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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홀로 테마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돈키호테
시골에 가서 부모님 수발하고 오면 없는 온 몸에 '병'이 도지는 느낌..
잠자리를 비롯해서 모든 것이 불편해서 그런지? 아니면 까다로운 부모님
눈치를 살피며 기분 좋게 해 드리려고 안하던 행동(?)을 해서 그런지?
하여간 시골만 다녀오면 온 몸이 찌푸드드~ ~
지난 설날도 시골에 다녀오고나서 그냥 저냥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지만,
아내가 코로나 검사를 받은 결과 '음성'으로 나와서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 괜찮겠지~ 하고 넘어갔다.
그렇게 2-3일이 지나고나서부터 내 육체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 들었다.
02/03(목) ...
아무일없이 출근을 해서 일을 하는데..
이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발이 시리고 온 몸이 서서히 떨리는 기분이 들까??
하지만 올해 겨울 날씨가 심심하면 영하 10도 주변을 맴 돌다보니
날씨가 추워서 그런갑다... 사무실 '히터'가 약해서 그런갑다~
퇴근시간까지 간신히 참다가 집에 온 이후에 방을 뜨겁게 하고 누웠다.
신기한 것은 집은 따뜻해도 몸에 추위는 가시지 않는 이상한 상황..
하여간 2-3시간 계속 따뜻하게 하니까 그래도 따뜻해 지는 느낌..
아무리 생각해도 '몸살 기운'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아니~ 난 '몸살'로 확신했다.
'타이레놀 진통제'를 먹고 일단 버텼다.
만약에 하룻밤 자고 내일 아침에도 이렇게 아프면 휴가를 낼 생각이었다.
02/04(금) ...
하룻밤 자고나니 정상은 아니더라도 어젯밤보다는 조금 나아 보였다.
집에서 쉬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출근해서 일하다보면 아픈 것도 잊혀 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하지만 출근을 해서 오전 11시쯤 되었을까?
괜히 출근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어제보다 발이 더 시리고 추운 느낌이다.
몸살 증세중에 발이 시린 것도 있는지는 몰라도 무엇인가? 느낌이 안 좋았다.
(직장) 보건소에서 몸살 치료약 3회분을 받아서 먹었다.
그냥 약기운으로 퇴근시간까지 버틴 것 같다.
직장 동료가 걱정을 해 주면서... 만약에 주말에도 계속 아프면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라고 제안을 했다.
퇴근할 때에 집으로 운전을 해서 오는데 약기운인지? 아니면 건강이 안 좋은
것인지?는 몰라도 운전이 힘겨웠다.
현재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100만명 시대...
결국 전국민중 50명중에 1명이 '코로나 확진자'라는 이야기..
설마 내가 그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코로나 일리가 없지..~!
내가 그렇게 재수가 없을라고???
코로나 2차 백신까지 맞았고, 3차 백신을 맞기 위해서 5일 뒤에 직장 근처병원에
예약까지 해 놓은 상태인데... 그 전에 감염되었을 리가 없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누웠다.
아파도 아파도 너무 아팠다.
심한 몸살.... 뭐랄까... 하루 종일 공중에 나를 메달아 놓았다가 풀어줬을 때에
온 몸 삭신이 쑤시는 그런 느낌처럼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당연히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기지개를 펴면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다.
'몸살'이 이렇게 심했던 적이 있던가?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02/05(토) ...
어젯밤 거의 잠을 못 잤다.
안방 침대에 누웠다가 ~, 거실로 나와서 잤다가~, 딸 방에 가서 누웠다가~
새벽에 아내가 주는 진통제 한개를 먹고 그나마 2시간 잠이 든 것 같다.
그래도 아프다.
신기하다. 내가 무슨 엄청난 막노동을 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지독한 몸살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
일단 집에 있는 진통제를 먹으며 견디긴 했지만 이때까지도 눈꼼만치도 '코로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감기 증세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밤에 10시쯤 침대에 누웠을까?
약기운으로 간신히 눈을 붙이는 정도..
계속 뒤쳤였다.
02/06(일) ...
어젯밤에도 몸살의 고통은 여전했다.
진통제에 의존해서 간신히 시간을 보낸다고 할까??
누나들이 등산 가자고 하는데 건강이 안 좋아서 집에서 쉬어야 한다고 하자.
큰누나께서 찰밥과 김치, 밑반찬들을 싸들고 와서 전해주셨다.
아침 11시쯤.. 찰밥과 김치를 먹었더니 그나마 기운이 돋는다.
오후 1시반쯤 약국에 가서 '몸살'약과 몸살관련 '진통제'를 구입했다.
약을 먹었더니 정말 통증이 많이 사라지고 그나마 견딜만 했다.
이렇게 끝났는가? 싶었다.
그런데 오후 3시에 (일요일에 출근한) 아내가 갑자기 코로나 검사결과 '양성'판정을
받았으니 나도 빨리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으란다.
아내는 PCR검사 결과 '양성'으로 확정되었고,
아내는 (호흡기에 문제가 심각해 지면서) 그 길로 입원을 했다.
내가 병원에 갔더니 '가족관계증명서'가 어쩌구. 보건소에 문자를 받은 것을
보여 줘야 하고.. 어쩌구~ 저쩌구..
아내가 확진이 되고 하루 뒤에나 검사가 가능한데 너무 빨리 가서 생기는 문제...
그 말은 어제는 무슨 수를 써도 검사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다.
일단 접수를 해 놓고, 집으로 왔다.
집에서 '자가진단키트'를 가지고 검사를 해 보았다.
(약국에서 판매하며, 2개에 15,000원)
젖은 면봉으로 콧속에 넣어서 10회 회전해서 약물을 묻혀서 검사결과를
15분동안 기다리면 색깔이 나온다.
1줄이면 음성, 2줄이면 양성..
15분이 아니라 3분만에 뚜렷하게 두줄이 그어졌다.
PCR검사는 '자가진단키트'보다 콧속으로 훨씬 깊숙히 넣어서 받는 검사이다.
자가진단키트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면 PCR검사는 더더욱 양성 확률이
높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그동안 내가 그렇게 고생한 이유가 몸살이 아니라 '코로나'에
걸렸을 가능성이 지배적이라는 이야기..
맞다.. 그러고 보고 '몸살' 치고는 너무 아팠다.
내 평생 막노동을 몇일 하더라도 이런 식에 전신 근육통증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하여간 몸살 약과 진통제 덕분인지는 몰라도 밤에 잠을 잘 때는 (최근 2-3일보다는)
덜 괴로웠다. 최소한 잠을 잘 잔 것 같다.
02/07(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했다. 그래도 어제 아침보다는 덜 아팠다.
하지만 진통제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했는지? 다시 몸살기운.
일단 진통제 한알을 먹고...
8시까지 병원으로 가서 줄을 섰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줄을 섰는지??
거의 9시반이 되어서 PCR 검사를 받았다.
영하 8도..그 추운 날에 1시간 반을 떨면서 서 있었지만
PCR검사는 1초도 안 걸렸다.
가느다란 면봉으로 콧속 깊숙이 쭈욱~~
몇 달전에 갈매동 보건소에서 PCR 검사 받을 때는 면봉이 두꺼워서
(본인이 비염으로 인하여 콧속 내부가 부어서 붙어 있다보니)
비좁은 콧속을 억지로 쑤시는 바람에 검사후 3시간동안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요즘은 면봉이 아주 가늘고 날렵해서 검사때는 아팠지만 1시간도
안 되서 검사한 것을 잊을 수가 있었다.
몸살일때는 몰랐지만, 막상 '코로나'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되자..
내 몸 근육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너무 아픈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집에서 진통제를 먹고 기다렸는데, 오후 2시가 넘었을까??
'동대문 보건소'에서 문자 한개가 도착했다.
****병원입니다.
02월 07일
최환철님의 PCR 코로나19 검사는 '양성(바이러스 검출)'입니다.
보건소에서 입원 조치 전까지 자택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시고,
동거가족과의 접촉이나 외출을 금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이어서 보건소에 날아오는 문자와 카톡이 폭탄처럼 마구 들어왔다.
그중에 위치확인 '웹'도 설치를 해야 했고, 거리를 벗어 날 경우에 벌금 3천만원을
내야 한다는 경고까지...
그리고 (재택근무중인) 딸도 '양성판정'을 받았다.
어제 딸이 '자가진단키트'에서는 '음성'이 나왔는데 PCR검사에서는 '양성'이 나왔다.
하여간 나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를 각오를 했다.
오후 6시쯤... 동대문 '보건소'에서 직원이 전화가 왔다.
코로나 방역팀 홈페이지에 접속을 해서 내가 지난 목요일부터 생활한 모든 내용을
보고한 것을 토대로 어느 정도 조사를 한 이후에... 상담을 진행했다.
코로나 환자가 너무 많아서 정부의 방역지침이 과거보다는 많이 달라졌다고...
특히 나는 기침,감기 질환(기관지 질환)이 없고 그냥 몸살 증세니까 진통제로 대충
견딜 수 있다는 판단하에 입원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물론 열이 나고 기침이 난다고 거짓말을 하면 입원이 가능하겠지만,
침상도 부족해서 난린데 '입원'이 뭐가 좋다고 그렇게까지 하겠는가??~!
내가 지난 주 목요일부터 몸살 기운이 시작되었으니 돌아오는 목요일(02/10) 오전 12시까지
자가격리를 해야 하며, 그 이후에는 (별도의 PCR검사 없이) 외출이 가능하다고..
다만 코로나 최종 종식은 02/13(일) 오전12시이므로 외출이 가능해도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지시를 했다.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것은 결국 일요일까지는 격리를 하라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에 기저질환이 발생하거나 통증이 시작되면 입원이 될 수도 있고,
격리 기간이 더 증가할 수도 있다.
오후 8시쯤.. 담당의사가 배정이 되었으며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반복적인 질문과 응답들..
그리고 이런 말을 해 준다.
전국에 코로나 환자가 하도 많다보니 제대로 써비스가 되지 않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아내가 (입원을 해서) 없는 상황이지만 딸이 같이 집에서
같이 격리중에 있다보니 적어도 교도소 독방은 아니라는 점..
(덜 심심하다는 것... 밥이라도 같이 먹을수 있으니..)
02/08(화)...
아침 9시쯤.. 담당 의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이후에 특별히 더 나뻐 진 것이 있냐고??
몸살 증세가 심하지만 진통제 먹고 견디고 있다고 대답했다.
정부에서 약을 무료로 줄 수는 있는데, 수준이라고 해봐야 타이레놀 수준이다.
그것도 마장동에 위치한 약국까지 누군가를 시켜서 들고와야 하는데,
약값이라고 해봐야 5,000-6,000원 들어갈텐데 마장동까지 차비와 인건비
생각하면 5만원에서 6만원은 나온다.
비현실적이다.
온도계와 물품들을 받았냐고? 묻는다. 받은 것이 전혀 없다고 하자,
환자가 많아서 그러니 이해해 달란다.
그런데 딸도 '양성'인데, 딸에게는 전화 한통 하지 않냐?고 물으니,
딸은 3차 백신까지 맞았고, 젊기 때문에 기저질환이 없으면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아침 10시쯤 되었을까? 둘째누나가 떡만두국과 반찬을 들고 와서 전달해 줬다.
위문품이다.
그러고보니 갑자기 군대 생각이 났다.
1991년도... 여름때 갑자기 군부대에 아폴로 눈병이 돌았다.
600명이 근무했던 부대에 아폴로 눈병은 전염이 심했고, 난리가 났다.
부대에서 1.5km 떨어진 소대 규모의 작은 군부대가 있었는데, 구타가 하도 심해서
강제 해산되었고, 그 건물은 우리가 격리환자가 발생되면 사용하곤 했다.
아폴로 눈병에 걸리면 그곳으로 격리시켰으며, 식사도 그쪽으로 배달해 줬다.
군대에서는 유격훈련을 앞에 두고 있어서 유격훈련을 받느니 차라리
아폴로 눈병에 전염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다행히 나도 눈병에 걸려서 눈알은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되었다.
군의관 앞으로 가기 전에 눈을 더 열심히 비볐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난 그렇게 유격훈련을 대신해서 소록도와 같이 격리된 부대로
옮겨서 생활하게 되었다. 점호도 없고 괴롭히는 사람도 없는 그곳은
지상 낙원이었다.
눈이 좀 따가울 뿐이지만.. 유격을 피할 수 있다면 그 정도 쯤이야~!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하필이면 그때.. 큰누나가 면회를 온 것이다.
30개월 군생활 하는 동안 면회 한번 왔는데, 하필이면 딱 그 타이밍에...
감염이 될까봐서 2미터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리는 큰누나를 보면서
참으로 난감하고 미안한 상황이었다.
막내가 걱정이 되서 그 먼거리를 면회 온 큰누나가 고마웠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된 막내를 위하여 누나들이
음식을 싸들고 와서 위로를 해 주니 30년전에 그날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
집 안에 있는 것이 답답해서 직장으로 1시간 전에 출근하는데, 선택의 여지 없이
무조건 집 안에 감금되어 있는 상황을 몇 일 체험하다보니 문득 '자유'의 소중함이
강하게 느껴진다.
내가 코로나에 감염된 것을 알고 아는 지인이 전화를 했다.
예전에 그분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1년 넘게 수감되어 있었다.
난 그분에게 편지를 1달에 1통씩 넣어 준 것 같다.
그분은 지금도 가끔 말하기를 .. 교도소 안이 얼마나 할 일이 없고 심심하던지..
1달에 1통씩 보내준 그 편지를 읽고, 또 읽고 ~
그 편지가 심심함을 채우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다고 고마워 한다.
그분이 이제는 거꾸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전화를 걸어줬다.
난 말했다. 내가 편지를 보냈으니, 당신도 나에게 편지를 해야지.
왜 전화로 때우려고 하느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글쓰기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글쓰기'는 고문이 될 수 있다.
그래도 그날과 그 은혜를 잊지않고 세월이 지나서 이렇게 전화를 해 주니 고마울 따름~!
최근에 너무 심하게 증가하는 '확진자'로 인하여 보건소 및 관계 공무원들이 초비상 상황이라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동대문 보건소에서 보낸 <격리 통지서>에는 오타가 두가지 발견되었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에서 오타를 일으켰는데, 보건소에 전화해서 수정하려고 해도
하루종일 보건소 전화는 불통이었다.
또한.. 코로나에 확진이 되어서~ 보건소에서 안내 받을 당시에는 코로나 증세가
시작되고서 1주일 뒤인 02/10(목) 12시부터 외출이 가능하되 접촉은 하지 말라고
했다가 1-2일 사이에 그 법을 바꿔서 무조건 02/13(일)까지 격리하라고 지시했다.
우왕좌왕 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침과 저녁으로 담당의사가 한번씩 전화가 온다.
그리고 이것저것을 체크한다.
나 역시 하루에 두번 온도, 맥박수, 심리상태, 포도당지수 등등을 스마트폰 웹에 등록을 한다.
어젯밤에는 9시쯤 잠이 들은 것 같다.
그런데 10시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온도계와 기본 의료용품을 배달하러 왔는데, 집을 못 찾겠다고..
새로 이사온 현재 집은 (아무리 주소를 깨알같이 써 놓아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모든 우편물은 반송이 되고 있으며, 택배는 이렇게 전화가 온다.
현관문을 닫아놓고 잠시 물어보았다.
"어떻게 밤 10시까지 배달을 하십니까??"
"아이구.. 아직도 갈 곳이 너무 많아요.
아마 12시까지는 배달해야 할것 같아요."
(택배 기사가 아니라 보건소 관계직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02/09(수)...
몸살약을 먹어야 통증을 감소시킬 수가 있었는데, 그나마 오늘은 컨디션이 좋게 느껴졌다.
그래서 진통제와 몸살약을 먹지 않고 견뎠다.
직장에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동료가 코로나 확정 가능성이 커졌고, 보건소에 들러서
PCR검사를 받았다고 한다. 거의 업무적으로 마비가 오고 있다.
보건소에 전화가 안 되서 '격리 통지서'에 오타를 바로잡는 작업을 했다.
하루에 2번 담당의사가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다만 특이한 것은 (동대문)보건소 직원의 안내와 '담당의사'의 안내가 다르다는 것이다.
보건소에서는 이번주 일요일(02/13) 오전12시까지 외출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의사는 내일(02/10 목요일) 오전12시 이후에는 간단한 외출을 해도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식당을 이용하면 안 되며, 그냥 단순하게 주변을
산책하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의미)
코로나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법령이 마구 변경되다보니
생기는 해프닝으로 느껴진다.
내일 낮 12시 이후에는 집안에 쌓인 쓰레기도 분리수거 작업을 하고
집 주변에 사람이 안 다니는 곳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산책이라도 할 생각이다.
특이하고 송구스러운 한가지..
코로나 확진이 된 다음에 혹시라도 시골 부모님께도 알려서 검사를 요청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코로나와 무관했다.
그런데 평소에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데, 걱정이 되시는지?
하루에 한번씩 꼭~꼭~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다.
참으로 송구하고 미안한 일이다.
02/10(목)...
직장 바로 나랑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옆자리 동료 역시 PCR 양성판정을 받고
집에서 자가격리 들어갔다. 부서에 남아있는 직원들이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호소했다.
하필이면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이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대놓고 짜증을 내니~
대놓고 한바탕 할수도 없고, 바쁜데로 자택에서 컴퓨터로 이것저것 급한 일부터
처리를 했다.
다음주 월요일에는 복귀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만 좀 참아 달라고 사정하는 수밖에~!
아침에 딸 아이가 토했다. 집에서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그나마 집에 딸이 있어서 덜 외로웠고, 서로가 큰 위로가 되었다.
계속 집안에 격리되어 있다보니 무엇을 먹어도 입맛이 사라져간다.
배달을 시켜 먹어도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운동량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코로나에 감염되면 가장 먼저
후각, 미각에 어느 정도 타격을 주기 때문에 입맛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질병도 무섭지만,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미래는 준비한 자에게 더 환하게 열려 있다.
'로보트'가 우리 삶 중심으로 점점 더 매섭게 다가오고 있으며, 인간의 직장을
위협하고 있다. 키오스크가 주문과 결재를 대신함으로 1명 이상의 인건비를
줄이게 되었다.
5-6년안에 자율주행 차량이 우리 삶의 한부분이 될 것이다.
버스기사, 관광버스 기사, 택시 기사들이 백수가 되어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가사도우미를 대체할 수 있는 로보트가 머지 않아 우리 눈에 들어 올 것이다.
저출산과 초고령화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럴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힘든 경제적인 불경기가 이어질 것이다.
읽은 책을 정리하면서 독후감을 써 보았다.
책을 읽기만 하도 독후감을 쓴다면 책을 두세번 읽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다.
02/11(금)...
아침에 직장 동료들과 소그룹 교육이 있어서 같이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동료들이 코로나 확진이 된 소감을 묻는다.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솔직하게 설명해 줬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내가 전화가 왔다.
아내와 26년 이상을 살아 오면서 이렇게 오랫동안 헤어져서 산 적이 있던가?
코로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상황이지만 아내에 대한 소중함과 건강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는 기회가 된 것도 사실이다.
어린 시절에 큰누나 집에 갔을 때에 주변에서 염소젖을 판매하는 사람에게서 구입한
염소젖을 얻어 먹을 기회가 있었다.
참으로 고소했던 그날의 추억을 떠 올리며, 보답하는 의미에서 (경남 의령에서)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야베스 목장'에서 우유와 요거트를 구입해서 선물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동창 중에 양계장을 했던 '알부자' 친구가 생각이 떠 올랐다.
이제 연락처도 없는 그 친구가 오늘따라 참으로 그립다.
02/12(토)...
코로나 확산이 끊이지 않고 증가하면서 국가에서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고 있는듯 싶다.
확진자가 되더라도 기침/열 등이 경미하거나, 3차 백신을 맞은 환자 그리고 젊은 분은
자택 격리로 기준을 바꾸고 있다.
병원에 격리하는 것은 위급한 사람이거나 나이가 많아야 한다.
어젯밤 담당 의사가 전화하기를 토요일 자정 12시가 되면 모든 격리가 끝나니
조금만 더 견디라고 했다.
하지만 동대문 보건소에서 보내 준 '격리 통지서'에는 일요일 낮 12시까지라고 했다.
보건소는 전화해봐야 연결될 확률은 거의 없고, 중간에 법이 바뀌면서
제대로 안내 받을 수도 없었다.
하여간 의사가 말 하기를.. 자신이 모두 책임 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
참으로 이상한 상황이다.
아침에 큰누나가 반찬과 국, 밥 등을 만들어서 배달해 주셨다.
입맛도, 밥맛도 없는데 ~
성의는 고마우나 ~ 냉장고에 먹지 않은 반찬들이 가득차서 감당하기도 어렵다.
02/13(일) ...
격리가 해제되었다고 마음대로 외출하는 것도 불편했다.
일단 딸 아이가 집에서 여전히 격리중이기도 하고, 집을 나가봐야
의욕이 없는한 할 일도 없었다.
다만 아내 역시 격리해제가 되어서 (병원에서 퇴원해서) 집에 왔다는 것..
생각해 보면 아내랑 1주일이 넘게 이별한 적이 있던가??
그래도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고 나니 생기가 돌았다.
02/14(월) ...
출근을 했다.
그리고 1주일동안 밀린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없었던 '식욕'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다.
평생 식욕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는데... 식욕이 8일간 사라졌다가
돌아오고나니 '식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깨닫게 되었다.
02/17(목) ...
동사무소에 들러서 가족 4명에 대한 '코로나 격리로 인한 정부지원금'을 신청했다.
구체적으로 얼마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4명에 대해서 신청을 했고,
1달 정도 뒤쯤에 나온다고 했다.
보건소에 출근하는 조카에게 물어보면 코로나 확진자가 하도 많아서
격리해제 지원금은 더이상 주지 않는다고 하는 말도 들었다.
주면 고맙고, 안 줘도 괜찮고~!
전국이 코로나로 인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체험하고 있는데,
어찌 내 입장만 생각하겠는가?~!
이번 주말에는 강남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다.
아내와 결혼한지 26년이 훌적 지났다.
26년전 그때 (예식장이 아닌) 시골 흐름한 마을회관에서 웨딩 드래스를 입고
그야말로 대충 결혼식을 올렸다.
세월이 지나서 강남에서 고급화장을 하고 다시 한번 더 웨딩 드래스를 입고
결혼사진을 찍기로 했다.
성인이 된 아들과 딸도 조만간에 결혼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신랑 복장을, 딸은 신부 복장을 하고 가족 사진을 찍을 것이다.
가족 모두가 같은 날에 코로나 확진이 되어서 격리되는 고통을 통과했으니,
이번에 찍는 가족사진은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소중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진관에서 찍은 일반 가족사진 모습)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머리가 허옇게 새서.. 염색을 할까? 말까?
하지만 나는 그냥 하얀 머릿결이 보고 좋다.
딴 사람은 보기 싫다고 하는데, 나이 먹는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으며,
나이 먹는 것이 싫지 않다.
02/19(토)...
강남 선릉역 주변에 있는 사진관으로 가족 4명이 함께 움직였다.
사진 촬영비 3만원을 입원했고, 사진관에서 화장(머리 다듬는 것 포함)은
남자 2만원, 여자 3만원 등으로 우리 가족은 총 10만원을 내야 했다.
옷까지 바꿔 입으면서 사진사가 요구하는 자세와 미소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마 40-50장은 될 것 같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이제는 어느 사진으로 선택할 것인지?
정하는 작업... 아니.. 바가지 쓰는 작업이라고 할까?
수많은 사진을 보면서 탐나지 않는 사진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갖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100만원을 내야 했다.
원래부터 계약은 엽서 수준의 크기로 가족사진 1장을 3만원에 주기로 한 것이다.
A4 사이즈 크기로 한장 빼는데 20만원이고,
적어도 5개 정도는 만들어야 사진 원본을 모두 준다는 이야기..
사진 한장 빼는데 원가라고 해 봐야 몇 천원이면 된다.
그러니까 이 사진관(스튜디오)은 100만원을 쓸 수 있는 '부자(?)를 대상으로
운영한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나같은 가난뱅이는 대상이 아니다.
애써서 찍은 사진도 탐이 나고, 모두 잘 나와서 탐이 나기도 했다.
그래서 아들, 딸에게 100만원 짜리로 하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지만,
아들, 딸은 결혼식 때에 실컷 찍을텐데 뭐하러 낭비하냐?고 해서
결국 20만원짜리 가족사진 한장 빼는 것으로 만족했다.
<코로나 일기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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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마음의 치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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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웃을 때 가장 아름답다.
-칼 조세프 쿠 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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