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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 슬라임이 출몰한 퀘스트를 끝내고,
성소를 빠져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어 있었다.
산맥을 넘어 마을로 돌아왔고—
여관 주인은 땀에 찌든 우리 둘을 보고는 한마디 했다.
"오늘도… 방 하나입니다."
나는 고개를 들기도 전에
이마가 테이블에 쿵.
"이 마을엔 방이 하나만 존재하나요?! 왜요?! 저주예요?!"
"근데 같이 자면 따뜻하잖아."
소서리스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귀가 빨개진 내 얼굴을 여관 주인은 못 봐서 다행이었다.
방으로 들어왔을 땐 이미 밤.
나는 로브를 벗고,
속옷만 남긴 채 뒷모습을 보이며 옷장을 뒤지고 있었다.
물론,
팬티는 아직 그녀의 것이다.
"지금… 뒤에서 다 보고 있는 거 아니죠?"
"응.
대신 기억하고 있지."
"그게 더 싫어요!!"
나는 로브로 얼굴을 덮고 으으— 하며 웅크렸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동쪽 마을 출신이지?"
나는 로브 안에서 멈췄다.
"…어떻게 알아요?"
"거기서 온 애들은,
가끔 그렇게 힐 시전할 때 기도문을 읇어줘.
오래된 사제단 교본 방식.
요즘은 잘 안 쓰는 거."
그녀는 말하면서
망토를 벗고, 천천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날 있었던 거야?"
나는 숨을 삼켰다.
"…무슨 날이요?"
"그 마을이 사라진 날.
불탔잖아.
소문으로는 오크들이 쳐들어왔다면서."
"…"
"그 마을, 나도 예전에 잠깐 들른 적 있어.
작은 성소랑 우물 있는 마을.
지나가던 길이었지."
나는 그대로 굳었다.
손에 로브 자락이 떨렸다.
"그날 밤,
이상한 마력이 폭주해서
성소 근처가 날아갔다고 들었는데."
그녀는 천천히 나를 바라봤다.
"혹시,
그 안에 있었어?"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고개를 아주, 아주 천천히 끄덕였다.
그녀는 웃지 않았다.
대신 작게 중얼였다.
"기도 소리가 들렸대."
"네?"
그녀는 조용히,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그날, 마을이 무너질 때…
성소 안에서 누가 계속 기도하고 있었대."
나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기도요?"
"응.
불타는 와중에도… 계속.
그걸…
누가 들었었다고 하더라."
"…그걸 들었다는 건…
꽤 가까이 있었던 거 아닌가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을 살짝 내리고,
천천히 손끝으로 장신구를 만졌다.
"그냥…
그런 얘길 들은 적 있다는 거야."
그 말투.
그 미묘한 침묵.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내 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떨리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띵해졌다.
그 기도—
분명, 그때 내가 정신 잃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했던...
"…그 얘기, 어디서 들은 거예요?"
그녀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며,
"그냥, 전에… 우연히 들었어."
그 말투.
그 표정.
그 눈빛.
전부 거짓말을 말하는 사람의 것처럼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부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 같지도 않았다.
나는 천천히 앉았다.
"왜 그런 걸…
이제 와서 묻는 거예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궁금해서.
같이 자는 사이잖아?"
"그 말투 진짜 싫어요!!"
"그럼 이렇게 물어볼까."
그녀가 이불을 걷으며 살짝 웃었다.
"너,
나랑 처음 봤을 때
기분 이상하지 않았어?"
나는 말을 잃었다.
정확하다.
그 기척. 그 마력. 그 날의 어둠.
"…그건 그냥…
기분 탓이에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녀는 이불을 덮고 등을 돌렸다.
나는 로브를 조용히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혹시.
진짜로—'
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언제나처럼
정확하게 감정을 흘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불타는 하늘 아래,
한 사람의 그림자가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끝에서—
기척이,
지금 그녀와… 너무 닮아 있었다.
아침이었다.
새벽의 여관 복도는 조용했고,
나는 밤새 한숨도 못 잤다.
'그 기척…
그 눈빛…
그리고 그 말.'
'너, 나 처음 봤을 때
기분 이상하지 않았어?'
이상했죠!!! 아주 많이 이상했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감정은
'이 사람을 의심해야 하나… 좋아해야 하나…'
혼돈 상태.
나는 침대에서 튀어나와
눈만 반쯤 뜬 채로 사제복을 집어 들어 입었고,
밖을 나섰다.
그리고 여관 1층에 내려갔을 때—
그녀를 마주했다.
소서리스.
아침 식사를 하며 앉아 있었다.
"…왔네."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고,
그녀는 빤히 날 쳐다봤다.
"…응?"
그리고,
그 다음 한마디.
"로브 거꾸로 입었어."
"네?"
"로브.
사제복.
전면 후면 반대."
"…"
나는 목을 숙여 아래를 봤다.
목에 위치해 있어야 할 성스러운 십자가 장식이,
등에 꽂혀 있었다.
"에에에에에엣!!!"
나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여관 벽에 머리를 부딪쳤고,
내 체력 게이지는 순간적으로 붉게 변했다.
"제가 지금…
거꾸로 입고…
온 거예요…?"
"응.
그래서 지금 되게 신앙심 뒤틀려 보이는데."
"우아아아아아악!!! 언제부터... 아까 잠결에?"
나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고개를 못 들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는 벌꿀주에 꿀 바른 빵을 찍어 먹는 듯.
"아침이나 먹어."
"진짜… 최악이야. 나."
그녀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아주 많이.
"그래도 잘 어울려.
약간… 신비로운 신흥 사이비 사제 느낌?"
"그게 더 최악이에요!!!"
그때 여관 주인이 슬며시 다가왔다.
"아, 프리스트님.
오늘 아침 의뢰 들어왔습니다.
성속성 힐러 1인 구함. 장소는…
남부 폐광.
‘팬티 도적단’ 출몰 지역입니다."
나는 다시 머리를 들었다.
"……뭐라고요?"
소서리스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팬티가 또 문제네."
"문제가 아니라 장르 파괴 수준이에요!!!
왜 팬티 관련 몹이 이렇게나 많아요?!"
"그야 나도 모르지."
"이딴 세계관 최악이에요!!!"
- 남부 폐광.
팬티 도적단의 본거지.
그 이름은 ‘팬단’(※팬티+단)
왕국이 부끄러워서 공식 기록에서 삭제했지만,
이상하게 퀘스트는 계속 뜨는 문제 집단이다.
"그래서 오늘도… 속옷 관련이네요."
나는 로브를 고쳐입으며 말했다.
물론 속옷은 여전히… 그녀가 준 예비용.
어차피 이젠 익숙하다.
“여기서 또 하나 잃으면, 더는 무서울 것도 없다” 마인드.
소서리스는 오늘도 망토를 펄럭이며
유유히 폐광으로 걸어 들어갔다.
"너무 태연하게 걸어가네요?!
오랜만에 고향 가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말했다.
"응.
사실 한때 놀러 온 적 있어."
"뭐요?!"
"팬단."
"잠깐만요?! 거기 소속돼 있었어요?!"
"아니. 소속까진 아니고…
그쪽 단장이랑 잠깐, 희귀 팬티 거래를 한 적은 있었지."
"하아아... 최악, 최악!"
그렇게 말하는 사이,
폐광 안쪽에서 갑자기 팬티 수송 슬라임들이 튀어나왔다.
"또 슬라임이에요?!
팬단에도 왜 꼭 이런… 젤리 애들이 있는 거예요?!"
"수납성이 좋잖아.
접고 넣기 딱 좋아."
"당신… 그쪽 시점으로 말하는 거 완전 수상하잖아요?!"
그때, 슬라임 한 마리가 점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녀석은… 내 쪽이 아닌,
그녀 쪽으로 돌진했다.
"어라?"
나는 당황했다.
내 팬티가 안전한 하루인가? 싶기도 했고—
무언가 마음이 복잡했다.
슬라임은 신나게 점프하더니,
소서리스 다리 쪽에 찰싹 안겼다.
"음."
그녀는 그걸 보며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기억하네.
예전에 길 잃은 애였는데."
"기억이요?!
길 잃은 슬라임이 기억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얘, 원래 내 마나 냄새 기억하는 타입이야.
내 몸에 감기면… 기분 좋아하거든."
"감기면—
감기면 뭐요?!"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녀는 슬라임을 쓰다듬었다.
찹. 쭙. 찰싹.
"얘, 너보단 날 좋아하네."
그 말에—
나는 지팡이를 그대로 들었다.
"좋아. 지금부터 슬라임 학살전 시작입니다."
"왜 그래.
질투났어?"
"질투가 아니라 정화입니다!!
이건 성속성 마법의 정의예요!!!"
나는 지팡이를 휘둘러
성속성 섬광 난사.
슬라임은 섬광에 겁먹고 유유히 달아났다.
그녀는 피식 웃었다.
"신성 마법 난폭하게 잘 쓰네."
"그쪽이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제가 이렇게 폭주하잖아요!!!"
"그래서 좋아."
"뭐가요?!"
"폭주하는 너."
나는 말문이 막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슬라임은 도망갔고,
폐광은 조용해졌고,
내 심장은…
폭발 직전이었다.
"진짜…
하필이면 그딴 슬라임이랑 스킨십하고 좋아하니까…"
"뭐?"
"아니에요!! 아무것도요!!"
그녀는 조용히 중얼였다.
"귀엽네."
그 말에,
나는 섬광을 그녀의 얼굴에 한 번 더 쐈다.
의도적으로.
그때,
폐광 중앙에서 거대한 팬티 모양 깃발이 올라갔다.
【팬티 도적단 단장: 시스루 더 소프트 등장】
"……"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말했다.
"어머, 시스루. 오랜만이네."
"그렇게나 서로 친한 관계예요?!"
"한때 같이 속옷 고르러 다녔지."
"그게 뭐예요?!
그게 뭔 관계예요!!!"
시스루는 수상한 포즈로 말했다.
"내 팬티는… 늘 그녀가 골라줬지."
"그만요!!! 진짜 진심으로 그만요!!!
신성력 떨어져요!!!"
나는 그대로 홀리 라이트닝을 시전했고,
성속성 마력으로 팬단 전원이 기절했다.
퀘스트는 완료.
팬단은 박살.
나는 속옷을 지켰고… 그녀는 추억을 지켰다.
마을로 다시 귀환하던 길.
우리는 산 중턱에 갇혔다.
날씨는 갑작스럽게 변했고,
비는 하늘이 열리는 수준으로 퍼붓고 있었다.
"…계획에 없던 산장인데요."
나는 축축하게 젖은 로브를 붙잡고 입을 달싹였다.
소서리스는 특유의 무표정으로 말했다.
"응.
있길래 들어왔지."
"그게... 이곳은 RPG에서 NPC도 안 들어올 것 같은 폐허 수준 산장이네요."
"그래도 지붕은 있잖아."
문제는—
안에 있던 건 접시 하나랑, 침낭 하나.
"침낭… 그쪽이 쓰세요."
"너, 입술 파래."
"힐러는 괜찮아요. 저, 신성 마법 써서 따뜻하게…"
"너 지금 마력 상태로 쓸 수 있는 건 ‘홀리 라이트닝’ 뿐이잖아.
그거 쓰면 산장 타."
"…맞는 말이라 반박을 못 하겠어요…"
결국,
나는 침낭 안에 들어갔고.
그녀도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잠깐만요?! 같이요?!"
"침낭 하나잖아."
이미 너무 가까웠다.
살짝 젖은 옷.
딱 붙는 망토 자락.
체온이 느껴지는 거리.
"너… 생각보다 따뜻하네."
그녀가 속삭였다.
"이건… 성속성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신성력의 작용!! 절대 제 체온이 아니라—"
"이 정도면... 성스러운 연소."
"그게 무슨 단어예요?! 신학과에서도 안 가르쳐요 그런 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너무 가까워서 눈 마주치면
뭔가 끝장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다.
"너,
힐할 때마다 한번씩 입술이 떨리더라."
"그런 거는 왜 보는거에요?"
"그리고 지금,
침낭 안에서 네 마력 더 잘 느껴져."
"그건…
그건 이게 너무… 가까우니까..."
나는 침낭 안에서 온몸이 진동했다.
"…지금 이 자세…
너무 이상하다고요…"
"응.
그러니까 눈 감고 어서 자."
"그런다고 지금 이 상황이 변하진 않는데요."
"그럼 할래?"
"뭐요?! 뭐를요?!"
"아니-. 가위바위보 해서 진사람이 침낭 양보하기."
"그냥 눈 감을게요."
그녀는 작게 웃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눈 감은 김에,
…내가 하나만 물어봐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날,
기도했었지?"
"……"
그녀는 아무 대답도 듣지 않고
그저 손끝으로
내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했다.
"사실... 그 목소리, 내가
들었어."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작게 떨렸다.
"그날…
살아있던 한 사람.
기도하고 있었던 그 아이."
"…!"
"혹시—"
"그만… 말해주세요."
나는 속삭였다.
"그 얘기,
지금은…"
"알겠어."
그녀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둘 다,
아무 말도 없이
그 침낭 안에서
눈을 감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끼익…"
산장 문이 열리며,
여관 주인이 수색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어, 여기 계셨… 엇."
그 순간.
우리는 하나의 침낭 안에서,
안고 자는 자세 그대로 마주보며 일어났다.
"………"
"………"
그날 이후,
수색대는
이 산장을 "빛과 어둠의 성역" 이라고 불렀다.
- 동쪽 마을 기도문 특징 -
:: 말투가 고전적이고 문장이 길다. ::
예시: "빛의 근원 되시는 자여,
이 타락한 육신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소서…"
그래서 한 문장이 길고 시적이고,
듣는 사람 입장에선 되게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 일반적인 프리스트 기도는 짧고 간결. ::
예시: "신이시여, 이 몸에 빛을."
첫댓글 이제 노잼임 ㅡㅡ
걍 j pop추천 시리즈나 다시 하자
어째서녜- 아직 스토리 남았는케도
오모시로이
잼나느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