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이야기 ] '녹터널 애니멀스'
의도와는 다른 결말 혹은 완벽한 복수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해외 포스터" |
“인생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낀 적 없어?”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는 시종일관 야행성 동물처럼 과거와 미래, 고민과 생각들을 늘여놓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때로는 로맨스, 때로는 스릴러,
밤과 낮의 구분 없이 잠을 쫓아내버리는 긴장감,
현실과 이상의 아슬아슬한 경계.
그 모든 것을 이 영화는 세 가지 구성과 잔잔하고 무거운 음악,
뚜렷한 색감의 영상미,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드러내고 있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스틸컷 |
성공한 미술계의 일원이자 갤러리 오너로서 화려한 삶을 보내던 수잔(에이미 아담스)이 자신의 전남편이었던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가 그녀에게 헌정한 소설을 펼치면서부터 이야기는 물꼬를 튼다. 오프닝부터 어딘지 모르게 부조화를 풍기는 화려함은 필자와 관객들에게 뇌리에 박힐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그 이후에도 장면 속 상황과는 상반된 괴리를 드러내는 연출들은 너무나 빼어났다. 톰 포드라는 브랜드를 입은 영화인지라 전작인 '싱글맨'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온갖 럭셔리 브랜드의 의상과 소품들이 빛을 발한다.
그리고 수잔이 사는 저택 앞의 제프 쿤스부터, 갤러리 내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까지 다양한 미술 작품들 또한 끊이지 않고 등장한다. 볼거리만으로도 풍성한 영화인데, 덤으로 스토리의 탄탄함과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갖추었으니 혀를 내두르며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데몰리션', '나이트 크롤러'에서 보여줬던 것만큼 강렬한 연기를 선보이는 제이크 질렌할과 평소와는 다른 연기 스펙트럼 선상에서 마주하는 애런 존슨의 눈빛은 영화가 끝나고도 생생히 또렷하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스틸컷 |
혹자는 스토리가 난잡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정도로 여러 이야기가 얽혀 서사가 진행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에드워드의 소설을 수잔이 읽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두 갈래 길로 나뉜다. 수잔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과 소설 속의 현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수잔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소설의 내용, 세 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틈을 주지 않고 급하게 전환되는 장면이 많은 만큼 매끄러운 흐름 구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에드워드의 소설 '야행성 동물'이 가진 특유의 범죄 스릴러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차지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함정에 빠져들기 쉽다. 왜 우리는 수잔과 함께 소설을 읽어 나가는가?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스틸컷 |
수잔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이러하다. 그녀의 전남편이었던 에드워드는 수잔이 가진 사치와 안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의 가치를 알아봤고, 따스한 말을 전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그렇게도 닮고 싶지 않던 냉소적인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달라질 수 있던 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살아온 삶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돈 많고 유능하며 안정적인, 사랑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허튼과 만난다. 에드워드의 아이를 지우고 괴로워하던 수잔은 허튼에게 기대지만, 에드워드는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하염없이 비만 맞을 뿐이었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스틸컷 |
에드워드의 입장에서 그가 완성한 '야행성 동물'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신기한 것은 소설을 받아들이는 수잔의 태도가 지나치게 감정이입한 듯 느껴진다는 것이다. 자신이 겪은 일을 토대로 소설을 구상해가는 에드워드에게, 수잔과의 이별 그리고 자신의 아이가 될 뻔한 존재의 상실을 드러낸 부분들이 적나라하게 혹은 과도하게 표출된다.
소설 속 장면에서 발생한 소음이 현실 속의 소음으로 이어지면서 비로소 현실의 감각을 되찾을 정도로 이야기에 몰입하던 수잔이었다.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그녀가 경험한 것은 상처와 그 복수를 위해 나아가던 에드워드의 환영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이었다.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스틸컷 |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이 영화의 결말이 당연하게 다가올 수 있다. 약속 장소에서의 부재가 복수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약속 자체부터가 필요 없었는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에드워드라는 인물은 책을 헌정한 누군가이거나, 수잔의 과거에만 등장하거나 소설 속 아버지로서만 등장한다.
수잔이 살아가는 '지금'이라는 순간에는 그의 얼굴이 내비쳐진 적이 없다. 수잔에게 자신이 느낀 고통과 상처를 고스란히 생생한 문체로 전하고, 그 과정 속에서 수잔이 되돌아봤을 과거와 잠 못 드는 나날들 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이 지나치게 뚜렷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복수를 이룬 것이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가는 소설에 회의적이었던 그녀에게, 자신과 자신의 아이가 될 뻔했던 존재를 버리고 떠난 그녀에게, 삶의 진중한 무언가를 놓치고 허덕일 그녀에게 '좋은 희망'을 하나 던져준 것이었다. 의도와는 다른 결말이거나 어쩌면 철저히 의도된 완벽한 복수였다.
[THE ARTIST매거진=민소영], ⓒ ZUM 허브줌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