 이 굴욕… 평생 안 잊을 거예요."
그렇게, 나는 전설적인 퀘스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프리스트의 팬티를 찾아라】
공식 의뢰 등재 안 됨.
파티원의 사적인 감정 폭주에 따른 긴급 미션 발생.
보상은…
자존심 복구.
슬라임은 처리됐다.
아니, 산산조각났다.
내가 휘두른 지팡이는 거의 철퇴 수준이었고
최후의 일격은,
신의 분노 Lv.3 - 성속성 강타로
슬라임과 내 팬티를 함께 소멸시켰다.
"…돌이킬 수 없게 됐어요."
나는 무너진 마법진 앞에 앉아 중얼였다.
"신의 빛이 너무 강했어."
"아니, 정확히는 팬티를 갈아입을 기회도 소멸했죠."
나는 무표정으로 말하며,
로브를 붙잡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옆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이더니…
"여기."
"…네?"
그녀는 무언가 작고 얇고 부드러워 보이는 걸 꺼내
내 앞에 툭— 내려놨다.
"팬티."
"뭐라고요?!"
"예비용."
나는 1초 정지했다.
그리고 그 다음 1초에 소리쳤다.
"팬티를 왜 들고 다녀요!!!"
"그냥. 언젠간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그게 정상적인 파티 준비물이에요?! RPG 세계에서 팬티 휴대가 정석이에요?!"
"긴 여행이니까.
혹시 몰라서 넣어뒀지."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걸 들었다.
레이스 달린,
심지어 리본까지 달린…
"이거, 완전… 여성용 속옷인데요?!"
"응. 여자니까."
"그게 아니잖아요!! 당신 꺼예요?!"
"응."
"그럼 전 지금 당신 속옷을—"
"선물."
"더 싫어요!!!!"
나는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속옷을 빌리는 것도 수치인데,
소서리스가 건넨 속옷을 프리스트가 입는다?
무슨 B급 판타지 에로게임인가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싫으면 안 입어도 돼."
"그럼 노팬티로 여관까지 돌아가라고요?! 이게 기사도예요?! 왕국의 룰이에요?!"
"아니, 그냥 내 룰."
"더 싫어요!!!!"
나는 슬라임보다 더 빠르게 로브 속으로 손을 넣고
속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어울리네."
그녀가 조용히 중얼였다.
"보셨죠?! 지금 봤죠?! 일부러 봤죠!!!"
"안 봤어.
그냥… 분위기에서 느꼈어."
"느끼지 마요!!!"
나는 로브를 바싹 당겼다.
그러면서도,
속옷 안쪽에서 느껴지는 그 부드러운 감촉.
묘하게 사이즈가 딱 맞았다는 게
더 불쾌하면서도… 이상하게 뭔가… 기분 나쁘게 설렘.
'뭐야… 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자.
미션 완료. 팬티 회수 실패.
대신… 선물 성공."
"선물 아니에요!!!
환불 안 되면 저주라도 걸 거예요!!!"
고대 룬은 성소의 가장 깊은 곳에 있었다.
기둥마다 새겨진 별 문양,
천장 위엔 흐릿한 별자리—
그리고 중앙엔,
잠들어 있던 정령형 보스.
"…저거 깰 건가요?"
"퀘스트 완료 조건이 룬 해독이니까.
깨야지."
"이거… 전투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정신력 바닥인데요?"
그녀는 망토를 풀며 말했다.
"이번엔 네가 메인이지."
"네?"
"룬 해독은 신성 마법 계열.
프리스트가 해야지."
"…아."
맞다.
생각해보니 내가 메인 퀘스트 담당이었지?
이건 주인공 각…인가?
나는 덜덜 떨면서 정령 앞에 섰다.
지팡이를 꺼내 들고,
진지하게 주문을 외웠다.
"빛이시여, 잊혀진 언어를 밝히시어—
잠든 지식을 깨워 주소서…"
룬이 빛났다.
성스러운 문자가 하나씩 떠올랐고,
기둥이 흔들렸다.
정령이 고개를 들었다.
"성공이네."
소서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정령이 주먹을 들자 바로 도망쳤다.
"어어어어?!
잠깐?! 공격이 날아오는데요?!"
"그러니까 버텨.
내가 마법 쓰기 전에 죽지 말고."
"그게 격려예요?! 사형선고예요?!"
정령의 공격은 거대했다.
빛의 파동,
마나 쇄도,
쓸데없이 날리는 파티클 이펙트.
나는 진심으로 집중해서 힐 주문을 읇었다.
순간, 정령의 광역기에 휘말린 그녀에게
내가 전력으로 힐을 꽂았을 때—
"…따뜻하네."
"그런 말 할 타이밍 아니라고요!!!
힐 들어갈 때마다 감상 그만 해요!!!"
"근데 너… 힐할 때마다 목소리 달라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약간… 숨넘어가는 느낌?"
"그거… 너무 이상하게 들리잖아요!!!"
그녀는 웃으면서 한 손으로 마법진을 펼쳤고
검은 마력으로 정령의 움직임을 봉인했다.
"마무리, 막타 너가 해."
"네?! 저요?!"
"오늘 주인공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들었다.
심호흡.
그리고 외쳤다.
"성결의 빛이여,
심연을 가르고—
정화를 내리소서!!"
빛의 창이 떠올랐고,
정령은 거대한 파동과 함께—
펑! 하고 폭발했다.
정적.
그리고—
루팅 아이템이 툭 떨어졌다.
【획득: 고대의 룬 파편 ×1】
【보너스: 정령의 팬티… 아니, 장식 끈 ×1】
"……뭐죠, 이 게임?"
"룬 해독 완료. 보상도 받았고."
소서리스는 옆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지팡이를 바닥에 짚고 숨을 골랐다.
"…저, 좀 멋있지 않았어요?"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아주 작게—
진짜로 진심 3g 섞인 미소를 지었다.
"응.
오늘은 확실히… 네가 제일 예뻤어."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요?!"
"왜?
진짜로 예뻤는데."
"힐이… 힐이 안 나가요…! 부끄러워서 집중 안 돼요!!!"
"그럼 내가 힐해줄까?"
"힐은 프리스트가 한다고요!!!"
그렇게 퀘스트는 클리어됐고,
나는 보상보다 더 큰 무언가를 얻어버렸다.
그 눈빛.
그 미소.
그 한마디.
신이시여.
힐보다 더 따뜻한 건…
왜 항상 그 사람 눈빛일까요.
첫댓글 눕히자 이제
팬티 교환은 우선 성공적데수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