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 마을도서관에서
일월 하순 넷째 수요일이다. 날씨가 풀려 근교 나들이를 사흘 다녔더니 한겨울이라도 초목에서 피는 꽃을 완상하고 있다. “철없이 피는 꽃은 질 때도 철이 없어 / 사림동 사격장 터 운동장 가장자리 / 한 포기 포공영꽃은 한겨울을 넘긴다 // 잔디가 시든 검불 보온재 이불 삼아 / 추위에 푸른 잎맥 갈색이 되긴 해도 / 꽃잎은 본색을 살려 화사하게 피었다” ‘겨울 민들레꽃’ 전문이다.
앞 단락은 아침이면 지기들에게 안부를 겸해 보내는 시조로 넘긴 작품이다. 엊그제 대한 아침나절 사격장 운동장으로 산책을 나서 본 민들레꽃을 음보율로 맞추었다. 디카시처럼 민들레꽃 사진은 당연히 곁들였다. 이 작품 외에도 영춘화를 비롯한 몇 수 시조가 예비로 마련되어 있어 마음이 느긋하다. 수요일은 근교의 마을도서관에서 반나절을 보낼 요량으로 이른 시각 길을 나섰다.
지난해 봄부터 연말까지 열 달 동안 국도변 초등학교 아동안전지킴이 역할을 맡았다. 봉사활동 시간대는 오후라도 아침 일찍 강둑이나 들녘을 산책하고 오전은 작은 도서관에서 보냈다. 그곳은 평생학습센터에서 운영하는 한글 문해 강좌도 열려 여든이 넘은 할머니 두 분을 강사가 지도했다. 그 할머니들을 뵐 때면 까막눈으로 평생을 사시고 피안으로 떠난 어머님 생각이 간절했다.
도서관 열람실과 문해 강좌가 열린 월수금은 같은 공간을 사용해 열람자가 적어 독서삼매에는 지장을 받지 않는다. 강사와 할머니들을 대면해 식사라도 한 끼 나누고 싶어도 붙임성이 적어 용기를 내지 못했다. 대신 어버이날과 추석을 앞두고는 약소한 금액이나마 센터장에게 건네면서 협찬자를 밝히지 마십사고 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문맹자로 평생을 사셨던 당신이 흐뭇해할 듯했다.
해가 바뀐 신년 초 도서관 열람실을 찾았더니 두 분 할머니는 공부를 계속 나왔는데 센터장에게 그 주간 금요일 짧은 방학에 들어 설을 쇤 이후 삼월에 새로운 학기를 시작한다고 들었다. 엊그제 평생학습센터 장과 사서를 포함해 할머니와 강사까지 다섯 분에게 보낼 양말 세트를 준비했다. 나로서는 할머니를 격려 응원함에 다른 방도는 찾지 못하고 설을 쇠십사는 선물로 미미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 이른 시각에 원이대로에서 창원역 앞으로 나갔다. 근교 강가 신전 종점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타니 안면이 익숙한 기사와 승객 가운데도 얼굴이 익은 분이 보였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어 용잠삼거리를 지나면서 새로운 승객이 타고 내리기도 했다.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거쳐 주남저수지에서 들녘을 달려 대산 일반산업단지를 지났다.
가술에 닿자 도서관 업무가 시작되는 9시와 맞추었다. 열람실로 드니 사서와 센터장이 맞아주었는데 한글 문해 강좌는 방학에 들어 할머니들은 나오지 않는 날이다. 사서에게 준비해 간 약소한 선물은 후일 뵙게 될 때 전하십사고 하고 열람석을 지켜 책을 읽었다. 배낭에 넣어간 우리 꽃에 대한 한시 해설서가 있음에도 서가에 신간으로 비치된 유홍준의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였다.
글쓴이는 자신의 인생사 프롤로그에서 그가 살아온 미술평론가로 사는 궤적을 언급하면서 입담만큼이나 좋은 필력으로 글쟁이로 살아온 지난날 소회를 드러냈다. 정년 이후도 ‘석좌’라는 이름으로 대학 강단에 적을 두고 대외적 강연에도 활발해 영원한 현역이었다. 한때 문화재 보존 관리 정책을 펴는 행정가로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책의 전반부 3장까지 읽으니 점심때가 되었다.
가술 거리 식당에서 추어탕으로 점심을 한 끼 때우고 오전에 못다 읽은 부분은 후일 읽기로 하고 들녘 산책을 나섰다. 제동리에서 우암으로 향하니 벼를 거둔 들판은 온통 비닐하우스를 세워 특용작물로 수박과 당근을 길렀다. 논둑과 농수로 언저리에는 한해살이 잡초로 가을부터 꽃을 피우는 개갓쑥이 지천이었다. 유럽이 원산지인 개갓쑥을 토종이 되다시피 우리 땅에 퍼져 자랐다. 2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