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미황사에 한문학당을 개설하고 아이들을 산사로 불러 모은 지 14년째다. 한 곳에서 자리 지키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하는 것이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다. 더운 여름날 아이들이 산사로 찾아오면 마당을 도는 내 발걸음도 경쾌하다. 벌써 대학생이 되어 연어가 강으로 돌아오듯
인솔교사로 다시 찾아온 아이들이 예쁘고 반갑다.
한자는 모든 사물을 깊이 바라보게 해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한문은 당연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말의 약 70% 정도가 한자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자를
공부하고 문장으로 배우는 것은 깊이 있는 사고를 도와주고 사물의 연기적 관계를 익히게 한다.
한문학당 교재로 쓸 《수심보경(修心寶鏡)》이라는 책을 편집했는데, 그 속에는 《사자소학》의 ‘효행’과 ‘붕우’ 편을 넣어 부모와 친구들을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을 심어주는 문장과 「법구경」에서 어린이들에 맞춤한 내용을 가려 뽑았다. 역시 아이들은 감동적인 글을 마음으로 좋아한다.
끝으로 「명심보감」의 정기편에 있는 ‘마음 다스리는 글’을 가르쳐 두고두고 마음에 새기도록 했다.
비유하자면 두터운 돌은 譬如厚石 (비여후석)
바람이 능히 옮기지 못하는 것과 같이 風不能移 (풍불능의) 슬기로운 사람은 뜻이
무거워 智者意重 (지자의중) 비방과 칭찬에도 기울지 않는다. 毁譽不傾
(훼예불경)
「법구경(法句經)」17
산사는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 많다. 늘 그 자리에서 맑은 향과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켜고
예불과 참선과 수행으로 내용을 채워온 곳이다. 어느 한 곳이 긴 호흡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또한, 사찰의
전각들은 문 하나 열면 세상과 금세 하나가 되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마음의 문 하나 열면 타인과 어느새 하나가 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공부는 책이나 강의에서 얻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직접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지는 것이 진짜일 때가 많다.
수많은 것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
“스님, 절에는 벌레들이 너무 많아요!” “응, 여기는 공기가 깨끗해 작은 생명들도
행복하게 자유롭게 사는 곳이란다.” 절집 주변에는 수많은 나무들과 새들, 곤충들과 동물들이 함께 살고 있다. 어찌 보면 그 속에 사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잠시 공간을 빌려 쓰는 존재에 불과하다. 도시에서 살다 보면 사람 중심적 생각을 하는데 산속에서는 자연스럽게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한문학당 기간에는 부모의 면회나 통신도 금지하고 있다. 심지어는 친척도 자원봉사를 할 수 없다. 철저하게 독립적인 혼자가 된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부모의 보호 속에 자라다가 혼자서 스님들과 친구들과 산사에서 홀로 지내려면 자신의 모든 안테나를 곤두세워야 한다. 이때
만나는 새들의 소리는 어떤 음악보다도 생생하고, 하늘의 구름과 저녁노을은 어떤 영화보다도 아름답다.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그 어떤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보다 시원하다. 아이들은 함께 지내는 동안 서서히 그것들에 마음을 내주고 동화되어간다.
달마산과 미황사 곳곳을 누비던 아이들이 졸업하고 집으로 가기 전에 한마디씩 한다. “스님, 8일
동안이나 그림 속에 뛰어놀다 가는 것 같아요” 그 말에 나는 감동을 한다. 그 맛에 힘겨운 한문학당을 지금껏 이어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우리가 주려는 것보다 더 섬세하고 깊이 있게 더 많은 것을 배워간다. 그것들은 어딘가 숨어 있다가 아이들을 키우는 비타민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올해는 어떤 얼굴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