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넘은 봄바람은 섬진강을 건너 매화에 닿았다.
‘봉동홍매(鳳洞紅梅)’
구례읍의 중심지인 봉동리에도 어김없이 봄이 찾았다.
한때 읍내를 동서남북(동내, 서내, 남내, 북내동)으로 나눴고, 그 중 북내동과 동내동을 병합하면서 ‘봉동리’라 했다.
봉동리라는 이름은 구례의 진산 봉성산의 동쪽에 있다하여 지어진 것으로, 봉성산은 계절마다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구례사람들의 사랑과 아낌을 받기도 하지만,
한때 1948년 여순반란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된 구례지역 주민들을 연루자로 지목, 70여명을 총살하고 집단 매장한 곳으로 알려 졌고, 2007년에 봉성산 일대에서 유해 12구를 발견하기도 한 곳이다.
봉성산은 해발 165.5m의 작은 산이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멀리 구례읍내와 섬진강 그 뒤로 오산까지 조망되는 구례 진산이다.
‘봉동리(鳳洞里)’는 구례읍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으로 우체국 앞 수령 150년 당산나무에 매년 그믐에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 구례군에서도 인구가 가장 인구가 가장 많은 마을로 5일장과 상설시장을 비롯하여 상업의 중심지이기도 하고, 옛 객사와 관아가 있던 곳으로, 로터리에는 박경현(朴敬鉉)의사의 동상이 기미독립만세 의거 터에, 서시천에는 광주학생운동의 씨앗을 뿌린 왕재일(王在一)선생의 동상이 자리한다.
읍내의 중심에는 구례경찰서가 자리하며 잘 정비된 이면도로에 ‘봉동홍매’가 자리한다.
구례여성회관 앞의 너른 마당에 주차를 하고 나면 길가 멋스러운 돌담위로 당당하지만 부드러운 시선의 홍매화를 만나게 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경찰서장이 머물렀던 공간이다. 일본인 경찰의 사택으로 일본식 가옥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지만 이제는 잘 정비된 정원과 편안한 마음을 주는 공간으로 바뀐 한의원이다. 주인장이신 ‘임규(林圭)’한의사님의 정성과 수고로움으로 80년 이상을 버텨온 홍매화가 그리도 사랑스럽다.
‘봉동홍매(鳳洞紅梅)’
수고 4m, 수폭 4.5m의 수령은 약 80년생의 연분홍매화다.
허리 높이에서 3갈래로 갈라져 있다. 한쪽 가지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있으나, 수세는 매우 강해 보인다. 가지의 뒤틀림은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러한 자태다. 드문드문 피워 낸 꽃은 자태를 뽐내는 매화 스스로의 아름다움이다.
이정도의 정매(庭梅)라면 주인장의 정성이 머문 것이다.
담벼락 가까이 자라고 있어 한쪽으로 치우칠 뿌리로 인해 자라남은 비틀릴 수 있겠으나, 고매의 품격은 나무의 뒤틀림에 있는 것으로 본다면 그 또한 주인장의 손길이리라. 매화를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인생을 즐기는 것이라 했다. 주인장의 그러한 인품은 한의사로서도 인정을 받은 듯 예약 없이는 진료를 못할 정도로 명의가 되어 계셨다.
읍내 한 복판에서 만난 귀한 매화,
봉동홍매는 미래도 걱정이 없다. 주인장의 귀한 손길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더하여 비슷한 수령의 백매 두 그루가 정원 마당에 손질되어 숨을 이어가고 있다. 멀지않은 내일이면 매화 세 그루가 한의원의 봄 정원을 가득 채울 것이다.
그 향으로 행복해질 것이다.
몇 백년의 고매도 회피되어 죽어나가고 천재지변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상황에서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펴주시는 한의원님의 정성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글, 사진 자유여행가 박성환
www.한국기행kr
첫댓글 매화박사님? 설명도 재미?있구요..사진도 실물을 눈앞에서 보는듯요...잘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늘 공부중입니다.^^
매화가피기시작하니 바쁘시죠 좋은매화꽃구경잘 하고갑니다
마음만 바빠집니다. ^^;; 올해는 그렇고 내년 탐매 계획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