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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25회
제양공은 제족이 예물을 가지고 찾아오자 흔쾌히 맞이하고, 예물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홀연 고거미가 정소공을 시해하고 공자 미를 군위에 옹립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양공은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토벌할 마음을 먹었는데, 노환공 부부가 곧 제나라에 올 예정이었기 때문에 일단 정나라 문제는 제쳐두고 노환공을 맞이하기 위해 낙수(濼水)로 갔다.
[제24회에, 제양공이 주왕실에 청혼했는데, 노환공이 그 혼사를 주관하기 위해 제나라로 오기로 했었다.]
한편, 제나라 사신이 노나라에 가서, 노환공이 제나라로 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제양공의 뜻을 전했다. 그 소식을 들은 노환공의 부인 문강은 오라비인 양공이 그리워 귀녕(歸寧)을 핑계로 노환공과 동행하기를 원했다. 노환공은 아내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에 그 청을 수락하였다.
[제17회에, 문강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제양공과 정을 통했었고, 노나라로 시집가면서도 제양공에게 서로 잊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귀녕’은 시집 간 딸이 친정에 돌아가서 부모에게 문안하는 것을 말한다. ‘근친(覲親)’이라고도 한다.]
대부 신수(申繻)가 간했다.
“여자는 집안에 있어야 하고 남자는 집을 지켜야 하는 것이 예로부터의 법도입니다. 예법이 무너지면 안 되며, 예법이 무너지면 문란해집니다. 여자가 출가한 후, 친정 부모가 살아계실 때에는 1년에 한번 귀녕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군부인의 부모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누이로서 오라비에게 귀녕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노나라는 예법을 잘 지키는 나라인데, 어떻게 예법에 어긋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노환공은 이미 문강에게 승낙했기 때문에, 신수의 간언을 듣지 않고 부부가 함께 제나라로 갔다.
노환공 부부가 탄 수레가 낙수에 당도하자, 제양공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양공은 정중하게 노환공 부부를 영접하고, 서로 안부 인사를 나눈 다음 함께 제나라 도성 임치(臨淄)로 갔다.
노환공은 청혼을 허락한다는 주왕의 명을 전하고, 혼사에 대해 의논하였다. 제양공은 매우 감격하여 연회를 크게 열어 노환공 부부를 잘 대접하였다.
연회가 끝난 후 제양공은, 노환공은 객관으로 모셔가게 하고 문강은 옛 궁빈들과 상면하게 한다는 핑계로 궁으로 데리고 갔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양공은 궁중에 미리 밀실을 마련해 놓고 따로 술자리를 마련해 문강과 정을 나누었다.
술이 얼큰하게 취하자 네 개의 눈이 서로 마주보면서 욕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둘은 마침내 천륜을 돌아보지 않고 구차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고도 둘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궁중에서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해가 세 길이나 높이 떠오를 때까지 둘은 침상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일어날 줄을 몰랐다.
한편, 혼자 객관에 남겨진 노환공은 쓸쓸한 하룻밤을 보냈다. 노환공은 의심스런 생각이 나서 사람을 궁문으로 보내 자세히 알아보게 하였더니,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齊侯는 아직 정비(正妃)를 맞이하지 않았고, 편궁(偏宮) 연씨(連氏)만 있습니다. 연씨는 대부 연칭(連稱)의 사촌 누이동생인데, 근래에 총애를 잃어 齊侯가 찾지 않는다고 합니다. 군부인께서는 궁중으로 들어가서 오누이의 정을 나눈다고 하는데, 다른 궁빈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노환공은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했지만, 함부로 궁중으로 뛰어들 수 없는 것이 한이었다. 할 수 없이 동정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때 마침 한 신하가 와서 보고하였다.
“군부인께서 궁에서 나오십니다.”
노환공은 화난 기색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문강이 오자 물었다.
“밤새 궁중에서 누구와 함께 술을 마셨소?”
문강이 대답했다.
“연비(連妃)와 함께 마셨습니다.”
“언제 헤어졌소?”
“오래간만에 만나 얘기가 길어져, 달이 담장에 닿을 무렵이었으니까 한밤중이었을 겁니다.”
“당신 오라버니도 술자리에 함께 있었소?”
“오라버니는 오지 않았습니다.”
노환공이 웃으며 물었다.
“오누이간에 정을 나누고 싶었을 것인데, 오지 않았단 말이오?”
“연비랑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에 잠시 들러서 한 잔만 권하고 바로 가셨습니다.”
“술자리가 파한 뒤에, 왜 궁에서 나오지 않았소?”
“밤이 깊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디서 잤소?”
“지나치십니다! 그런 것까지 묻습니까? 궁중에 빈 방이 허다한데, 잠잘 곳이 없겠습니까? 첩은 서궁에서 잤습니다. 예전에 제가 지냈던 곳입니다.”
“당신은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일어났소?”
“밤에 술을 마셔서 피곤한데다, 아침에 머리 빗고 화장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누구랑 같이 잤소?”
“궁녀랑 잤습니다.”
“당신 오라버니는 어디서 잤소?”
문강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누이동생이 오라버니가 어디서 자는지 무슨 상관입니까? 하시는 말씀이 우습습니다!”
“오라버니가 누이동생의 잠자리를 돌보는 것은 괜찮단 말이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고로 남녀는 유별해야 하는 법이오. 당신이 궁중에서 오라버니와 동침한 것을 과인은 이미 다 알고 있으니, 숨기지 마시오!”
문강은 입으로는 중얼중얼하면서 잡아떼고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속으로는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노환공은 제나라에 있는 몸이라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성질을 터뜨릴 수는 없었다. 즉시 사람을 제양공에게 보내 작별을 고하고, 귀국하여 다시 조치하기로 마음먹었다.
한편, 제양공은 자신의 행동이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문강이 궁에서 나간 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몰래 심복 역사(力士) 석지분여(石之紛如)를 보내 노환공 부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듣게 하였다. 석지분여가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노후와 부인이 말다툼을 했는데, 여차여차 하였습니다.”
양공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노후가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어찌 이렇게 빨리 알았을까?”
잠시 후 노환공이 보낸 사람이 와서 작별을 고했다. 양공은 일이 누설되었음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산(牛山)으로 놀러가서 거기서 송별연을 하자고 청하였다.
노환공은 처음에 사양했지만, 제양공이 몇 차례나 사람을 보내 요청하자, 할 수 없이 응낙하였다. 노환공은 수레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문강은 홀로 객관에 남아 애를 태우고 있었다.
한편, 제양공은 문강을 다시 볼 수 없게 되는 것도 서운하고, 노환공과 원수가 되는 것도 두려웠다. 그래서 기왕 시작한 일을 끝장 내버릴 결심을 했다. 양공은 공자 팽생을 불러 분부했다.
“연회가 끝난 뒤 노후를 객관으로 데려다 주면서, 수레 안에서 끝장내 버리게.”
팽생은 기나라로 쳐들어갔을 때 노·정 연합군과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죽을 뻔했던 것을 상기하고서, 은쾌히 명을 받았다.
[팽생이 화살에 맞은 일은 제22회에 있었다.]
양공은 그날 우산에서 연회를 크게 열어 가무(歌舞)를 공연하고, 정성껏 노환공을 대접하였다. 하지만 노환공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양공은 여러 대부들에게 돌아가면서 술잔을 권하게 하고, 궁녀들과 내시들에게 명하여 무릎을 꿇고 술잔을 올리게 하였다.
노환공은 마음속에 울분이 가득하여 술로 씻어내고자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크게 취해서 양공과 작별할 때에는 예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양공은 팽생으로 하여금 노환공을 안고 수레에 태우게 하였다.
팽생은 노환공과 함께 수레를 타고 가다가, 성문에서 약 2리쯤 떨어진 곳에서 노환공이 완전히 곯아떨어진 것을 보고 팔로 그의 옆구리를 꺾었다. 팽생은 힘이 엄청 센 사람이었고 그의 팔은 무쇠와 같았다. 노환공은 옆구리가 꺾이면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수레 안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다.
팽생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노후께서 술에 취하여 급사하셨다. 빨리 성중으로 달려가 주공께 보고하라.”
사람들은 의심이 들었지만 아무도 감히 말하지는 못했다.
사관이 시를 읊었다.
男女嫌微最要明 남녀 간에는 작은 혐의도 분명해야 하거늘
夫妻越境太胡行 부부가 어찌하여 함께 국경을 넘었던가!
當時若聽申繻諫 그때 신수의 간언을 들었더라면
何至車中六尺橫 어찌 그 몸이 수레 안에 가로누웠겠는가?
노환공이 갑자기 훙거했다는 보고를 받고, 슬픈 척하면서 거짓 통곡을 했다. 그리고 명을 내려 시신을 염하여 입관하게 하고, 노나라에 사신을 보내 환공의 훙거를 알리고 영구를 노나라로 모셔가라고 하였다.
노환공의 수행원들이 노나라로 돌아가, 환공이 수레 안에서 피살된 일을 자세히 보고하자, 대부 신수가 말했다.
“나라에는 하루도 군주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세자 동(同)으로 하여금 상사(喪事)를 주관하게 하고, 영구가 도착하는 날 즉위식을 행하도록 합시다.”
노환공의 서장자(庶長子)인 공자 경보(慶父)가 팔을 걷어 부치며 말했다.
“제후가 인륜을 어지럽히고 무례하게 굴더니, 그 화가 군부(君父)께 미쳤습니다. 나한테 병거 3백승을 내주면, 제나라를 토벌하여 그 죄를 성토하겠습니다!”
대부 신수가 그 말에 혹하여, 은밀히 모사(謀士) 시백(施伯)에게 말했다.
“제나라를 토벌하는 일이 가능하겠소?”
시백이 말했다.
“이는 애매한 일이라, 이웃나라에 소문을 낼 수도 없습니다. 게다가 노나라는 약하고 제나라는 강하니, 토벌한다 해서 반드시 이기지도 못할 것이며 도리어 추한 일만 드러낼 뿐입니다. 차라리 참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수레 안에서의 사고 경위를 밝혀 공자 팽생을 처벌하고 열국에 해명할 것을 제나라에 요청해야 합니다. 제나라는 반드시 그 요청을 들을 것입니다.”
신수는 경보에게 그 말을 고하고, 시백으로 하여금 국서를 작성하게 하였다. 사신으로 하여금 국서를 제나라에 전하고 영구를 모셔오게 하였다.
제양공이 노나라의 국서를 펼쳐 보니 다음과 같았다.
외신(外臣) 신수 등은 제후 전하께 서신을 올립니다.
과군께서는 천자의 명을 받고서 감히 편안히 앉아있을 수 없어 혼사를 의논하여 제나라로 가셨는데, 돌아오시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수레 안에서 변고를 당하셨다는 소문이 길거리에 분분히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잘못을 따지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 치욕이 제후들에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하오니 팽생의 죄를 다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세자가 상중이기 때문에 대부의 이름으로 국서를 보낸 것이다.]
양공은 국서를 보고 나서, 팽생을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팽생은 스스로 공을 세웠다고 여기고 뻐기면서 들어왔다. 양공은 노나라 사신의 면전에서 팽생을 꾸짖었다.
“노후께서 술이 과하여 과인이 너에게 부축하여 수레에 태워 드리라고 했는데, 너는 조심해서 모시지 않고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시게 했단 말이냐! 네 죄는 용서할 수 없다!”
양공은 좌우에 명하여 팽생을 포박하여 저자에서 참수하라고 하였다. 팽생이 큰소리로 외쳤다.
“누이동생과 음행을 저지르고 그 남편을 죽인 것은, 모두 너 무도한 혼군이 한 짓인데, 오늘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구나! 내가 죽어서 귀신이 되어 네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과연 팽생의 저주가 실현될 것인가?]
양공은 급히 귀를 막았다. 하지만 좌우의 사람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양공은 주왕실에 사신을 보내 혼사를 승낙한 것에 사례하면서 혼인 날짜를 정하게 하였다. 그리고 노환공의 영구를 노나라로 보냈다. 문강은 노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제나라에 남았다.
노나라 대부 신수는 세자 동과 함께 교외에 나가 영구를 영접하고, 영구 앞에서 발상한 다음 세자를 즉위시켰다. 그가 노장공(魯莊公)이다. 신수, 전손생(顓孫生), 공자 익(溺), 공자 언(偃), 조말(曹沫) 등 문무 신하들은 조정의 기강을 재정비하였다.
장공의 이복형 공자 경보, 이복아우 공자 아(牙), 동복아우 계우(季友)도 모두 국정에 참여하였다. 신수는 시백을 천거하여 상사(上士)의 직에 임명하였다. 이듬해에 개원하였는데, 주장왕(周莊王) 4년이었다.
첫댓글 ㅡ 제희공(齊僖公)의 차녀로 노환공(魯桓公)에게 시집갔음. 출가 전부터 이복 오빠인 제양공(齊襄公) 제아(諸兒)와 불의의 관계를 가졌고 출가 후에 노환공이 제나라를 방문했을 때 함께 따라가 관계를 재개했음. 이를 눈치채고 대노한 노환공을 제양공으로 하여금 살해하게 하는 대죄를 범했음. 노환공이 죽은 후에도 계속 제, 노 양국 국경 지대에 머물면서 제양공과 사통하였고 제양공의 서녀 애강(哀姜)과 자신의 아들 노장공(魯莊公)의 혼인을 강제함. 이것이 후에 또 다른 비극을 낳게 됨. ㅡ
이상 희대의 색정녀 문강에 대한 백과사전을 카피했습니다.
무려 2.700년 전의 일이었음에도 요즘 어디서 발생한 패륜 뉴스를 듣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오래전의 어찌 저리 세세하게
묘사되는지 역시 대국 답습니다