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천鷓鴣天, 자고새가 우는 날, 연명 선생을 그리워하며, 작자 송대 신기질辛棄疾
도연명의 시를 읽고 손을 놓을 수 없어서, 변변치 못한 사詞를 희작戲作하여 연명 선생께 보내다.(讀淵明詩不能去手 戲作小詞以送之)
만년에도 몸소 경작하니 과연 가난하고,
한 마리 닭과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리는구나.
진송지간晉宋之間의 번사煩事는 전혀 없으니,
자기가 희황羲皇 이상 가는 사람이로다.
晚歲躬耕不怨貧 支雞斗酒聚比鄰 都無晉宋之間事 自是羲皇以上人
천년 이후에도 백편의 시가 남아있는데,
다시금 한 글자도 청진清眞하지 않음이 없도다.
만일 왕씨나 사씨의 모든 낭관郎官을 초치해도,
시든 뽕나무 두둑 위 먼지에나 맞먹을 수 있을까?
千載後 百遍存 更無一字不清眞 若教王謝諸郎在 未抵柴桑陌上塵
“만년에도 몸소 경작하니 과연 가난하다.” 부귀와 빈한貧寒이 생각을 따라 교차한다. 관직을 버리고 전원에 내려와 어찌 부귀를 바라랴. 가난이야말로 도와 이웃사촌이다.
“한 마리 닭과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리는구나.” 술에는 안주가 있어야 하고, 홀로 즐기는 것보다 이웃과 함께 즐기는 것이 더욱 즐겁다. 나와 이웃이 하나이다. 지계두주只雞斗酒 또는 두주지계斗酒只雞는 한 말의 술과 한 마리의 닭을 의미하는데, 조조가 지기 교현의 묘소를 참배하며 한 말에서 유래한다.
“진송지간晉宋之間의 번사煩事는 전혀 없다.” 위오촉의 삼국이 정립한 이후부터 수나라가 통일하기 이전을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라 한다. 진송晉宋은 그 후기를 말한다. 혼돈의 시대이지만 별천지이다.
“자기가 희황羲皇 이상 가는 사람이로다.” 비록 복희씨는 성인으로 추앙받지만, 인간의 탈을 쓰고 태어났는지라 형체의 허물을 면할 수 없다. 연명 선생과 그 이웃은 머무르는 곳이 도원경桃源境이라 사람이란 원초적 형루形累가 없다. 어찌 희황보다 더 높지 않으랴. 나의 해석이 이러한 것이 아니고, 작가의 견해가 원래 그러하다.
“천년 이후에도 백편의 시가 남아있는데, 다시금 한 글자도 청진清眞하지 않음이 없도다.” 생명은 전승된다. 시도 또한 그러하다. 1천년 동안 이어온 생명력의 근원은 무엇인가? 바로 청진清眞이란 두 글자이다. 왕희지의 글씨도 또한 그러하다. 기교야 후인이 더 뛰어날 수 있지만, 마음의 근본 바탕은 여전히 뒤따르지 못한다.
“만일 왕씨나 사씨의 모든 낭관郎官을 초치해도, 시든 뽕나무 두둑 위 먼지에나 맞먹을 수 있을까?” 왕씨나 사씨는 당대 권문세가權門勢家이다. 그 자제들이 어찌 귀하지 않으랴. 그렇지만 가치판단의 기준이 다르다. 세계가 다르고, 차원이 다르다. 하나는 차안이고, 또 하나는 피안이다. 그렇고 보면 세가의 자제도 또한 논밭의 두둑에 서있는 뽕나무 이파리 위에 먼지보다 더 하찮을 수 있다.
먼지를 하찮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의 쪼그마한 먼지 안에 시방세계를 포괄하고(一微塵中含十方) 있기 때문이다.
2023년 9월 2일 길상묘덕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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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