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2024.6.7.금요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사제성화의 날)
호세11,1.3-4.8ㅁ-9 에페3,8-12.14-19 요한19,31-37
성화의 여정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성화되십시오!"
"성화되십시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축복인사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거룩한 성인이 되라는 인사입니다. 화답송 시편도 우리를 고무합니다.
“보라, 하느님은 나의 구원.
신뢰하기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네.
주님은 나의 힘, 나의 굳셈.
나를 구원해 주셨네.”(이사12,2)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이자 사제 성화의 날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예수 성심의 사랑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입니다.
이 대축일은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데
바로 두 대축일이 내적으로 깊이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성체성혈의 사랑은 그대로 예수성심의 사랑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마음" 성가 199장을 조용히 불러 봅니다.
"예수 마음 겸손하신 자여
내 마음을 내 마음을 열절케 하사
네 성심과 네 성심과 같게 하소서.
시간되면 예수성심성가들(199-209)을 조용히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예수성심은 한마디로 예수님 사랑의 마음입니다.
보통 예수성심상은 예수님의 심장에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으로 표현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후 창에 찔리셨을 때 피와 물이 흘러 나온 장면은
교회초기부터 중세 신비가들에 이르기까지 열렬한 묵상의 대상이 됐습니다.
예수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온 것을 “천상보화의 창고에서 무수한 은혜가 쏟아져 나온 것”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옛 교부들과 신학자들은 심장에서 흘러내린 물이 영혼을 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세례성사를 상징한다고
보았으며, 피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하는 영혼의 양식, 성체성사를 상징한다고 봤습니다.
예수성심에 대한 신심은 중세기 이전에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2세기 무렵 성 안셀모, 성 베르나르도, 성 보나벤뚜라가 중심이 되어 예수성심을 공경했고,
13-14세기 신비가들이 예수성심께 대한 신심을 발전시켰습니다.
예수성심을 교회가 공인하고 적극적으로 보급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673년 12월 27일 일어난
예수님 발현이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방문회 수녀였던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1647-1690) 성녀에게
예수님이 발현한 것입니다.
1675년까지 2년간 70회나 발현한 예수님은 성녀에게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내 거룩한 마음은 인간 모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내 성심은 사람들에게 홍수를 퍼부어 성덕과 구원 은총으로 그들을 부유하게 하고
멸망의 구렁에서 건져내려 한다...나는 성체성혈 대축일후 금요일을 내 성심을 공경하는 날로
정하기를 원한다. 그날 영성체하는 영혼들은 내 성심에서 사랑의 은총을 홍수처럼 풍부하게 얻게 될 것이다.”
바로 이에 근거하여 오늘 금요일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오늘 이 미사은총이 얼마나 큰지 깨닫게 됩니다.
이후 역대 교황들은 공식 문서를 통해 예수성심신심을 널리 보급할 것을 권장합니다.
클레멘스 13세 교황(1758-1769)은 예수성심신심을 인정하고 교령을 반포합니다.
이어 비오 9세 교황은 1856년 예수성심축일을 전세계교회축일로 확산시켰고, 1899년 레오 13세 교황은
모든 인류를 예수 성심께 봉헌할 것을 선포했고, 비오10세는 해마다 이 봉헌을 갱신토록 합니다.
예수 성심의 교황이라 불리는 비오 12세 교황은 1956년 회칙 <물을 길으리라>를 반포하며
예수성심 공경의 근거를 신학적으로 제시합니다.
교황은 “예수성심신심은 하느님 사랑을 배우는 가장 효험있는 학교로 인류를 구원의 샘으로 초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장 적절한 응답이 된다.”고 강조합니다.
한편 한국교회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권고에 따라 1995년부터 매년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내며 교구마다 전사제들이 모임을 갖고
적절한 행사를 합니다.
이기주의와 무관심, 세속주의가 팽배한 비인간화로 치닫는 작금의 시대에 참으로 예수성심신심이
얼마나 절박한지 깨닫게 됩니다.
비단 사제뿐이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성화(聖化)에로 불리었음을 깨달아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말씀은 그대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모든 행실에서 거룩한 사람이 되십시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1베드1,15-16)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성화의 여정”에 불림받고 있습니다.
“성화되십시오!” 서로 인사를 바치시기 바랍니다.
날로 예수성심의 사랑을 닮아갈 때 거룩한 성인의 삶이요 우리 삶의 모두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도 삶의 성화에 집중됨을 봅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은 이미 호세아서의 하느님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바로 예수성심의 사랑은 이런 하느님의 연민의 사랑, 무한히 인내하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백하는 우리를 위한 “아버지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은 얼마나 놀랍고 고마운지요!
바로 예수성심의 사랑을 뜻합니다.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에 믿음의 뿌리를 내리라는 것이며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 바로 하느님이, 예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을 대신한 바오로의 기도가 우리를 용기백배, 성화의 여정에 항구할 힘을 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성심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시고
성화의 여정에 항구할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날마다 기뻐하며 예수성심의 샘에서 물을 긷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에서 물을 길으리라.”(이사12,3). 아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 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