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3. 3. 11. 토요일.
한국국보문학 2023년 동인지 봄호 '내 마음의 숲'에 낼 자료를 검색하다가 일기장을 발견했다.
샤프펜으로 쓴 일기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의 일기이다.
컴퓨터 자판기로 타이핑해서 여기에 올린다.
아들이 혼자인 나.
나는 정년퇴직한 뒤에서야 시골로 내려가서 홀로 살던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살기 시작했다.
* 어머니는 2015. 2. 25. 밤 11시 15분에 다시는 오지 못할 저세상으로 여행 떠나셨다.
2009. 7. 2.
정년퇴직 이틀째.
오전에 묵정밭 서너 평 쯤 풀을 뽑고, 삽으로 밭두둑 형태로 만들다.
내년에 무엇을 심을까?
나무 그늘 아래이니 취나물 등 습기성 작물을 심어야겠다. 상추 등.
점심 준비, 점심, 설겆이를 하면 한 시간 15분쯤이 걸린다.
냉동고, 냉장고에 둔 묵은 음식물을 다시 손질해서 먹어야 한다.
노모는 기억이 나지 않는지 냉장고, 냉동실에 무엇이 들었는지 전혀 생각이 안 나는 모양.
자시던 것만 자꾸 만들어서 드신다.
깻잎, 상추잎을 간장에 절이고.. 절인 반찬류를 끊임없이 만들어서 ... 맛이 쉬고... 내다버리고...
나는 즉석에서 반찬 만들고 끓이기를 선호한다. 조금 넉넉히 해서 다음 끼니 때 마저 먹으면 되는데....
냉장고에 둔 음료수. 모친이 음료수를 많이 만들고 냉장고에 보관하고도 기억나지 않으면 이내 시어버린다.
이것을 모아서 주전자에 넣고 끓으니 달작지근하면서도 시금털털하다.
칡뿌리 결명자 질경이 옥수수 감초 대추 등을 넣고 한꺼번에 끓였다. 맛이 독특하다. 순순한 맛이 안 난닫.
냉장고 안에는 바나나 토마토가 부패한 것... 식초가 되었더라.
지난번 어머니 자시라고 사놓고 서울 올라갔더니만 냉동고에서깡깡 얼어서...
이를 녹히니 맛이 희한하게 버렸다. 나 혼자서 마실 수밖에.
무릎이 아프다.
오전에 비 오고 햇볕이 나더니만 오후에 짙은 구름 바람이 심하게 분다.
어머니가 봄내 밭에서 뜯은 나물을 마당에 다시 널었다. 곰팡이 슬까봐.
어머니의 소일거리.
버리지 말고 잘 말려서 물 끓여 마셔야겠다. 온갖 잡풀로...
발효시키면 좋은 술이 될 터인데.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자주 볕에 말려 두어야겠다.
어머니의 수고로움. 아흔한 살(90살. 섣달 그믐이 생일) 노모가 아니더냐?
살아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축복이다.
당신이 만들고 말린 풀잎을 올해에는 버리지 말고 끓여서 먹는 방법을 연구해보아야겠다.
산야초가 별것이던냐?
밤 열시. 무덥다.
노모의 어깨를 주물렀다. 앉아서는 아프다고 기겁하셨다.
요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주물러 드렸다. 아흔살 노모의 근육은 전혀 없다. 나이들면 근육이 녹아서 흐물거린다.
밤중에 물을 새로 끓이다. 노모는 맛이 신 물을 못 드시기에.
2009. 7. 2. 일기장에서
이런 류의 일기는 무척이나 많을 터.
시골집에는 컴퓨터가 없기에 일기장에 생활글이나 끄적끄적거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